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조실록읽기> 형벌을 신중히 하라/성종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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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법정치학 작성일13-06-24 09:45 조회6,245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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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선왕조실록은 우리 조상들의 사상과 정신세계를 엿볼수있는
문화유산입니다. 비록 내용이 딱딱하다고 할수도 있지만
조상들의 교훈을 나누기 위해 <한국전통민족문화의 광장>에 한글로
국역된 원문을 게재합니다..
성종 7년 (병 신) / 대사헌 윤계겸 등이 상소하여 형벌의 신중과 이단 척결 등 제반 문제를 논하다
"형벌을 신중히 하라. 불쌍한 것은 백성이다"
사헌부 대사헌(司憲府大司憲) 윤계겸(尹繼謙) 등이 상소하기를,
“삼가 듣건대 하늘과 사람은 한 가지 이치로서 드러나고 은미함이 두 가지 이치가 아닙니다. 그래서 인사(人事)가 아래에서 감동하면 천변(天變)이 위에서 반응을 보이는 것입니다. 《서경(書經)》에서 상고해 보건대 ‘삼가고[肅] 조리 있고[乂] 막힘이 없고[哲] 깊이 있고[謀] 사리에 통함[聖]이 다스려졌느냐에 따라 좋은 징조[休]와 나쁜 징조[咎]가 각각 그 유(類)에 따라 반응을 보인다.’ 하였습니다. 삼가 생각하건대 주상 전하께서는 뛰어나게 성스러운 자질로 천령(千齡)의 운(運)을 만나 등극[臨御]하신 이래, 학문을 깊이 연마하여 정치의 근본을 맑게 하고, 언로(言路)를 널리 열어서 뭇 백성들의 사정을 진달(盡達)하게 하시며, 힘써 다스림을 도모하여 항상 미치지 못하듯이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한 번 수재(水災)와 한재(旱災)를 만나게 되면 두려워하고 경계하여, 감선(減膳)·피전(避殿)하고 교지를 내려 구언(求言)해서 과실(過失)을 듣기를 바랐으니, 은(殷)나라 탕왕(湯王)이 재계(齋戒)하여 기도한 것이나, 주(周)나라 선왕(先王)이 자신을 반성하고 덕행을 가다듬은 것도 이보다 더할 바가 없습니다. 그러니 마땅히 재변(災變)이 종식(終息)되고 좋은 징조가 나타나야 할 것인데, 해마다 수재와 한재가 들어 피해가 더욱 심합니다.
지금 영남(嶺南) 지방은 또한 산이 무너지고 물이 넘치는 재변이 있으니, 하늘에서 베푸는 보답이 어찌 이렇게도 어그러지는 것입니까? 옛사람이 말하기를, ‘하늘이 재변을 보이는 것은 인군(人君)을 사랑하여, 두려워하고 반성해서 오랫동안 다스리고 오랫동안 평안하기를 바라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전하께서는 다만 마땅히 하늘의 경계를 삼가기를 항상 요즈음과 같이 하시어, 지극한 정성을 가지고 오래도록 지속하시며, 정치(政治)를 더욱 가다듬어서 중화(中和)를 이룩하신다면 천지 만물이 조화(調和)를 이루는 결과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어찌 화(禍)가 변하여 복(福)이 되고 재앙이 변하여 상서가 되는 것뿐이겠습니까? 옛사람이 말하기를, ‘명월주(明月珠)라도 흠이 없을 수 없고, 야광벽(夜光璧)이라도 흠이 없을 수 없다.’고 하였는데, 지금의 정치가 비록 지극하다고는 하나, 그 사이에 어찌 말할 만하고 의논할 만한 것이 없겠습니까? 우선 그 가운데 한둘을 지적하여 말하여 보겠습니다.
재변(災變)이 일어나는 것은 거의가 백성들의 억울함에 기인하고, 백성들의 억울함은 거의가 형벌(刑罰)이 알맞지 않은 데에 기인하는 것입니다. 《주역(周易)》에 이르기를, ‘형벌을 처리함을 신중히 하여 옥사(獄事)를 미루어 두지 않는다.’ 하였으니, 대개 신중히 한다는 것은 청단(聽斷)을 살펴서 한다는 것이고, 미루어 두지 않는다는 것은 재결(裁決)을 속히 한다는 것입니다. 살피고 속히 처리한다면, 백성 가운데 어찌 원한을 품는 자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살피고 속히 처리하는 것은 반드시 적당한 인물이 있어야 하는 것이니, 그러므로 고요(皐陶)가 있은 연후에야 중화(中和)의 다스림이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전하께서는 천성(天性)이 너그럽고 인자하시며 덕(德)을 밝히시고 벌(罰)을 신중히 처리하시어, 특별히 백성을 불쌍히 여기라는 조서(詔書)를 내려 사법관[司官]에게 경계하여 유시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대순(大舜)의 ‘형벌을 신중히 하라. 불쌍한 건 백성이다.’라고 한 성심(盛心)입니다.
