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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주기론과 주리론의 입장에 따른 김치에 대한 해석(긴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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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성수 작성일13-06-21 10:15 조회4,02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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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희 wrote:
>주기론과 주리론의 입장에 따른 김치에 대한 해석에 대해서 알고싶습니다.
>




 자료제공기관:
      http://cafe.daum.net/krolp

김치의 조리 방법은 민족마다 달라도, 달걀의 모양과 맛은 세계 공통이다. 어느 나라에서나 달걀은 노른자위와 흰자위로 돼 있고, 그 맛은 불에 얼마나 오래 익혔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날것 반숙 완숙으로, 익히는 시간에 따라 달라지는 달걀 맛은 바로 인간문명의 상징인 ‘불의 맛’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의 달걀요리는 보다 고유한 체계를 가졌다. 익힌 달걀을 그냥 먹지 않고 그곳에다 시각적 효과를 돋우려 했기 때문이다. 달걀의 기본 색은 흰 색과 노란 색이다. 한국인은 그것을 다섯 색으로 만들기 위해 검은 빛깔의 김, 석이버섯과 붉은 빛깔의 고추를 가늘게 썰어 넣었고, 푸른 빛깔의 야채를 첨가했다. 그래서 청(靑) 적(赤) 황(黃) 흑(黑) 백(白)의 다섯 빛깔을 띠게 된 삶은 달걀은, 한국인들이 우주 공간을 상징할 때 사용하는 오방색(五方色)을 나타낸다. 푸른 색은 동(東), 붉은 색은 남(南), 흰 색은 서(西), 검은 색은 북(北), 노란 색은 중앙(中央)을 가리킨다.

다섯 가지 색채들은 공간의 방향을 가리킬 뿐만 아니라, 춘하추동(春夏秋冬)과 그 계절의 변화를 일으키는 중심, 즉 우주의 시간을 상징하기도 한다. 한국의 요리체계는 한국인의 우주론적인 체계(cosmology)와 상동성(相同性, homology)을 지녔음을 알 수 있다.

오방색은 자연과 인간의 현상을 목(木) 화(火) 토(土) 금(金) 수(水)의 다섯 요소로 구조화한 동북아시아의 음양오행설에 뿌리박고 있다. 색채 감각만이 아니라 미각(味覺)에서도 오행의 원리를 쫓아 맵고(辛) 달고(甘) 시고(酸) 짜고(鹹) 쓴(苦) 오미(五味)로 가려 나누었다. 오행설을 일상적인 음식문화에 이용해 요리의 시각기호(視覺記號)와 미각기호(味覺記號)의 코드를 창출해 낸 것은 한국만의 독창적인 식문화(食文化)라 할 수 있다. ‘고명’과 ‘양념’이 바로 그것이다.

달걀요리 등을 오방색으로 꾸며놓는 고명을 음식에 갖가지 색채를 부여하는 ‘시각기호’라고 한다면, 양념은 짜고 맵고 신 맛, 심지어는 쑥처럼 쓴 맛을 주어 음식 전체 맛을 조율하는 ‘미각기호’라 할 수 있다. 고명과 양념을 없애면 한국 음식은 침묵한다. 고명과 양념은 한국 음식 맛의 언술(言術 discourse)과 텍스트를 생성하는 요리 코드로서, 음과 양의 관계처럼 상보적인 것이다. 또한 그들이 자아내는 기호작용(signification)은 조화와 융합이다.

한국의 전통음식 가운데 이런 요리 기호체계를 가장 완벽하고 극적으로 보여준 것이 ‘오훈채’라는 나물이다. 오훈채란 파 마늘 부추와 같이 자극성이 강한 다섯 종류의 채소를 의미한다. 불가(佛家)나 도가(道家)에서는 금기의 음식으로 여겨왔지만, 한국의 민속사상에서는 모든 것을 화합하고 융합시키는 우주적 기운의 식물로 생각해 왔다. 그래서 입춘이 되면 임금이 신하들에게 오훈채를 하사하기도 했다. 한복판에 노란 색 나물을 놓고 그 주위에 동서남북을 가리키는 청 백 적 흑의 나물들을 각각 배치해 놓은 것이다. 이들을 한데 섞어 무쳐 먹는다는 것은 곧, 사색으로 갈린 당파가 임금 - 가운데 황색 - 을 중심으로 하나로 뭉치는 정치이념을 나타내는 것이다.

일반 여염집에서도 입춘이 되면 으레 오훈채 나물을 먹었다. 이때의 오색과 오미의 코드는 정치적 층위와 달리 인(仁 - 靑) 예(禮 - 赤) 신(信 - 黃) 의(義 - 白) 지(志 - 黑)의 덕목과, 비장(청) 폐(적) 심장(황) 간(백) 신장(흑)의 인체기관을 의미했다. 입춘날 오훈채를 먹으면 다섯 가지 덕을 모두 갖추게 되고 신체의 모든 기관이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 건강해진다고 믿었던 것이다.


