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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의 반응, 지켜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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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경란 작성일13-06-19 14:33 조회3,66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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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대원 사건을 총정리합니다. 4
검찰이 뿌린 씨는 검찰이 거둬들여야 합니다.

1. 참사랑은 펑펑 때려주는  것입니다.

  1986년 11월, 제 딸아이는 선천성 심장병 수술을 받았습니다. 수술이 끝난 뒤, 중환자실에서 만난 아이의 몸에는 온갖(?) 기계가 주렁주렁 달려있었습니다.  차마 눈뜨고 볼 수가 없을 정도로, 끔찍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런데 수술 다음 날, 재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의사는 간단한 수술이니 걱정 말라고 하는데, 그러나 어미는 애간장이 녹는 것 같았습니다.
  남들이 안 받는 재수술까지 받았기 때문에 어미의 마음은 불안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아이는 어미만 보면 안고 나가달라고 팔을 번쩍 치켜드는 데, 그런 아이를 중환자실에 내동댕이(?) 칠 수밖에 없는 시간이 10일, 20일, 계속될 까 봐, 무진 애가 탔었습니다.
  그러나 천만다행으로, 4일만에 중환자실을 졸업하고, 입원실로 돌아갈 수가 있었습니다.
  주렁주렁 달려있던 기계를 모두 떼버렸을 뿐 아니라, 링겔까지 떼버리고, 간호사 언니에게 가뿐하게 안겨 나오는 아이와 만나게 됐을 때는, 감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저, 모든 것이 감사할 따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토록 힘든 수술을 마치고 5일 만에 어미품으로 돌아온 아이를, 사정없이 엎어놓고 인정사정 보지말고 펑펑 두드려 패 주라는 것이었습니다.  두드려 패주는 일을 게을리 하여 가래가 폐를 잠식해 버릴 때에는,  아이가 사망에 이를 수도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제 딴에는 독해지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었습니다. 제 딴에는, 정말로 열심히 두드려 패 준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결과가 말해주는 것은, 어미의 무능이었습니다.
  칠칠치 못한 어미는, 번번이, 코로 고무관을 집어넣어서 가래를 뽑아 내는 일을 되풀이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럴 때마다 아이가 고통스러워하고, 간호사들은 아이의 고통을 생각하라고 야단을 쳤지만, 저의 무능은 못 말리는 것이었습니다.
  아이는 결국, 폐렴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참으로 뼈아픈 체험을 통해, 저는, 인간이 독해져야 할 때에는 얼마나 독해져야 되는지를  확실히 배웠던 것 같습니다.  보듬어 안아주는 것이 참사랑이 아니라, 펑펑 두들겨 패주는 것이 참사랑이라는 사실도 배웠던 것 같습니다.
  그토록 무능하고 여려빠졌던 위인이 어찌 이처럼 독해질 수 있는지, 제가 저 자신에게 놀라게 되는 때가 한두 번이 아닙니다.  법률투쟁 초반에는, 제가 저 자신을 징그러워하는 세월이 참으로 징그럽게 계속됐었습니다.
  참으로 징그러운 세월을 거쳐서, 저는 강인하고 독한 인간으로 거듭 태어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메마르고 건조한 저의 모습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만, 그러나 인정사정 보지 않고 펑펑 두들겨 패 주는 참사랑을 실천하고자 하는 모습은, 상당히 마음에 드는 부분입니다.  지금은, 그런 사랑을 실천해야할 때라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2. 혹독한 자기 각성을 시작하도록 만든 것은, 검찰입니다.