그런데 여러 도(道)의 군현(郡縣)이나 여항(閭巷)의 백성들은 무릇 억울한 일이 있어도 스스로 성총(聖聰)에 진달할 수 없어서 반드시 그 고을의 수령에게 나아가 고소(告訴)하게 되는데, 그 고을의 수령이 된 자가 어찌 고요(皐陶)와 같을 수 있겠습니까? 옛사람이 말하기를, ‘땅에다 금을 그어 옥(獄)이라 하여도 들어가려 들지 않는다.’고 하였듯이, 대개 감옥[囹圄]의 괴로움은 하루가 1년처럼 느껴지고, 한 사람이 옥에 있으면 모든 가족이 생업(生業)을 폐(廢)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수령들은 죄수를 잡아서 가두게 되면, 즉시 결단(決斷)하지 아니하고, 혹은 자신의 소견을 가지고 옳은 것을 그르다 하고 그른 것을 옳다고 하며, 왔다갔다 하면서 결정을 미루고 세월을 보내고 있으니, <죄수는> 차꼬와 수갑[桎梏]이 사지(四肢)를 억누르고 굶주림과 추위가 핍박하여 질병(疾病)으로 비명을 지르면서, 원성이 극에 달합니다. 아아! 이것이 어찌 소위 상세히 살피고 속(速)하게 처리하는 것이겠습니까? 원컨대 전하께서 해마다 봄·가을로 사리에 익숙하고 매사에 신중한 선비를 택하여 여러 도(道)에 나누어 보내어서 옥사(獄事)가 지체되는 것을 살펴 다스린다면, 억울한 것을 거의 풀 수 있어서 화기(和氣)가 응하게 될 것입니다.
《서경(書經)》에 이르기를, ‘명령을 내리면 오직 시행이 되어야지 침체되어서는 안된다.’ 하였고, 선유(先儒)는 말하기를, ‘법(法)을 세우는 데에는 사람들로 하여금 피하기 쉽고 범하기 어렵게 하도록 해야 하며, 범한 바가 있으면 반드시 <법대로> 처리하고 용서함이 없어야 한다.’ 하였으니, 이것이 법이 행해지는 까닭입니다. 예로부터 국가의 근심은 법령(法令)이 갖추어지지 않은 데에 있는 것이 아니고, 갖추어졌는데도 시행되지 않는 데에 있는 것입니다. 지금 《대전(大典)》의 법은 좋지 않은 것이 아니고, 갖추어지지 않은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법을 더욱 갖추어도 간사함이 더 심하고 풍속이 더 무너지는 것은 어째서이겠습니까? 법을 지키는 것이 혹 확고하지 못하고, 법을 행하는 것이 혹 극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대개 지키는 것이 확고하지 못하면 백성은 반드시 믿지 않게 되고, 행하는 것이 극진하지 못하면 백성이 반드시 따르지 않게 되는 것이니, 믿지 않고 따르지 않는다면, 비록 법령(法令)이 있다고 하더라도 어찌 정치에 유익하겠습니까? 그래서 간사함이 더욱 심해지고 풍속이 더욱 무너지게 되는 것이니, 국가에서 마땅히 깊이 염려해야 할 바입니다. 원컨대 전하께서는 법령을 다시 신칙하시어 가볍게 고치지 말도록 하고, 유사(有司)에게 명하여 반드시 시행되도록 한다면, 기강(紀綱)이 서고 조정(朝廷)의 위엄이 높아지게 되어서, 천견(天譴)에 답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우리 도(道)에 있어서 이단(異端)은 싹[苗]의 가라지[]와 같기 때문에 성왕(聖王)은 이를 반드시 제거하는 바입니다. 태종 대왕(太宗大王)께서는 천성(天性)이 영민하고 결단력이 있으시어, 즉위하신 초기에 사사(寺社)를 혁파하도록 명하고, 그 토전(土田)을 나누어서 빈민(貧民)에게 생업(生業)으로 삼게 하였으며, 그 노예[僕隸]를 거두어서 여러 관사(官司)에 속하게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올바르지 않은 말들이 종식되고 올바른 도(道)가 다시 밝아져서, 갑자기 벼[嘉禾]를 심고 가라지를 없앤 것과 같아졌으므로 백성들이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 혜택을 받고 있으니, 역대 백왕(百王)보다 뛰어나고 만세 자손(萬世子孫)의 본보기가 된다고 할 만한 것입니다. 지금 국가의 법에 정전(丁錢)을 바치지 않고서 중이 되는 자를 굽히고, 옛터가 아닌데 절을 창건(創建)하는 것을 금하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태종(太宗)의 이단(異端)을 배척하는 유의(遺意)이므로, 중[緇流]을 억제함이 지극한 것입니다.
