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수도생활과 비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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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속인 작성일13-06-17 13:17 조회4,545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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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한 분의 이름을 밝히지 않아서 조금 서운하답니다.
당당하게 이름을 밝히고 질문을 하셨으면 더욱 좋겠읍니다.
지금 질문한 기사는 3년전의 어는 신문의 기사를 소개 한 것인데 이것은 아마도 찾는다고 신경을 많이 쓴 것 같읍니다.
우리가 누구를 막론하고 잘못을,실수를 하면 비난을 할 수 있답니다.어쩌면 존경해야할 부모님에게 욕을 할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수행하는 종교인이나 수도인에게 함부로 비하하는 욕설을 공공연히 하는 것은 명예훼손이나 모욕죄가 성립될 수가 있답니다.
혼자서 조용히 밤새도록 남이 듣지 않는 곳에서는, 얼마든지 자신의 가치판단데로 욕설을 해도 헌법에서 보장하는 양심의 자유이므로 절대로 그 이상의 표현을 해도 된답니다.
그러나 자신의 양심의 자유,마음속의 생각의 자유를 밖으로 표현을 하여 여러사람에게 전파가 되어 그 사람의 사회적인 평가를 떨어트릴 염려가 있으면,그 순간부터 명예훼손죄가 성립된답니다.그리고 모욕죄가 성립되기도 한답니다.
그리고 스님뿐 아니라 신부님이나 목사님들도 실수를 하는 사건이 적지 않게 신문기사에 난답니다.
그리고 질문하신분에게 한 가지 알려드려야 할 것은, 수도를 하는 종교인들은 속된 우리들의 삶과는 다른 생활을 하고 있답니다.그리고 그분들의 생활을 우리는 흉내내기도 힘들답니다.왜냐하면,우리는 그런분들의 생활을 하루도 흉내내기기 어렵답니다.
우리는 언제든지 술을 먹을 수 있고,언제나 여자들과 같이 술을 먹으면서 못하는 행동이 없지 않읍니까.결혼을 한 사람의 경우는 언제나 집에가면 부부관계를 할 수가 있으며, 수 십년도 넘게 부부관계를 해 오고 있지 않읍니까.
그리고 잠도 자고 싶은데로 충분히 마음껏 잘 수도 있지 않읍니까.먹고 싶은 것도 마음껏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먹을 수도 있지 않읍니까.뭘 못하는 것이 없을 정도로 우리들은 온갖 욕망을 충족시키는 그런 생활을 하지 않읍니까.
그러나 스님들이나 신부님들이나 수도하는 분들의 생활을 하루라도 같이 해 본적이 없는 분들은 상상을 하지 못할 것입니다.
내가 오래전에 경험해본, 스님들의 하루 일과는 새벽(3-4시)에 일어나셔서 도량석이라며, 사찰의 경내를 돌며 잡된 마음들을 없애고 어리석은 생각들을 깨우치는 목탁을 치며 중생을 제도하는 불경을 외웁니다.그리고 나서는 법당에 들어가 부처님을 공경하고 본 받으려는 예불을 올립니다.그리고 밥을 지어서 공양을 올린답니다.
그 다음에는 조용히 마음을 찾고 진리를 깨치는 참선이나 수행에 들어 간답니다.그리고 7시 전후가 되면 아침공양을 하신답니다.
그 밥과 반찬은 우리들은 오래 먹을 수가 없는 내용들이랍니다.평생에 절간에서는 멸치 한마리도 먹을 수가 없으며, 계란도 먹을 수가 없으며 젓국도 먹을 수가 없는 순수한 채식을 한답니다.마늘도 먹을 수가 없답니다.
반찬이라는게 겨우 허기 지지 않을 정도의 영양의 음식으로 식사를 평생동안 해야 한답니다.우리 범인들은 한 달도 견디지 못한답니다.그러나 스님들은 평생을 그렇게 생활 해야 한답니다.영양 실조에 걸린답니다.불경에도 건강을 위해 약으로 고기를 먹을 수 있다고 되어 있답니다.
그 다음 식사를 한 후에는 한 알의 밥알이나 고추가루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 마신답니다.우리는 산해진미에 버리는 음식이 일년에 수조원에 이를 것입니다.
