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사법사상.재판이론;서설-형벌이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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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재문 작성일13-06-13 10:59 조회1,634회 댓글0건관련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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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한국법문화의 국제경쟁력 향상을 위한
한국전통법문화의 강좌
한국전통법의 정신과 법체계(20)
-사법사상.재판이론;서설-형벌이란(1)
동국대학교경 주캠퍼스 법정대 법학과 교수 김 재 문 (http:wwwk.dongguk.ac.kr~kj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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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서설
그동안 연 19회 동안 쉬지않고 우리 조상들의 500여년간의 정치이론.입법이론을이라는 이름하에 그 대강들을 소개해 드렸다..이번호 부터는 조선왕조의 재판이론과 그 정신들을 찾아서 소개하고 나면, 행정이론과 그 정신 및 전통법의 체계들을 점차적으로 살펴 소개해 드리기로 스스로 약속해 본다.
그러나 실록을 통한 기존의 연구가 미흡하고,조선왕조의 재판문화에 관한 500여년간의 이론등이 체계적으로 잘 정리되어 있지가 않는 상황이며,또한 이런 연구분야가 사법시험과목도 아니고 한국의 법과대학의 커리큐럼에서도 중요과목이 아닌,몇개대학에서 겨우 선택과목만으로 되어 우리는 법학교수들이나 법조인들도 무관심하여 대부분의 국민듥 까맣게 모르고 살아가고 있는 현실이다.
그러다 보니 필자의 만용으로 언제까지나 계속하게 되니 개인의 집한채가 다 들어가 버리고 빛더미속에서 연구한다는 핑계로 세원만 보내는 중에 가산이 기울고 부채가 늘었다.그러나 반드시 빨리 체계적으로 정리를 해 놓아야만 한다는 시급함과 법치주의 국가로서의 선진국으로 발돋움을 향한 독자적인 자존을 위해 실록자료만이라도 정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그래서 우리전통민족법문화의 기초작업이라 생각하고, 아직도 수 년을 더 계속해야 하는 자료와의 싸움속에서...엄청난 분량의 자료를 실록속에서 찾아야 하고 이를 정리해야만 한다는 집념이 아닌지...
컴퓨터와 씨름하다 보니,어느듯 쌓인 피로가 목과 어깨등에 심한 디스크와 근육통이 발생했었다.강력파스를 몇장씩 붙이고 떼고 소염진통제를 먹고 굳고 아픈 어깨와 목고개와 허리에 관셈보살을 외우며 맨손체조운동을 통해 조금씩 통증을 가라 앉혀나온 셈이다...
시력은 좀더 나빠져서 눈이 아프기 시작하기에 견디다 못해 길가의 안경점에 들리니, 도수가 높은 안경으로 갈아야 한다는 돌팔이(?) 안경사의 권고를 듣고도 계속 컴퓨터와 씨름을 해야하는 상황이다.
눈이 아파서 잠시 눈을 쉬기 위해 어깨도 쉴겸 누울려고 하니, 잡지사의 최부장님께서 하루만에 원고를 작성해 달라는 간청을 여러번 해 오신다...저 양반께서 꽤나 다급해지신 모양이신데...내가 좀더 악심을 내면 되겠지하고 ,나도 만 하루만의 시간을 할애 받아 원고를 만들기 위해 다시 일어나 깡으로 앉는다...거의 하루남짖만에 원고를 교정하고 있다...
조선왕조의 우리조상들의 500여년간의 재판문화를 이론을 정신을 알기 위한 그 동안의 자료를 틈틈이 대강을 정리해 두었다.이번 호에서는 조상들의 재판문화의 정리를 위해 필요한 자료들의 대강을 열거한 뒤에 형사재판의 관심사인 “형벌이란 무엇인가”이라는 제목으로 실록속의 형벌의 정의만을 간략히 소개를 하는 것으로 서두를 장식하고자 한다.
2001년 정초에 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들을 이른 새벽부터 체포하려던 몇일이 안되어 검찰측이 처벌하기 어렵다는 발표를 하고, 이를 저지 할려던 의원들이나 그 보좌관 및 당원들의 힘겨루기나 추운날씨에 길거리에 나와서 연설을 할려는 야당원들의 모습들도 결코 우리들이 바라던 자랑스런 모습들은 아닌 것 같다.
아무튼 법치주의 국가이므로 법에 의해 사법권이 행사되어야 하고,그에 못지 않게 국민의 인권도 보장되어야 할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일들이 생기니,가뜩이나 돈이 모자라는 우리 사회에,공금을 유용한(?)한 액수보다, 천 수백배나 되는 공적자금중에 거둬들이지 못할, 낭비되거나 회수불가능한 액수가 유용한 공금의 몇배나 몇십배나 몇백배나 된다면....이것은 우리들과 우리들의 후손에 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는 액수라는 견해가 생각나고...
또 .외국에서는 불난집에 부채질 하는지 바른 말을 하는건지...공적자금을 투입하는 것중의 일부는 거꾸로 가는 구조조정이라는 외국신문기사를 인용한 기사들을 읽다보니...그 후유증으로 한국국민들은 오랫동안 고생을 좀 하게 된다는 논평을 읽은 뒷 맛이 씁쓰레 하고, 차거운 날씨에 못지 않게 착찹하며, 외톨이가 된 생각이 든다...그래도 우리들은 정부를 믿고 있는데...