그런데도 정전(丁錢)을 바치고서 중이 되는 자가 몇 명이나 되고, 새로 절을 창건하여 죄를 입은 자가 몇 명이나 됩니까? 신 등이 삼가 보건대 국가에 비록 이러한 법이 있다고는 하나 즉시 거행하지 않는다면, 다만 법문(法文)만 갖춘 도구일 뿐이니, 놀기만 하고 게으른 백성으로 부역(賦役)을 피해서 중이 되려는 자가 무엇이 답답해서 반드시 정전을 내겠으며, 어리석고 미혹(迷惑)한 백성으로 죄(罪)나 복(福)을 두려워하는 자가 무엇을 꺼려서 새로 절을 창건하지 않겠습니까? 신 등이 행하는 것이 지극하지 않다고 한 것은 바로 이러한 점을 가리킨 것입니다. 대개 백성이 이익을 좋아하는 것이 오래되었고, 이익이 있는 곳이면 사람들은 반드시 쫓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중의 무리들은 조세(租稅)를 알지 못하고 역역(力役)을 알지 못하면서, 다만 인연(因緣)의 설(說)을 가지고 백성들을 미혹시켜, 편안히 앉아서 옷 입고 밥을 먹으니, 그 이익이 또한 큰 것이어서, 부역을 피하려는 백성들이 따르게 되는 것은 필연적입니다. 국가에서는 민정(民丁)이 군역(軍役)을 꺼려서 중한 것을 피하고 가벼운 데로 나아가려는 자가 있을까 염려하여 혹은 나장(羅將)으로 보내고 혹은 조례(隸)로 보내며 혹은 반인(伴人)으로 보내는 등, 여러 방면으로 찾아내어 도피하는 자가 없게 하고 있는데, 유독 중을 다스리는 법만이 소홀하니, 중의 무리들은 번성하고 군액(軍額)이 감소함은 당연한 것입니다. 원컨대 전하께서는 태종(太宗)의 좋은 뜻을 본받으시어, 중 가운데 나이가 어리거나 도첩(度牒)이 없으면서 삭발(削髮)하거나 이익을 도모하여 축재하는 것을 금지하되, 이미 이루어져 있는 법전을 더욱 엄하게 하여, 반드시 정전(丁錢)을 바친 연후에야 중이 되는 것을 허락하고, 반드시 옛터에만 절을 창건하도록 허락하여 점차로 그 근본을 끊으신다면, 군액(軍額)이 충실하게 되고, 민폐(民弊)가 없어지고, 재앙이 그칠 것입니다.