  1992년, 검찰의 방해공작 때문에 저희부부가 만화가로 밥을 벌어먹는 길이 막혀 버렸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을 때, 저는 저 자신부터 개조해야 된다고 생각했었습니다.
  너무 무능하고 너무 무기력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참으로 엄청난 현실과 맞닥뜨리게 됐을 때, 저 자신의 성격개조부터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감히, "내 성격!"을 고집(?)할 수가 없었습니다. 제 성격대로 하면, 백전백패를 당할 수밖에 없는 못난이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저 자신이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못나빠진 얼간이에 불과했지만, 밥벌이조차 할 수 없는 인생살이를 10년, 20년, 계속할 생각이, 추호도 없었습니다.  검찰이라는 괴물 때문에, 비럭질로 연명하다가 늙어죽는 수밖에 없다면, 당당하게 죽는 길을 모색해 보는 것이 훨씬 더 현명한 길이라고 단정했었습니다.
  "네 놈들이 굶겨 죽이고 말겠다면, 그래! 죽어주마!  그러나, 나 혼자서는 절대로 못 죽는다!  논개가 왜장을 끌어안고 강물에 뛰어들었던 것처럼, 나도 네 놈들을 끌어안고, 통쾌하게 강물 속으로 풍덩하겠다!  그래서 대한민국을 구원할 수가 있다면, 아까울 것이 무엇이냐!  그런 죽음을 비럭질로 연명하는 인생에 비할 것이냐!"
  그런 소신을 갖고 보니, 두려울 것도, 안타까운 것도 없었습니다.  용감하게 싸우다가 용감한 죽음을 맞으면 되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저의 법률투쟁은, "용감하게 죽는 방법을 열심히 모색하는 과정"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죽는 것이 무서워서 아직도 살아있는 것이 아닙니다. 제가 가장 경계했던 것은, 개죽음을 당하고 마는 것입니다. 
  법조계의 의식수준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법조계의 양심을 믿고 덜컥(?) 죽었는데, 양심(?) 있는 법조인들이 저의 죽음을 "나 몰라라"한다면...
  그래서 아이와 남편이 비참하기 짝이 없는 고생만 늘어진다면, 분하고 억울하다고 하면서 벌떡 일어설 수는 없는 일입니다.
  안심하고 죽으려면, 만반의 준비가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검찰이라는 적이 워낙 막강한데다가, 워낙 비열했었습니다.
  그래서, "이 참혹한 고생을 일찌감치 끝내 버리고, 이제는 제발 편안해 지고 싶다." "차라리 죽어서, 이 한심한 꼴들을 더 이상은 안 봤으면 좋겠다"라는 욕심(?)을, 접고, 또 접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 생명이 하나밖에 없기 때문에, 신중에 신중을 기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저를 살린 것은, 비열하고 비겁하기 짝이 없는 사회풍토입니다. 믿을 놈이 있었다면, 죽음보다 더 한 고통을 묵묵히 감내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제가 새끼를 기르고 있는 어미였기 때문에, 새끼의 평안함만은 보장받고 싶었던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3.  큰 물고기는 가차없이 버리는 어부와 작은 물고기만 잡겠다는 어부 

  1984년도에, 저는 「신념 153」이라는 책의 유령작가 노릇을 한 일이 있습니다. 20여권의 처세술 책을 사다가, 그 속에서 마음에 드는 부분만 추려내서 재편집했었습니다. 완벽(?)하게 편집된 것을 다른 사람 명의로 넘겼던 것인데, 그 당시 제가 사용했던 예화 중에 다음과 같은 것이 있습니다.
  어떤 여행자가, 물고기를 잡아서 길이를 재보고는, 큰놈은 놓아주고 작은 놈들만 챙기는 어부를 만났다. 하는 짓이 하도 이상해서 물어보니, "내 후라이팬의 크기가 30cm 밖에 안되기 때문에, 30cm가 넘는 놈들은 (가차없이) 버리고 있다."고 대답하더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저질러 대는 어리석음이라고 생각하면서, 그처럼 어리석은 짓을 두 번 다시 저지르지 않도록, 조심하고 또 조심하겠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러나 지난 세월을 돌이켜 보면, 저는 아직도 그러한 어리석음을 곳곳에서 저질러 대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됩니다.
   
