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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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경란 작성일13-06-20 13:59 조회4,048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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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재 검찰총장께 드리는 부탁
1989년 4월에 출판했던 심장병 투병기는,
제가 딸아이의 입장을 대변하고,
딸아이의 입장에서 세상살이를 말한 책입니다.
그런 책을 써보겠다고 결심했기 때문에,
병원살이를 했던 55일을
두살배기의 순수성을 유지하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었습니다.
그러한 순수성이
제 마음에 드는 데다가,
그것이,
성공의 관건이었기 때문입니다.
제 노력이
실패한 것은 아니었다고 봅니다.
그 책이 꾸준히 호평을 받으면서
3만 권 정도 팔려나가던 중,
검찰 때문에 절판이 돼버렸으니 말씀입니다.
1987년 4월, 딸아이가
"뇌수종"이라는 판정을 받았습니다.
선천적으로 타고났는데,
뒤늦게 발병한 병은 절대로 아니라고 했었습니다.
"심장병수술시기를 놓쳤던 것이,
발병원인일 (수도) 있다!"
라는 선고를 받게 됐을 때의 심정은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의사의 진단은,
교학사라는 대단한 악질을 만난 데다가,
어미가 지독하게 무능했기 때문에
죄 없는 아이가
무시무시한 병마에 시달리게 됐다는 뜻이었습니다.
교학사 사장을 갈아먹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안돼!"라고 외쳤습니다.
원망하고 후회할 때가 아니었습니다.
지난날의 잘못을 거울로 삼아
아이에게 최선을 다해야 할 때였습니다.
그 때는!
그 지경 속에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연구했었습니다.
아이의 눈높이에서 아이를 보듬어 안고,
아이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일을
계속하겠노라고 결심했었습니다.
아이와 함께 24시간을 지내면서
양육기와 투병기를 계속 발간하면
훌륭한 책이 만들어질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아이를 위해 돈이 필요한데,
돈을 벌기 위한 관건이
아이의 눈높이에 맞추는 것이니,
아이를 위한답시고 괴롭히는 짓은
절대로 하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 그렇게 살면 되겠다!"
1989년도에,
저는 분명히 그렇게 결심했었습니다.
제 딸아이는 1984. 12. 31. 생입니다.
어느덧 18살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아이는, 학교도 다니지 못하고 있습니다.
24시간, 아이를 위해 살겠다고 결심했던 어미는
24시간, 아이를 내팽개치고,
24시간, 검찰을 때려잡겠다고 안달입니다.
그것이 분하고 억울해서,
아이는 오줌똥을 싸댑니다.
24시간, 어미만 바라보고 있다가,
끼어 들 틈이 있다고 생각되면,
잽싸게 끼어 들면서,
간지럼을 태워달라고 아우성을 칩니다.
아무리 기다려도 틈이 보이지 않을 때는,
가차없이 어미를 두들겨 패고 나섭니다.
아비는 아비대로
자기 자신의 원한에 빠져있고,
어미는 어미대로 이 지경이니,
아이는 노는 법을 배울 수가 없었습니다.
어미를 괴롭히는 방법을 연구하는 것이
그 아이의 지상과제가 돼버리고 말았습니다.
소리 없는 아우성!
소리 없는 절규!
저는 시시때때로
그것을 느낍니다.
그것이
조만간 폭발하고야 말 것이라는 사실을
충분히 감지하고 있습니다.
김경란이라는 여자를
형편없는 어미로 만들어 놓은 것은
검찰입니다.
서동희라는 계집아이로부터
어미를 떼어놓은 것은
분명히 검찰입니다.
그토록 몹쓸 짓을 해 놓고서도,
그 모든 잘못을
깨끗이 덮어버릴 수 있다고
장담하는 꼴이었습니다.
10년 이상 계속되고 있는
아이의 절규와 고통을
없었던 것으로
깨끗이 묻어버려도 되는지를
생각해 봅니다.
도저히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되면,
아이의 절규가 계속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남은 시간이나마
아이를 위해 최선을 다하려면,
아이의 고생과 희생을
분명히 해두어야 합니다.
이명재 검찰총장님은
제 딸아이에게 부끄러운 짓을
제발 하지 마십시오!
제 딸아이가 겪고있는 고통을
사실 그대로 인정하십시오!
그것이,
검찰을 위하는 방법이 될 것입니다.
갈가리 찢겨진 어미의 마음을
더더욱 잔인하게 찢어발기는 짓을,
이제는 제발, 중지해 주십시오!
이제는 저에게
자유를 주십시오!
남아있는 시간이나마
아이를 위해 살 수 있도록,
제발, 내버려두십시오!
제발, 부탁드립니다.
