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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기록문화와 종이에 관한 법이론과 정신(2);조선 초기의 종이의 종류.품질및 종이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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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재문 작성일13-06-13 12:24 조회839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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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한국법문화의 국제경쟁력 향상을 위한 한국전통법문화의 강좌 한국전통법의 정신과 법체계(86)
-조선왕조의 기록문화와 종이에 관한 법이론과 정신(2);조선 초기의 종이의 종류.품질및 종이로 만든 물건의 종류.
동국대학교경 주캠퍼스 법정대 법학과 교수 김  재  문   
  (http://wwwk.dongguk.ac.kr/~kj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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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서설
참으로 더운 열대야를 많이 보내며 더운 가운데, 능률이 오르지만 의지적으로 참아가면서...지난호에 조선왕조의 기록문화의 첫 번째로 종이의 제조를 중심으로 애민사상등 개괄적인 내용을 소개해 드렸고, 이번호에는 계속해서 조선왕조 500여년간의 종이에 관한 기록을 두 번째로 조선왕조 초기 100년간의 종이의 종류및 종이로 만든 물건의 종류등을 소개하고 나머지 부분은 추가로 2-3회 더 소개해 드려야 3,500쪽의 기록을 대충 요약해 소개할 수 있을 것 같다.

이제 9월부터는 좀 선선해 지면 글쓰기가 한결 수월할 것 같지만 자료의 양이 너무 많아 힘의 한계를 느끼면서 반드시 우리가 알아야 할 중요한 민족문화,자랑스런 민족전통문화이며,계승발전.창달시켜야할 전통문화이자 전통법문화를 전해주는 종이문화이므로 의지를 굽히지 않고 해 보기로 기약한다.

최근의 신문지상이나 방송매체를 통해서 알려지는 외적인 외교마찰과 긴장등과 국내적으로는 힘빠지는 정책미스.미국과의 FTA협상의 찬반대립.전작권에 대한 찬반대립및 고위 공직자와 고소득 전문가들의 불법적인 비난받을 이기적인 배신행위.근로자들의 막무가내식의 집단 이기적인 민심을 떠나가는 파업.교육자들의 일부집단의 이기적이며, 비교육적인 자세와 아파트 50-60평이 수십억씩 뛰어서 이런 아파트를 가질려는 투기적인 수 천만명의 국민들의 투기꾼적인 생각들과 전국의 가난한 사람들을 힘빠지게 하는 사행성 도박게임등등의 비판등은 어느 정권에서나 있을 수 있는 실수중의 일부겠지만...

좀더 정성을 다해,조상들이 살아오던 ,백성들을 하늘같이 생각하는 민천,애민사상.민본사상.성경(매사에 정성을 다하고 상대방.백성을 존경하는 마음)의 정신.효제충신예의염치의 문화를 알고 실천하는 삶이 이어져 왔다면...훨씬 더 나라일들을 잘 할 수 있었을 일도 소홀히 하여,결과적으로 부정적인 면이 확산되고 ,어떤 분야는 정치가들이 오히려 민심을 저바리고 자신들의 사리사욕이나 당리 당략이나 정치권력을 쥐거나 빼앗기지 않을려는 이기심이나,민의를 떠난 정치를 고집스럽게 하거나, 비판과 반대를 위한 침소봉대한 언행으로 민심을 불안하게 하는 행태.내 생각이 가장 소중하고 남의, 상대방의, 반대편의 생각은 무시하고 집단행동을 서슴치 않는 비민주적인 언행등이 있다면...

이런 언행들은 민심이 천심이라는 조상들의 준엄한 말씀을 듣기전에 정치가 공직자들은 조심하고 두려워하고 정성을 다해야 하지 않겠는지...소귀에 경읽기라고 아무리 알려주어도 실천을 못하는 정치가 공직자들에게는 필자는 더 기대하고 싶은 희망을 접어야 겠다.백성들을 속이며,돈에, 감투에, 권력에, 자만심에, 이기심에, 눈먼 사람들이 백성들의 삶을 위해 희생.봉사를 해 줄 것이라고 기대한다는 것은 기왓장을 갈아서 거울을 만들어 달라고 하는 것와 다름없는 어리석은  생각이 아니겠는지...그러나 5천만 가까운 백성들 중에 정말 백성을 위해 희생하고, 봉사하고, 노력하고,조심하고, 두려워하고,정성을 다해 애쓰는 분들이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면서, 조상들의 자랑스런 기록문화의 바탕이 되는 조선왕조의 종이문화와 종이에 관한 법문화를 소개하기로 해 본다.

