지역개발대학원 (법학전공)---느낀 감명은 남달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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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장효근 작성일13-06-18 22:03 조회4,738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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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 안녕하십니까?저는 교수님에게 한국전통법의 정신에 대해서 강의를 받고 있는 지역개발대학원생 장효근 입니다. 이렇게 장기교육을 오게되어 교수님의 강의를 듣지 못하게 된것을 무척 안타깝게 생각합니다.교수님의 강의를 들으면서 짧은 기간이나마 많을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교수님을 존경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아무도 관심을 갖지않는 우리나라의 전통법에 대하여 이처럼 많은 연구와 업적을 남기신 데 대하여 최고의 찬사를 보냅니다. 귀한 자료를 구하기 위하여 고생하시고 특히 집까지 팔았다는 말씀을 들었을 때 느낀 감명은 남달랐습니다. 교수님의 홈페이지에 올려놓은 많은 자료들을 살펴보면서, 특히공직자의 한사람으로서 이러한 일은 교수님 개인이 수행할 일이아니고 국가에서 해야한다는 생각이 들었개 때문에 더 했습니다. 국가에서 할 일을 개인이 사재를 털어서 했다면 국가에서 당연히 보상을 해 주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현실이 더 안타깝습니다.그러나 교수님의 이러한 노력과 성과들은 우리것에 대한 관심과 연구의 기초가 되어 후학들의 탐구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고 교수님의 업적에대한 세상의 정당한 평가가 머지않아 이루어 지리라 믿습니다. 건강히시길 빌면서 이만 줄이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요.수원의 교육원에서................ 리포트 과목;법학일반이론 韓國 傳統法의 精神(要約) 지역개발대학원 석사과정 장 효 근1. 시작하는 말한 학기 동안 수강한 한국 전통법의 정신 강의는 나에게 많은 것을 느끼고 생각하게 해 주었다.지금까지 내가 알고있던 조선시대는 엄격한 신분사회여서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신분에 따라 차등을 가지고 한 평생을 살아 가야하고 신분이동이 불가능하며 특히 노비의 경우에는 사람이 아닌 물건 취급을 당하여 사고 파는 일이 있었음을 볼 때 당시에 천부인권사상이 있었다는 것은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이러한 여러 가지 전통 법 정신 가운데에서도 나에게 가장 깊은 감명을 주었던 조선시대의 정치사상, 애민사상, 민본사상, 천부인권사상 등 입법의 기초가 되는 사상들에 대하여 살펴보고 요약해 봄으로써 그 이해를 깊이 하고자 한다.2. 政 治 思 想조선시대에 있어서 정치사상을 역대 임금들과 신하들의 어록을 통해 나누어 살펴보면, 세종 임금은 "정치라는 것은 백성들의 생활을 풍족하게 하는 것", "훌륭한 정치는 인륜을 밝히는 것이다." 라고 하였다. 또한 정조임금은 "성왕의 정치란 사람을 사랑하면서 백성을 부리는 것이 그 전부이다." 라고 하였다.신하들의 정치관을 살펴보면 정치는 백성들의 부담을 가볍게 하는 것, 백성을 잘 살게 하는 것, 정치는 인심을 안정시키는 것 등의 말로 표출되고 있다.3. 愛 民 思 想역대 조선의 왕들은 국가적 재난이나 위기가 있을 때마다 백성을 먼저 생각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숙종 때 가뭄과 물난리가 나자 임금이 말하기를 "죄는 과인에게 있거늘 백성들이 부슨 잘못이 있는가? 내가 부덕하고 또한 착한 일을 한 것도 적어서 하늘에서 이 불행과 물난리를 내리는 구나" 라고 자신의 부덕을 자책했다. 또한 흉년이 들어 먹을 것이 없어 한 백성이 목메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고 "내가 어린 나이로 문득 하늘이 무너지는 슬픔을 만나서 밤낮으로 슬피 울 따름이다. 왕은 백성을 하늘처럼 여기나 백성들은 먹는 음식을 하늘같이 생각한다. 하늘같은 백성들은 춥고 배고파서 괴로워 하다가 스스로 목을 매어 죽기까지 하기에 나는 더욱 당황하고 놀라서 걱정근심을 참기가 어렵고 먹고 쉬는 것도 편안하지가 않구나." 라고 하였다.영조는 "아! 슬프다. 우리 백성들이 살아서는 안정을 누려보지도 못하고 죽을 때 까지 고통스럽게 살아야 한다. 내 앞의 두 선조 임금들이 보살펴온 백성들이 다 죽게 되었다는 생각을 하니 먹는 것이 어찌 목에 넘어 가겠는가." "나는 재주가 못나고 덕도 없다. 그러면서도 외람되이 임금자리에 앉고 보니 밤이나 낮이나 깊은 못과 골짜기에 내버려 진 것같이 두려워 하고있다. 