그러나 강추위가 계속되는 한파에 집 앞이 꽁꽁 얼어붙어서 ,대부분이 자기 집 앞에서,아파트 단지앞에서 넘어져 골절사고로 노인들이 병원을 많이 찾아온다고... 이유는 ,어느듯 우리 국민들은 내 집앞을 내가 쓰는 공동체 의식이 점점 사라져 가는 문화를 가진
조선왕조에는 재판에 관한 법조문을 경국대전이나 조선초기의 법령집을 통해서 집대성한 민사소송법전인 사송류취가 있고,그 후에 형사소송절차에 관한 조문을 첨가하여 결송유취 및 그 뒤에 보완한 결송유취보라는 민형사소송법전이 있다.이외에 살인사건이 발생한 경우 시체검안을 위한 법령 및 절차등을 규정한 무원록 및 증수무원록언해등이 있다.
그리고 조선왕조의 재판도 법치주의 이므로 엄격한 법절차에 의해 재판이 진행되었으리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어느 시대사회나 법조문대로 사회가 철저히 움직여지는 것만은 아니었므로,조선왕조 500여년간에도 법조문과 다른 위법적인 재판진행절차도 많이 있었을 것으로 짐작할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실록을 통해서 과연 조선왕조 500여년간의 우리 조상들은 어떤 생각이나 정신이나 이론을 가지고 ,어떤 자세로서 법을 해석하고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위해,인권보장을 위해 공평하고 신속하며 법대로 재판을 해왔는지를 살피고 정리해 놓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서, 양심도 도덕도 인정도 사정도 없이 밀려오는 강한 국제경쟁사회의 파도속에서 우리공동체가 독자적인 이론과 정신으로 경쟁력있는 법문화를 재창출하는 지혜있는 공동체가 되어서,국난의 후유증속에서 빨리 선진국이 되는 그런 법치주의 문화로 변신해야 한다.그리고 믿고 존경하고 재판문화가 창출되기를 바라는 의미에서 조선왕조 실록속의 재판에 관한 자료를 분석하고 정리해야만 한다고 생각된다.
二)재판이론에 관한 실록자료-항목
조선왕조의 재판절차도 정성드려 만든 경국대전이나 국가의 중요한 법규정에 의해서 진행된 재판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사송유취라는 민사소송법전과 결송유취(보)라는 형사소송법전과 무원록 및 증수무원록언해라는 살인사건의 시체검안이론서 및 법령집이 있는 것으로 충분히 증명이 된다.
그러므로 가끔 소설이나 춘향전을 읽고, 변사또 같은 위법적인 재판권을,공권력을 남용하여 개인의 이익을 위해 잘못을 저지르는 불법적인 범죄행위를,위법한 법집행자의 재판과정을, 우리의 전통법상의 합법적인 재판절차로 절대로 생각하지 말기를 바라는 마음이다.오히려 그런 재판권남용의 불법한 재판을 심판하는 과정이 춘향전속의 재판과정이라고 이해하면 좀더 우리의 전통재판문화에 가까운 견해로 볼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앞으로 소개할 전통재판이론이나 정신에 관한 실록자료를 보면 권리나 법익이 침해 된 경우로서,기소단계의 자료항목들을 실록속에서 찾아보면,재판의 명칭에는 송사.사송.옥사.결송.잡송.산송.옥송.재판.쟁송.산송.노비송.토지송.전택소송등의 용어가 있다.이중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용어를 기록한 빈도수별로 열거하면, 옥사(4920건).송사(1834건),옥송(479건),사송(475건).노비송사(421건).쟁송(229건),재판(84건),토지송사(61건),산송(57건),잡송*52건).전택송사(7건)등이 보인다.그리고 이런 숫자로 표시한 건수는 실록에 나오는 해당기사들을 날짜별로 분류한 숫자이다.다만 이 속에는 낱말의 이름은 같으나 漢字가 다른 용어도 간혹 포함한 경우가 있어서 약간의 변동을 가해야만 보다 더 정확할 것으로 생각된다
형사소송인 옥사와 민사소송에 가까운 의미로 사용된 송사(정확하게는 사송)의 의미가 많고 옥사가 송사라는 용어보다 두배이상 나타난다..
그리고 기소단계의 항목으로는 소장(4631건),진소(.陳疏;1197건),고발(1601건).고소(711건).정소(487건),등장(공동솟장;62건),퇴장(각하;退狀;56건).납장(11건)등이 보인다.
그리고 소송당사자인 원피고와 사건관계자들간의 대질심문등에 관해서는 자복(2342건),초사(진술서;2102건),신문(訊問;1752건),대변(對辯대질;428건),피고(280건),원고(260건),송자(訟者;172건).납초(納招;150건),원척(元隻;원피고;42건).대척(對隻;20건)등의 항목을 들수 있다.
그리고 재판을 하는 주체의 많은 건수대로 열거해 보면, 감사(18,629건),수령(14,637건),대사헌(감사원장;13,038건),관찰사(11630건),현감(5034건),군수(4698건),형조판서(4580건),어사(4454건-암행어사;4건),목사(4431건),한성판윤(2,413건),형조참판(2,123건),도관(都官;1273건),현령(1461),검찰(1054),판사(681건),도백(556건),법관(456건),형관(423건),법조(326건).옥관(獄官;206건?),주장관(78건),외지부(변호사,소송전문가;35건),대관(臺官),청송관,결송관 각 14건이 있다.
위와 같이 필자가 대강 조사한 항목에 의하면,2심인 고등법원장이었던 도지사이기도 한 감사,관찰사의 항목을 합치면 30,259건이 되고,1심법원장격인 시장군수인 수령,현감,군수,목사,현령의 항목을 합치면 30,216건이 된다.묘하게도 1심법원장의 업무건수와 2시멉원장의 업무건수가 숫자상으로는 거의 일치한다.이것은 실제 실록을 통해 구체적으로 살펴보아야 할 흥미있는 숫자로 생각된다.