二.종이의 종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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四.여어

서장에는 앞에서 소개한 조선왕조 초기 100년간의 종이를 통한 우리조상들의 자랑스런 문화를 알기위해 실록을 두 번째로 소개해 드렸다(약 A4용지 약500쪽의 분량을 앞축한 것임).앞으로 3천쪽남짓 더 남아 있으므로 더 소개를 할 예정이다.
이상에 살펴본 실록의 기록을 요약한 내용을 다시한번 종합적으로 소개를 해 보면,


二.조선왕조 초기의 종이의 종류는 ,

1).표문과 전문외에는 공사의 서장에는 표지(表紙)의 사용을 금하며.:2).백지(白紙)100장을일본 국왕에게 보내는 선물중에 포함시키며;3).세백지(細白紙)는-티가 없이 깨끗하고 윤이 나서 곱고 좋은 세백지(細白紙)였으며;4).순백후지(純白厚紙)-3천장을 중국에 바핀다5).3도에 진헌할 중폭지(中幅紙)를 만들게 하고;

6).종이의 용도에 따라;표지.주지 장지.후지가 있고:7).상주지(常奏紙)는 서로 상통할 때 올리는 소장에 사용하며;8).전(表箋)을 쓰는 종이를‘표지(表紙)’라 하고9).장지(狀紙)는 서장(書狀)을 쓰는 것이나-지금은 전국에서 공사에 모두 두꺼운 종이[厚紙]를 쓰므로, 제조할 즈음에 백성들이 그 폐해를 받으며.10).중국황제에게 순백지(純白紙)8천장을 바친다.11).공용지차(公用紙箚)로 자문(咨文)을 받으며,12).원초조지(原抄造紙)의 장인이 만든 순백지 1만장을 골라서 중국에 보낸다.13).황지(黃紙)에 고명을 써서 분황제례를 함하고;14).요동사람 신득재가 화지(華紙)를 만들어 바치므로 《17사(十七史)》를 인쇄하고  득재에게 쌀 면포등을 포상한다. 15).화초는 모두 채지(綵紙)를 사용하도록 명하며,16).경지(經紙) 260속을 해인사로 보내어 대장경을 인쇄하고 승려 200명에게 삭료을 지금하라는 왕명을 내린다.:17).상지(常紙)는 각도의 선물포장에 두꺼운 종이를 쓰는 것은 낭비이므로 상지(常紙)반폭을 쓰는 것이 마땅하며-임금이 보는 것이 아니라 특히 사찰의 승려가 보는 것이라면 더욱 그렇다며 상지사용으로 종이 절약을 장려한다.;18).박지(薄紙)는-(官敎)의 용지(用紙)가 지나치게 두터우므로 얇은 종이를 사용하도록 건의하고;

19).대대로 지켜온 물건이므로 후지(厚紙)를 사용해야 된다고 하며;20).어람 홀기(御覽笏記)에는 홍릉의(紅綾衣)대신-능화지(綾花紙)로 대체하라는 왕명이 내린다.;21).옛날에 도벽지(塗壁紙)를 파고지(破古紙)라 함은 매우 가소로우며;22).저화지(楮貨紙)는 전날에 의정부에 상납한 각도의 휴지로 만들도록 하여, 지방에서 종이 만드는 폐단을 줄이도록 한다.;23).소저화(小楮貨)를 만드는 것의 편리함과 불편함(便否)을 승정원에 왕복하며 논하며;24).두꺼운 종이[厚紙]는-사신을 전별할 때 선물로 주고;25).부지(賻紙)70권을-장례에 하사한다. ;

