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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기록문화와 종이에 관한 법이론과 정신(4);조선 초기(명종-경종)의 종이와 문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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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재문 작성일13-06-13 16:50 조회1,75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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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한국법문화의 국제경쟁력 향상을 위한 한국전통법문화의 강좌 한국전통법의 정신과 법체계(88)
-조선왕조의 기록문화와 종이에 관한 법이론과 정신(4);조선 초기(명종-경종)의 종이와 문서에 관한  애민사상및 종이의 종류및 종이로 만든 물건의 종류등
동국대학교경 주캠퍼스 법정대 법학과 교수 김  재  문   
 (http://wwwk.dongguk.ac.kr/~kj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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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서설
이번호에서도 지난호에 계속해서 조선왕조의 문서에 관한 법의 정신과 이론중에 문서나 종이문화에 관한 애민사상은 실록기사를 명종대에서 경종대까지만 소개하고 종이에 관한 기록은 명종대에서 선조대까지만 소개하고 나머지는 다음호에 넘기기로 한다.

기록의 양은 엄청난데 연구와 강의에 꽉 짜여진 일정에 집안일도 생겨서 마음껏 글을 잘 쓰기가 시간이 부족하다.그러나 이 정도라도 소개해 드려서 조선왕조의 문서에 관한 법이론과 법의 정신을 정리할 수 있다는 것도 누군가는 언젠가는 해 놓아야 하는 작업이라 미흡하지만 보완은 차후로 미루더라도 우선 대강만이라도 소개하게 됨을 독자여러분들께서는 양해해 주시기 바란다.

 이번 10월달에서는 가장 생각나는 국내외의 일들중에 하나는 반기문 외교부장관께서 유엔 사무총장으로 피임되신 자랑스런 모습에 해방이후 가장 존경받고 보람된 국제기구의 수장의 한 분이 되신 것으로 생각된다.감투라는 것은 아무나 쓸수도 있지만 함량미달이 되면 큰 오욕이 될 수 있을 것이다.그러나 반 사무총장께서는 충분한 능력을 갖추었다고 국내외 모두가 평하고 있다.자라나는 젊은이나 2세들에게 크게 고무적이고 한국인으로서 긍지를 느끼는 역할이라 생각된다.그리고 또 하나는 북한의 핵무기 실험을 통한 국제사회가 떠들썩하고 혼란스런 상황이 아닐른지...북한이 같은 민족이고 동포이긴 하지만 100% 믿고 핵무기를 절대로 남한에 터뜨리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아니 언제럭도 핵무기를 통해서 같은 민족을 협박하지 않고 동족간의 전쟁을 일으키지 않는 다는 보장은 이 지구상에 역사상에도 없다.

그렇기에 정치가들이나 국민들이나 동맹국들이가 우방이나 이웃나라들이 신경을 곤두세우는 세계적인 문제가 아닌지...
유비무환이라고 하지 않았던지...북한은 핵무기 개발을 위해 철저히 준비를 해 왔었는데...우리는 핵무기 억제나 방어를 위한 준비를 얼마만큼 철저히 잘 해 왔었는지...

햇볕정책이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다.포용정책이 지혜롭기도 하고 위험하기도 하다.어느 정책이라도 나라와 나라의 주인들에게 큰 행. 불행을 초래하거나 국기가 흔들릴 수 있는 중대한 문제가 아닌지...정치가들이 자신들의 권력유지나 권력획득을 위해 절대로 과장하거나 축소은폐해서는 나라와 나라의 주인들을 불행하게 만드는 천추에 씻지못할 대역죄를 지을 지도 모른다.

때문에 정치가들이나 공직자들은 한치의 거짓이나 속임도 축소도 과장도 없이 수시수시로 나라의 주인들에게 알려서 지혜롭게 해결해 나가야 한다.반대도 찬성도 결국은 국가안보와 국리민복에 도움이 안되거나 해가된다면 삼가야 하고,신중해야 하고 지혜를 총동원해서 해결해야 한다.어느 천재 한사람이 좌지 우지 할 문제가 아니다.외교도 국방도 국가안보도 나라와 나라의 주인들의 운명과 삶과 죽음이 달려있다면...추호라도 사심을 가지면 매국노가 되거나 반역자가 되지 않는다는 보장이라도 있겠는지...

절대로 몇몇 소수의 이기심과 공명심과 자만심과 사심으로 국가의 명운이 걸린 문제를 나라의 주인들에게 속여서는 안된다.
그리고 나라의 살림살이가 결코 나아진다거나 나라의 장래가 크게 발전한다거나 하는 희망이 보이지 않고 당리당략이나 사리사욕이나 권력욕에 나라의 주인들을 바보로 만들어서는 안될것이 아닌지...

