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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 [질문] 귀양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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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재문 작성일13-06-19 10:41 조회2,62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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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원씨 반갑읍니다.

옛날에 죄를 짓고 귀양(유배.찬배)을 갈 때 직접 보지 못해서 어떻게 갔는지

참으로 답답하답니다.

그리고 문헌상의 기록도 많지가 않답니다.

다만 조선왕조 실록을 통해 그 일면만을 살펴보고 간단히 소개합니다.

시간이 있으면 조선왕조 실록을 삿삿이 뒤져보시면 좀더 상세한 기록이 나올 것도 같읍니다.

일반적으로 조선왕조 실록속에는 대략 5천여건의 유배에 관한 기록이 보입니다.

유배는 서울이외의 전국(외방)의 먼 어느 특정지역에 쫓아보내서 그 특정지역에 한정을 해서 생활을 제한하는 형벌의 하나랍니다.

우리나라는 서울에서 부터 유배지의 거리를 계산하므로 서울에서 남쪽 섬까지나 북쪽 국경지방까지는 2천리가 되지 않는 답니다.그래서 북쪽까지 올라 갔다가 다시 내려 와서 2천리나 3천리의 형을 계산하여 지역을 정하기도 했답니다.

종류는 가장 엄격한 위리안치라고 하여 집밖에 탱자나무 가시로 울을 만들어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한답니다.이런 경우는 사형에 해당되나 죄를 감면하여 장 100대에 유형 삼천리로 변방의 국경지방의 험한 지역이나 멀리 바다건너 외딴 섬에 보내어 집 네 모퉁이에 밖에는 4-2명의 감시하는 건장한 사람이나 군인을 배치하여 도망가지 못하도록 함과 동시에 죄인과 잡인의 출입을 엄하게 금지하는 경우도 있고,유배지의 수령의 책임하에 감시를 한답니다. 심한 경우는 10년도 넘게 위리안치를 당한 기록도 있답니다.

그리고 그냥 바닷가나 외딴섬인 절도(예;자연도 흑산도 거제현.남해현.고금도 임자도 녹도 진도군 여도 지도 신지도....)이나 바닷가나 국경(변방)지방의 사람살기 힘든 토박하고 추운곳에 보내기도 하고(경원부.경흥부..),그 이외는 반드시 귀양지로 정해진 곳은 없는 것 같답니다.예를들면 청주 울주 길주 죽주 상주 창평 담양.부안.영해.청풍.청양.삭영.금산.예안.영월.청원.강계.낙안군.진천.초산부.삼화부.삼척.갑주.남포진.강원도 양광도 전라도 경상도 등등의 여러 곳의 유배지가 나온답니다.

그리고 위리안치가 아닌 경우에는 그냥 특정한 집안에서 생활하고 도망을 못가게 감시를 하고,다산선생의 경우는 약간은 자유롭게 강진의 일정한 지역안에서는 어느정도 산책도 하고,이웃 진사집의 장서도 구경하고 책도 빌리러 갔다오는등의 기록을 봐서 어느정도의 자유는 인정된 시기도 있었다고 볼 도 있읍니다.

그리고 유배형을 선고받으면 당일로 급하게 압송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나 어떤 경우에는 몇일 씩 자기 집에서 묵고 있다가 늦게 떠난다는 기록도 나옵니다.

그러나 원칙적으로는 유배생활이란 고향과 가족을 등지고 외롭고 살기가 힘든 자유가 박탈된 삶이므로 도망가는 경우가 적지 않게 실록에 기록된답니다.

그리하여 왕명으로 도망가지 못하게 엄하게 감시를 받으면서 압송하는 공무원이나 압송인이 따로 있답니다.예를들면 의금부의 도사나 나장같은 하급관리나 역리들이 압송과 수직(감시)을 하며 일정한 유배지에 도착할 날자에 하루나 이틀만 늦어도 압송한 압송자가 처벌을 엄하게 받는 기록이 자주 나온답니다.

그리고 도망가는 경우도 가끔 기록되는 것으로 봐서 도망가지 못하게 포승이나 수갑이나.심한 경우에는 목에 칼(춘향이 목에 쓴 감옥안에 사용한 나무칼)을 씌우고 죄인을 이동시키는 기록이 있답니다.

그리고 엄히 도망을 방지하기 위한 경우에는 심한 경우에는 수갑을 차고 포승에 묶여서 가기도 하고,포승줄을 끊고 도망하는 경우도 있으므로.결국 유배죄인도 도망가지 못하도록 몸을 묶는다든지 쇠사슬을 채운다든지 하는 경우도 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그렇지 않으면 도망가게 되고 그렇게 되면 압송자가 엄한 형벌을 받게 되므로,도망가지 못하도록 신체의 자유를 제한하여 압송했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답니다.

그리고 유배죄인을 말에 태워 가는 경우의 기록은 찾아 보아야 할 것 같답니다.그러나 하루에 30리를 걸어서 가는데 기록을 보면 100씩 가는 경우도 있으므로 어떤 경우에는 죄인을 수레(함거라고 하는 수레위에 도망못가게 엮은 우리를 만들어 그 안에 앉혀서 수레)를 끌고 가는 경우도 있으므로,부득이 한 경우 이런 배송도 있을 수 있다고 짐작은 해 볼 수 있군요.

아마도 다산선생의 저술인 목민심서등을 읽어보면 더 상세한 기록이 나올른지...

시간이 나면 더 찾아 알려 주기로 하고 오늘은 이만 줄인답니다.

그동안 원고를 작성하여 보낸다고 오늘에야 실록을 뒤져보았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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