疏決疏放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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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성수 작성일13-06-25 13:05 조회5,905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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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결(疏決)은 1306건, 소방(疏放)은 2858건이 검색되었다. 소방의 검색에는 우리나라를 낮추어 표현하는 小邦이 함께 검색되어 주의햐여 혼동하지 않도록 유의하여야 한다.
소결은 너그럽게 판결하는 것이고 소방은 죄가 있으나 너그러이 방면하는 것이다. 나라에 재해가 있는 경우나 경사가 있을때 소결과 소방이 많이 행해졌고 가뭄이 심하거나 천둥 번개가 심하여 비가 많이 내리는 경우에는 궁녀를 사가로 돌려보낸 기사도 보인다. 조선조의 재판과 관련하여 농번기에는 중대한 죄악이 아니면 재판을 쉬는 務停, 務開의 사례가 있는 것을 본다.
(1) 소결(疏決)의 실록기사를 살펴본다.
<성종 3년 4월 30일>“나 같은 덕(德)으로써 외람되게 생령(生靈)들을 거느려서, 오직 한 사람도 생활이 안정되지 못할까 염려하여 항상 소간(宵旰)2307) 의 근심을 가졌으나, 지난 해 겨울부터 〈가뭄이 시작하여〉 봄이 지나고 여름이 다가오도록 하늘[元陽]이 비를 내리지 아니하여, 천택(川澤)이 고갈(枯渴)되고, 화맥(禾麥)이 타고 말라서, 백성들이 장차 곤궁하고 굶주리게 되어, 슬피 부르짖으며 비를 바라고 있는 바이다.
가만히 그 까닭을 생각건대, 어찌 인사(人事)의 감응(感應)으로 〈재앙을〉 부름이 없이 그러하겠는가? 이것은 과매(寡昧)한 탓으로 정리(政理)에 어두워서, 은택(恩澤)이 백성에게 미치지 못하고, 정성(精誠)이 하늘에 이르지 못한 때문이다. 허물은 진실로 나에게 있으니, 오직 내 자신을 책망함이 마땅하다. 지금 바야흐로 음식의 가짓수를 줄이고[感膳], 정전(正殿)을 피(避)하고, 모든 제사[群祀]를 두루 거행하고, 원통한 체옥[冤滯]을 너그럽게 판결[疏決]하고, 영선(營繕)을 정파(停罷)하고, 쓸데없는 비용을 줄이고, 술[酒]의 사용을 금하고, 날마다 조신(朝臣)들과 더불어 삼가고 조심[儆勑]하여 나의 〈정성이〉 미치지 못하는 바를 보익(補益)하고 있으나, 다만 생각건대, 수령(守令)들이 혹시 나의 뜻을 체득하지 못하고 백성들을 병들게 하고, 천심(天心)에 어긋나게 하는 것이 있는가 하여, 이에 여러 고을의 수령(守令)들에게 유시(諭示)를 내리노니, 경은 마땅히 속히 전시(傳示)하고, 경도 또한 나의 지극한 마음을 몸받아서 거듭 엄하게 경계(警戒)하고 효유(曉諭)하여, 한가지 마음으로 조심하고 삼가게 하되, 조금이라도 태만하지 말게 하라. 모든 상하(上下)가 다같이 두려워하고 공경[同寅]하면, 일념(一念)의 정성(精誠)으로 하늘의 뜻을 돌이킬 수 있을 것이다.