신 등이 또한 듣건대 고을의 풍속은 사대부(士大夫)를 근본으로 하고, 사대부의 풍속은 조정(朝廷)을 근본으로 한다고 합니다. 예로부터 다스림을 말하는 자들은, 누군들 ‘위에서 좋아하는 것이 있으면 아래에서는 더욱 심한 바가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위에서 명하는 바를 어기고 자신이 좋아하는 바를 따르는 것이 백성들의 공통된 심정입니다. 지금 전하께서는 삼궁(三宮)을 효도(孝道)로써 섬기고 신하를 예(禮)로써 접하며, 공손하고 부지런하며 근검 절약하시어 백성들의 본보기가 되고 계십니 다. 그런데도 세속에 사치함이 성행하고 선비 가운데 예(禮)를 행하는 자가 드문 것은, 전하께서 몸소 행하시는 것이 지극하지 않아서가 아니고, 이는 금령(禁令)이 행해지지 않아 사람들이 법을 범하기 쉬운 데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신 등이 삼가 보건대 요즈음의 사대부는 호화스러운 것을 아름다운 일로 여기고 놀면서 연회(宴會)하는 것을 고상한 풍치로 여기고서, 자신을 보양(保養)함을 후하게 하기 위하여 집을 넓게 지으며, 의복(衣服)은 가볍고 따뜻하게 하고자 하고, 음식(飮食)은 진기하게 하고자 하여, 서로서로 모방하고 본받아서 참람(僭濫)함이 헤아릴 수 없습니다. 전하께서는 재앙을 만나 두려워하시며 감선(減膳)하고 음악을 철폐하는데, 경사(卿士)는 음식을 즐기면서 태연자약하게 놀고 있으며, 전하께서는 부렴(賦斂)을 가볍게 하는데, 경사는 태연하게 부극(克)하고 있으니, 이것이 임금을 사랑하고 나라를 근심하는 마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또한 사대부 가운데에는 최질(衰) 중에도 애도(哀悼)하는 것을 잊고 분묘(墳墓)를 버려둔 채 고을을 두루 유람하면서 상사(喪事)에 소용된다고 칭탁하며 물건을 거두는 자가 왕왕 있습니다. 아아! 이것이 어찌 사람의 자식된 도리로서 차마 할 바이겠습니까? 사대부의 풍속이 이미 여기에까지 이르렀는데, 전하께서 비록 인사(人事)를 잘 다스려 화기(和氣)가 이르게 하고자 하여도, 홀로 어떻게 하시렵니까? 원컨대 전하께서는 법(法)을 지키고 영(令)을 행하는 것을 금석(金石)과 같이 굳게 지키고 사시(四時)와 같이 믿을 수 있게 하되, 훈구(勳舊)라고 하여 흔들리지 말고 권귀(權貴)라고 하여 굽히지 아니한다면, 풍속이 바르게 되고 화기(和氣)가 이르게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신 등이 또 듣건대 《서경(書經)》에 이르기를, ‘삼공(三公)은 도(道)를 논하고 나라를 다스리며 음양(陰陽)의 조화를 순조롭게 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지금의 의정부(議政府)가 바로 옛날의 도를 논하고 <음양의> 조화를 순조롭게 하던 장소입니다. 그런데 삼공(三公) 이하가 다만 자리나 채우고 일하는 바가 없으면, 육조(六曹)와 여러 관사(官司)에서는 각기 맡은 일을 가지고 바로 주달(奏達)하여 품지(旨)를 받드는데, 비록 얼마 안되는 자질구레한 일까지도 모두 성청(聖聽)을 번독하고 있으니, 이것이 어찌 임금이 직책을 분담시킨 체제라고 하겠습니까?
옛사람들의 말에 이르기를, ‘<임금이> 현명한 자를 구하는 데에는 힘쓰지만, 현명한 자를 임용(任用)하고 나면 편안해진다.’ 하였습니다. 전하께서 진실로 재상(宰相)을 얻어서, 일을 대신 처리하는 법을 복구하여 백성을 화합시키는 책임을 맡긴다면, 체통(體統)이 바르게 되고 기강(紀綱)이 서게 되며, 백공(百工)이 진실로 다스려져서 많은 공적이 모두 빛나게 되어, 수재와 한재는 변하여 풍년이 되게 하고, 재앙과 이변은 변하여 아름다운 상서(祥瑞)가 되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였다. 임금이 정승(政丞)에게 의논하도록 명하니, 정인지(鄭麟趾)·한명회(韓明澮)·조석문(曹錫文)·김질(金)·김국광(金國光)이 의논하기를,
“여러 도(道)에서 옥사(獄事)를 남형(濫刑)하는 것은 예(例)대로 형조(刑曹)에 옮기고 별도로 새 법을 세울 필요는 없으니, 관리를 보내어 살펴서 처리하게 하소서. 그리고 법령(法令)을 다시 신칙하는 것과 도첩(度牒)이 없이 중이 되거나, 새로 사사(寺社)를 창건하거나, 사대부(士大夫)가 놀며 연회하고 호화스럽게 사치하며 상중에 청구하는 등의 일은 책임이 헌부(憲府)에 있으니, 모두 규명하여 다스리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러나 의정부에서 일을 대신하는 것은 조종조(祖宗朝)에서 행하기도 하고 안하기도 하였으니, 일괄적으로 논하기는 어렵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가하다.”
하였다.
【원전】 9 집 377 면
【분류】 *정론-정론(政論) / *과학-천기(天氣) / *사법-법제(法制) / *사법-재판(裁判) / *역사-고사(故事) / *사상-불교(佛敎) / *군사-군역(軍役) / *신분-양반(兩班) / *풍속-풍속(風俗)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새로고침
법정치학 연구회
http://cafe.daum.net/krolp
문화유산입니다. 비록 내용이 딱딱하다고 할수도 있지만
조상들의 교훈을 나누기 위해 <한국전통민족문화의 광장>에 한글로
국역된 원문을 게재합니다..
