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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시간알리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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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朝鮮王朝實錄 작성일13-06-24 10:56 조회5,68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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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한양에도 통행금지가 있었다.

밤10시쯤 통행금지를 알리는 종인 인경을 28번치면 한양에 통행금지가 시작 되었다.

인경의 타종은 파루때와 마찬가지로 궁궐의 보루각에서 시작되어 종루, 남대문, 동대문으로 이어졌고 도성의 4대문은 이 소리와 함께 닫쳤다.

인경을 28번쳐서 통행금지를 알리는 일을 人定이라 하는데 이는 하늘을 지키는 28개의 별자리를 상징한 것으로 밤사이에 평화를 지켜달라는 의미였다.

인정 이후에는 딱딱이를 든 순라군들이 순찰을 돌았다.

파루는 통행금지의 해제를 알리는 소리로 33번을 쳤다.

밤과 낮이 음양으로 다르듯 잠자고 일어나는 시간을 알리는 인정과 파루도 서로 달라야 했다.

쇠로된 종은 음으로 밤과 잠을 상징하였고, 나무와 가죽으로된 북은 양으로 낮과 활동을 상징하였다. 밤에 편안한 잠을 자기위해 인정은 종으로 쳐야했고 새벽잠을 깨우기 위해 파루는 활동적인 북으로 쳐야 했다.

실제로 조선건국 직후에는 파루에 북을 쳤다.

그러나 가뭄에는 파루에도 종을 쳤는데 음기가 부족해 가뭄이 발생한다고 여겨 종으로 음기를 북돋우려는 방책이었다. 가뭄이 심한 양기를 상징하는 남대문을 닫고 음기를 상징하는 북문을 열기도 했다. 조선시대에는가뭄이 반복되었고 이러한 방책은 거의 일상화 되었고 이로 인해 점차 인정과 파루를 종과 북으로 구별하는 원칙도 사라졌다.

오고능 궁중에서 정오를 알리는 북소리였다.

조선시대 궁궐에는 수천명의 상주 인원이 있었으므로 이들에게 시간을 알려주는 일은 매우 중요하였다.

담당군인이 정오에 궁궐 중앙에 걸린 오고를 치면 북소리를 신호로 왕을 비롯한 모든 사람들이 오전 근무를 종료하고 점심 먹을 준비를 했다.



* 도성의4대문 : 도성의 동서남북에 있던 큰 대문.

남대문인 숭례문, 동대문인 흥인지문,

서대문인 돈의문, 북문인 숙청문을 말함.

오행에 따라 남쪽은 禮, 동쪽은 仁,

서쪽은 義가 되었다.

유독 동대문을 4자로 한것은 한양의 동쪽이

약하여 보충하기위해 한자를 덫붙인 것이다.

조선시대 한양에도 통행금지가 있었다.

[궁중문화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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