25-1).순백후지(純白厚紙).순백차후지(純白次厚紙)를 중국에 바치며 ;26).각도 수령과 감사 절제사 반인 검율 진무및 진병마사.각포 만호 계수관 가지 후지(厚紙)룰 사용하여 낭비되므로 대소사신및 계수관외에는 후지사용을 금한다.;27).인경지(印經紙)1만장을 바쳤기에 사리를 명나라 황제에게 진상한다.;28).사신 황엄이 표전지(表箋紙)20장을 청구해 서 내려준다.;29).국가에서 재를 올릴때 쓰는 종이는 주지(奏紙:소지종이)50권으로 정하며; 30).사신이 흰 주지[白奏紙]와 유지(油紙)등을 청구하고;31).사신이 작은 인조비단 420필로 후지(厚紙)와 교환하자고 청함;을 들어준다.32).태평관을 지나는 각 고을과 각참의 청당과 방의 도배는 모두 주지(奏紙)로 하고,창문에는 하급품의 도련지(擣鍊紙)를 사용하며;

33).강목속편을 인쇄하고자 경상도에서 책지(冊紙)1천5백권.전라도에서 2천5백권을 준비하되-국고의 쌀로 민간의 닥나무와 교환하여 종이를 만들어 바치도록하며;34).광장지(廣狀紙)는-주자소에서 책인쇄용지로 충청전라도의 양곡으로 백저를 교환후 제조하여 상납토록 한다;35).표지(表紙)10권을-사신들에게 주며:36).청지(靑紙)에 금자로 쓴 화엄경1부등을 일본사신에세 선물로 보내며;37).사색 책지(四色冊紙;대.솔잎.쑥.창포대를 썩어 만든 4가지 색깔의 책찍은 종이)4백6첩을 주자소에 내려보내며;38).후백지(厚白紙)는-대행 황제를 위해 올리는 향올리는 제문은-길고 넓은 후백지에 표전을 봉하도록 명하며:39).홍지(紅紙)는-분향례를  거행하는 데 사용하고;40).황지(黃紙)에 사신이 외인을 물리치고 조서를 받들고 속히 기록하도록 하고: 41).호절지(蒿節紙).송엽지(松葉紙)를 조지서에서 새로만들어 바치자 주자소에 내려준다;42).병풍지(屛風紙)16장등은 신발을 만들기 위해-중국사신의  요청에 지급하고 ;43).진상하는 책가위[冊衣;책표지]는 특별한 왕명이 없으면 모두 흰 능화지(綾花紙)를 쓰도록하고;

44).상용지(常用紙)를-사신에게 40권.30권을 각각 주도록 명한다. ;45).휴지(休紙)는-각도에서 군기감에 납부하는  재고가 많으므로 경기도에서 바치는  2백30권을 감량하도록 건의 하고;46).도련지(擣鍊紙)10권을-중국사신이 경문(經文)을 베낄때 요청하여 지급한다;47).내고에 있는 왜지(倭紙)9백59첩을 내어 주자소에서 강목통감을 인쇄케 하고;48).홍후지(紅厚紙)30장을-중국사신이 김만이 요구하므로 내어 준다;49).유후지(油厚紙)수 십장은 중국사신 김만이 요구하므로 주었다;50).대후지(大厚紙)100장을-중국사신이 요구하여 허락함하고;51).황고지(黃藁紙)로 금강경을 사경할려고 중국사신 창성이 청구하므로 주고: 52).인경지(印經紙)를 중국사신 창성이 청구하므로 주었다;

53).상지(常紙).백주지(白奏紙).청박지(靑薄紙)등을 중국사신 창성이 능엄경30벌을 장정하기 위해 청구하므로 주며;54).황색 박지(薄紙)는-중국의 황제가 몽고인에게 보내는 주본의 종이로 황색의 박지에 기록하였다.;55).방지(榜紙)를 못주는 이유는 - 물품의 요구를 청종(聽從)하지 말라는 황제의 칙유(勅諭)가 있기 때문이라며 거절함하고:56).단유지(單油紙)의 용도는-생육과 각종 떡과 건어포(乾魚脯)는 길고 커서 단유지로 뚜껑과 보자기 위를 덮었다가 제향시 철거하도록 건의 한다:57).방지(榜紙)30권을-중국사신 성이 종이가 보물도 아닌데 어찌 그렇게 인색한가라고 하자-20권만 주자거나, 주어서는 안된다고 상반된 의논이 있었다; 58).유지(油紙)는 중국에 보내는 각색의 방물을 포장할 때에- 보자기 마다 각각 유지로 싸도록 하고;59).지방에 나가는 공직자들이 왕에게 보고하는 주본의  표지에 능화지(綾花紙)사용은 폐단이 있어 금지하는 왕명이 내리며;