성종 7년 (병 신) / 대사헌 윤계겸 등이 상소하여 형벌의 신중과 이단 척결 등 제반 문제를 논하다
"형벌을 신중히 하라. 불쌍한 것은 백성이다"
사헌부 대사헌(司憲府大司憲) 윤계겸(尹繼謙) 등이 상소하기를,
“삼가 듣건대 하늘과 사람은 한 가지 이치로서 드러나고 은미함이 두 가지 이치가 아닙니다. 그래서 인사(人事)가 아래에서 감동하면 천변(天變)이 위에서 반응을 보이는 것입니다. 《서경(書經)》에서 상고해 보건대 ‘삼가고[肅] 조리 있고[乂] 막힘이 없고[哲] 깊이 있고[謀] 사리에 통함[聖]이 다스려졌느냐에 따라 좋은 징조[休]와 나쁜 징조[咎]가 각각 그 유(類)에 따라 반응을 보인다.’ 하였습니다. 삼가 생각하건대 주상 전하께서는 뛰어나게 성스러운 자질로 천령(千齡)의 운(運)을 만나 등극[臨御]하신 이래, 학문을 깊이 연마하여 정치의 근본을 맑게 하고, 언로(言路)를 널리 열어서 뭇 백성들의 사정을 진달(盡達)하게 하시며, 힘써 다스림을 도모하여 항상 미치지 못하듯이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한 번 수재(水災)와 한재(旱災)를 만나게 되면 두려워하고 경계하여, 감선(減膳)·피전(避殿)하고 교지를 내려 구언(求言)해서 과실(過失)을 듣기를 바랐으니, 은(殷)나라 탕왕(湯王)이 재계(齋戒)하여 기도한 것이나, 주(周)나라 선왕(先王)이 자신을 반성하고 덕행을 가다듬은 것도 이보다 더할 바가 없습니다. 그러니 마땅히 재변(災變)이 종식(終息)되고 좋은 징조가 나타나야 할 것인데, 해마다 수재와 한재가 들어 피해가 더욱 심합니다.
지금 영남(嶺南) 지방은 또한 산이 무너지고 물이 넘치는 재변이 있으니, 하늘에서 베푸는 보답이 어찌 이렇게도 어그러지는 것입니까? 옛사람이 말하기를, ‘하늘이 재변을 보이는 것은 인군(人君)을 사랑하여, 두려워하고 반성해서 오랫동안 다스리고 오랫동안 평안하기를 바라는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전하께서는 다만 마땅히 하늘의 경계를 삼가기를 항상 요즈음과 같이 하시어, 지극한 정성을 가지고 오래도록 지속하시며, 정치(政治)를 더욱 가다듬어서 중화(中和)를 이룩하신다면 천지 만물이 조화(調和)를 이루는 결과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어찌 화(禍)가 변하여 복(福)이 되고 재앙이 변하여 상서가 되는 것뿐이겠습니까? 옛사람이 말하기를, ‘명월주(明月珠)라도 흠이 없을 수 없고, 야광벽(夜光璧)이라도 흠이 없을 수 없다.’고 하였는데, 지금의 정치가 비록 지극하다고는 하나, 그 사이에 어찌 말할 만하고 의논할 만한 것이 없겠습니까? 우선 그 가운데 한둘을 지적하여 말하여 보겠습니다.
재변(災變)이 일어나는 것은 거의가 백성들의 억울함에 기인하고, 백성들의 억울함은 거의가 형벌(刑罰)이 알맞지 않은 데에 기인하는 것입니다. 《주역(周易)》에 이르기를, ‘형벌을 처리함을 신중히 하여 옥사(獄事)를 미루어 두지 않는다.’ 하였으니, 대개 신중히 한다는 것은 청단(聽斷)을 살펴서 한다는 것이고, 미루어 두지 않는다는 것은 재결(裁決)을 속히 한다는 것입니다. 살피고 속히 처리한다면, 백성 가운데 어찌 원한을 품는 자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살피고 속히 처리하는 것은 반드시 적당한 인물이 있어야 하는 것이니, 그러므로 고요(皐陶)가 있은 연후에야 중화(中和)의 다스림이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전하께서는 천성(天性)이 너그럽고 인자하시며 덕(德)을 밝히시고 벌(罰)을 신중히 처리하시어, 특별히 백성을 불쌍히 여기라는 조서(詔書)를 내려 사법관[司官]에게 경계하여 유시하였으니,
이것이 바로 대순(大舜)의 ‘형벌을 신중히 하라. 불쌍한 건 백성이다.’라고 한 성심(盛心)입니다.