그 다음 조용히 산책을 하거나 사찰경내를 청소를 하며,참선으로 굳은 몸의 혈액순환을 위해 운력이라며 공동으로 청소를 한답니다.이일도 보통사람을 오래 실천하기가 힘들답니다.영양실조인 경우에는 청소할 힘도 없답니다.
그리고 나서는 참선공부에 들어가거나 불경공부에 들어가기도 한답니다.
그리고 11시 전후가 되면 점심공양인 마지를 부처님에게 또 올린답니다.그때에 또 절을 한답니다.
그리고 오후에 또 참선공부나 불경공부를 하고,사찰의 일을 잠시 보는 경우도 있답니다.
4-5시 전후에 다시 저녁예불을 올닙니다.
그리고 예불이 끝나면 참선이나 운력이나 불경공부에 들어갑니다.
이 중에는 법당에 들어가서 참회를 하는 분들도 있답니다.
사찰에서는 마음을 바르게 먹지 않고 생각을 바르게 갖지 못하고 행동이 허트러지면 법당에 들어가서 참회의 절을 해야 한답니다.
예를들면 신발을 가지런히 하지 않으면 108배의 참회.밥알이나 고추가루를 1-2개라도 먹지 않고 잘 못 내버렸으면 108배,500배,성을 내거나 스님들간에 언행을 공손하게 하지 못하고 다투거나 원망하면 108배,500배,1천배의 참회... 정해진 일과의 하루 생활 프로그램중 참선공부에 게으르거나 빠지거나 나태하면 108배에서 심하면 3000배의 절도 해야 한답니다.
절을 3천배를 해보지 않으면 모른답니다.나무마루바닥에 얇은 방석을 깔았지만 천배 이상 넘어가면 나중에는 부릅뼈와 나무가 부딧치는 아픔을 느낀답니다.그것을 참고 계속하면 나중에는 감각이 무디어 진답니다.주저않고 싶답니다.그것을 몇시간(사람에 따라서 5시간 전후가 걸림?)하고 나면 몸은 땀으로 옷이 젖어 있답니다.그때에 자신을 다시 생각해보는 깨침의 시간이 온답니다...
이런 일과표가 새벽 3-4시부터 밤 10시까지 1초도 방심하지 않는 수행의 시간이 철저히 짜여 있답니다.잠을 자나 앉으나 일어서나 참선을 하나 말을 하나 독경을 하나 불경을 보나 언제나 한 순간도 헛된 마음을 갖지 않고,바른생각,마음마음으로 생활을 한답니다.그리고 참선을 하게되면 30분이 못되어 다리에 마비가 온답니다.한시간이 지나면 그만 일어나고 싶답니다.이런 가부좌를 몇시간이고 아니 몇일이고 아니 몇달이나 몇년이나 아니 평생을 계속하신답니다.
참선(좌선)자세로 오래 앉아 있다가 일어나면 다리가 마비되어 걸음을 잘 걸을 수가 없어서 운력이나 산책이나,청소등을 통해서 다리의 혈액순환을 도모한답니다.
그리고 사찰마다 1년중 몇달은 수행을 끝내고 다른 사찰을 다니며 참선과 배움과 길을 걸으며 다리를 풀고 배움을 확인하고,체험을 통해서 확실한 깨침에 가까워 가는 수행을 계속 한답니다.
이런 생활을 하루를 하면 하루동안 존경을 받아야 하고,1달을 하면 1달을 존경해 주어야 하고,1년을 하면 1년을 존경해 주어야 하고,10년을 수도하면 10년을 존경해 주어야 한답니다.
이런 생활을 알고 난다면,우리들의 생활과 비교도 않되는 스님들의 생활을 우리가 비난할 자격은 없답니다.
그래서 질문하신분이 몇년전 신문기사를 찾아서,위의 수행생활과는 다른 행동을 한 어느 스님의 경우에 대해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스님이 아니므로 의문ㄴ을 갖고 질문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그리고 그 스님은 술을 먹은 과정에서 정도에 넘치는 행동을 했기에 욕을 하거나 뭐라고 해도,그 이후에는 그 스님은 달게 받으실 것입니다.그 스님의 언행이 결코 존경할 행동을 했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스님들의 생활을 하루도 흉내내지 못하는 우리들로서는 ,매일 술집에서 여자들과 술을 마시고 흥청망청 지내고,못하는 짓이 없는 우리 보통사람들이,스님의 일생에 그런 일이 한 두번 있다면,우리는 그 스님의 모든 생활이 그런 생활인 줄 오해를 하게 된답니다...