60).마지(麻紙)는중국 송나라때 조공을 바치자 마지로 답사하였고:61).백주지는 과거응시생의 시험답안지로 사용하고,신임당참자와 시임감찰,삼관의 성중관이 처음 알현하는 명함지(名銜紙)는 백색 상주지(白色常奏紙)를 사용하고-공물지인 표지.도련지.도련한 백주지는 감하고 백주지로 대용하로독 한다;62).주지(奏紙)30권을 몽고사신에게 하사하며;

63).활백지(闊白紙)등을 -중국사신이 청하고;세종  24년(1442) 사신이 이르는 말이 ‘중국에 돌아가면 선물할 곳이 많사오니, 청하건대, 대화석(大花席)·중화석(中花席)·활백지(闊白紙)·석등잔·해달피(海獺皮) 등을 줍시사.’고 하더이다.”하면서, 물건 목록을 써 올리니, 임금이 다 보고,“내가 이미 알았노라.”하였다.64).공사지(公事紙)명칭으로 사사로이 염분마다 소금을 취하고;65).휴지(休紙)를 주현에서 사섬서에 바쳐서 저화의 종이를 만들며; 66).창호지(窓戶紙)는-흥천사.흥덕사에 3년에 한번씩 알맞게 고쳐 배치하되-국고용도 모자라므로 두 사찰 에서 만든것을 각각 사용하도록 한다:

67).책지(冊紙)를 각도에서 봄.가을에 바치나 쉽지않고 농사에 방해되고 업을 폐하는 탄식이 있으므로 정지하기를 건의 하며68).승정원과 조지소의 표전지(表箋紙)등을 왕비를 위한 불경을 만들기 위해 궐내에 들여옴오며:70).예조의 진봉지(進奉紙)가 있고;71).경지(經紙)는-왕비(王妃)를 위하여 불경(佛經)을 쓰기위해 조지소(造紙所)에서 표전지보다 품질이 좋아 매우 어렵고 비용이 적지 않게 듬들며:72).중국의 선비를 뽑는 숫자는,황방(黃榜)의 1백 인은 황지(黃紙)에.백방(白榜)의 1백 인은 백지(白紙)에 이름을 써서 외벽(外壁)에 걸어두고 이를 주군(州郡)의 교수(敎授)에 임용함하며;

73).중주화(中走火) 2천 개, 소발화 2천 6백 개, 소주화 7천 개를 만들 재료인 표지100권과 약심지(藥心紙)50권을 내려보내고  무기를 만들라고  하며;74).문과전시에서 응시자가 시지(試紙;과거 시험지)를 기일 전 1일에  시지(試紙)를  예조에 바치면 예조에서 계문(啓聞)하고 어보(御寶)를 찍어 그날에 돌려주고;75).경상도의 .종이는 ;세종 150권 지리지에 지차(紙箚)【중국에 바치는 표지(表紙)와 나라에서 쓰는 표지, 도련지(擣鍊紙)·안지(眼紙)·백주지(白奏紙)·상주지(常奏紙)·장지(狀紙) 등이 고.】...약재에는...파고지(破古紙)·전라도의 종이는:갑의지(甲衣紙)·안지(眼紙)·세화지(歲畫紙)·백주지(白奏紙)·화약지(火藥紙)·장지(狀紙)·상주지(常奏紙)·유둔지(油芚紙)·유둔(油芚).】남원 도호부는-표전지(表箋紙)·전라도각색 종이는;전라도 표지(表紙)·도련지(擣鍊紙)·중폭지(中幅紙)·상표지(常表紙)【표전지(表箋紙)·자문지(咨文紙)·부본단자지(副本單子紙)·주본지(奏本紙)·피봉지(皮封紙)·서계지(書契紙)·축문지(祝文紙)가 있고,·전주부 종이는;표전(表箋)·주본(奏本)·부본(副本)·자문(咨文)·서계(書契) 등의 종이 및 표지(表紙)·도련지(擣鍊紙)·백주지(白奏紙)·유둔(油芚)·세화(歲畫)·안지(眼紙)가 있다.76).표문지(表文紙)를 쥐고 중국황제가 말하기를, ‘어떻게 이처럼 단단하고 질기게 만들 수가 있는가?’;77).경상.전라.충청.강원도의 각색 책지(冊紙)가 도합 1만4천권;