4.  그들은 인간이 아닙니다.

  1994. 8. 26. 최성창 검사가 저의 무고죄를 조작해 보겠다고 했을 때, 저는 흔쾌히(?) 동의했었습니다. 저의 피의자진술조서를 꾸미는 일과 저의 구속영장을 청구하여 집행하는 일에, 제가 기꺼이 협조했던 것입니다.
  거기까지는, 참으로 훌륭했다고 생각됩니다. 1993. 5. 23. 자로, 헌법소원이 "공소시효 소멸"이라는 이유로 기각됐기 때문입니다.

  제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만화가로 활동하는 길을 뚫을 수 없다면, 대한민국의 사법정의를 위해 죽겠다는 결심이었습니다. 
  그러나, 공소시효가 이미 소멸돼버린 사건 때문에 죽을 수는 없었습니다.  그렇게 되면, 저의 죽음은 개죽음이 될 수밖에 없는 일이었습니다.

  죽음을 실행하기 위해 저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것은, "싱싱하게 살아있는 사건"이었습니다.  검찰이 굳이 싱싱하게 살아있는 사건을 만들어 주겠다고 하는데, 제가 그 고마운(?) 일을 마다 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저희들도 사람이면, 더 이상 못된 짓은 못 하겠지!  막판으로 몰리면, 합리적으로 사건을 해결하겠다고 하겠지!"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저의 상대가 분명히 깡패집단이 아니라, 검찰이었기 때문에, 그렇게 믿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대한민국 검찰청이, "우리는 사람이 아니다"를 증명하고 나서는 꼴이었으니, 참으로 기가 막혔습니다.
 
  기가 딱 막히는 일에, 더 기막힌 일이 더해질 때, 인간은 무기력해지고 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구속된 지 1주일 되던 때에, KBS-TV가 저를, "편집증적인 무고쟁이"라고 방송했다는 소식을 듣게 됐었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 저는 저 자신을 무장해제 해 버리고 만 꼴입니다. 이상하게도 그 소식을 듣는 순간, 다지고 다지던 전의가 봄 눈 녹듯 녹아버리고 마는 것을 체험했었습니다.   
  "독은 독으로 제어해야 한다는 이치를 훤히 꿰뚫고 있는 인간(?)들이기 때문에, 그런 시기에 그런 소식이 전해지도록 만들었던 것!"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게 됐을 때는, 제가 제 발등을 찍어내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5, 일찌감치 포기해 버린 무죄판결

  그들이 조정하는 대로 움직이는 꼭두각시를 면하기 위해, 무진 노력했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고 보면, 저는 언제나 그들이 조정하는 대로 반응했었다는 사실이 확인될 뿐이었는데, 무죄판결을 받아내는 일을 일찌감치 포기해 버리고 만 것은 그 대표적인 사례가 될 것입니다.   
  제가 만약 무죄판결을 받아내는 일에 목숨을 걸었다면, 저는 무죄판결을 분명히 받아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미 전의를 상실하고 말았기 때문에, 굳이 무죄판결을 받아내겠다는 생각이 없었습니다.  그 재판이 남의 재판인 양, 검찰과 법원이 노는 꼴을 지켜보는 입장이었습니다.

  "그것은 분명히 내 재판이었는데, 내가 왜 그토록 무책임(?)한 자세로 일관했었는가?"를 분석해 보니, "무죄판결을 받아내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속단해 버렸기 때문"입니다.
  되지도 않을 일에 힘을 빼기보다는, 검찰과 법원이 마음놓고 놀 수 있도록 구경꾼 노릇을 하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했던 것인데, 그 판단이 틀린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러한 판단은, 남편과 아이의 지루한 기다림을 전혀 배려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냉철한 반성이 요구되는 것이었습니다.   

