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이순정학생 보아요 .나는 제자들을 모두 사랑한담니
페이지 정보
작성자 김재문 작성일13-06-21 11:57 조회4,155회 댓글0건관련링크
본문
이순정학생보아요
이제 신학기에 한 학년이 올라가는 군요
지난해 길에서 만나 인사를 받을때 특별히 순정학생인줄 잘 못알아 본것 같아서
미안하네요.
그러나 나는 누구든지 인사를 하는 순간에는 나도 똑같이 그 사람의 인격을
존중하고 인사를 받는담니다.
특별히 잘 기억하지 못했다면...민안하네요...
내 연구실에 와서 다시 한번 우리 만나서 인사를 해볼까요^^
나는 제자들의 이름을 외울려고 하지 않는 담니다.
미안하게도 자연히 외워지면 되지만 모든 제자들과 인격적으로 똑같은
마음으로 대할려고 하다보니 그렇게 보였군요.
내 마음은 모든 제자들을 다 좋아하고 사랑한담니다.
왜냐하면 내가 자랑스런 경쟁력있는 지식과 지혜를 제자들에게
전해주었기에 모든 제자들이 이나라의 자랑스런 인재가 될것을
확신함니다.
어느위치 어느 곳에서든지 훌륭한 인재들이 될것을 나는 학수고대하고
기다릴 것이예요.
그렇기에 십년 이십년 뒤에 만나도 누구에게나 나의 제자들에 대한
마음은 변하지 않을 것이예요...
동시에 이순정학생에 대한 생각도 조금도 다르지 않담니다.
조선시대의 법에 대해 관심을 갖게된 동기를 물었군요.
간단히 답을 하자면...대학에서 또 사법시험공부를 하면서
교과서는 대충 다 외우다 싶이 공부를 해보았으나...결국은 법조문
해석에 끝나고 법조문 해석은 법률용어를 형식적인 논리로 단어의
뜻을 간결하게 객관적이고 논리적이고 합법적이고 판례를 인용하여
해석하는 것으로 법해석이 완성된담니다.
그이상 해석할 필요가 없담니다.
그런것이 내가 공부를 해보아도 더 이상 할 필요가 없는 외우는 것으로
판검사 변호사 자격을 취득하는 시험에 합격되는 준비를 하다보니
너무 무미 건조하였담니다.
그리고 시험은 불행중 다행이 뜻데로 되지 않아서 늦게 대학원에 진학하여
교과서에 없는 과목인 우리 전통법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담니다.
물론 그 이면에는 중국어 공부를 꽤 수년간 해 왔고 일본어도 고등학교때
부터 해 왔었고(순전히 개인적인 취미로 공부했고 그때의 고등학교시절에는
특수외국어를 가르쳐 주지 않던 시대임),불교공부를 하게 되어 불경이 한자로
되어있고 깊이가 있고 묘미가 있어서 우리 전통법문화가 매력적이고 알고
싶었담니다.
그러다가 전 서울법대의 박병호 교수님이 지으신 한국법제사고라는 책을 보고
놀랐담니다.
그래서 대학원에서 장경학 선생님 밑에서 조선왕조의 노비가 권리의 주체인지
권리의 객체인지...그리고 인권보장 차원에서 노비법사상이 어떻게 변천해 왔는
지를 조선왕조 500여년의 자료.고문서를 통해서 공부하기 시작했담니다.
그래서 아마도 1978년경이면 지금부터 25년전에 석사학위논문을 작성했고
그 이후로 노비법사상속에 천부인권평등사상을 발견하고 놀라서 집을 잡히고
우리 전통법문화를 더욱 깊이 연구하기 시작했담니다.
그래서 대학원 박사과정에서 조선왕조의 담보제도에 관한 연구라는 제목의
논문을 제출하기 위해 집을 잡히고 담보잡히는 공부를 고문서를 추적하고 수집
하여 낮에는 대학원 밤에는 야간고등학교 선생으로서 양쪽다 빈틈없는 시계추간
은 생활을 만 3년을 보내어서 학위를 받았담니다.
어느분야 하나 잘 아는 사람이 드물고 법적으로 명쾌하게 연구한 분들이 드물
었담니다.
하여튼 일제시대를 거쳤기 때문에 우리의 전통법문화나 법조문은 완전히 시대에
뒤떨어진 못쓰는 쓰레기나 골동품취급을 하고 있었담니다.
일제침략시대 35년이 없었다면 내가 이토록 힘들게 공부할 필요도 없었담니다.
벌써 25-26년의 세월이 흘렀군요.
한 것이라고는 논문 70여편뿐이군요.
그것도 돈받고 쓴 논문은 딱 2편 뿐이고 나머지는 공짜로 다 쓴것이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것이람니다.
그래서 가정경제가 연구자료 수집으로 어려움을 겪게 되었담니다.
그런데 내가 돈 안주면 글 안썼다면...지금껏 2편의 논문이상 쓸수가 없었겠지
요...
비록 경제적으로 어려움은 오랫동안 겪었지만 내 인생은 결코 후회하지 않는담
니다.
정작 알아야 할 우리의 전통법문화의 이론과 정신과 그 체계와 내용을 모른다는
것은 우리의 과거의 삶을 송두리체 묻어놓고 무지하게 외국문화만 수입해서
선진국으로 잘살아보자는 망상과 다를바 없기 때문이람니다.
이순정학생 ...
이정도면 대충 이해가 가는지...