나는 오히려 그 스님의 실수는 수행과정에서 언제든지 있을 수 있는 당연한 언행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물론 그렇지 않는 스님들이 거의 대부분이지만...
질문하신분이 만약 스님이 되셨다고 생각하고 입장을 바꾸어 그런 경우 어떻게 하겠읍니까.질문하신분은 남자라면,아니 여성이라면,그런 사찰의 수행프로그램을 몇년이나 실천하실수 있겠읍니까.
아마 1년동안 그런 수행생활을 하셨다면 나는 적어도 1년동안은 존경해 드리겠읍니다.그런데 몇 시간 술집에 가서 여자들과 술도 한 번 먹어보고,이야기도 한 번 해보고,수행과정에 참고 참았던 본능을 ,아니 더 나아가서 육체관계를 맺어 보며,참았던 욕망을 발산해 본다고 해서 나는 질문하신분의 1년간의 수행을 한 것을 무시하지는 않는답니다.
오히려 그런 파계적인 행동으로 배운것을 더 확실히 깨달을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답다.
부처님의 진리말씀과 생활이, 이성적인 육체관계보다 못하다면 승려복을 벗어야 한답니다.아니 자연히 벗게 된답니다.
생각을 해 보십시요.남녀간의 육체적인 결합이 자연스러우며,이것이 본능이며 이것을 참는 다는 것은 너무도 힘든 수행중의 하나랍니다.질문하신분이 직접 실천해 보시기 바람니다.그리고 질문하신분의 동생이나 형제가 승려가 되었다고 생각해 보십시요.동생이나 형제가 성적불구가 장애인이 아닌 성기능이 왕성하거나 정상적인 사람이라면,성욕을 참아온 형제에게 한 번쯤은 성욕을 발산하라고 권하고 싶지 않겠읍니까.질문하신 부모님이 아신다면,한 번 쯤 성관계를 시켜주시거나,영양실조가 되지 않게 기름진 영양가 있는 음식을 먹이지 않겠읍니까.
수행에 정진하다 보면,처음부터 죽을때 까지 성욕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랍니다.어쩌면 참을 수 없는 육체적인 욕망을 견디어 내는 그런 수행의 과정에 우리는 실천하기 힘든 인간적인 한계를 이겨내는 스님들에게 존경과 격려의 박수를 보내야 할 것이 아닌지요....
십년을 참다가 하루동안 성관계를 했다고 해서 ,10년간의 수행이 없어지는 것은 아닌랍니다.다만 그런 파계행위가 불교의 진리를 더 확실히 깨닫고 굳건히 실천하는 밑그름이 된다면,오히려 일시적인 파계행위가 수행에 도움이 될 수도 있답니다...
비단 성관계뿐 아닙니다.수행생활중 잠자는 것과 먹는 것과 입는것과 규칙생활과 모든것도 다 같은 것이라 생각됩니다.
우리는 수도하는 스님들이 우리들의 형제라고 생각하고 스님들의 파계행위를 한 번 쯤은 긍정적인 면에서 눈을 감아 주어야 오히려 그분들의 진리를 깨치는데 좋은 약이 될 수도 있답니다.그로인해서 더 큰 깨달음이 있다면 우리는 그런 스님들을 존경해야 한답니다.
신라의 원효스님께서 파계를 하셨지요..그래서 우리는 원효스님의 파계행위는 비난할 수도 있겠지만,원효스님의 생활과 인생전부를,인격전부를 비난하지는 않으며,오히려 그런 파계행위가 있었기에 더 큰 확실한 진리를 깨치게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한답니다.
우리는 종교인들의 한 때의 실수로 종교 전체를 매도하는 어림석음을 범해서는 안된답니다.목사님 한 분이 여자 신도와 불윤의 관계를 맺었다고 해서 그 목사님을 가짜라고 엉터리라고 하지는 않는답니다.실수가 있은 목사님이신데 더욱 신앙심이 강하여 하느님의 은총을 더 크게 받으신 휼륭한 목사님이 되신다면 우리는 그 목사님을 존경하고 있지 않읍니까.
우리는 평생동안 부부간에 성관계를 몇회나 합니까...그리고 질문하신 분의 형제가 스님이 되셨다면,평생동안 참다가 몇번의 성관계를 해 보았다고 해서 매도하고 짖밟고 매장시킬 수 있겠읍니까.