법원사무직등 관련한 항목으로는 율문(1,505건).형방(271).형리(96),율학(97건).검율(51건).율과(39건).율학강습(8건).율학훈도,율학청.율학생도,율관.사율원.심율등이 있다.
특히 조선초기가지 실록에서는 법전문가를 양성하기 위해 율학생도들을 뽑아서 법학교육을 시킨 기록이 발견된다는 점은 우리 전통법학교육에 관한 좋은 자료로 생각된다.
재판을 하는 국가 공공기관인 법원이나 탄핵재판소,교도소등에는 ,사헌부(16,058건),형조(11,557건),사간원(10,589건),국청(1790),법사(1238건),감옥(623),한성부(490),전옥서(314)등이 있다.
가장 많은 활동을 한 사법기관은 공직자범죄를 관할하던 사헌부와 서울의 대표적인 사법기관인 형조 그리고 대권인 통치권의 잘못된 행사를 예방하고 법치주의를 실현하고,민본 애민사상을 유지하는 사간원의 역할이 실록기록에서는 거의 대부분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재판의 가장 중심이 되는 재판의 수리(청리;417건), 증거(2529건)인 문권(293건),서면심리(公緘;210건),증인(311건)인 겨린(45건),검시(201건),간사인(사건관계인;140건),검험(77건),복검(41건),초검(30건),삼검(6건),재검(5건),오사(송사를 듣는 5가지 기술;五辭)등이 있다,
그리고 재판의 목적이자 이상을 알 수 있는 내용들로서는 뇌물(2962건),공정(2847건),공평(1861건),판결(1785건),결절(決折=판결;157건),청탁(1583건),법대로(1519건),심리(880건),형옥(773건),말감(감경;580건),중율(264건),흠휼(231건),탐관(219건),감형(147건),체옥(135건),정상참작(108건),영어(64건),立落(71건),작량(71건),법령해석(20건),해석(대전;43건,절목35건,사목12건,왕법,10건,수교9건),적용(법;168건,절목;162건,대전155건,왕법133건,사목74건,수교 71건,율령4건)등이 있다.
조선 500여년간의 수많은 재판속에서 뇌물과 청탁과 불공정하고 지체된 사건들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그러나 실록을 대강 보면,결국은 불법적인 뇌물과 청탁에 의한 재판을 배체하고 신속하고 공정한 재판을 위한,법에 의한 법대로 재판하는 재판의 독립을 인정하는 재판문화를 엿볼수 있을 것이다.
범죄는 과실(2470건),죄(2452건),고의(1337건),중죄(1022건),범죄(1439건),무죄(471건),미수(290건),종범(221건),기수(186건),유죄(144건),공범(22건)등이 있으며,형벌에는 사면(3179건),유배형(2770건),연좌죄(1685건),참형(1237건),장형(664건),교형(606건),도형(528건),태형(262건),오악(23건),능지처참(3건)등이다.
단순한 숫자상으로는 실록중에 과실범이 고의범보다 더 askg이 거론되고,형벌에는 대략 7738건의 기록중의 거의 40%가 넘게 국왕의 사면에 관해 기록하고 있는 점은 연구되어야 할 부분이 아닌지...그리고 사형인 참형과 교형도 23%가 넘는 수치는 조선왕조 500여년간 전반적인 형벌이 지금보다는 훨씬 무거웠다는 것을 추측하기 어렵지 않을 것 같다.
임금에게 상소(27500건)하거나 불복하는 경우는 억울(4501건),원통(3638건),삼복(삼심제;761건),오결(271건),남형(224건),격쟁(201건),격고(169건),신문고(138건),원왕(冤枉;88건),원억(54건),재심(40건),오심(9건)등이 있다.
이는 재판을 통해서도 억울하고 원통한 경우에는 마지막으로 특정한 사건에 한해서는 임금에게 직접 상소를하여,최고 통지자인자 최고법원장인 임금에게 하급심의 최종 불복이나 재심을 할 수 있는 상소제도로 쟁이나 북을 두들겨서 인권을 보호하는 제도와 3심제도도 엿볼 수 있다.
이상의 자료를 중심으로 실록을 더 세밀히 조사보완 하여, 조선왕조 500여년간의 재판이론과 재판정신과 재판문화를 정리해 나가기로 한다.그러나 위의 대강의 자료항목속에도 조선의 재판은 증거를 통한 신속하고 공정한 법대로의 재판을 위해 청탁과 뇌물의 배격과 지연시키는 비경제적이고 당사자에게 고통을 주는 신속하지 못한 재판을 인정하지 않으며,실체적진실 발견을 위한 법의 정신과,억울하고 원통한 재판 최종적으로 대법원장격인 임금에게 서면을 통하거나 북을 치거나 징을 쳐서 면전에서 구두로도 제소하여 구제를 받을 길을 두고 있는 바람직한 자랑스런 재판문화의 면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조선왕조 500여년간에는 해방이후 50여년간 보다 10배나 긴 기간동안 적지 않는 명 재판관과 사건이 있을 것이다.실록에도 고급공무원이자 판검사의 사망기록(졸기)에는 법대로 청탁과 뇌물을 배제하고 청렴하면서 권력에 초연한 독립된 재판을 했다는 기사가 적지 않게 남아 있다.우리의 재판문화를 한층 더 높이기 위해 이런 명판관들의 행적의 일부라도 가끔 소개를 할 예정이다.조선의 명판관은 결코 권력과 돈에 흔들리거나 종속되거나 아부하지 않고, 존경스러운 애민철학.민본주의 법치주의 철학을 철저히 가지고 실천하셔서 후손들에게 귀감이 되고 국가 경쟁력에 힘이될 교훈적인 삶을 살면서 재판에 임한 분들이 적지 않다는 것은 자랑스런 우리 조상들이 남기신 훌륭한 재판법문화라고 생각해보고 싶다.
