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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님과 경국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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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은영 작성일13-06-25 13:19 조회3,65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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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법문화사 강의를 들으면서 나는 경국대전을 알게 되었고, 그 속에 담기워져서 조선을 이끌어 왔던 조상들의 정신과 지혜를 볼 수 있었고, 우리 조상들의 민주적사상과 복지 정책에 놀라와 했다. 이를 간략히 소개하자면.....

조선 경국대전에는 연향이라는 규정이 있다. 잔치향 국가의 큰 잔치를 의미하는 것이라 하는데, 이에 관해 언제 어느 때 연회를 여는지 자세히 나와 있었다는 것이다.  즉, 잔치에 따르는 사치와 낭비로 백성들이 낸 세금을 축내려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 절대군주국가로 와의 한마디 명령이면 한 달 내내라도 연회를 열고, 왕의 심기를 건들이면 그 자리에서 처형당하고 하는 식의 드라마나 옛 소설에서 보고 들어오고 생각했던 것과는 정 딴판이라는 생각이 든다. 조선 역사 500년, 우리 민족의 뿌리와 혼이 일제 치하 36년과 숨 가쁘게만 달려온 근대화시대 60년 사이에 그 고귀한 우리 것이 남의 것처럼 생소하게 느껴진다.

관리집안의 따로 집안이 가난해 서른 살이 넘도록 시집을 못가면 나라가 혼인비용을 대주도록 한 것이다. 노처녀의 혼사문제도 또한 세심히 신경을 쓰는 모습이 처음엔 생소했지만, 백성의 진짜 고민을 아는 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주목할 만한 것이 하나 더 있다. 얼음사용처에 대한 법조항에 대한 것이다 석빙고에 보관된 얼음을 여름철이 되면 나눠주는데 얼음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은 왕실가족들과 일흔이 넘은 당상관들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옥에 갇혀 잇는 죄인들도 얼음 지급대상에 있었다는 것이다. 천하디 천한 사람 중 죄를 범해 격리된 죄인들의 인격도 중시하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 귀한 얼음을 죄인의 몫까지 정해 법에 명시해놓고 있다니... 백성은 임금의 하늘이고, 모든 사람들은 그 존재로 가치 있고, 평등하다고 했던 그 이념을 잘 보여주고 있는 부분이라 아니할 수 없다.

조선의 창이라는 경국대전, 이 창을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우리의 고정관념을 깨는 조항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우리자신들의 과거를, 역사를 그 만큼 많이 오해하고 있었다는 말이 되는 것이다. 그 중에 하나가 조선에 삼복제도라는 오늘날로 말하면 삼심제도와 유사한 것이 이었다는 것이다. 살인사건의 경우, 지방에서 벌어졌다 할지라도, 관찰사가 조사하고, 그 후 한양의 형조에 사건을 올려 한 번의 심의 과정을 더 거친 뒤 왕에게 보고한다. 그러면 왕은 죄를 더 추가할 사항이 있는지 혹은 정상을 참작할 만한 자료가 있는지 더 조사하여 보고한 후 이를 다 총괄하여 결론을 내린다. 죄가 무거운 만큼 신중하게 조사하여 진의를 가리려는 노력이 엿보인다.

그리고 출산휴가 조항을 찾아 볼 수 있다. 관노비의 경우 출산을 앞두고 한 달, 출산을 하고 난 뒤 50일간 휴가를 줬다. 즉 법정 휴가 80일을 정하고 있는 것이다. 더욱이 남편에게도 산후 15일의 휴가를 줘서 아내의 산후조리를 도울 수 있도록 했다. 이 모습은 우리가 알 수 있듯이 지금보다 훨씬 더 근대적이고 민을 배려하는 제도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지금으로부터 몇 백년전에, 우리 조상들은 삼복제 뿐 아니라 출산휴가, 더 놀랍게도 남편의 출산 휴가를 경국대전 법으로 정하여 놓고 있었다. 설사 죄인이나 노비라 할지라도 그들의 권리를 지켜주고 백성을 자신의 갓난아기로 여기고 보살피고자 하는 모습을 법조항 하나하나에 기록해 놓고 있는 것이다. 

경국대전의 전체 조항 중 절반가까이가 관리에 관한 것이다. 비리공무원은 물론이고, 백성을 괴롭히는 관리, 근무를 태만한 자들에게 아주 무거운 벌을 내린다. 관리들은 엄중히 다스리는 것이 백성을 잘 보살피고, 살기 좋게하기 위함인 것이다. 현재의 법규정과 그 처벌형태가 공무원에게 많은 혜택을 주고,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소리를 듣고 있는 지금과는 확연히 다른 것을 알 수 있다.

한 예로 효종 1년엔 위원 군수 권영이 세금으로 거둔 인삼 수 백 근을 수탈했다. 당시 대신들은 권영의 나이가 일흔이 넘었으니 유배형 정도로 사건을 마무리 짓자고 했고 사간원과 사헌부에서는 법대로 사형에 처해야 한다고 했다. 효종은 고심 끝에 경국대전 처벌규정대로 사형을 명하고 재산을 몰수했다.

경국대전은 또한 관리들의 하루도 볼 수 있게 해준다. 그 당시의 관리들은 묘시(아침 5시부터 7시 사이)에 출근을 한다. 그리고 일주일에 한 번씩은 새벽3시에서 5세 사이에 궁에 도착하여 왕을 알현하는 조회를 한다. 그리고 30일 이상 결근을 하면 파직이고, 29일 이하면 속죄금이라는 벌금을 낸다.

그리고 경국대전 형전에는 분경죄가 명시되어 있다. 여기서 분경죄란 권세있는 자의 집안에 드나드는 것이라고 되어 있다. 즉 지금으로 치면 인사청탁을 하는 것이다. 경국대전에 의하면 분경을 한 자는 파직은 물론이고 장형 100대와 유형 3000리에 처한다고 되어있다. 이 네 유 삼천리는 사형 밑에 가장 무서운 벌이다. 

조선은 "관리가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고 생각했다.
얼마나 바른 생각인가? 우리는 과거를 되돌아 볼 겨를도 없이 바삐 살아 이만큼 경제성장을 이루었다. 그러나 그리 바삐 사는 동안 생각지 못하고 지나쳐 온 것이 너무도 많다. 우리 조상들이 수백년에 걸쳐서 이룩해 놓았던 찬란한 문화가 그것이다. 돈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그 정신과 그 정신이 고스라니 녹아 들어있는 문화들... 경국대전도 필히 그 중 하나이다. 아니 그 중 대표일 것이다.

나 또한 옛 것 하면 드는 생각이 구식이고, 현실에 전혀 맞지 않는 박물관에서 잠시 보는 것뿐으로 여기며 살아왔다. 그러나 이렇게 좋은 기회를 얻어 우리 것, 그 귀중한 것을 살펴보고 생각할 수 있는, 그래서 내 생각을 다시 새로이 만들 수 있게 되어 아주 기쁘다.

그래서 외국의 누군가와 법전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기회가 온다면,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우리의 법전, 경국대전을 얘기할 것이고, 그 속에 담겨 있는 민주적인 사상과 평등정신에 대해 맘껏 자랑할 해 볼 요양이다.

한 학기 동안, 나는 교수님으로부터 배운 것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열정'이다. 자신의 일에 사명감을 갖고, 누구로부터의 칭찬을 떠나, 언제나 한결같은 마음으로 열정을 다하시는 모습에서 나는 감동했고, 다른 사람을 위한 일, 국익을 위한 일, 모두를 위한 좋은 일에 나의 작은 열정을 다하고자 한다.



--- 20212499 정은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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