  스스로 면죄부를 받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무죄판결을 받아내는 것이 정말로 불가능했던 것인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뒤늦게 검토해 보니, 정말로 목숨걸고 대들었다면, 무죄판결을 받아낼 수 있는 방법이 얼마든지 있었습니다. 다만, 제가 일찌감치 포기해버리고 말았기 때문에 유죄판결을 받게 된 것이었고, 덕분(?)에, 남편과 아이의 기다림이 지금 이 순간까지 지루하게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제가 방관자로 일관했기 때문에, 검찰이나 법원의 대응이 대단히 조잡해지고 말았다는 사실입니다.  마음놓고 비행을 저질렀기 때문입니다. 
  저의 공판조서에서 검찰이 저의 유죄를 증명하기 위해 제출한 증거는 전혀 없습니다.
  다만, 저의 유죄를 증명(?)할 증인 두 사람을 신청(?)한 꼴인데, 그들을 상대로 한 검사의 질문이 불과 19개 문항에 불과합니다. 
  하광호 판사는, 법정에서 최성창 검사와 제가 벌렸던 기막힌 공방을 자세히 기록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 공방전은 분명히, 저의 승리로 끝난 것이기 때문입니다.
  법정에서, 저는 분명히 저의 무죄를 증명했습니다. 그러나 하광호 판사가, 제가 유죄를 인정한 것으로 공판조서를 뭉개 버리고 말았습니다. 
  검사와 제가 주고받은 질문과 대답이 완벽하게 뭉개져 버리고 말았기 때문에, 저의 무고죄 재판이 공정하게 판결된 것인지를 검토하는 일은, 검사의 질문 19개 문항만 분석해 보면 충분합니다. 

  항소심에서 검사는, "항소를 제기한 일이 없다."는 식이었습니다. 
  저에게 선고된 집행유예형이 턱없는 은전이며, 저는 그런 은전을 받을 자격이 없는 악질반동분자(?)라는 이유서를 붙여서 항소를 해놓고는, 딴전만 부렸던 것입니다.
  아무런 증거도 제출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침묵으로 일관했었습니다. 
  공판조서에는 제1회 공판에서 검사가 어쩌구저쩌구 떠들어댄 것으로 기록돼 있지만, 저는 그런 광경을 구경한 일이 없습니다. 결심공판에서 "3년을 구형합니다."라고 말했던 것이, 항소심 공판에서 검사가 했던 말의 전부입니다. 

  더더욱 재미(?)있는 일은, 원심과 항소심 재판에서 제가 제출한 증거가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재판은 증거로 판단하는 것인데, 검사와 피고인이 함께(?) 아무런 증거도 제출하지 않는 재판도 있습니까? 
  갑호증도 없고, 을호증도 없는 개판(?)을, 재판이라고 우겨대면서 유죄를 인정해버렸으니, 돌이킬 방법이 없는 일입니다.

  제가 철저한 방관자로 일관했기 때문에, 사건을 검토하고 분석할 필요조차 없습니다.
  검사가 제출한 증거가 없다는 것이야말로, 제가 범죄자가 아니었다는 사실을 말해주기 때문입니다.
  저에게 저의 무죄를 증명할 증거가 없어서 아무런 증거도 제출하지 못했던 것인지, 제가 제출한 증거를 법원이 깡그리 무시(?)해 버렸던 것인지만 판단해 보면, 사건의 윤곽은 너무나 분명해 집니다. 

  그러나 대한민국은, "확실한 증거 없이, 검찰과 12년이나 싸울 수가 있는지조차 판단할 능력이 없는 나라"라고 합니다. 
  그것이 대한민국의 수준이기 때문에, 검찰의 만행과 행패가 끝도 없이 계속될 수 있는 것입니다. 

6. 저의 기소투쟁은 검찰이 유도(?)했던 것입니다. 