三)형벌이란
형벌이란 죄형법정주의에 의해 형법에 정한대로 형벌을 선언하기만 하면 법조인의 역할을 다한 것인지...조선의 우리 조상들인 최고법원장이었던 임금과 1.2심의 법원장이자 법관이었던 신하들은 과연 형벌은 무엇이라고 보았으며,형벌을 어떻게 집행하고 선언했는지 형벌의 정의를 통해서 먼저 간략히 살펴보기로 한다.
1)임금
임금은 다음과 같이 형벌이란
가)신중해야 하며:나)부득이 한 경우에 쓰는 것이며;다)형벌이 없어지기 위한 목적에서 형벌을 부과하고,라)형벌이란 다만 정치의 보조수단일 뿐이며,마)사회의 아름다운 삶을 위해,즉 교화를 돕는 방편으로 생각하였다.
가)신중해야 한다.
(1)세종 12년 임금이 대언 윤수(尹粹)에게 말하기를, 내가 항상 생각하는데, 형벌은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니, 사람의 생명이 여기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이를 가볍게 여기면 되겠느냐..., 형벌이란 사람마다 고통스럽게 여기는 것이다. 죽은 사람은 다시 살아날 수 없으며, 형을 받은 자는 다시 벗어날 수 없다. 고 하였다.
(2)세종12년 회덕 현감 박성치 등이 사조하니 인견하다 》회덕 현감(懷德縣監) 박성치(朴成治)․문의 현령(文義縣令) 조오(趙헓)․해미 현감(海美縣監) 김경(金俓)이 사조(辭朝)하니, 인견하고 말하기를,지금 서울에 어린 아이들이 살 곳을 잃고 굶주려 지쳐 있다. 지방 고을엔들 어찌 이런 일이 없겠느냐. 그대들은 가서 구제하라. 또한 형벌이란 지중(至重)한 일이니 삼가서 부디 노여움으로 인한 지나친 형벌을 행하지 말라. 하였다.
(3)영조 원년 함경 감사 이의만의 본도의 사록에 대한 장문을 형조에 내려 품처케 하다 》 임금이 하교(下敎)하기를, 형벌이란 왕정(王政)에 있어 중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서경(書經)》 순전(舜典)에 이르기를, 공경하고 신중히 하여 형벌을 신중하게 다루어야 한다. 하였고, 고요(皐陶)가 순(舜)임금의 덕(德)을 찬양하여 말하기를, 죄가 의심스러우면 오로지 가볍게 처벌하고, 무고한 자를 죽이기보다는 차라리 법도를 잃어 실패하려 하셨다. 하였으니, 삼대(三代) 때에 형벌을 신중하게 다룬 것을 통하여 백성의 목숨을 중하게 여겼음을 알 수가 있다.
위의 내용은 생명이 달려있고 고통스러우며 너무 소중한 것이므로 감정으로나 괘심죄등으로 지나친 형벌을 삼가고,서경의 말을 인용하고 의심스러울 때에는 가볍게 처벌하고 법을 어겼다는 말을 들을지라도 결코 억울하게 사람이 죽도록 하지 않는다는 정신을 이어 받고 있다.그리고 신중한 형벌의 집행은 국민들의 소중한 생명을 보호하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없을 수 없는 부득이한 일이다.
(1)세종 26년에 정사를 보았다. 임금이 좌우에게 이르기를,지금 도적이 많이 다닌다 하니, 이것은 내가 백성의 살림살이를 마련해 주지 못해서, 그들이 살 곳을 잃은 때문이니 내 심히 부끄럽게 여기노라. 대저 형벌이란 없을 수도 없는 것이고, 형벌을 실행하는 것도 또한 부득이한 일인지라, 우리 나라에서 형벌을 실행함에는 일체 법조문에 의해서 하는데, 사람 하나를 죽이는 것도 오히려 마음으로 차마 못하겠거든, 하물며, 법조문을 고쳐 가면서 많은 사람을 죽일 수가 있겠는가. 무거운 형벌로 징계하는 것은 마땅히 의논할 일이다.
(2)부득이 한 경우에 사용: 효종 2년에 상이 주강에 나아가 《서전》의 함유일덕편을 강하였다. 강이 끝나자 상이 지의금(知義禁) 박서(朴?)에게 일렀다. 형벌이란 부득이 쓰는 것이다. 형벌을 써서는 안 될 경우에는 형벌을 애초에 쓰지 않아야 할 것이고, 이미 형벌을 쓰게 했을 때는 한갓 형식만을 일삼아서는 안 될 것이다. 그 중에 장죄(贓罪)를 지은 관리는 사형시켜야 하는데 형장(刑杖)이 이처럼 가볍기 때문에 정범자(正犯者)에게 자복을 받아낼 수 없고 억울한 자도 해명할 도리가 없다.
위에서 세종과 효종임금은 우리들에게 죄형법정주의와 생명과 인권존중의 정신을 주장하며,함부로 형벌을 쓰지말되,부득히 하여 쓸 경우에는 공직자의 수뢰죄인 경우라면 법대로 사형을 시켜야 한다면 철저히 시킨다면 범죄를 예방할 수 있다고 한다.