이제 조선왕조의 문서에 관한 종이에 관한 법과 법의 정신과 법의 이론과 법문화를 통해서 종이 한 장을 만들고 쓰는데 있어서도 백성을 사랑하고 백성의 불편함을 최 우선으로 생각하신 선현들의 법문화를 통해서 한국의 정치가 공직자들이 거듭 자랑스런 민주주의 국가의 정치가 공직자로서 우뚝 설수 있기를 기원해 보며 실록의 기사를 소개해 보기로 한다.

二.종이에 관한 애민사상(연대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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四.餘語
이상으로 조선왕조의 명종대에서 경종대까지의 종이에 관한 애민사상과 종이에 관한 명종대에서 선조대까지의 실록기사를 요약해서 정리해서 다시 본다.
종이에 관한 애민사상(명종-경종조대까지의 연대순의 실록기사)을 살펴보면,(1)명종 2년(1547) 종이가 아주 귀해서- 백성들이 떠돌아 다니므로 -수량을 감해주면 혜택을 입게될 것이며:

(2)종  8년(1553) 닥나무가 매우 귀하므로-중국의 자문지의 요구에는-백성들의 폐혜도 생각하여 후폐가 없도록 하소서(3):명종  8년 조졸에게 궐지를 징납하여 빈털터리가 되어 훔쳐먹자-그 일족에게 징수를 하여- 우리 민생은 원통함을 호소할 수 없으므로-남징자를 문책하여 -백성들의 병을 치료해 주시기 바람니다(4)명종  9년 잇단 흉년에 호적지값을 못낸다고-강제노역에 개 닭까지도 잡아가며-포박.감금하고-매질하여 사망케하여-관리가 오면 누더기 치마도 벗어주고-원통해 하며-논밭과 집을 팔아 수령에게 바친후-가정이 파탄되어 흩어지니-차마 볼수 없는데-관리는 소를 잡고 잔치를 베풀어 날마다 술만 마시다가-왕명이 내리면 얼마안되는 쌀을 굶는 집에 나누어 주는 시늉이라-참으로 통탄스러운 일입니다:

(5)선조 4년(1571) 영암.강진 해난의 세 고을은 일이 매우 많아 -백성들이 심한 고초를 겪어므로-책지와 견양지는 일이 적은 다른 고을로 옮겨주시기 바람니다; (6)선조  8년(1575 민생을 깨우치기 위한 책은 8동의 큰 읍에 반포하되-모든 공액(貢額) 이외에 종이값을 더 거두어- 백성을 괴롭히고 관리를 살찌우는 일이 없게 하소서;)

(7)선조  25년(1592) 어지러운 때에-인심을 진정시키고 위로하기 위해- 교서관(校書館)의 책지(冊紙)등은 햇수를 정해서 감면해주면-대소군민들이 모두 기뻐할 것입니다:.(8)선조 27년(1594) 지금은 병란이 일어난 지 3년째여서 물력이 탕갈되었는데-계문지(啓聞紙)가 전처럼 장대하니, 매우 한심합니다-공문서등에는 모두 장지(狀紙)를 쓰고 공사지(公事紙)도 보통 백지(白紙)를 사용케 하되-위반자는 엄중처벌하여 -잔약한 백성들에게 일분의 폐단이나마 제거하는 건의를 받아들이며: (9)선조  30년(1597) 중국에 자문(咨文)을 가지고 가는 선전관이-말.쌀,.기름종이등을 많이 거두기 위해 -아랫사람을 붙잡아 묶어놓고 난타하고-입은 옷까지 빼앗으며-들판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구타하고-집집마다 들어가 빼앗으니-매우 놀라우니 통렬히 다스리며 파직시키기를 건의한다:

(10)선조  36년(1603) 평소에도 백성을 위해 재물을 아껴야 하는데- 큰 난리를 겪은 뒤여서 백성의 힘이 다 없어진 때 공상지는 상납하기 어렵고 군색한 상황을 형용할 수 없으므로-종이가 부족하므로-모든 공문서는 초주지를 사용해야 된다는 건의를 받아들이고;(11)선조  36년(1603) 임난후에 실록을 3부씩 인쇄하자니- 백성의 힘이 탕갈되고 종이가 몹시 귀한 때를 당하여 마련할 길이 없기에 매우 민망하고 염려되며-외로이 살아남은 쇠잔한 백성들로 하여금 일분의 혜택이라도 입게 해야하므로-질박하고 순후하게-백지중에 조금 좋은 것을 쓰되-서서히 인출되는 상황를 보아가며-사용될 양을 정하자는 건의를 받아들인다:

(12)선조  37년(1604) 정사를 하리에게 맡겨 전안(田案)에 따라 지가(紙價)를 함부로 거두므로 온 경내가 원망하고 있습니다. 수령의 파직을 건의하여 왕이 수용한다.선조  39년 공상지를 바치는데-중간업자가 농간을 부리거나 남징하는 일이 늘어나며-종이 1속에 무명베 20필을 받으므로-백성들이 매우 원망하고 괴로워해도- 대간까지도 침묵하니, 탄식을 금할 수 있겠는가라고 사관이 기록하고 있다 ;(1606)