78).자문(咨文), 표·전(表箋)의 종이의 모양지(模樣紙)1장을 주니-참고로 보고 햇볕에 쪼여 결백하게,다듬잇돌에 다듬어 정숙하게 하여 1권씩 경상.전라도에서 만들어 올리도록하며;79).각색 책지(冊紙)는 경상도에서 모절지.유목지.전라도에서 호정지.유목지.충청도에서 마골지.강원도에서 유목지로하고, 나머지는 도무 감면하라:

80).인경지(印經紙)를 조지소(造紙所)에서 만드는 것을 감독하고;81).공지(貢紙)인 표전지(表箋紙)·자문지(咨文紙)를 승정원에 바치는데- 하삼도 도회소에서 만들때 편리여부를 시험함하고:82).조지소혁파로 공급부족이 발생하여-원상회복이 더 편리함을 건의한다;83).지질은 -공지(貢紙)납입시 작은 흠이 있어도 모두 물리쳐 되롤려보내므로 비용은 백성들이 고혈에서 나오는 폐단이 크고:84).연폭유지(連幅油紙)3장등을 주니 -;중국사신 경화는 “ 유지(油紙)는 방습(防濕)하는 물건이므로 없을 수 없으나 옷과 베는 바로 뇌물이니, 이를 받는 것은 의(義)가 아니다”라고 하며:85).잡초지(雜草紙)를-이제부터는 부득이 닥나무 종이를 써야 할 경우를 제외하고 상시 쓰는 종이는 다 잡초지(雜草紙)를 사용하고;

86).《진서(陳書)》를 인쇄할 종이를 -본도와 전라도·충청도에서 각각 종이와 먹을 수송하여 진주(晉州)의 새로 새긴 판자(板子)를 사용하여 인출(印出)케 하고 경상도는 별도로 지묵을 준비하여 인출하여 올려보내도록한다 ;87).백마골지(白麻骨紙)2천폭을-진감등 사신에게 나누어 주고:진감 등이 태평관에 돌아가니, 임금이 명하여 황서 모필(黃鼠毛筆) 1백 40매(枚)와 용매(龍煤)10홀(笏)과 동로구 자석현(銅鑪具紫石硯) 2벌과 백마골지(白麻骨紙) 2천 폭(幅)과 자소주(紫燒酒) 2병[壜]과 청귤(靑橘) 2궤(櫃)를 나누어 주게 하였다.88).잡초지(雜草紙)를 사용하는 것은 민폐(民弊)를 없애려는 것으로-금후로는 후지(厚紙)를 사용하지 말고, 또 민심(民心)의 좋아하고 싫어하는 편부(便否)를 상세히 계달(啓達)하라고 명하며;89).잡초지(雜草紙)는 얻기가 쉽고- 본래 폐단을 제거하기 위하여 - 종이를 제조할 때에 여회(蠣灰)를 쓰지 않기 때문이라-정교하고 두툼하게 할 필요는 없고, 쉽게 제조하도록 힘써 많이 쓰이도록 기하라를 왕명이 내린다.” ;

90).잡초지를 사용하지 않고 닥지[楮紙]의 사용을 금지하는 법을 집행하지 않는 사헌부에-위반자는  탄핵하라는 왕명이 있고;91).환지(還紙;재생종이)는 그 질(質)이 거칠고 연약(軟弱)하여 쓰자마자 곧 떨어지니, 문적(文籍)을 오래 전(傳)할 수가 없고 공문서와 관청의 창벽지가 다 환지로 되니 환지제조를 일체금지한다:.92).희고 두꺼운 닥지[白厚楮紙]를 황제가 구하므로 조지소에서 만들도록 하며; 93).보통 쓰는 황지(黃紙)는 눈죽엽(嫩竹葉)과 상피(桑皮)를 섞어서 만들며, 조칙(詔勅)을 쓰는 백지(白紙)는 순전히 상피(桑皮)만을 사용하고;94).오색지(五色紙는-어전(御前)에 5색지(五色紙)의 소기(小旗)를 둔다;95).백지(白紙)는-투구[兜鍪] 위에다 백지(白紙)에 ‘관자를 써서 구별하니 적이 본따므로 다시-검은 달’을 그려 붙여서 표(標)로 삼게 한다;96).세금을 거둘때 주지(注紙)1권을  남원관리가 추가로 바친다는데 이게 무슨 뜻입니까? ;