또 내가 공경히 〈대비(大妃)의〉 의지(懿旨)를 받들기를, ‘금년은 한재가 매우 심하여 민생(民生)이 염려되니, 백성들로부터 거두어서 자봉(自奉)2308) 하는 것이 불가하니, 천신(薦新)하는 것 외에 각전(各殿)의 진상 물선(進上物膳)을 봉진(封進)하지 말게 하라.’고 하셨다. 내가 곧 〈명령을 거두시기를〉 간청(懇請)하였으나, 유윤(兪允)을 입지 못하였으니, 그 물선(物膳)을 채포(採捕)하는 사람 또한 모두 놓아 보내서 농사에 종사하게 하라.”하였다. 【원전】 8 집 654 면
<성종 9년 5월 29일>형조(刑曹)에 전지하기를,“장맛비가 재해가 되어서 한 달 동안에 걸쳐 개이지 아니하므로, 내가 심히 염려하여 여러 번 유지(諭旨)를 내려 형벌을 신중하게 처리해서 억울함을 풀어주게 하였으니, 나의 마음쓰는 것이 지극하지 아니함이 아니다. 그러나 하늘의 돌이키는 효과가 없으니, 근심하고 두려워하여 구제할 바를 알지 못하겠다. 중외(中外)의 옥(獄)을 맡은 관리로 하여금 죄수를 소결(疏決)8607) 하여 원통하게 체옥(滯獄)됨이 없게 하고, 더욱 하늘의 경계에 근신(謹愼)하여 나의 마음에 부응하도록 하라.” 하였다. 【원전】 9 집 608 면
<연산 5년 1월 12일>의정부에 전지하기를, “대개 죽은 자는 다시 살릴 수 없고 끊어진 것은 다시 이을 수 없는 일이다. 모든 옥사를 신중히 다루어야 함은 그 관계가 심중하기 때문이니, 옥사를 맡은 관원은 기필코 이들을 불쌍히 여기고 신중하게 처결하도록 하라. 그렇게 해야만 억울함과 원통함이 없으리라. 내가 보기엔 죄수들의 병은 모두가 장독(杖毒)에 기인했노라. 죽게된 자도 또한 많은데도 관리들은 이를 예사로 보고 조금도 동려(動慮)치 않는다. 죽을 죄도 아닌데도 그 죄정을 캐기에 힘쓴 나머지 함부로 형을 남용한 탓으로 그러한 지경에 이른 것이다.
또 심리를 게을리하거나 즉시 소결(疏決)2116) 치 아니하고, 질곡에 채워 오래도록 옥중에 가두어 두니 그 고초를 이루 말할 수 있겠느냐. 겨울의 혹심한 추위와 여름의 비는 필연의 이치인데도, 백성들은 오히려 이를 원망하거늘, 하물며 형틀과 매 밑에서 죽는 자들이랴.
어린 백성들은 관리의 잘못인 줄 알지 못하고 그 원한을 군상에게 돌리니, 이 어찌 그들을 슬퍼하고 불쌍히 여기는 나의 뜻이겠는가. 말과 생각이 여기에 미치고 보니 참으로 측연하도다. 중외의 관리로 하여금 나의 이 지극한 회포를 본받아 긍휼에 힘쓸도록 하라.” 하였다. 【원전】 13 집 341 면
<연산 9년 9월 25일>
전지하기를, “내가 어질지 못한 몸으로 외람되게 큰 기업(基業)을 지키며 억조 창생의 위에 의탁하여, 정사가 어그러진 것이 많지만 바로잡지 못하고, 백성들이 혹 근심 한탄하는 자 있어도 알지 못하므로 하늘의 꾸지람이 거듭 이르고 수재와 한재, 흉년과 황년이 해마다 들며, 땅의 도(道)마저 안정을 잃고 전년부터 서울에 지진이 두 번이나 있었고, 이달 23일 신시(申時)에 또 지진이 있었다.
옛 글에 의하면 ‘음기(陰氣)가 성하고 양기가 쇠미한 탓이다.’ 하였다. 하늘의 경계가 정녕(丁寧)하여 두세 번이나 있으니, 생각하면 나 한 사람이 하늘의 마음을 받들지 못하기 때문이다. 송구스러운 마음이 깊은 못 얇은 얼음에 임한 것보다도 심하다.