  유죄판결을 받고 출감하여, 그 유죄판결이 대단히 잘못된 것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밝히는 저작권투쟁기만 써서 발표하면 된다는 생각이었습니다.
  검찰과 싸우는 능력과 실력으로 만화가로 활동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 편이 훨씬 더 능률적인 일이 될 것이니, 감옥살이를 끝으로 법률투쟁을 깨끗이 마무리하겠노라고 결심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저를 미련하고 아둔한 여자로 만들기 위해 검찰이 항소를 해버리고 말았습니다.  때문에 저는, 저의 결심을 바꾸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검찰의 항소가 참으로 황당했었습니다. 검찰의 항소에 어떤 음모가 숨어있는 지를 판단할 능력조차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바로, 모든 책임을 저에게 뒤집어씌우는 방법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을 때는, 더더욱 황당했었습니다.
  "항소합니다"라고, 점잖게 외쳐대는 방법이, 한 가정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버리는 방법이 된다는 것이었으니, 기도 막히지 않았습니다.
  그때가, 검찰이라는 적의 실체를 비교적 정확하게 파악하게 된 때가 되는 것 같습니다.

  정신이 번쩍 드는 것 같았습니다. 검찰의 기소를 관철시키지 못하면, 검찰의 방해공작 때문에 절대로 편안하게 살수가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기 때문입니다.
  낭만적인 생각... 순진한 생각.... 그런 것들이 바로, 제 발등을 찍는 도끼가 돼버린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기 때문에, 저작권투쟁기를 써보겠다는 생각을 접고, 고소투쟁을 다시, 본격적으로 시작했던 것입니다. 
  원리원칙만 생각하면서 반드시 기소를 관철시켜야 한다는 것을, 제가 저 자신에게 명령하고 또 명령했었습니다.

  그러자, 깜깜하기만 하던 세상이 환하게 밝아지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도대체, 제가 왜, "기소는 불가능하다", "무죄판결도 불가능하다"라고 단정했던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마음을 고쳐먹은 후에 생각해 보니, "30cm 이상 되는 고기는 내 후라이팬에 절대로 담을 수 없다."는 생각 때문에, 제가 그토록 고생을 하고있는 것이었습니다.

  "그 답답한 생각이 문제!"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 사람에게, 기막힌 비난과 야유가 답지(?)하는 것이었습니다.
  검찰의 항소(방해공작)로 인해 원치 않는 법률투쟁을 계속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 결과로, 참으로 기막힌 깨우침을 얻게된 것이건만, 저의 악착과 억척이 제 남편의 앞길을 막아버렸다는 비난이 난무하는 실정이었습니다.
  저희 부부가 만화가 활동을 봉쇄 당한 이유는, "범 무서운 줄 모르고 까불어댄(?) 하룻강아지의 실수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 죄가 워낙 크기(?)때문에, 저희 부부는 만화가로 활동하는 것을 포기하고, 평생 비럭질이나 하면서 늙어죽어야 한다는 것이었으니, 정말 어처구니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때, "저들이 무슨 짓을 하는 지 모르기 때문에"라고 한탄하셨다고 하는데, 예수님의 마지막 기도를 충분히 이해하게 됐었습니다.
  자신들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를 알고 있다면, 제가 그런 비난과 야유에 시달릴 이유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이 나라의 지도자급 인사들이 검찰의 그 기막힌 패악을 남의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당연히 검찰을 향해 퍼부어야 할 비난과 야유를 저를 향해 퍼붓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세월을 10년 이상 견디면서, "때리는 시어미보다 말리는 시누이가 더 밉다"는 말을 충분히 실감하고 있습니다. 
 
  실정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분에게, "평생 비럭질이나 하면서 살지는 않겠습니다. 제 한 목숨 기꺼이 던져 버리고 말겠습니다!"라고 쏘아붙이자, 그 대답이 참으로 걸작(?)이었습니다.  "그래도, 아이를 위해 살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

7. 검찰이 뿌린 씨는 검찰이 거둬들여야 합니다.

