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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좀도둑이 되지못해 안달하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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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경란 작성일13-06-19 14:29 조회3,28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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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와 경멸이, 총체적인 부정부패의 원인입니다.

1989년 1월,
7년 동안 딸자식의 목숨을 걸고 완성시킨 한국역사만화전집을
교학사가 멋대로 팔아치웠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기도 막히지 않았습니다.
세상이 언제 이토록 극악해졌다는 것인지,
도저히 이) 장관님이 중재를 지시하셨으니,
저작권분쟁조정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1991년 8월,
"(이어령 문화부을 신청해 주십시오!"
라는 소리를 듣게 됐을 때,
"이제, 사건은 해결됐다!"라고 확신했었습니다.
그러나, 대한민국 문화부 장관의 권위는
말단 검사가 뭉개버릴 수 있는 정도에 불과했었습니다.
1991. 9. 3. 열렸던 저작권심의조정위원회에서
교학사가 안경환 조정위원의 3억원 조정안을 뭉개버렸을 때,
조광수 검사의 무혐의처분을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습니다.

문화부 장관의 중재지시가 뭉개지고 말았다는 사실은,
검찰의 권세가 얼마나 안하무인이 돼버렸는지를 말해주는 것이었습니다.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권력구도였지만,
그것이 대한민국의 현실이라는 것을,
문화부와 문화부 장관께서, 제게 똑똑히 가르쳐 주신 셈입니다.

이어령 문화부 장관께서 중재를 지시해 주셨기 때문에,
저는, 대한민국의 괴상망측한 권력구도를 확연하게 깨우친 시점에서
법률투쟁을 시작할 수가 있었습니다.
권력구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서 겪게되는 시행착오는
겪을 필요가 없었던 것입니다.

지피지기 백전백승이며,
수신제가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나이 50이 넘도록 무엇보다도 주력했던 것이,
저 자신의 인격을 갈고 닦는 일입니다.
그런데, 재벌이 운영하는 할인마트에 가기만 하면,
좀도둑이 되지 못해 안달하는 저 자신과 만나게 됩니다.

1985년 겨울, 동회에서 라면 한 박스를 받은 일이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것을 다른 사람에게 줘버리고 말았습니다.
딸아이의 수술비 200만원을 구하지 못해 고생하던 시기였지만,
공짜만 기다리는 사람이 돼버릴까, 겁이 났기 때문입니다.
지독할 정도로 가난했지만,
가게 주인이 실수로 거스름돈을 더 내줄 때,
절대로, 모르는 척 받아 넣지 않았습니다.
가난하면 할수록, 인격관리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할인마트에 가기만 하면,
제가, 좀도둑이 되지 못해 안달을 합니다.
분명히, 갖고싶은 물건은 많지만,
훔치고 싶을 정도로 갖고싶은 물건은 없습니다.
다만, 덤으로 슬쩍 하고 싶은 물건이 있을 뿐입니다.

만약 도둑질이 필요(?)하다면,
큰 것을 훔치는 큰 도둑이 되겠다는 생각인데,
시시하기 짝이 없는 물건 한두 개를 슬쩍 하고 싶은 충동에
사로잡히게 되는 것이, 이상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이상하고 황당해서, 곰곰이 분석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재벌에 대한 경멸과 분노가,
제가 좀도둑이 되지 못해 안달을 하게 되는 원인이었습니다.

저의 정직이 아무런 유혹도 받지 않을 때에는
대한민국의 총체적인 부패 구조를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좀도둑이 되고 싶어 안달하는 저 자신과 만나게 되면서
대한민국의 총체적인 부패구조를 충분히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정치권과 재벌에 대한 경멸과 분노가
부정부패를 재생산해 내고 있다는 사실을
확실히 깨우치게 됐던 것입니다.

만 원짜리 물건을 훔친 사람과
수천억 원을 훔친 사람의 차이는 무엇입니까?
만원만 훔친 사람들은 정직한 인격을 가진 사람들이고,
수천만 원, 혹은 수억 원을 훔친 사람들만
지탄받아 마땅한 사람들입니까?
도둑질을 할 의사가 전혀 없으면서도
좀도둑질을 하는 것은, 도둑질이 아닙니까?

우리는 그 문제를
국민적인 차원에서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서기 2002년 3월 11일. 삼가 김경란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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