앙재를 소멸하는 길이 오로지 몸을 조심하고 덕을 닦는 데 있다. 감응(感應)하여 불러들인 원인이 대체로 옥사와 송사에 있으니 무릇 나의 좌우에서 보필(輔弼)하는 사람들은 낮이나 밤이나 서로 수성(修省)하여 황천(皇天)의 인애(仁愛)하는 마음에 보답하며, 겸하여 중외의 원통하고 밀린 옥사를 소결(疏決)하여 나의 조심하고 돌보려는 뜻에 부응(副應)하도록 하라.” 하였다.【원전】 13 집 573 면
<현종개수 1년 12월 10일>
상이 흥정당에 나아가서 삼복(三覆)를 시행하는데, 사형을 받은 자가 18명, 사형에서 감형된 자가 3명이었다. 영의정 정태화가 아뢰기를, “계복(啓覆)의 죄인은 이미 처단을 하였습니다만, 계절이 마침 한겨울인데다 새해가 또 멀지 않으니, 전옥서의 죄수 역시 탑전에서 소결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상이 답하기를, “경의 말이 옳다. 일후에 소결하라.” 하였다. 【원전】 37 집 209
<정조1년 5월 10일> 하교하기를, “교(郊)에서부터 궁(宮)에 이르기까지 관원을 명하여 경건히 기도했는데도 단비가 내릴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고 있으며, 몸소 규벽(珪壁)을 가지고 사단(社壇)에 제사를 올렸으나 신령(神靈)의 감응이 아득하기만 하니, 농사일을 생각하면 마음이 불에 타들어가는 것만 같다. 모든 수성(修省)하는 방도에 관계된 것은 조금도 지완하게 할 수 없으니, 내일 죄수들을 소결(疏決)하라.”하였다. 【원전】 44 집 668 면 2) 소방(疏放)의 사례를 살펴본다. <선조1년 10월 9일>삼공(三公)이 재이(災異)로 인하여 아뢰기를, “을사년간에 죄를 받은 사람들의 재산을 적몰한 문기(文記)에 같이 기록되어 있는 전답 중에서 잘못 적몰한 것을 환급(還給)하고, 이들의 작위도 아직 복직되지 않았으니 복직시키소서. 기묘년의 천거과(薦擧科)는 전중(殿中)에서 시취(試取)한 것으로 명분이 매우 바르고 공정한데도 과거를 혁파한 뒤에 복과(復科)시켰다가 또 혁파했으니 다시 복과시키소서. 옥에 계류된 죄인들 중에 억울한 자를 해사로 하여금 분간한 뒤에 소방(疏放)하게 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모두 아뢴 대로 하되 을사년과 기유년에 죄를 입은 사람들은 전에 이미 모두 신원시켰으니 지금 가볍게 개정할 수 없는 것이고 그중 문기에 같이 기록되어 있는 전답은 분별하여 환급하라.”하였다.【원전】 21 집 198 면
<효종 2년 5월 22일>상이 하교하기를, “가뭄 속의 무더위가 활활 불이 붙은 것 같은데 감옥이 다 가득차서 숨을 헐떡거리는 자가 필시 많을 것이니, 매우 불쌍하다. 형조로 하여금 감옥의 죄수를 소방(疏放)하게 하고 의금부의 죄인도 또한 서계(書啓)하게 하라.” 하였는데, 형조가 오늘은 국기(國忌)의 재계하는 날이라 아문(衙門)에 좌기하여 죄수를 논의할 수 없다고 아뢰니, 하교하기를, “소방과 형신(刑訊)은 다르다. 국기에 구애하지 말고 빨리 의논하여 소방하라.” 하였다.