그런데 여러 도(道)의 군현(郡縣)이나 여항(閭巷)의 백성들은 무릇 억울한 일이 있어도 스스로 성총(聖聰)에 진달할 수 없어서 반드시 그 고을의 수령에게 나아가 고소(告訴)하게 되는데, 그 고을의 수령이 된 자가 어찌 고요(皐陶)와 같을 수 있겠습니까? 옛사람이 말하기를, ‘땅에다 금을 그어 옥(獄)이라 하여도 들어가려 들지 않는다.’고 하였듯이, 대개 감옥[囹圄]의 괴로움은 하루가 1년처럼 느껴지고, 한 사람이 옥에 있으면 모든 가족이 생업(生業)을 폐(廢)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수령들은 죄수를 잡아서 가두게 되면, 즉시 결단(決斷)하지 아니하고, 혹은 자신의 소견을 가지고 옳은 것을 그르다 하고 그른 것을 옳다고 하며, 왔다갔다 하면서 결정을 미루고 세월을 보내고 있으니, <죄수는> 차꼬와 수갑[桎梏]이 사지(四肢)를 억누르고 굶주림과 추위가 핍박하여 질병(疾病)으로 비명을 지르면서, 원성이 극에 달합니다. 아아! 이것이 어찌 소위 상세히 살피고 속(速)하게 처리하는 것이겠습니까? 원컨대 전하께서 해마다 봄·가을로 사리에 익숙하고 매사에 신중한 선비를 택하여 여러 도(道)에 나누어 보내어서 옥사(獄事)가 지체되는 것을 살펴 다스린다면, 억울한 것을 거의 풀 수 있어서 화기(和氣)가 응하게 될 것입니다.
《서경(書經)》에 이르기를, ‘명령을 내리면 오직 시행이 되어야지 침체되어서는 안된다.’ 하였고, 선유(先儒)는 말하기를, ‘법(法)을 세우는 데에는 사람들로 하여금 피하기 쉽고 범하기 어렵게 하도록 해야 하며, 범한 바가 있으면 반드시 <법대로> 처리하고 용서함이 없어야 한다.’ 하였으니, 이것이 법이 행해지는 까닭입니다. 예로부터 국가의 근심은 법령(法令)이 갖추어지지 않은 데에 있는 것이 아니고, 갖추어졌는데도 시행되지 않는 데에 있는 것입니다. 지금 《대전(大典)》의 법은 좋지 않은 것이 아니고, 갖추어지지 않은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법을 더욱 갖추어도 간사함이 더 심하고 풍속이 더 무너지는 것은 어째서이겠습니까? 법을 지키는 것이 혹 확고하지 못하고, 법을 행하는 것이 혹 극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대개 지키는 것이 확고하지 못하면 백성은 반드시 믿지 않게 되고, 행하는 것이 극진하지 못하면 백성이 반드시 따르지 않게 되는 것이니, 믿지 않고 따르지 않는다면, 비록 법령(法令)이 있다고 하더라도 어찌 정치에 유익하겠습니까? 그래서 간사함이 더욱 심해지고 풍속이 더욱 무너지게 되는 것이니, 국가에서 마땅히 깊이 염려해야 할 바입니다. 원컨대 전하께서는 법령을 다시 신칙하시어 가볍게 고치지 말도록 하고, 유사(有司)에게 명하여 반드시 시행되도록 한다면, 기강(紀綱)이 서고 조정(朝廷)의 위엄이 높아지게 되어서, 천견(天譴)에 답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우리 도(道)에 있어서 이단(異端)은 싹[苗]의 가라지[]와 같기 때문에 성왕(聖王)은 이를 반드시 제거하는 바입니다. 태종 대왕(太宗大王)께서는 천성(天性)이 영민하고 결단력이 있으시어, 즉위하신 초기에 사사(寺社)를 혁파하도록 명하고, 그 토전(土田)을 나누어서 빈민(貧民)에게 생업(生業)으로 삼게 하였으며, 그 노예[僕隸]를 거두어서 여러 관사(官司)에 속하게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올바르지 않은 말들이 종식되고 올바른 도(道)가 다시 밝아져서, 갑자기 벼[嘉禾]를 심고 가라지를 없앤 것과 같아졌으므로 백성들이 지금에 이르기까지 그 혜택을 받고 있으니, 역대 백왕(百王)보다 뛰어나고 만세 자손(萬世子孫)의 본보기가 된다고 할 만한 것입니다. 지금 국가의 법에 정전(丁錢)을 바치지 않고서 중이 되는 자를 굽히고, 옛터가 아닌데 절을 창건(創建)하는 것을 금하고 있는데, 이것이 바로 태종(太宗)의 이단(異端)을 배척하는 유의(遺意)이므로, 중[緇流]을 억제함이 지극한 것입니다.