97).잡초지(雜草紙)는 나라의 모든 문서에 사용하므로-쉽게 헤어져 뒤에 참고할 수 없으므로 -오랫동안 전하여 참고할 만한 문서는 저지(楮紙)를 쓰게 한다:98).표지(表紙) 3권(卷), 백후 도련지(白厚擣鍊紙) 5권, 백주지(白注紙) 50권, 책지(冊紙) 50권을-중국사신들에게 차등있게 하사하며;99).반지(半紙)의 글을 소매에서 꺼내어 보이면서-이 글을 옮겨적어 창호에 붙이고 읽고 외우면 액을 면할수 있다고 한다;100).군기시(軍器寺)의 소약선지(小藥線紙)는 2년으로 기한하고 대약선지(大藥線紙)는 3년으로 기한하고 휴지(休紙)·무명석(無名石)은 4년으로 기한한다;101).실록을 인출한 납지장(蠟紙匠) 박복동(朴福同) 등 4인에게는 각각 정포(正布) 1필을 지급(支給)한다.102).계본지(啓本紙)와 공사하지(公事下紙)를 주며;103).청사지(靑詞紙;도교(道敎)의 제사에 그 문장을 쓰는 종이로서, 푸른 종이에 붉은 글씨로 쓰는데, 청등지(靑藤紙)라고도 함.)가 있고

104).서장지(書狀紙)는 관청에서 쓸수 없으며:105).상품 백후지(上品白厚紙)5권.중품 백후지(中品白厚紙)5권을 중국사신에게 주니 직접 점검한다 ; 106).중국에 해마다 보내는 공물중에...상품 백색 후지(上品白色厚紙) 5권, 중품 백색 후지(中品白色厚紙)5권 이 있고;107).대내의 당지(唐紙)를 가져와 우의정이 글을 써서 바치도록 하며;108).쇄금지(灑金紙) 60장을 중국조정에서 얻었기에 왕에게 바친다;109).납지(蠟紙)에 모사(模寫)하여 정차 도(圖)를 만들어 후세에 길이 전하려고 하였음고;109-1)곡청이 온후하고 글을 아니 필묵과 표전지(表箋紙)등을 주어 기쁘게 해 주도록 건의하며;110).백후지(白厚紙)는-흉년가믐이 더욱 심하므로-군기감(軍器監)의 방화(放火)에 쓰이는 백후지(白厚紙)는 저축한  여유가 있으므로, 2, 3년만 견감하기를 청하며;111).자지(刺紙;명함 종이)는-두껍고 넓고 큰 것이라야 되므로, 대개 무명 한 필로 겨우 석 장을 바꾸므로, 그 자지의 비용이 또한 이루 말할 수 없습으며;

112).상지(常紙)는 문서를 만들어 장기간 보존하고 용도가 다양하므로 -그 길이는 한 자에 차지 아니하고 그 너비는 대여섯 치에 지나지 아니하며 그 얇기도 이에 맞추었으며;113).사헌부에 풍저창에서 품질이 나쁜 계목지(啓目紙)를 보내 와서 힐책하며 매질을 하니 풍저창에서 언사가 매우 무례함을 보고하며;114).비옷의 틈으로 의복이 모두 젖었으므로-표문 전문은 납후지(蠟厚紙)로 전대를 만들어 넣도록 건의한다.;115).과거 응시자와 지방의 군인이 될 자는 -모두 유향회의의 보거(保擧;보증추천)를 거쳐 수형이 첩지(牒紙;증서)를 주는 규칙을 만들면 행실과 풍속이 후하게 될것을 건의한다.;116). 인(印)이 찍힌 공문(公文)과 공지(空紙)· 필묵(筆墨)을 가지고 돌아와서 신(臣)의 서계(書契)를 박촉(迫促)하여 보내었다고 한다.