<정조 6년 5월 11일>
조강(朝講)하였다. 부제학 심염조(沈念祖)가 아뢰기를, “전하께서는 걱정하고 애쓰고 두려워 염려하는데도 온갖 법도가 해이되고 폐기되고 있으며 백성을 사랑하는데도 은택이 아래에까지 닿지 않으며 도와주기를 구하여도 바른말이 들리지 않으며 하루에 세 번 강(講)하는 것을 비우는 날이 많으며 5일에 있는 차대(次對)가 겉치레가 되어 있는 것은 오로지 성지(聖志)가 확고하지 않고 성단(聖斷)이 철저하지 않은 데 연유된 것이니, 원컨대 더욱 면려하소서. 간신(諫臣)이 이미 삼도(三道)의 모적(牟糴)을 정퇴(停退)시킬 것을 청하였으니, 해서(海西)의 모적도 또한 사의를 헤아려 정퇴시켜야 합니다. 형옥(刑獄)을 심열(審閱)하여 침체되는 것이 없게 하고 충신을 포장(褒奬)하고 효자를 정표(旌表)하며 숨겨진 것을 밝히고 억울한 것을 씻어 주게 하소서.” 하니, 임금이 가상히 여겨 받아들였다. 이어 제도(諸道)의 도년(徒年) 이하의 죄는 소방(疏放)시키라고 명하였으며, 유사(有司)에게 효열(孝烈)에 대해 계복(啓覆)하라고 명하였다. 다음날 유사가 팔도(八道)의 도형(徒刑)·유형(流刑) 2백 89인을 아뢰니, 하교하기를, “이미 사전(赦典)이 있는 것이 아니니, 죄다 사유(赦宥)하기는 어렵다. 단지 작은 잘못을 저지른 자 18인만 석방하라.”하였다. 【원전】 45 집 305 면
(순조11년 4월 17일 ) 우의정 김사목(金思穆)이 아뢰기를, “매번 가뭄을 염려할 때이면 먼저 소결(疏決)하는 조치가 있었는데, 지난번부터 소방(疏放)한 것이 의금부와 형조의 경미한 죄수에 불과할 뿐입니다. 다만 지금 서울과 지방의 녹수(錄囚)로 여러 해 동안 재판이 지체된 것 또한 이미 많으며, 그 중에서 더러는 부생(傅生)2894) 할 대상이나 참작하여 처결해야 할 대상이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 번 녹계(錄啓)한 뒤에는 형관(刑官)이 사수(死囚)로 인정하고 다시 사안(詞案)을 고열(考閱)하지 않으니, 깊이 억울한 마음이 화기(和氣)를 해치는 단서가 되기에 충분합니다. 형조 당상으로 하여금 빨리 서울과 지방의 옥안(獄案)에 대하여 다시 사열(査閱)을 더하도록 하고, 만일 부생할 부류가 있으면 각기 의견을 내게 하여, 재량하여 처결하는 데 대비하도록 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원전】 47 집 692 면
<순조 32년 6월 29일>
체수와 체옥의 폐단을 단속하기를 하교하다. 하교하기를, “처음에는 가뭄이 들더니, 끝내는 장마가 져서 두루 재앙이 되게 하였다. 수성(修省)하는 도리에 있어서도 원울(冤鬱)을 소결(疏決)하는 도리가 있어야 마땅하겠으니, 금부(禁府)와 형조의 정배 죄인으로 소방(疏放)에 가합한 자는 해사(該司)의 당상이 대신에게 취의(就議)하고 도류안(徒流案)에 부표(付標)하여 올리라. 또 경옥(京獄)에서 해가 오래도록 체수(滯囚)된 것도 매우 민망한 일이니, 이미 결안(決案)하였거나 결안하지 않았거나를 막론하고 죄인을 심리하는 예대로 3당상이 회의하고 상세히 사핵하여 의견을 갖추어 계문(啓聞)하라. 비록 외읍이라 하더라도 까닭없이 체옥(滯獄)된 폐단이 필시 많을 것이니, 묘당에서 팔도와 사도(四都)에 행회(行會)하여 즉시 결방(決放)하게 함으로써 조정에서 백성을 다친 자 보듯 하는 뜻을 보이게 하라.”하였다. 【원전】 48 집 378 면
자료제공: www.cyworld.com/palbeke
소결은 너그럽게 판결하는 것이고 소방은 죄가 있으나 너그러이 방면하는 것이다. 나라에 재해가 있는 경우나 경사가 있을때 소결과 소방이 많이 행해졌고 가뭄이 심하거나 천둥 번개가 심하여 비가 많이 내리는 경우에는 궁녀를 사가로 돌려보낸 기사도 보인다. 조선조의 재판과 관련하여 농번기에는 중대한 죄악이 아니면 재판을 쉬는 務停, 務開의 사례가 있는 것을 본다.
