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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비의 일상 - 은장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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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법정치학 연구회 작성일13-06-22 19:18 조회3,90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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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춤 은장도, 원래는 ‘남성용’

선비들 허리춤에는 은장도(銀粧刀)도 있었습니다. 부녀자가 노리개로 옷고름에 차면 패도(佩刀), 주머니 속에 지니면 낭도(囊刀)라 했습니다. 장도는 길어야 손바닥만했으며 칼날 길이도 손가락 세 마디 정도였습니다.

장도를 차는 풍습은 조선 시대에 일반화됐는데, 요즘 사람들 대부분이 장도를 ‘여성 전용’으로 여기는 상식은 크게 잘못됐으며, 오히려 남성이 주로 썼다고 할 수 있습니다.

장도는 기본이 호신용이고 때로는 고구마나 무를 깎아 먹을거리를 삼을 때도 썼습니다. 물론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대로 스스로 목숨을 끊거나 남을 찌를 데에도 필요한 물건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보다는 선비들이 바깥에서 글 쓰는 데 꼭 있어야 하는 필수품 가운데 하나가 바로 장도였습니다.

왜냐하면 장도로 종이를 잘라야 했기 때문입니다. 알다시피 요즘과 달리 옛날에는 종이가 값비싼 귀중품이었지요. 그러니까 종이를 두루마리로 곱게 간직했다가 글을 쓸 때 꼭 쓸 만큼만 잘라 쓰곤 했는데 이 때 장도가 필요했습니다.

은장도 가운데에는 젓가락처럼 길쭉한 은막대가 따로 붙어 있는 놈도 있습니다. 이는 바깥에서 밥을 먹을 때 국이나 반찬 따위에 행여나 독이 들어 있지 않은지 알아보는 데 쓰셨습니다.

허리춤에는 이 주머니말고 부시쌈지와 담배쌈지도 달렸습니다. 담배쌈지는 1600년대 초반 일본에서 담배가 건너온 뒤 매달리기 시작했겠지만 부시쌈지는 전부터 매달려 있었습니다.

부시는 불과 쇠가 만나 이뤄진 이름입니다. 그래서 ‘ㄹ’이 떨어진 채로 ‘부쇠’라 하기도 합니다. 부시로는 강철을 그대로 쓰기도 하지만 손잡이를 가죽으로 두르고 백동으로 장식한 고급스러운 물건도 있었습니다.

한기를 쫓거나 곰방대에 담배를 재어 피울 때 부시로 불을 일으켰는데, 보통 왼손 검지로 잡은 부싯돌에다 부싯깃을 얹은 다음 엄지로 눌러 잡고 오른손으로 부시를 들고 내리침으로써 불똥을 일으키게 됩니다.

부싯깃은 쑥잎이나 수리취 따위를 불에 볶아 비벼서 만든 가루를 일컫는데 미처 준비되지 않았을 때는 종이나 솜을 쓰기도 했습니다. 또 부시를 맞는 부싯돌은 보통 차돌을 주워서 썼습니다.

신고 다니는 신발은 상민은 짚으로 만든 짚신과 삼이나 헝겊·모시 등을 가늘게 꼬아 만든 미투리를 주로 신었고 가죽신이나 비단신은 아무래도 부유하고 지체 높은 이들이 신었겠지요. 하지만 미투리의 경우 촘촘하게 만든 것은 사대부 집안에서도 신었다고 합니다.

마른 날에는 이 같은 신발을 신으면 그만이지만 진날은 나막신을 신어야 했습니다. 나막신은 둘레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소나무로도 만들었으나 튼튼하면서도 가벼운 버드나무와 오동나무·오리나무로 많이 만들었습니다.

눈·비가 오는 날 나들이할 때는 굽이 있어서 빠지지 않아 좋았으며 마른 날에도 나막신을 신고 나들이를 하기도 했답니다. 하지만 신발이 너무 무겁고 활동적이지 못해 먼길을 가거나 말을 탈 때는 신지 않았습니다. 나막신을 신으면 느릿느릿하면서도 딸깍딸깍 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고, 오만불손해 보인다는 까닭으로 신분이 낮거나 젊은 사람들은 잘 신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청빈한 선비의 대명사처럼 여겨지기도 했는데, 아무리 가난해도 상민처럼 짚신과 미투리를 삼지 않고 맑은 날에도 나막신을 신었기 때문이랍니다.

성재정(밀양미리벌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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