우리들의 엄청난 잘못은 정상이고 스님들의 옥에 티같은 험은 온 나라라 떠들석하니 이것 부터가 우리들의 생각이 좁은 편견에 사로 잡혀 있는 어리석음때문이랍니다.
굳이 비유를 하면,결혼을 하다가 수행을 하는거나,수행을 하다가 결혼을 하다가 다시 수행을 하면,무엇이 그리 큰 차이가 있고 비난을 해야 합니까...
오히려 나는 의문이 있고 불만이 있는 것을 억지로 숨기고 참는 것 보다는 파계를 하는 한이 있어도 확실히 진리를 깨닫고 실천하기 위해 파계도 수행에 큰 도움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이런 말을 하면,그렇지 않다는 생각을 가지신 분들로 부터 비난을 받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질문하신분의 대답을 우회적으로 해 드려서 미안합니다만,수많은 스님들중에 수많은 시간중에 몇몇 스님들이 일시적으로 수행중에 본능을 참지 못하여 실수를 한 것으로 스님전부나 불교전체를 비난하거나 그 스님의 모든 생활을 비난해서는 절대로 안된다는 말 씀을 드리고 싶답니다.
굳이 불교를 스님들을 비난하고 명예를 훼손하고 싶다면,호랑이 굴에 들어가서 직접 호랑이를 잡아야 하듯이 해인사나 통도사나 송광사나 동학사나 운문사나 스님들이 집단으로 수행을 하고 공부를 하는 곳에 직접 머리를 깍고 들어가셔어 한 번 그 프로그램을 실천해 보시고나서,다시 위의 스님의 실수를 비판해 보시기 바람니다.
우리들은 하루에도 몇번이고 잘못을 하고 살아가고 있지 않읍니까...그러나 스님들은 1년에 몇시간 몇년에 하루나 이틀을 우리과 같은 생활을 했다고 해서 비난할 자격이나 있읍니까...
다만 이런 문제는 우리들 스스로가 마음속으로 얼마든지 비난하는 것은 자유입니다.그러나 불교전체나 스님전부나 실수한 스님의 전 일생을 싸잡아서 비난하는 것은 명예훼손이라는 범죄행위를 하게 되므로 삼가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나는 기독교 생활도 다년간 경험해 보았으며,불교생활도 다년간 경험해 보았읍니다.그러므로 순수한 종교생활을 하시는 분들을 우리는 존경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종교인들의 수행의 폭과 실천의 강약의 차이가 인간이기 때문에 있다고 생각합니다.데레사 수녀님이나 김진홍목사님이나 성철스님은 모든 사람들이 다 존경한답니다...
실수를 하신 그 스님께서도 존경받는 종교인이 될려고 노력하는 과정중에 생긴 한 때의 파계행위이라고 생각해도 절대로 틀리지 않는답니다.오히려 메스컴을 타신것은 계기로 하여 더 큰 깨달음을 얻고 실천하시게 된다면,나는 그 스님을 존경할 것이며,그 스님이 그런 깨달음이 없으시다면 왜 승려생활을 계속하시겠읍니까.속 후련하게 환속을 하셔서 ,수행생활보다 더 신나는 성생활을 찾아 나설것입니다.
그러나 진실함과 그 스님의 의지에 따라서 선택을 하실 것이겠지요.
우리가 자주 탐닉하는 본능을 충족하는 것이 그리도 좋다면, 왜 그런 수도생활을 굳이 선택하겠읍니까.하루도 한달도 일년도 견디기 힘들 것인데...
스님들이나 종교인들의 수행과정에 우리들은 격려와 존경과 동포애를 가져야 한 답니다.수행이 일정한 경지에 이르게 된다면,불심이 강하시다면 우리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수행의 결과로, 어쩌면 우리들이 생각을 초월한 경지에서 자유로운 생활을 하시는 스님들에게는, 내가 생각하는 것은 가장 낮은 초보의 스님들의 수행과정에서 생기는 기우이며,어리석음일 수도 있겠읍니다.
별로 도움이 되지 않겠지만 생각나는 데로 두서없이 몇자 적어보았읍니다.
끝으로 이 글이 결코 수행생활을 하시는 존경하는 스님들에게 결코 누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었으나,혹시 이로 인해서 누가 된다면 질책을 달게 받겠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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