(1) 소결(疏決)의 실록기사를 살펴본다.
<성종 3년 4월 30일>“나 같은 덕(德)으로써 외람되게 생령(生靈)들을 거느려서, 오직 한 사람도 생활이 안정되지 못할까 염려하여 항상 소간(宵旰)2307) 의 근심을 가졌으나, 지난 해 겨울부터 〈가뭄이 시작하여〉 봄이 지나고 여름이 다가오도록 하늘[元陽]이 비를 내리지 아니하여, 천택(川澤)이 고갈(枯渴)되고, 화맥(禾麥)이 타고 말라서, 백성들이 장차 곤궁하고 굶주리게 되어, 슬피 부르짖으며 비를 바라고 있는 바이다.
가만히 그 까닭을 생각건대, 어찌 인사(人事)의 감응(感應)으로 〈재앙을〉 부름이 없이 그러하겠는가? 이것은 과매(寡昧)한 탓으로 정리(政理)에 어두워서, 은택(恩澤)이 백성에게 미치지 못하고, 정성(精誠)이 하늘에 이르지 못한 때문이다. 허물은 진실로 나에게 있으니, 오직 내 자신을 책망함이 마땅하다. 지금 바야흐로 음식의 가짓수를 줄이고[感膳], 정전(正殿)을 피(避)하고, 모든 제사[群祀]를 두루 거행하고, 원통한 체옥[冤滯]을 너그럽게 판결[疏決]하고, 영선(營繕)을 정파(停罷)하고, 쓸데없는 비용을 줄이고, 술[酒]의 사용을 금하고, 날마다 조신(朝臣)들과 더불어 삼가고 조심[儆勑]하여 나의 〈정성이〉 미치지 못하는 바를 보익(補益)하고 있으나, 다만 생각건대, 수령(守令)들이 혹시 나의 뜻을 체득하지 못하고 백성들을 병들게 하고, 천심(天心)에 어긋나게 하는 것이 있는가 하여, 이에 여러 고을의 수령(守令)들에게 유시(諭示)를 내리노니, 경은 마땅히 속히 전시(傳示)하고, 경도 또한 나의 지극한 마음을 몸받아서 거듭 엄하게 경계(警戒)하고 효유(曉諭)하여, 한가지 마음으로 조심하고 삼가게 하되, 조금이라도 태만하지 말게 하라. 모든 상하(上下)가 다같이 두려워하고 공경[同寅]하면, 일념(一念)의 정성(精誠)으로 하늘의 뜻을 돌이킬 수 있을 것이다.