한국전통법문화의 강좌
한국전통법의 정신과 법체계(20)
-사법사상.재판이론;서설-형벌이란(1)
동국대학교경 주캠퍼스 법정대 법학과 교수 김 재 문 (http:wwwk.dongguk.ac.kr~kj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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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서설
그동안 연 19회 동안 쉬지않고 우리 조상들의 500여년간의 정치이론.입법이론을이라는 이름하에 그 대강들을 소개해 드렸다..이번호 부터는 조선왕조의 재판이론과 그 정신들을 찾아서 소개하고 나면, 행정이론과 그 정신 및 전통법의 체계들을 점차적으로 살펴 소개해 드리기로 스스로 약속해 본다.
그러나 실록을 통한 기존의 연구가 미흡하고,조선왕조의 재판문화에 관한 500여년간의 이론등이 체계적으로 잘 정리되어 있지가 않는 상황이며,또한 이런 연구분야가 사법시험과목도 아니고 한국의 법과대학의 커리큐럼에서도 중요과목이 아닌,몇개대학에서 겨우 선택과목만으로 되어 우리는 법학교수들이나 법조인들도 무관심하여 대부분의 국민듥 까맣게 모르고 살아가고 있는 현실이다.
그러다 보니 필자의 만용으로 언제까지나 계속하게 되니 개인의 집한채가 다 들어가 버리고 빛더미속에서 연구한다는 핑계로 세원만 보내는 중에 가산이 기울고 부채가 늘었다.그러나 반드시 빨리 체계적으로 정리를 해 놓아야만 한다는 시급함과 법치주의 국가로서의 선진국으로 발돋움을 향한 독자적인 자존을 위해 실록자료만이라도 정리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그래서 우리전통민족법문화의 기초작업이라 생각하고, 아직도 수 년을 더 계속해야 하는 자료와의 싸움속에서...엄청난 분량의 자료를 실록속에서 찾아야 하고 이를 정리해야만 한다는 집념이 아닌지...
컴퓨터와 씨름하다 보니,어느듯 쌓인 피로가 목과 어깨등에 심한 디스크와 근육통이 발생했었다.강력파스를 몇장씩 붙이고 떼고 소염진통제를 먹고 굳고 아픈 어깨와 목고개와 허리에 관셈보살을 외우며 맨손체조운동을 통해 조금씩 통증을 가라 앉혀나온 셈이다...
시력은 좀더 나빠져서 눈이 아프기 시작하기에 견디다 못해 길가의 안경점에 들리니, 도수가 높은 안경으로 갈아야 한다는 돌팔이(?) 안경사의 권고를 듣고도 계속 컴퓨터와 씨름을 해야하는 상황이다.
눈이 아파서 잠시 눈을 쉬기 위해 어깨도 쉴겸 누울려고 하니, 잡지사의 최부장님께서 하루만에 원고를 작성해 달라는 간청을 여러번 해 오신다...저 양반께서 꽤나 다급해지신 모양이신데...내가 좀더 악심을 내면 되겠지하고 ,나도 만 하루만의 시간을 할애 받아 원고를 만들기 위해 다시 일어나 깡으로 앉는다...거의 하루남짖만에 원고를 교정하고 있다...
조선왕조의 우리조상들의 500여년간의 재판문화를 이론을 정신을 알기 위한 그 동안의 자료를 틈틈이 대강을 정리해 두었다.이번 호에서는 조상들의 재판문화의 정리를 위해 필요한 자료들의 대강을 열거한 뒤에 형사재판의 관심사인 “형벌이란 무엇인가”이라는 제목으로 실록속의 형벌의 정의만을 간략히 소개를 하는 것으로 서두를 장식하고자 한다.
2001년 정초에 민주주의 국가인 대한민국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들을 이른 새벽부터 체포하려던 몇일이 안되어 검찰측이 처벌하기 어렵다는 발표를 하고, 이를 저지 할려던 의원들이나 그 보좌관 및 당원들의 힘겨루기나 추운날씨에 길거리에 나와서 연설을 할려는 야당원들의 모습들도 결코 우리들이 바라던 자랑스런 모습들은 아닌 것 같다.
아무튼 법치주의 국가이므로 법에 의해 사법권이 행사되어야 하고,그에 못지 않게 국민의 인권도 보장되어야 할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 일들이 생기니,가뜩이나 돈이 모자라는 우리 사회에,공금을 유용한(?)한 액수보다, 천 수백배나 되는 공적자금중에 거둬들이지 못할, 낭비되거나 회수불가능한 액수가 유용한 공금의 몇배나 몇십배나 몇백배나 된다면....이것은 우리들과 우리들의 후손에 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는 액수라는 견해가 생각나고...
또 .외국에서는 불난집에 부채질 하는지 바른 말을 하는건지...공적자금을 투입하는 것중의 일부는 거꾸로 가는 구조조정이라는 외국신문기사를 인용한 기사들을 읽다보니...그 후유증으로 한국국민들은 오랫동안 고생을 좀 하게 된다는 논평을 읽은 뒷 맛이 씁쓰레 하고, 차거운 날씨에 못지 않게 착찹하며, 외톨이가 된 생각이 든다...그래도 우리들은 정부를 믿고 있는데...