  개나 돼지는 키워서 잡아먹어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을 키워놓으면, 잡아먹히고 마는 법입니다. 
  평생 비럭질을 하면서 늙어죽을 수도 없었고, 정신지체아 아이를 두고 무책임하게 죽을 수도 없었습니다.  그것이 검찰이 만들어준 입장이었기 때문에, 저로서는 죽을힘을 다해 노력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검찰의 끈질긴 만행과 방해공작, 음해공작 등등에 맞서는 세월이 12년이나 계속되고 있기 때문에, 이제는 그들의 수법을 거의 모두 통달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의심할 것, 의심하지 않아도 되는 것, 가리지 않고 모두 의심하면서, 통찰력을 기르기 위해 노력했기 때문입니다.
 
  지혜, 슬기, 용기, 의지, 판단력, 결단력, 표현력, 통찰력, 임기응변, 등등.....  그 모든 면에서 월등해지기 위해, 죽을힘을 다해 노력하는 세월이, 무려 12년이나 계속되고 있습니다.
  12년 전의 저 자신과 지금 현재의 저 자신은 차원이 다르다고 확신하기 때문에,
"사람도 키워서 잡아먹는다더냐!" 라는 야유가 절로 터져 나오는 지경입니다.   

  대한민국의 부정부패가 아직도 은밀하게 저질러지기 때문에 우리 국민이 아무런 낌새도 느끼지 못하고 있는 잠복기가 아닙니다.
  잠복기는 이미 오래 전에 끝나고, 국민의 분노가 폭발직전에 도달한 상황입니다.
  게다가, 대선정국을 앞두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검찰이, "서대원사건은 없다. 김경란의 무고사건이 있을 뿐인데, 그것은 김경란이 이미 처벌을 받았으니, 끝난 것이다!  그러니까, 김경란의 고소를 불기소처분 하는 것은 지극히 정당한 것이다!" 라고 주장하고 나서 주신다면, "불감청이언정 고소원!"입니다.

  저는 여당과 야당의 대통령 후보께, "한 사건에서 70건의 불기소처분이 나올 수 있는지, 정가 15만 원짜리 전집물의 저작권이 1370만원에 매매될 수 있는지, 검찰의 부당하기 짝이 없는 불기소처분을 언제까지 수수방관 할 것인지..." 등등을 질문할 예정입니다.
  그에 대한 대답이 나오면, 그 대답으로, 그들이 과연 대통령이 될 자격이 있는지를 검토하는 자료로 활용해 보겠다는 생각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저의 절규는 같습니다. 저를 딛고, 일어서 달라는 것입니다.
  12년 동안의 노력과 고생이 부족하기 때문에, 생명까지 내 놓으라고 하면, 기꺼이 내놓고 말겠다는 결심인데, 검찰의 결심과 판단은 무엇입니까?
  한 가정을 상대로 12년 동안이나 계속된 만행이 알려진다고 해도, 대한민국에는 아무런 반향도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하십니까?
  그럴 경우에는, 제가 대한민국의 사법정의를 부르짖으며 단식투쟁을 하거나 분신자살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제아무리 그런 짓(?)을 한다고 해도, 아무런 반향도 불러일으킬 수 없다는 것이, 저에게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고 장담하시던 분들의 장담이며, 충고(?)입니다.

  "그런 세상이라면 더더욱, 저는 이 한목숨을 바쳐버리고 말겠습니다."
라는 대답을, 저는 무려 12년 동안이나 계속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죽든 살든, 이 한심한 실정을 사실 그대로 알리는 글을 쓰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쓸 수가 없었습니다. 저의 실력과 능력이 부족했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분들이 장담하셨던 대로, 저의 생명까지 빼앗아도 별 탈이 없을 것이라고 확신하신다면, 저의 기소투쟁을 계속 무시해 버리십시오!  이제는 정말, 만반의 준비가 끝났습니다. 
  이제, 검찰의 반응과 처신을 지켜보고자 합니다.

서기 2002년 3월 15일  삼가 김경란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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