그런데도 정전(丁錢)을 바치고서 중이 되는 자가 몇 명이나 되고, 새로 절을 창건하여 죄를 입은 자가 몇 명이나 됩니까? 신 등이 삼가 보건대 국가에 비록 이러한 법이 있다고는 하나 즉시 거행하지 않는다면, 다만 법문(法文)만 갖춘 도구일 뿐이니, 놀기만 하고 게으른 백성으로 부역(賦役)을 피해서 중이 되려는 자가 무엇이 답답해서 반드시 정전을 내겠으며, 어리석고 미혹(迷惑)한 백성으로 죄(罪)나 복(福)을 두려워하는 자가 무엇을 꺼려서 새로 절을 창건하지 않겠습니까? 신 등이 행하는 것이 지극하지 않다고 한 것은 바로 이러한 점을 가리킨 것입니다. 대개 백성이 이익을 좋아하는 것이 오래되었고, 이익이 있는 곳이면 사람들은 반드시 쫓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 중의 무리들은 조세(租稅)를 알지 못하고 역역(力役)을 알지 못하면서, 다만 인연(因緣)의 설(說)을 가지고 백성들을 미혹시켜, 편안히 앉아서 옷 입고 밥을 먹으니, 그 이익이 또한 큰 것이어서, 부역을 피하려는 백성들이 따르게 되는 것은 필연적입니다. 국가에서는 민정(民丁)이 군역(軍役)을 꺼려서 중한 것을 피하고 가벼운 데로 나아가려는 자가 있을까 염려하여 혹은 나장(羅將)으로 보내고 혹은 조례(隸)로 보내며 혹은 반인(伴人)으로 보내는 등, 여러 방면으로 찾아내어 도피하는 자가 없게 하고 있는데, 유독 중을 다스리는 법만이 소홀하니, 중의 무리들은 번성하고 군액(軍額)이 감소함은 당연한 것입니다. 원컨대 전하께서는 태종(太宗)의 좋은 뜻을 본받으시어, 중 가운데 나이가 어리거나 도첩(度牒)이 없으면서 삭발(削髮)하거나 이익을 도모하여 축재하는 것을 금지하되, 이미 이루어져 있는 법전을 더욱 엄하게 하여, 반드시 정전(丁錢)을 바친 연후에야 중이 되는 것을 허락하고, 반드시 옛터에만 절을 창건하도록 허락하여 점차로 그 근본을 끊으신다면, 군액(軍額)이 충실하게 되고, 민폐(民弊)가 없어지고, 재앙이 그칠 것입니다.