그러나 강추위가 계속되는 한파에 집 앞이 꽁꽁 얼어붙어서 ,대부분이 자기 집 앞에서,아파트 단지앞에서 넘어져 골절사고로 노인들이 병원을 많이 찾아온다고... 이유는 ,어느듯 우리 국민들은 내 집앞을 내가 쓰는 공동체 의식이 점점 사라져 가는 문화를 가진
조선왕조에는 재판에 관한 법조문을 경국대전이나 조선초기의 법령집을 통해서 집대성한 민사소송법전인 사송류취가 있고,그 후에 형사소송절차에 관한 조문을 첨가하여 결송유취 및 그 뒤에 보완한 결송유취보라는 민형사소송법전이 있다.이외에 살인사건이 발생한 경우 시체검안을 위한 법령 및 절차등을 규정한 무원록 및 증수무원록언해등이 있다.
그리고 조선왕조의 재판도 법치주의 이므로 엄격한 법절차에 의해 재판이 진행되었으리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어느 시대사회나 법조문대로 사회가 철저히 움직여지는 것만은 아니었므로,조선왕조 500여년간에도 법조문과 다른 위법적인 재판진행절차도 많이 있었을 것으로 짐작할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실록을 통해서 과연 조선왕조 500여년간의 우리 조상들은 어떤 생각이나 정신이나 이론을 가지고 ,어떤 자세로서 법을 해석하고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위해,인권보장을 위해 공평하고 신속하며 법대로 재판을 해왔는지를 살피고 정리해 놓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서, 양심도 도덕도 인정도 사정도 없이 밀려오는 강한 국제경쟁사회의 파도속에서 우리공동체가 독자적인 이론과 정신으로 경쟁력있는 법문화를 재창출하는 지혜있는 공동체가 되어서,국난의 후유증속에서 빨리 선진국이 되는 그런 법치주의 문화로 변신해야 한다.그리고 믿고 존경하고 재판문화가 창출되기를 바라는 의미에서 조선왕조 실록속의 재판에 관한 자료를 분석하고 정리해야만 한다고 생각된다.
二)재판이론에 관한 실록자료-항목
조선왕조의 재판절차도 정성드려 만든 경국대전이나 국가의 중요한 법규정에 의해서 진행된 재판이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사송유취라는 민사소송법전과 결송유취(보)라는 형사소송법전과 무원록 및 증수무원록언해라는 살인사건의 시체검안이론서 및 법령집이 있는 것으로 충분히 증명이 된다.
그러므로 가끔 소설이나 춘향전을 읽고, 변사또 같은 위법적인 재판권을,공권력을 남용하여 개인의 이익을 위해 잘못을 저지르는 불법적인 범죄행위를,위법한 법집행자의 재판과정을, 우리의 전통법상의 합법적인 재판절차로 절대로 생각하지 말기를 바라는 마음이다.오히려 그런 재판권남용의 불법한 재판을 심판하는 과정이 춘향전속의 재판과정이라고 이해하면 좀더 우리의 전통재판문화에 가까운 견해로 볼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앞으로 소개할 전통재판이론이나 정신에 관한 실록자료를 보면 권리나 법익이 침해 된 경우로서,기소단계의 자료항목들을 실록속에서 찾아보면,재판의 명칭에는 송사.사송.옥사.결송.잡송.산송.옥송.재판.쟁송.산송.노비송.토지송.전택소송등의 용어가 있다.이중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용어를 기록한 빈도수별로 열거하면, 옥사(4920건).송사(1834건),옥송(479건),사송(475건).노비송사(421건).쟁송(229건),재판(84건),토지송사(61건),산송(57건),잡송*52건).전택송사(7건)등이 보인다.그리고 이런 숫자로 표시한 건수는 실록에 나오는 해당기사들을 날짜별로 분류한 숫자이다.다만 이 속에는 낱말의 이름은 같으나 漢字가 다른 용어도 간혹 포함한 경우가 있어서 약간의 변동을 가해야만 보다 더 정확할 것으로 생각된다
형사소송인 옥사와 민사소송에 가까운 의미로 사용된 송사(정확하게는 사송)의 의미가 많고 옥사가 송사라는 용어보다 두배이상 나타난다..
그리고 기소단계의 항목으로는 소장(4631건),진소(.陳疏;1197건),고발(1601건).고소(711건).정소(487건),등장(공동솟장;62건),퇴장(각하;退狀;56건).납장(11건)등이 보인다.
그리고 소송당사자인 원피고와 사건관계자들간의 대질심문등에 관해서는 자복(2342건),초사(진술서;2102건),신문(訊問;1752건),대변(對辯대질;428건),피고(280건),원고(260건),송자(訟者;172건).납초(納招;150건),원척(元隻;원피고;42건).대척(對隻;20건)등의 항목을 들수 있다.
그리고 재판을 하는 주체의 많은 건수대로 열거해 보면, 감사(18,629건),수령(14,637건),대사헌(감사원장;13,038건),관찰사(11630건),현감(5034건),군수(4698건),형조판서(4580건),어사(4454건-암행어사;4건),목사(4431건),한성판윤(2,413건),형조참판(2,123건),도관(都官;1273건),현령(1461),검찰(1054),판사(681건),도백(556건),법관(456건),형관(423건),법조(326건).옥관(獄官;206건?),주장관(78건),외지부(변호사,소송전문가;35건),대관(臺官),청송관,결송관 각 14건이 있다.
위와 같이 필자가 대강 조사한 항목에 의하면,2심인 고등법원장이었던 도지사이기도 한 감사,관찰사의 항목을 합치면 30,259건이 되고,1심법원장격인 시장군수인 수령,현감,군수,목사,현령의 항목을 합치면 30,216건이 된다.묘하게도 1심법원장의 업무건수와 2시멉원장의 업무건수가 숫자상으로는 거의 일치한다.이것은 실제 실록을 통해 구체적으로 살펴보아야 할 흥미있는 숫자로 생각된다.