또 내가 공경히 〈대비(大妃)의〉 의지(懿旨)를 받들기를, ‘금년은 한재가 매우 심하여 민생(民生)이 염려되니, 백성들로부터 거두어서 자봉(自奉)2308) 하는 것이 불가하니, 천신(薦新)하는 것 외에 각전(各殿)의 진상 물선(進上物膳)을 봉진(封進)하지 말게 하라.’고 하셨다. 내가 곧 〈명령을 거두시기를〉 간청(懇請)하였으나, 유윤(兪允)을 입지 못하였으니, 그 물선(物膳)을 채포(採捕)하는 사람 또한 모두 놓아 보내서 농사에 종사하게 하라.”하였다. 【원전】 8 집 654 면
<성종 9년 5월 29일>형조(刑曹)에 전지하기를,“장맛비가 재해가 되어서 한 달 동안에 걸쳐 개이지 아니하므로, 내가 심히 염려하여 여러 번 유지(諭旨)를 내려 형벌을 신중하게 처리해서 억울함을 풀어주게 하였으니, 나의 마음쓰는 것이 지극하지 아니함이 아니다. 그러나 하늘의 돌이키는 효과가 없으니, 근심하고 두려워하여 구제할 바를 알지 못하겠다. 중외(中外)의 옥(獄)을 맡은 관리로 하여금 죄수를 소결(疏決)8607) 하여 원통하게 체옥(滯獄)됨이 없게 하고, 더욱 하늘의 경계에 근신(謹愼)하여 나의 마음에 부응하도록 하라.” 하였다. 【원전】 9 집 608 면
<연산 5년 1월 12일>의정부에 전지하기를, “대개 죽은 자는 다시 살릴 수 없고 끊어진 것은 다시 이을 수 없는 일이다. 모든 옥사를 신중히 다루어야 함은 그 관계가 심중하기 때문이니, 옥사를 맡은 관원은 기필코 이들을 불쌍히 여기고 신중하게 처결하도록 하라. 그렇게 해야만 억울함과 원통함이 없으리라. 내가 보기엔 죄수들의 병은 모두가 장독(杖毒)에 기인했노라. 죽게된 자도 또한 많은데도 관리들은 이를 예사로 보고 조금도 동려(動慮)치 않는다. 죽을 죄도 아닌데도 그 죄정을 캐기에 힘쓴 나머지 함부로 형을 남용한 탓으로 그러한 지경에 이른 것이다.
또 심리를 게을리하거나 즉시 소결(疏決)2116) 치 아니하고, 질곡에 채워 오래도록 옥중에 가두어 두니 그 고초를 이루 말할 수 있겠느냐. 겨울의 혹심한 추위와 여름의 비는 필연의 이치인데도, 백성들은 오히려 이를 원망하거늘, 하물며 형틀과 매 밑에서 죽는 자들이랴.
어린 백성들은 관리의 잘못인 줄 알지 못하고 그 원한을 군상에게 돌리니, 이 어찌 그들을 슬퍼하고 불쌍히 여기는 나의 뜻이겠는가. 말과 생각이 여기에 미치고 보니 참으로 측연하도다. 중외의 관리로 하여금 나의 이 지극한 회포를 본받아 긍휼에 힘쓸도록 하라.” 하였다. 【원전】 13 집 341 면
<연산 9년 9월 25일>
전지하기를, “내가 어질지 못한 몸으로 외람되게 큰 기업(基業)을 지키며 억조 창생의 위에 의탁하여, 정사가 어그러진 것이 많지만 바로잡지 못하고, 백성들이 혹 근심 한탄하는 자 있어도 알지 못하므로 하늘의 꾸지람이 거듭 이르고 수재와 한재, 흉년과 황년이 해마다 들며, 땅의 도(道)마저 안정을 잃고 전년부터 서울에 지진이 두 번이나 있었고, 이달 23일 신시(申時)에 또 지진이 있었다.
옛 글에 의하면 ‘음기(陰氣)가 성하고 양기가 쇠미한 탓이다.’ 하였다. 하늘의 경계가 정녕(丁寧)하여 두세 번이나 있으니, 생각하면 나 한 사람이 하늘의 마음을 받들지 못하기 때문이다. 송구스러운 마음이 깊은 못 얇은 얼음에 임한 것보다도 심하다.