오행배치 양 음 중앙
물질 | 형 목 화 금 수 토
공간 | 오방 동 남 서 북 중앙
시간 | 오절 춘 하 추 동 절기교체
색채 | 오색 청 적 백 흑 황
윤리 | 오륜 인 의 예 지 신
신체 | 오장 비장 폐 간 신장 심장
맛 | 오미 신맛 쓴맛 단맛 매운맛 짠맛



오훈채를 준비하지 못한 농가에서는 고추장에다 파를 찍어 먹는 것으로 대신하기도 했다. 오훈채를 먹을 때 다섯 가지 색채와 맛을 갖추는 데 얼마나 큰 의미를 두었는가 하는 것을 잘 알 수 있다. 파에는 네 가지 색이 있다.

뿌리는 희고 줄기는 검으며, 이파리는 푸르고 새로 돋는 순은 노랗다. 그것을 붉은 고추장에 찍어 먹으면 오방색을 모두 먹는 것이 된다. 또 파의 맛은 맵고 쓰며, 그 순은 달다. 거기에 초고추장을 찍어 먹으면 신 맛과 짠 맛이 더해져 오미를 갖추게 된다.

나물은 덩이와 입자형의 음식물과는 달라 금세 다른 것과 뒤엉겨 결합될 수 있다. 그래서 나물의 요리법은 ‘무치는’ 것이고, 그 맛은 서로 다른 색깔(오색)과 맛(오미)을 섞어 하나로 조화시키는 데 있다. 예수님의 살이요 피인 빵과 포도주를 마시는 성찬식처럼, 한국인들은 입춘에 오훈채를 먹음으로써 우주 자연과 한 몸이 되는 융합의 의례(儀禮)를 치렀던 것이다.

오훈채를 무치면서 사람들은 정치적, 사상적, 신체적인 여러 층위에서 대립하고 모순되는 것들을 뭉치게 하는 화합의 힘을 체험한다. 그리고 그것을 먹는다는 것은, 춘하추동의 순환과 동서남북이 한복판의 축으로 모여드는 우주의 신비하고 생동하는 기운을 삼킨다는 것이다.

한국 음식과 그 요리법은 오훈채를 원형으로 한 크고 작은 변이항(variants)으로 볼 수 있다. 어육과 채소를 넣고 석이버섯 호두 은행 황밤 실백 실고추의 오방색 재료를 얹은 다음 국물을 부어 끓이는 여구자탕의 신선로(神仙爐) 요리가 그렇고, 색동옷처럼 갖가지 색깔의 켜로 배열하는 산적이나 무지개떡 같은 것이 그렇다. 색채는 물론 음식 재료에 있어서도 들 산 바다 하늘(새)에서 나는 것까지, 모든 공간을 한데 섞는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의 음식은 제각기 다른 색채와 모양 그리고 맛들이 균형과 조화를 이루면서 화성(和聲)을 자아내는 ‘맛의 교향곡’이라 할 수 있다. 음식 재료들을 하나 하나 개별화하고 각각의 음식물의 맛을 따로 차별화해서 맛보도록 한 서구 형태의 요리 코드와는 정반대다. 뿐만 아니라 음양오행의 전통문화를 공유하고 있는 중국과 일본의 음식이라 해도 한국의 경우처럼 오색 오미를 하나로 섞는 융합형은 아니다.

보자기처럼 한국의 음식은 모든 것을 하나로 싼다. 한국 고유의 음식 가운데 하나인 ‘쌈’이 바로 그런 것이다. 김이든 상추든 평면성과 넓이를 가진 것이라면 그것을 펴고 온갖 재료를 싸 통째로 입안에 넣는다. 포크와 나이프로 음식을 썰어 먹는 식사법이 ‘배제적(exclusive)’인 것이라고 한다면, 모든 음식을 한데 싸서 통째로 입안에 넣는 것은 ‘포함적(inclusive)’인 식사법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신대륙 발견의 대 항해시대를 가져온 유럽의 후추가 상한 고기 맛을 제거하는 향미료라고 한다면, 우리의 양념은 한층 음식 맛을 돋우고 증폭시켜 변화를 주는 조미료라 할 수 있다. 성경에 나오는 소금의 역할처럼,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에 생명을 주고 그 맛을 돋우는 포함적인 성격을 지닌 요리 코드다.

그러므로 한국 요리의 텍스트는 단일기호(monosemic)가 아니라 다중기호(polysemic) 체계로 구성돼 있고, 그 맛은 따로 따로 독립해 있는 실체론적인 성격이 아니라 서로 유기적으로 얽혀 있는 관계론적인 의미를 띠고 있는 것이라 정의할 수 있다. 한국의 음식 맛은 ‘존재하는 것(being)’이 아니라 ‘생성하는 것(becoming)’이다.


 참고도서: 김치천년의 맛 <김만조 저, 디자인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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