법원사무직등 관련한 항목으로는 율문(1,505건).형방(271).형리(96),율학(97건).검율(51건).율과(39건).율학강습(8건).율학훈도,율학청.율학생도,율관.사율원.심율등이 있다.
특히 조선초기가지 실록에서는 법전문가를 양성하기 위해 율학생도들을 뽑아서 법학교육을 시킨 기록이 발견된다는 점은 우리 전통법학교육에 관한 좋은 자료로 생각된다.
재판을 하는 국가 공공기관인 법원이나 탄핵재판소,교도소등에는 ,사헌부(16,058건),형조(11,557건),사간원(10,589건),국청(1790),법사(1238건),감옥(623),한성부(490),전옥서(314)등이 있다.
가장 많은 활동을 한 사법기관은 공직자범죄를 관할하던 사헌부와 서울의 대표적인 사법기관인 형조 그리고 대권인 통치권의 잘못된 행사를 예방하고 법치주의를 실현하고,민본 애민사상을 유지하는 사간원의 역할이 실록기록에서는 거의 대부분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재판의 가장 중심이 되는 재판의 수리(청리;417건), 증거(2529건)인 문권(293건),서면심리(公緘;210건),증인(311건)인 겨린(45건),검시(201건),간사인(사건관계인;140건),검험(77건),복검(41건),초검(30건),삼검(6건),재검(5건),오사(송사를 듣는 5가지 기술;五辭)등이 있다,
그리고 재판의 목적이자 이상을 알 수 있는 내용들로서는 뇌물(2962건),공정(2847건),공평(1861건),판결(1785건),결절(決折=판결;157건),청탁(1583건),법대로(1519건),심리(880건),형옥(773건),말감(감경;580건),중율(264건),흠휼(231건),탐관(219건),감형(147건),체옥(135건),정상참작(108건),영어(64건),立落(71건),작량(71건),법령해석(20건),해석(대전;43건,절목35건,사목12건,왕법,10건,수교9건),적용(법;168건,절목;162건,대전155건,왕법133건,사목74건,수교 71건,율령4건)등이 있다.
조선 500여년간의 수많은 재판속에서 뇌물과 청탁과 불공정하고 지체된 사건들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그러나 실록을 대강 보면,결국은 불법적인 뇌물과 청탁에 의한 재판을 배체하고 신속하고 공정한 재판을 위한,법에 의한 법대로 재판하는 재판의 독립을 인정하는 재판문화를 엿볼수 있을 것이다.
범죄는 과실(2470건),죄(2452건),고의(1337건),중죄(1022건),범죄(1439건),무죄(471건),미수(290건),종범(221건),기수(186건),유죄(144건),공범(22건)등이 있으며,형벌에는 사면(3179건),유배형(2770건),연좌죄(1685건),참형(1237건),장형(664건),교형(606건),도형(528건),태형(262건),오악(23건),능지처참(3건)등이다.
단순한 숫자상으로는 실록중에 과실범이 고의범보다 더 askg이 거론되고,형벌에는 대략 7738건의 기록중의 거의 40%가 넘게 국왕의 사면에 관해 기록하고 있는 점은 연구되어야 할 부분이 아닌지...그리고 사형인 참형과 교형도 23%가 넘는 수치는 조선왕조 500여년간 전반적인 형벌이 지금보다는 훨씬 무거웠다는 것을 추측하기 어렵지 않을 것 같다.
임금에게 상소(27500건)하거나 불복하는 경우는 억울(4501건),원통(3638건),삼복(삼심제;761건),오결(271건),남형(224건),격쟁(201건),격고(169건),신문고(138건),원왕(冤枉;88건),원억(54건),재심(40건),오심(9건)등이 있다.
이는 재판을 통해서도 억울하고 원통한 경우에는 마지막으로 특정한 사건에 한해서는 임금에게 직접 상소를하여,최고 통지자인자 최고법원장인 임금에게 하급심의 최종 불복이나 재심을 할 수 있는 상소제도로 쟁이나 북을 두들겨서 인권을 보호하는 제도와 3심제도도 엿볼 수 있다.
이상의 자료를 중심으로 실록을 더 세밀히 조사보완 하여, 조선왕조 500여년간의 재판이론과 재판정신과 재판문화를 정리해 나가기로 한다.그러나 위의 대강의 자료항목속에도 조선의 재판은 증거를 통한 신속하고 공정한 법대로의 재판을 위해 청탁과 뇌물의 배격과 지연시키는 비경제적이고 당사자에게 고통을 주는 신속하지 못한 재판을 인정하지 않으며,실체적진실 발견을 위한 법의 정신과,억울하고 원통한 재판 최종적으로 대법원장격인 임금에게 서면을 통하거나 북을 치거나 징을 쳐서 면전에서 구두로도 제소하여 구제를 받을 길을 두고 있는 바람직한 자랑스런 재판문화의 면임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조선왕조 500여년간에는 해방이후 50여년간 보다 10배나 긴 기간동안 적지 않는 명 재판관과 사건이 있을 것이다.실록에도 고급공무원이자 판검사의 사망기록(졸기)에는 법대로 청탁과 뇌물을 배제하고 청렴하면서 권력에 초연한 독립된 재판을 했다는 기사가 적지 않게 남아 있다.우리의 재판문화를 한층 더 높이기 위해 이런 명판관들의 행적의 일부라도 가끔 소개를 할 예정이다.조선의 명판관은 결코 권력과 돈에 흔들리거나 종속되거나 아부하지 않고, 존경스러운 애민철학.민본주의 법치주의 철학을 철저히 가지고 실천하셔서 후손들에게 귀감이 되고 국가 경쟁력에 힘이될 교훈적인 삶을 살면서 재판에 임한 분들이 적지 않다는 것은 자랑스런 우리 조상들이 남기신 훌륭한 재판법문화라고 생각해보고 싶다.