앙재를 소멸하는 길이 오로지 몸을 조심하고 덕을 닦는 데 있다. 감응(感應)하여 불러들인 원인이 대체로 옥사와 송사에 있으니 무릇 나의 좌우에서 보필(輔弼)하는 사람들은 낮이나 밤이나 서로 수성(修省)하여 황천(皇天)의 인애(仁愛)하는 마음에 보답하며, 겸하여 중외의 원통하고 밀린 옥사를 소결(疏決)하여 나의 조심하고 돌보려는 뜻에 부응(副應)하도록 하라.” 하였다.【원전】 13 집 573 면
<현종개수 1년 12월 10일>
상이 흥정당에 나아가서 삼복(三覆)를 시행하는데, 사형을 받은 자가 18명, 사형에서 감형된 자가 3명이었다. 영의정 정태화가 아뢰기를, “계복(啓覆)의 죄인은 이미 처단을 하였습니다만, 계절이 마침 한겨울인데다 새해가 또 멀지 않으니, 전옥서의 죄수 역시 탑전에서 소결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하니, 상이 답하기를, “경의 말이 옳다. 일후에 소결하라.” 하였다. 【원전】 37 집 209
<정조1년 5월 10일> 하교하기를, “교(郊)에서부터 궁(宮)에 이르기까지 관원을 명하여 경건히 기도했는데도 단비가 내릴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고 있으며, 몸소 규벽(珪壁)을 가지고 사단(社壇)에 제사를 올렸으나 신령(神靈)의 감응이 아득하기만 하니, 농사일을 생각하면 마음이 불에 타들어가는 것만 같다. 모든 수성(修省)하는 방도에 관계된 것은 조금도 지완하게 할 수 없으니, 내일 죄수들을 소결(疏決)하라.”하였다. 【원전】 44 집 668 면 2) 소방(疏放)의 사례를 살펴본다. <선조1년 10월 9일>삼공(三公)이 재이(災異)로 인하여 아뢰기를, “을사년간에 죄를 받은 사람들의 재산을 적몰한 문기(文記)에 같이 기록되어 있는 전답 중에서 잘못 적몰한 것을 환급(還給)하고, 이들의 작위도 아직 복직되지 않았으니 복직시키소서. 기묘년의 천거과(薦擧科)는 전중(殿中)에서 시취(試取)한 것으로 명분이 매우 바르고 공정한데도 과거를 혁파한 뒤에 복과(復科)시켰다가 또 혁파했으니 다시 복과시키소서. 옥에 계류된 죄인들 중에 억울한 자를 해사로 하여금 분간한 뒤에 소방(疏放)하게 하소서.” 하니, 답하기를, “모두 아뢴 대로 하되 을사년과 기유년에 죄를 입은 사람들은 전에 이미 모두 신원시켰으니 지금 가볍게 개정할 수 없는 것이고 그중 문기에 같이 기록되어 있는 전답은 분별하여 환급하라.”하였다.【원전】 21 집 198 면
<효종 2년 5월 22일>상이 하교하기를, “가뭄 속의 무더위가 활활 불이 붙은 것 같은데 감옥이 다 가득차서 숨을 헐떡거리는 자가 필시 많을 것이니, 매우 불쌍하다. 형조로 하여금 감옥의 죄수를 소방(疏放)하게 하고 의금부의 죄인도 또한 서계(書啓)하게 하라.” 하였는데, 형조가 오늘은 국기(國忌)의 재계하는 날이라 아문(衙門)에 좌기하여 죄수를 논의할 수 없다고 아뢰니, 하교하기를, “소방과 형신(刑訊)은 다르다. 국기에 구애하지 말고 빨리 의논하여 소방하라.” 하였다.
