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 교수님! 도와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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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성수 작성일13-06-21 12:18 조회6,951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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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기철 wrote:
>안녕하세요?
>
>먼저 이렇게 무턱대고 메일을 보내서 정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
>저는 원광대학교 영어교육과 2학년에 재학중인 서기철이라고 합니다.
>
>다름이 아니라 교수님께 도움을 청할 게 있습니다.
>
>제 과는 사범대학에 소속되어 있어 교직과목을 듣고 있습니다.
>
>그중에 교육사라는 과목이 있는데 교수님께서 내주신 과제가
>
>'조선시대 서당교육에서의 접장에 대해서 알아오라' 입니다.
>
>학교도서관과 인터넷을 틈날때마다 뒤지고 또 뒤져보았지만
>
>제가 원하는 만큼의 것에 비해 자료가 매우 미흡한 실정입니다.
>
>A4용이 약 5매분량 이상을 해야하는데 교수님께서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
>부탁드립니다. 도와주십시오.
>
>바쁘신 와중에도 글을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드리고 하시는 일마다 항상 행운이
>
>따르시기를 바랍니다.
>
>안녕히 계세요. ^^
^^^^^^^^^ 답변입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기로는 접장은 훈장(선생님)과 동의어로
알고 있으나, 여러 사료나 동학혁명 당시의 접주제도로 봐서
접장은 <붙이는 글>과 같이 훈장에게 배우는 학생신분으로
오늘날의 조교와 같은 선배로서 하위그룹 학생들을 가르치는
사람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지성인은 대학 도서관을 모두 뒤져서라도 자기가
원하는 자료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붙이는 글 ..........
교육의 발달은 문자의 사용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한문이 소개된 삼국시대부터 본격적인 교육이 이루어졌다. 최초의 교육기관은 고구려의 태학(太學)인데 이후 통일신라의 국학(國學), 고려의 국자감(國子監), 조선의 성균관(成均館)으로 이어졌다. 이들 교육기관은 고급관리를 양성할 목적으로 세워진 것으로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것은 아니었다.
조선시대의 교육은 질적.양적인 면에서 이전의 시대에 비해 크게 확충된 시기였다. 1443년 세종의 훈민정음(한글)의 창제는 국가가 전국민을 교육의 대상으로 삼은 가장 단적인 시도 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글은 문자 독점을 통해 정신적, 사회적 권리를 유지하려는 양 반층의 반대로 사대부 여성들과 일부 서민들에게서만 통용되었을 뿐 보편화되지 못하였다.
그럼에도 조선시대에 서민들에게 교육을 받을 기회 자체가 완전히 봉쇄된 것은 아니었다. 사설교육기관인 서당(書堂)에서 초보적인 문자습득과 고전교육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대개 7~8세에 들어가 경서읽기 (講讀), 글짓기(製述), 쓰기(習字) 등을 배우고 15~16세가 되 면 교육을 마쳤다. 서당에서는 선생님을 훈장(訓長), 학동들의 사형(師兄)격인 대표을 접장 (接長), 학생들을 생도(生徒)라고 불렀다. 서당에서 한권의 책을 다 배우고 나면 학부모들 이 준비해온 음식을 나워 먹는 '책거리'라는 풍습이 있었다.
자료 사이트 참조
http://window.kisc.net/museum/html/education1.html
>안녕하세요?
>
>먼저 이렇게 무턱대고 메일을 보내서 정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
>저는 원광대학교 영어교육과 2학년에 재학중인 서기철이라고 합니다.
>
>다름이 아니라 교수님께 도움을 청할 게 있습니다.
>
>제 과는 사범대학에 소속되어 있어 교직과목을 듣고 있습니다.
>
>그중에 교육사라는 과목이 있는데 교수님께서 내주신 과제가
>
>'조선시대 서당교육에서의 접장에 대해서 알아오라' 입니다.
>
>학교도서관과 인터넷을 틈날때마다 뒤지고 또 뒤져보았지만
>
>제가 원하는 만큼의 것에 비해 자료가 매우 미흡한 실정입니다.
>
>A4용이 약 5매분량 이상을 해야하는데 교수님께서 도와주셨으면 합니다.
>
>부탁드립니다. 도와주십시오.
>
>바쁘신 와중에도 글을 읽어주셔서 정말 감사드리고 하시는 일마다 항상 행운이
>
>따르시기를 바랍니다.
>
>안녕히 계세요. ^^
^^^^^^^^^ 답변입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기로는 접장은 훈장(선생님)과 동의어로
알고 있으나, 여러 사료나 동학혁명 당시의 접주제도로 봐서
접장은 <붙이는 글>과 같이 훈장에게 배우는 학생신분으로
오늘날의 조교와 같은 선배로서 하위그룹 학생들을 가르치는
사람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지성인은 대학 도서관을 모두 뒤져서라도 자기가
원하는 자료를 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붙이는 글 ..........
교육의 발달은 문자의 사용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한문이 소개된 삼국시대부터 본격적인 교육이 이루어졌다. 최초의 교육기관은 고구려의 태학(太學)인데 이후 통일신라의 국학(國學), 고려의 국자감(國子監), 조선의 성균관(成均館)으로 이어졌다. 이들 교육기관은 고급관리를 양성할 목적으로 세워진 것으로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것은 아니었다.
조선시대의 교육은 질적.양적인 면에서 이전의 시대에 비해 크게 확충된 시기였다. 1443년 세종의 훈민정음(한글)의 창제는 국가가 전국민을 교육의 대상으로 삼은 가장 단적인 시도 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한글은 문자 독점을 통해 정신적, 사회적 권리를 유지하려는 양 반층의 반대로 사대부 여성들과 일부 서민들에게서만 통용되었을 뿐 보편화되지 못하였다.
그럼에도 조선시대에 서민들에게 교육을 받을 기회 자체가 완전히 봉쇄된 것은 아니었다. 사설교육기관인 서당(書堂)에서 초보적인 문자습득과 고전교육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대개 7~8세에 들어가 경서읽기 (講讀), 글짓기(製述), 쓰기(習字) 등을 배우고 15~16세가 되 면 교육을 마쳤다. 서당에서는 선생님을 훈장(訓長), 학동들의 사형(師兄)격인 대표을 접장 (接長), 학생들을 생도(生徒)라고 불렀다. 서당에서 한권의 책을 다 배우고 나면 학부모들 이 준비해온 음식을 나워 먹는 '책거리'라는 풍습이 있었다.
자료 사이트 참조
http://window.kisc.net/museum/html/education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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