三)형벌이란
형벌이란 죄형법정주의에 의해 형법에 정한대로 형벌을 선언하기만 하면 법조인의 역할을 다한 것인지...조선의 우리 조상들인 최고법원장이었던 임금과 1.2심의 법원장이자 법관이었던 신하들은 과연 형벌은 무엇이라고 보았으며,형벌을 어떻게 집행하고 선언했는지 형벌의 정의를 통해서 먼저 간략히 살펴보기로 한다.
1)임금
임금은 다음과 같이 형벌이란
가)신중해야 하며:나)부득이 한 경우에 쓰는 것이며;다)형벌이 없어지기 위한 목적에서 형벌을 부과하고,라)형벌이란 다만 정치의 보조수단일 뿐이며,마)사회의 아름다운 삶을 위해,즉 교화를 돕는 방편으로 생각하였다.
가)신중해야 한다.
(1)세종 12년 임금이 대언 윤수(尹粹)에게 말하기를, 내가 항상 생각하는데, 형벌은 조심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니, 사람의 생명이 여기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이를 가볍게 여기면 되겠느냐..., 형벌이란 사람마다 고통스럽게 여기는 것이다. 죽은 사람은 다시 살아날 수 없으며, 형을 받은 자는 다시 벗어날 수 없다. 고 하였다.
(2)세종12년 회덕 현감 박성치 등이 사조하니 인견하다 》회덕 현감(懷德縣監) 박성치(朴成治)․문의 현령(文義縣令) 조오(趙헓)․해미 현감(海美縣監) 김경(金俓)이 사조(辭朝)하니, 인견하고 말하기를,지금 서울에 어린 아이들이 살 곳을 잃고 굶주려 지쳐 있다. 지방 고을엔들 어찌 이런 일이 없겠느냐. 그대들은 가서 구제하라. 또한 형벌이란 지중(至重)한 일이니 삼가서 부디 노여움으로 인한 지나친 형벌을 행하지 말라. 하였다.
(3)영조 원년 함경 감사 이의만의 본도의 사록에 대한 장문을 형조에 내려 품처케 하다 》 임금이 하교(下敎)하기를, 형벌이란 왕정(王政)에 있어 중요한 것이다. 그러므로 《서경(書經)》 순전(舜典)에 이르기를, 공경하고 신중히 하여 형벌을 신중하게 다루어야 한다. 하였고, 고요(皐陶)가 순(舜)임금의 덕(德)을 찬양하여 말하기를, 죄가 의심스러우면 오로지 가볍게 처벌하고, 무고한 자를 죽이기보다는 차라리 법도를 잃어 실패하려 하셨다. 하였으니, 삼대(三代) 때에 형벌을 신중하게 다룬 것을 통하여 백성의 목숨을 중하게 여겼음을 알 수가 있다.
위의 내용은 생명이 달려있고 고통스러우며 너무 소중한 것이므로 감정으로나 괘심죄등으로 지나친 형벌을 삼가고,서경의 말을 인용하고 의심스러울 때에는 가볍게 처벌하고 법을 어겼다는 말을 들을지라도 결코 억울하게 사람이 죽도록 하지 않는다는 정신을 이어 받고 있다.그리고 신중한 형벌의 집행은 국민들의 소중한 생명을 보호하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없을 수 없는 부득이한 일이다.
(1)세종 26년에 정사를 보았다. 임금이 좌우에게 이르기를,지금 도적이 많이 다닌다 하니, 이것은 내가 백성의 살림살이를 마련해 주지 못해서, 그들이 살 곳을 잃은 때문이니 내 심히 부끄럽게 여기노라. 대저 형벌이란 없을 수도 없는 것이고, 형벌을 실행하는 것도 또한 부득이한 일인지라, 우리 나라에서 형벌을 실행함에는 일체 법조문에 의해서 하는데, 사람 하나를 죽이는 것도 오히려 마음으로 차마 못하겠거든, 하물며, 법조문을 고쳐 가면서 많은 사람을 죽일 수가 있겠는가. 무거운 형벌로 징계하는 것은 마땅히 의논할 일이다.
(2)부득이 한 경우에 사용: 효종 2년에 상이 주강에 나아가 《서전》의 함유일덕편을 강하였다. 강이 끝나자 상이 지의금(知義禁) 박서(朴?)에게 일렀다. 형벌이란 부득이 쓰는 것이다. 형벌을 써서는 안 될 경우에는 형벌을 애초에 쓰지 않아야 할 것이고, 이미 형벌을 쓰게 했을 때는 한갓 형식만을 일삼아서는 안 될 것이다. 그 중에 장죄(贓罪)를 지은 관리는 사형시켜야 하는데 형장(刑杖)이 이처럼 가볍기 때문에 정범자(正犯者)에게 자복을 받아낼 수 없고 억울한 자도 해명할 도리가 없다.
위에서 세종과 효종임금은 우리들에게 죄형법정주의와 생명과 인권존중의 정신을 주장하며,함부로 형벌을 쓰지말되,부득히 하여 쓸 경우에는 공직자의 수뢰죄인 경우라면 법대로 사형을 시켜야 한다면 철저히 시킨다면 범죄를 예방할 수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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