2.처벌;종이를 만들고 사용함에 있어서 범죄행위를 한 경우를 보면,1).숙직시에-기생을 불러 비판지(批判紙)를 임의로 주었기에 귀양을 보내며;2).상주지(常奏紙)·장지(狀紙)는-관첩이나 공사의 서장에 사용.어기면 처벌하고;3).본조(本朝)의 종이용도및 닥나무 강제재배및 위반자를 처벌하고;용도는 광범하여-공사의 보고서.대소상례장례및 닥나무화폐제조는 물론-닥밭은 백에 한둘도 없고-그것도 관가에서 탈취하므로- 닥나무를 베어버리는 한탄한일-중국에서는 좋다고 구하므로 -8도에 대호는200주-중하는 100주-소호는 50주를 내년 2월까지 심고 감사는 위법자에게 닥나무화폐로 벌금을 받고-수령도 처벌하되 이미 닥밭이 있는자는 제외하도록 건의한다:

4).장생전의  벽을 바를 때 표지(表紙)14권을 소모하고 잃었기에  처벌을 건의하며 ;5).속지(贖紙)를 징수함은-법을 집행하는 관리가 자기는 태만하면서 남을 어거할 수는 없다고 하며; 6).사사로 닥나무 종이[楮紙]로 저화를 찍어 사적으로 사용(술음식.연회비.소를 잡아 마심)에 처벌을 건의하며;7).도련지(擣練紙)는-북경가는 사신에게 3권이상 주면 처벌하고 ;8).상품(上品) 도련지(擣鍊紙)4장을 임의로 준 죄는 곤장80대 시행하며9).고지(藁紙)2권을 -인순부 판관(仁順府判官) 이균(李均)에게 함부로 주었으니 처벌을 하며;10).조지 전 표자문지(造紙前表咨文紙)6장을 사용한죄는 장 100유 3천리에 오른쪽 팔 위에  ‘도관물(盜官物)’의 3자(字)를 자자(刺字)하고, 녹안(錄案) 토록 건의한다 ;


조선왕조 초기에 종이로 만든 물건으로 기름종이와 일반 종이(한지등)으로 만든것이 있고1.유지(油紙);기름종이로 만든 물건은 1).유지(油紙) 안롱(鞍籠);2).유지갑(油紙匣);3).유지개장(油紙蓋張);4).유지모(油紙帽);외에 5).유지석(油紙席)은 가).명나라 사신에게 유지석1개를 주고:나).이계전(李季甸)의 어미가 죽으니, 명하여 쌀·콩 아울러 30석과 종이 1백 권..유지석(油紙席) 3부를  우효강(禹孝剛)에게는 종이 1백 권, 유지석 3부등을 부의하며;6).유지우삼(油紙雨衫); 7).유지천(油紙韉) 등도 있다.종이로 만든 물건의 종류는 1).명함(名銜);2).종이 갑옷[紙甲]이 있으며 이 중에 바).지포 엄심(紙布揜心;종이 천으로 만든 갑옷의 일종)은 누구나 만들 수 있므로 수량을 정하고 견고하게 예리하게 만들도록 영의정이 건의하며:

3).종이등[紙燈];나).지등(紙燈).노등(路燈)이 있고 4).지대(紙袋)는 육조 한성부 사간원에서 모든 긴급한 문서를 방울을 달아 보내던 것을 몰라서 다만 종이 주머니에 넣고 보내고:5).지방(紙牓)은 제사지낼 때 신위를 만들어 여기에 표기한 후 마치면 태우도록 하며:6).지본주척(紙本周尺)은 신주를 만드는 종이로 만든 주척자를 얻고;7).지석(紙席)등은 -장흥고에서 관장하며 ;8).저화에는 가).세를 저화로 받는 것이 마땅하지만...종이는 받아들이기 불편하므로 동전을 주조하여 보급시행하도록 건의하며,나).소저화(小楮貨)화의 편부를 문의하고;9).지전(紙錢) ;은 가)임금의 사제례에 지전등이 대단히 많으며:다).중국사신이 불공에 쓸 지전으로 황.백색 각 5백장을 청구하여 내려 주고:

10).지촉(紙燭)은 ;가).민무휼의 상례에 지촉등을 내려줌주며;나).장례에 지촉등을 내려준다:11).지침(紙針)은 임금의 종기가 난 곳의 농즙이 나와서 지침이 저절로 뽑혀 통증이 사라져 기뻐하고;12).지폐(紙幣)는;중국 황제가 화천군에게 고생했다며 하사품중에 지폐10 덩이를 내려주었고:13).지화(紙花)는;가).연향때 진상하는 외에는 지화를 사용하라는 왕명이 내리며:나).신료들의 연회하는 과자상에 지화를 사용하고:14).지환(紙丸)은 태조가 지환을 쌓아놓은 벼위에 화살로 모두 쏘아 맞히며;5).지의(紙衣)는;추운 육진에 지의(종이 옷)를 보내나, 모자라므로 공물을 면제하고 개가죽 옷을 만들어 보내도록 건의한다


이상으로 조선왕조의 초기 성종  22년(1490)까지 조선왕조가 세워진 뒤 약 100년간 종이를 만들고 사용한 기록문화나 문물을 살펴본바에 의하면 위와 같은 다양한 종류가 있었음을 알 수 있었고,또 소중한 종이를 낭비하거나 위법하게 사용한 경우에는 처벌하는 경우도 살펴보았다.그리고 종이로 만드는 물건은 무기인 갑옷에서 겨울의 추위를 이기는 겨울옷으로, 군사용 방한복으로, 그리고 의료용및 다양한 생활도구를 만드는데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조선왕조 500여년간의 종이의 종류를 실록을 통해서 다 소개할려면 앞으로 2-3회 더 연재해야할 정도로 방대한 자료가 있다.

우선 위에서 살펴본바의 종이의 종류와 조선왕조 500여년간의 자료를 통한 종이의 종합적인 종류를 소개하기 전에 조선왕조  초기 약100년간의  종이의 종류를 살펴본바의 내용을 대체적으로 크게 분류해 본다면, 종이의 종류는 흰백지(백주지 활백지.상주지 상지등..)와 색지(오색지 청박지 청사지 청지 각색책지 홍지.홍주지 황백지 황색박지 황고지 황지등)이 있고,

두께에 따라 두꺼운 종이(厚紙: 순백후지 순백차후지 백후저지.極厚紙)와 얇은 종이 박지(황색.청색박지등)로 나눌수가 있고 품지에 따라 상품지(상품도련지) 하품지(잡초지.하들지.고지태지.피지.송엽지.고절지.환지.황고지.휴지)등의 명칭이 있었다.

이외에 기름종이(油紙)와 외국종이인 당지(唐紙).왜지(倭紙)가 있었고. 폭에 따라 소폭지,.중폭지.대폭지가 있었고,책을 인쇄하기 위한 책지 인경지가 있었고 그 외에 장지.저화지.공지(貢紙)상용지.상주지.상지.등의 명칭이 있고,경국대전의 각종의 문서를 작성하는 문서의 종류에 따른 명칭도 위의 실록에서 살펴볼 수 있었다.


천년도 넘게 전해지는 한지(닥나무종이.楮紙)가 없었으면,오늘날까지 조선왕조의  실록도 경국대전도 팔만대장경도 각종의 공문서와 사문서와 온갖 정치.입법.사법.행정에 관한 고서.고문서나 솟장이나 일기나 갖은 개인의 사적인 기록이 지금껏 전해져 내려올 수 없었을 것이다.조상들의 자랑스런, 천년도 넘게 전해지는 종이에 기록하던 문화가 경국대전이하 각종의 법령으로 보존되고 조상들의 힘들고 고된 노동력과 기술로 500여년의 자료가 존재하고 앞으로도 500년도 넘게 더 존재할 것이라고 자랑스럽게 생각해 본다.


때문에 종이에 관한 기술.종류.용도.종이로 만든 물건및 종이를 사용한 문화는 우리 민족의 삶이며 법이며 자랑스런 긍지이다.앞으로 더 시간을 할애해서 A4용지 3,500쪽 이상의 종이에 관한 기록을 다 소개하게 되기를 다짐하면서 ...

이땅의 정치가, 공직자 ,교육자 ,근로자 ,기업가, 재태크에 골몰하시는 분들은 좀더 우리 공동체의 국제경쟁력향상과 어려운 백성들과 이웃을 생각하셔서 자신의 이익이 최고이고 집단이익을 위해 못하는 일이 없다고 생각하시지 마시고 ,조금은 사양하시고 이웃을 상대를 백성들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 덜 부끄러운 자랑스런 문화를 천년도 넘게 보존될 언행이나 역할을 해 주시기를 간절히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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