그 이유를 생각해보니 잘못이 진실로 내게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런 생각과 말을 하게 되었으니 어찌 잠을 편히 잘 수 있겠는가." 라고 하였다.정조 때에는 "아 내가 외람되게 큰 임금의 자리를 이어 받은 지가 이미 6년이 지났지만 아래로는 백성들에게 은혜와 혜택이 도달되지 않고 위로는 하늘을 감동시키지 못하여 재앙이 겹치고 굶주림이 계속되는 구나. 나는 언제나 백성들이 먹을 양식이 모자라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것을 생각할 때마다 그 아픔이 내 몸에서 생긴 것처럼 마음이 아프다." "한사람의 백성이라도 소홀히 하여 구제대상에서 빠뜨리지 말고 한 사람의 백성이라도 호기 버려지거나 못 먹어서 야위는 사람이 없도록 하라." "백성들에게 곡식이 없으면 나라가 어찌 다스려 지겠는가, 나 자신이 먹는 것은 줄일 수 있지만 백성들이 끼니를 거르게 할 수는 없다." 라고 하였다.순조 때에는 "실로 너무도 불쌍하고 민망하다. 내 마음이 상하는 것 같아 잠자리에 들 때에나 음식을 대할 때도 편안하지가 않으니 앞으로는 이 뜻을 가지고 거듭 내 창고의 돈과 물건을 내려 위로하고 구해주어라." "비단 옷을 입어서 내 몸이 따뜻할 때에는 우리 백성들이 입을 옷이 없는 괴로움을 생각하고 쌀밥이 입에 맞을 때에는 우리 백성들에게 먹을 밥이 없는 것을 생각하고 내가 가까이 하는 옷 한 벌 밥 한 끼라도 실제로는 내 몸과 마음에 편안하지가 않고 슬프고 두려우며 뼈를 깍는 것 같은 아픔이 내 몸 안에서 생기는 것 같다." 라고 하였다.철종 때에는 "불쌍한 우리 백성들의 탄식하는 소리와 걱정하는 얼굴빛을 보지 않아도 본 것 같고, 듣지 않아도 들은 것 같으니 어찌 놀라지 않으며 슬퍼하지 않겠는가." "한 명의 백성이라도 억울하게 세금이나 돈이나 곡식을 거두어 들인다는 한탄이 없게하라." 라고 하였다.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조선의 임금들은 백성을 자기의 수족과 같이 생각하고 고통과 아픔을 생각하였던 것을 알 수 있다.4. 民 本 思 想민본사상이란 나라의 근본이 백성이라는 것이다. 조선시대 당시 임금들의 어록을 살펴보면 임금들은 「백성은 곧 하늘」이라고 생각했다. 세조는 "백성은 하늘이니 백성의 마음이 편안한 뒤에 하늘의 마음도 편안하여 지는 법이다." 라고 하였다.선조는 "임금은 백성을 땅으로 삼는데 민심이 이와 같으니 어찌 나의 부덕한 소치가 아니겠는가? 그 원인을 궁구해 보면 책임은 실로 나에게 있다." 라고 하였고 숙종은 "임금은 백성을 하늘로 삼고 백성은 먹을 것을 하늘로 삼는데." 라고 하였다.태조는 "백성이란 오직 나라의 근본(뿌리)이 되는 것이니 각각 있는 곳에서 넉넉하게 구제해주고 위로해 주어라."숙종은 "임금은 백성이 없으면 부릴 사람이 없고 백성은 임금이 없으면 섬길 데가 없으니 사랑하고 보호해야 할 것은 백성이며 돌보아 주어야 할 것이 백성이 아니냐. 한 사람이 굶주리는 것도 마치 내가 굶주리는 것으로 생각하고 산사람이 추워해도 마치 내가 추운 것처럼 여긴다." 라고 하였다. 또한 백성을 자신의 갓난 자식으로 표현한 임금은 성종, 연산군 등이 있었다. 또한 이러한 생각은 그 당시의 정치가들에게도 똑 같았다. 이러한 흔적들은 많은 곳에서 나타나고 있다.5. 朝鮮의 平等思想조선시대는 엄격한 신분사회라 인권평등 사상은 물론 신분의 사회적 이동이 전혀 불가능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으나 당시 임금들의 어록을 살펴보면 천부인권 평등사상이 존재하였음을 알 수 있다.세종과 영조는 "하늘이 백성을 낳으매 볼 때 귀천이 없는 것." 이라 하였고 순조는 "사람의 귀천과 궁달은 모두 태어난 이 후의 일이다." 라고 하였고 태종, 세종, 성종은 "노비도 똑 같은 인간이다." 라고 하였고 효종과 성종은 "내수사의 노비와 중도 하늘이 낸 백성이다." 라고 하였다.또한 신하들도 "사람의 본성과 사람과 예절과 효도와 충성과 인재등용도 만인에 평등하다." "세금도 평등하게 내자." "공평한 병역의무", "첩의 자손도 다 같은 인간이다.", "섬에 사는 오랑케도 역시 하늘이 낸 백성이다."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많았다.이상에서 살펴 본 조선시대의 정치사상, 애민사상, 민본사상, 천부인권사상들은 지금까지 들어본 바도 없고 배운 바도 없었으며 생각조차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 당시 이러한 입법사상이 존재하였다는 것을 살펴보고는 우리 조상들에 대한 놀라움과 존경이 우러나오지 않을 수 없다.우리의 이러한 훌륭한 전통법 사상이 오늘날 이어지지 못하고 외국으로부터 들어온 수입 법이 세상을 풍미하고 있는 것을 볼 때 후손 된 도리를 다하지 못한데 대하여 심히 부끄러움을 느낀다. 이러한 일은 우리 것에 대한 관심과 탐구의 노력이 부족한 탓이라 생각하며 앞으로 이러한 분야에 많은 연구와 노력이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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