더욱 열심히 하여 자랑스런 인재가 되기를 바람니다.
안녕
김재문
이제 신학기에 한 학년이 올라가는 군요
지난해 길에서 만나 인사를 받을때 특별히 순정학생인줄 잘 못알아 본것 같아서
미안하네요.
그러나 나는 누구든지 인사를 하는 순간에는 나도 똑같이 그 사람의 인격을
존중하고 인사를 받는담니다.
특별히 잘 기억하지 못했다면...민안하네요...
내 연구실에 와서 다시 한번 우리 만나서 인사를 해볼까요^^
나는 제자들의 이름을 외울려고 하지 않는 담니다.
미안하게도 자연히 외워지면 되지만 모든 제자들과 인격적으로 똑같은
마음으로 대할려고 하다보니 그렇게 보였군요.
내 마음은 모든 제자들을 다 좋아하고 사랑한담니다.
왜냐하면 내가 자랑스런 경쟁력있는 지식과 지혜를 제자들에게
전해주었기에 모든 제자들이 이나라의 자랑스런 인재가 될것을
확신함니다.
어느위치 어느 곳에서든지 훌륭한 인재들이 될것을 나는 학수고대하고
기다릴 것이예요.
그렇기에 십년 이십년 뒤에 만나도 누구에게나 나의 제자들에 대한
마음은 변하지 않을 것이예요...
동시에 이순정학생에 대한 생각도 조금도 다르지 않담니다.
조선시대의 법에 대해 관심을 갖게된 동기를 물었군요.
간단히 답을 하자면...대학에서 또 사법시험공부를 하면서
교과서는 대충 다 외우다 싶이 공부를 해보았으나...결국은 법조문
해석에 끝나고 법조문 해석은 법률용어를 형식적인 논리로 단어의
뜻을 간결하게 객관적이고 논리적이고 합법적이고 판례를 인용하여
해석하는 것으로 법해석이 완성된담니다.
그이상 해석할 필요가 없담니다.
그런것이 내가 공부를 해보아도 더 이상 할 필요가 없는 외우는 것으로
판검사 변호사 자격을 취득하는 시험에 합격되는 준비를 하다보니
너무 무미 건조하였담니다.
그리고 시험은 불행중 다행이 뜻데로 되지 않아서 늦게 대학원에 진학하여
교과서에 없는 과목인 우리 전통법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담니다.
물론 그 이면에는 중국어 공부를 꽤 수년간 해 왔고 일본어도 고등학교때
부터 해 왔었고(순전히 개인적인 취미로 공부했고 그때의 고등학교시절에는
특수외국어를 가르쳐 주지 않던 시대임),불교공부를 하게 되어 불경이 한자로
되어있고 깊이가 있고 묘미가 있어서 우리 전통법문화가 매력적이고 알고
싶었담니다.
그러다가 전 서울법대의 박병호 교수님이 지으신 한국법제사고라는 책을 보고
놀랐담니다.
그래서 대학원에서 장경학 선생님 밑에서 조선왕조의 노비가 권리의 주체인지
권리의 객체인지...그리고 인권보장 차원에서 노비법사상이 어떻게 변천해 왔는
지를 조선왕조 500여년의 자료.고문서를 통해서 공부하기 시작했담니다.
그래서 아마도 1978년경이면 지금부터 25년전에 석사학위논문을 작성했고
그 이후로 노비법사상속에 천부인권평등사상을 발견하고 놀라서 집을 잡히고
우리 전통법문화를 더욱 깊이 연구하기 시작했담니다.
그래서 대학원 박사과정에서 조선왕조의 담보제도에 관한 연구라는 제목의
논문을 제출하기 위해 집을 잡히고 담보잡히는 공부를 고문서를 추적하고 수집
하여 낮에는 대학원 밤에는 야간고등학교 선생으로서 양쪽다 빈틈없는 시계추간
은 생활을 만 3년을 보내어서 학위를 받았담니다.
어느분야 하나 잘 아는 사람이 드물고 법적으로 명쾌하게 연구한 분들이 드물
었담니다.
하여튼 일제시대를 거쳤기 때문에 우리의 전통법문화나 법조문은 완전히 시대에
뒤떨어진 못쓰는 쓰레기나 골동품취급을 하고 있었담니다.
일제침략시대 35년이 없었다면 내가 이토록 힘들게 공부할 필요도 없었담니다.
벌써 25-26년의 세월이 흘렀군요.
한 것이라고는 논문 70여편뿐이군요.
그것도 돈받고 쓴 논문은 딱 2편 뿐이고 나머지는 공짜로 다 쓴것이고 앞으로도
그렇게 할것이람니다.
그래서 가정경제가 연구자료 수집으로 어려움을 겪게 되었담니다.
그런데 내가 돈 안주면 글 안썼다면...지금껏 2편의 논문이상 쓸수가 없었겠지
요...
비록 경제적으로 어려움은 오랫동안 겪었지만 내 인생은 결코 후회하지 않는담
니다.
정작 알아야 할 우리의 전통법문화의 이론과 정신과 그 체계와 내용을 모른다는
것은 우리의 과거의 삶을 송두리체 묻어놓고 무지하게 외국문화만 수입해서
선진국으로 잘살아보자는 망상과 다를바 없기 때문이람니다.
이순정학생 ...
이정도면 대충 이해가 가는지...
더욱 열심히 하여 자랑스런 인재가 되기를 바람니다.
안녕
김재문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