신 등이 또한 듣건대 고을의 풍속은 사대부(士大夫)를 근본으로 하고, 사대부의 풍속은 조정(朝廷)을 근본으로 한다고 합니다. 예로부터 다스림을 말하는 자들은, 누군들 ‘위에서 좋아하는 것이 있으면 아래에서는 더욱 심한 바가 있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위에서 명하는 바를 어기고 자신이 좋아하는 바를 따르는 것이 백성들의 공통된 심정입니다. 지금 전하께서는 삼궁(三宮)을 효도(孝道)로써 섬기고 신하를 예(禮)로써 접하며, 공손하고 부지런하며 근검 절약하시어 백성들의 본보기가 되고 계십니 다. 그런데도 세속에 사치함이 성행하고 선비 가운데 예(禮)를 행하는 자가 드문 것은, 전하께서 몸소 행하시는 것이 지극하지 않아서가 아니고, 이는 금령(禁令)이 행해지지 않아 사람들이 법을 범하기 쉬운 데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신 등이 삼가 보건대 요즈음의 사대부는 호화스러운 것을 아름다운 일로 여기고 놀면서 연회(宴會)하는 것을 고상한 풍치로 여기고서, 자신을 보양(保養)함을 후하게 하기 위하여 집을 넓게 지으며, 의복(衣服)은 가볍고 따뜻하게 하고자 하고, 음식(飮食)은 진기하게 하고자 하여, 서로서로 모방하고 본받아서 참람(僭濫)함이 헤아릴 수 없습니다. 전하께서는 재앙을 만나 두려워하시며 감선(減膳)하고 음악을 철폐하는데, 경사(卿士)는 음식을 즐기면서 태연자약하게 놀고 있으며, 전하께서는 부렴(賦斂)을 가볍게 하는데, 경사는 태연하게 부극(克)하고 있으니, 이것이 임금을 사랑하고 나라를 근심하는 마음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또한 사대부 가운데에는 최질(衰) 중에도 애도(哀悼)하는 것을 잊고 분묘(墳墓)를 버려둔 채 고을을 두루 유람하면서 상사(喪事)에 소용된다고 칭탁하며 물건을 거두는 자가 왕왕 있습니다. 아아! 이것이 어찌 사람의 자식된 도리로서 차마 할 바이겠습니까? 사대부의 풍속이 이미 여기에까지 이르렀는데, 전하께서 비록 인사(人事)를 잘 다스려 화기(和氣)가 이르게 하고자 하여도, 홀로 어떻게 하시렵니까? 원컨대 전하께서는 법(法)을 지키고 영(令)을 행하는 것을 금석(金石)과 같이 굳게 지키고 사시(四時)와 같이 믿을 수 있게 하되, 훈구(勳舊)라고 하여 흔들리지 말고 권귀(權貴)라고 하여 굽히지 아니한다면, 풍속이 바르게 되고 화기(和氣)가 이르게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신 등이 또 듣건대 《서경(書經)》에 이르기를, ‘삼공(三公)은 도(道)를 논하고 나라를 다스리며 음양(陰陽)의 조화를 순조롭게 하는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지금의 의정부(議政府)가 바로 옛날의 도를 논하고 <음양의> 조화를 순조롭게 하던 장소입니다. 그런데 삼공(三公) 이하가 다만 자리나 채우고 일하는 바가 없으면, 육조(六曹)와 여러 관사(官司)에서는 각기 맡은 일을 가지고 바로 주달(奏達)하여 품지(旨)를 받드는데, 비록 얼마 안되는 자질구레한 일까지도 모두 성청(聖聽)을 번독하고 있으니, 이것이 어찌 임금이 직책을 분담시킨 체제라고 하겠습니까?
옛사람들의 말에 이르기를, ‘<임금이> 현명한 자를 구하는 데에는 힘쓰지만, 현명한 자를 임용(任用)하고 나면 편안해진다.’ 하였습니다. 전하께서 진실로 재상(宰相)을 얻어서, 일을 대신 처리하는 법을 복구하여 백성을 화합시키는 책임을 맡긴다면, 체통(體統)이 바르게 되고 기강(紀綱)이 서게 되며, 백공(百工)이 진실로 다스려져서 많은 공적이 모두 빛나게 되어, 수재와 한재는 변하여 풍년이 되게 하고, 재앙과 이변은 변하여 아름다운 상서(祥瑞)가 되게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였다. 임금이 정승(政丞)에게 의논하도록 명하니, 정인지(鄭麟趾)·한명회(韓明澮)·조석문(曹錫文)·김질(金)·김국광(金國光)이 의논하기를,
“여러 도(道)에서 옥사(獄事)를 남형(濫刑)하는 것은 예(例)대로 형조(刑曹)에 옮기고 별도로 새 법을 세울 필요는 없으니, 관리를 보내어 살펴서 처리하게 하소서. 그리고 법령(法令)을 다시 신칙하는 것과 도첩(度牒)이 없이 중이 되거나, 새로 사사(寺社)를 창건하거나, 사대부(士大夫)가 놀며 연회하고 호화스럽게 사치하며 상중에 청구하는 등의 일은 책임이 헌부(憲府)에 있으니, 모두 규명하여 다스리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러나 의정부에서 일을 대신하는 것은 조종조(祖宗朝)에서 행하기도 하고 안하기도 하였으니, 일괄적으로 논하기는 어렵습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가하다.”
하였다.
【원전】 9 집 377 면
【분류】 *정론-정론(政論) / *과학-천기(天氣) / *사법-법제(法制) / *사법-재판(裁判) / *역사-고사(故事) / *사상-불교(佛敎) / *군사-군역(軍役) / *신분-양반(兩班) / *풍속-풍속(風俗)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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