서기 2002년 3월 29일
삼가 김경란 올림
1989년 4월에 출판했던 심장병 투병기는,
제가 딸아이의 입장을 대변하고,
딸아이의 입장에서 세상살이를 말한 책입니다.
그런 책을 써보겠다고 결심했기 때문에,
병원살이를 했던 55일을
두살배기의 순수성을 유지하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었습니다.
그러한 순수성이
제 마음에 드는 데다가,
그것이,
성공의 관건이었기 때문입니다.
제 노력이
실패한 것은 아니었다고 봅니다.
그 책이 꾸준히 호평을 받으면서
3만 권 정도 팔려나가던 중,
검찰 때문에 절판이 돼버렸으니 말씀입니다.
1987년 4월, 딸아이가
"뇌수종"이라는 판정을 받았습니다.
선천적으로 타고났는데,
뒤늦게 발병한 병은 절대로 아니라고 했었습니다.
"심장병수술시기를 놓쳤던 것이,
발병원인일 (수도) 있다!"
라는 선고를 받게 됐을 때의 심정은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의사의 진단은,
교학사라는 대단한 악질을 만난 데다가,
어미가 지독하게 무능했기 때문에
죄 없는 아이가
무시무시한 병마에 시달리게 됐다는 뜻이었습니다.
교학사 사장을 갈아먹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안돼!"라고 외쳤습니다.
원망하고 후회할 때가 아니었습니다.
지난날의 잘못을 거울로 삼아
아이에게 최선을 다해야 할 때였습니다.
그 때는!
그 지경 속에서,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연구했었습니다.
아이의 눈높이에서 아이를 보듬어 안고,
아이의 입장에서 세상을 바라보는 일을
계속하겠노라고 결심했었습니다.
아이와 함께 24시간을 지내면서
양육기와 투병기를 계속 발간하면
훌륭한 책이 만들어질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아이를 위해 돈이 필요한데,
돈을 벌기 위한 관건이
아이의 눈높이에 맞추는 것이니,
아이를 위한답시고 괴롭히는 짓은
절대로 하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 그렇게 살면 되겠다!"
1989년도에,
저는 분명히 그렇게 결심했었습니다.
제 딸아이는 1984. 12. 31. 생입니다.
어느덧 18살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 아이는, 학교도 다니지 못하고 있습니다.
24시간, 아이를 위해 살겠다고 결심했던 어미는
24시간, 아이를 내팽개치고,
24시간, 검찰을 때려잡겠다고 안달입니다.
그것이 분하고 억울해서,
아이는 오줌똥을 싸댑니다.
24시간, 어미만 바라보고 있다가,
끼어 들 틈이 있다고 생각되면,
잽싸게 끼어 들면서,
간지럼을 태워달라고 아우성을 칩니다.
아무리 기다려도 틈이 보이지 않을 때는,
가차없이 어미를 두들겨 패고 나섭니다.
아비는 아비대로
자기 자신의 원한에 빠져있고,
어미는 어미대로 이 지경이니,
아이는 노는 법을 배울 수가 없었습니다.
어미를 괴롭히는 방법을 연구하는 것이
그 아이의 지상과제가 돼버리고 말았습니다.
소리 없는 아우성!
소리 없는 절규!
저는 시시때때로
그것을 느낍니다.
그것이
조만간 폭발하고야 말 것이라는 사실을
충분히 감지하고 있습니다.
김경란이라는 여자를
형편없는 어미로 만들어 놓은 것은
검찰입니다.
서동희라는 계집아이로부터
어미를 떼어놓은 것은
분명히 검찰입니다.
그토록 몹쓸 짓을 해 놓고서도,
그 모든 잘못을
깨끗이 덮어버릴 수 있다고
장담하는 꼴이었습니다.
10년 이상 계속되고 있는
아이의 절규와 고통을
없었던 것으로
깨끗이 묻어버려도 되는지를
생각해 봅니다.
도저히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되면,
아이의 절규가 계속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남은 시간이나마
아이를 위해 최선을 다하려면,
아이의 고생과 희생을
분명히 해두어야 합니다.
이명재 검찰총장님은
제 딸아이에게 부끄러운 짓을
제발 하지 마십시오!
제 딸아이가 겪고있는 고통을
사실 그대로 인정하십시오!
그것이,
검찰을 위하는 방법이 될 것입니다.
갈가리 찢겨진 어미의 마음을
더더욱 잔인하게 찢어발기는 짓을,
이제는 제발, 중지해 주십시오!
이제는 저에게
자유를 주십시오!
남아있는 시간이나마
아이를 위해 살 수 있도록,
제발, 내버려두십시오!
제발, 부탁드립니다.
서기 2002년 3월 29일
삼가 김경란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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