<정조 6년 5월 11일>
조강(朝講)하였다. 부제학 심염조(沈念祖)가 아뢰기를, “전하께서는 걱정하고 애쓰고 두려워 염려하는데도 온갖 법도가 해이되고 폐기되고 있으며 백성을 사랑하는데도 은택이 아래에까지 닿지 않으며 도와주기를 구하여도 바른말이 들리지 않으며 하루에 세 번 강(講)하는 것을 비우는 날이 많으며 5일에 있는 차대(次對)가 겉치레가 되어 있는 것은 오로지 성지(聖志)가 확고하지 않고 성단(聖斷)이 철저하지 않은 데 연유된 것이니, 원컨대 더욱 면려하소서. 간신(諫臣)이 이미 삼도(三道)의 모적(牟糴)을 정퇴(停退)시킬 것을 청하였으니, 해서(海西)의 모적도 또한 사의를 헤아려 정퇴시켜야 합니다. 형옥(刑獄)을 심열(審閱)하여 침체되는 것이 없게 하고 충신을 포장(褒奬)하고 효자를 정표(旌表)하며 숨겨진 것을 밝히고 억울한 것을 씻어 주게 하소서.” 하니, 임금이 가상히 여겨 받아들였다. 이어 제도(諸道)의 도년(徒年) 이하의 죄는 소방(疏放)시키라고 명하였으며, 유사(有司)에게 효열(孝烈)에 대해 계복(啓覆)하라고 명하였다. 다음날 유사가 팔도(八道)의 도형(徒刑)·유형(流刑) 2백 89인을 아뢰니, 하교하기를, “이미 사전(赦典)이 있는 것이 아니니, 죄다 사유(赦宥)하기는 어렵다. 단지 작은 잘못을 저지른 자 18인만 석방하라.”하였다. 【원전】 45 집 305 면
(순조11년 4월 17일 ) 우의정 김사목(金思穆)이 아뢰기를, “매번 가뭄을 염려할 때이면 먼저 소결(疏決)하는 조치가 있었는데, 지난번부터 소방(疏放)한 것이 의금부와 형조의 경미한 죄수에 불과할 뿐입니다. 다만 지금 서울과 지방의 녹수(錄囚)로 여러 해 동안 재판이 지체된 것 또한 이미 많으며, 그 중에서 더러는 부생(傅生)2894) 할 대상이나 참작하여 처결해야 할 대상이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한 번 녹계(錄啓)한 뒤에는 형관(刑官)이 사수(死囚)로 인정하고 다시 사안(詞案)을 고열(考閱)하지 않으니, 깊이 억울한 마음이 화기(和氣)를 해치는 단서가 되기에 충분합니다. 형조 당상으로 하여금 빨리 서울과 지방의 옥안(獄案)에 대하여 다시 사열(査閱)을 더하도록 하고, 만일 부생할 부류가 있으면 각기 의견을 내게 하여, 재량하여 처결하는 데 대비하도록 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원전】 47 집 692 면
<순조 32년 6월 29일>
체수와 체옥의 폐단을 단속하기를 하교하다. 하교하기를, “처음에는 가뭄이 들더니, 끝내는 장마가 져서 두루 재앙이 되게 하였다. 수성(修省)하는 도리에 있어서도 원울(冤鬱)을 소결(疏決)하는 도리가 있어야 마땅하겠으니, 금부(禁府)와 형조의 정배 죄인으로 소방(疏放)에 가합한 자는 해사(該司)의 당상이 대신에게 취의(就議)하고 도류안(徒流案)에 부표(付標)하여 올리라. 또 경옥(京獄)에서 해가 오래도록 체수(滯囚)된 것도 매우 민망한 일이니, 이미 결안(決案)하였거나 결안하지 않았거나를 막론하고 죄인을 심리하는 예대로 3당상이 회의하고 상세히 사핵하여 의견을 갖추어 계문(啓聞)하라. 비록 외읍이라 하더라도 까닭없이 체옥(滯獄)된 폐단이 필시 많을 것이니, 묘당에서 팔도와 사도(四都)에 행회(行會)하여 즉시 결방(決放)하게 함으로써 조정에서 백성을 다친 자 보듯 하는 뜻을 보이게 하라.”하였다. 【원전】 48 집 378 면
자료제공: www.cyworld.com/palbe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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