(14)광해  즉위년(1608) 공상지를 바치는 일은 백성들의 제일큰 폐단이라-대신 저주지로 교체하도록 왕명이 내렸기에 백성들의 고질적인 병폐가 점점 없어지게 되겠기에 -신하들은 감격함을 이기지 못하며-고질적인 병폐가 제거되어 공상지의 길이와 넒이 품질과 색깔을 횡간대로 두달 뒤부터 시행하도록건의하니-종이의 품질이 좋고 나쁜 것은 진실로 관계치 않겠으나-수량도 많이 줄였으니-두꺼운 종이는 잠시동안 전례데로 시행하라는 왕명이 내린다.; 

(15)광해  즉위년(1608) 공상지(供上紙)는 규정보다 품질이 배나 좋아도-퇴짜를 걱정하여 뇌물까지 주므로 낭비가 심하며-어용이 아닌 이런 종이가 남아 돌아서 궐내에서 돈으로 대신받는 다는 소문이 수년전부터 자자하므로 그만두시기 바람니다.-품질을 낮추고 양을 줄여서 궁중에서 쓸만큼만  받는다면 백성들에게 그 은택이 두텁지 않겠습니까.-이와같이 다른일도 해 주시기를 건의한다:

(16)광해  즉위년(1608) 난리를 치른 이후- 민생의 곤궁함이 평상시보다 열배나 되는데-이름도 없는 공물과 규정이외의 징수가 점차 늘어가 침해하니-겨우 살아 남은 백성들이 뼈를 깎이고 골수를 맞는 듯하여 앞으로 스스로를 보존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종이도 1년에 4천여권이나 되어도 바치지 못하는데-서울의 모리배들이 청탁하여 직접 바치고-각 고을에 종이 한권값을 쌀 16말에서 적어도 5-6말까지 받아내므로-이는 정한 액수 이외의 명목없는 지공이어서 지극히 무리한 일입니다-규정이외의 양을 함부로 거두는 종이와 쌀·밀가루는 일체 폐지하여- 민생의 아주 작은 폐단이나마 제거하는 건의를 임금이 받아들인다;

(17)광해  8년(1616)  공상지(供上紙)를 방납(防納)하는 폐단을 여러번 엄히 금해도 -폐단이 더욱심하여 품질이 낮아지고-백성들에게 그 값을 대신 징수하는 폐단이 적지 않으므로-지금부터 법을 맡은 관청에서 엄히 단속하여 보고를 올리도록 각별히 왕명을 거행하라는 왕명이 내리며:(18)광해  12년(1620) 먼 지방의 과거 시험 응시자들은 흉년을 만나 먹을 거리를 마련하기도 어려운데- 합격과 불합격이 결정되기도 전에- 어사화와 홍패지를 준비해서 바치도록 하니, 매우 민망스럽습니다-이미 바친것을 돌려주지 않더라고 -아직 바치지 않은 자는 합격한 뒤에 바치도록 하면 -백성을 속이게 되는 폐단을 없앨 수 있도록 함이- 편리하고 합당하므로 시행하자는 건의를 받아 들인다:

(19)인조  4년(1626)종이 방석을 직접 바치며-좋은 품질만 요구하지 말고 절약하고 검소하게 하여 백성들의 폐해를 덜어주자는 건의를 하며:(20)인조  6년(1628) 한절기가 오므로- 백관들이 낙복지로 옷을 만들어 -헐벗은 백성들에게 보내도록한다:  (21)인조  26년(1648) 명목 없는 쌀을 징수하면서 지가(紙價)라고 일컬는등-백성들을 괴롭히고 범법행위를 한-이00·한00·이00·신0·문00·김00 등은 잡아다가 추문하며, 신00·신0은 추고하라고 명령하며:(22)인조  27년 공물은 당면한 고질적인 폐단으로 -연해가 더욱 심하며-여러 색종이와 수달피(水獺皮)도 다른 고을의 예에 따르므로, 백성들은 모두 ‘큰 역은 감면하기가 워낙 어렵겠으나 작은 역도 전혀 고루 정하지 않는 것은 참으로 억울하다.고 건의하자.-묘당을 시켜 의논하여 처치하는 왕명이 나온다.

(23)인조 대왕 묘지문[誌文]① 병자년 봄에 가물고 여름에 홍수가 있어-. 왕이 크게 놀라 교서를 내려 매우 자책하고-각도에  그 해의 선물과 공상지(供上紙)를 정지하거나 없애고, - 재해를 입은 곳을 살펴서 진휼하게 하고-수령과 변장의 선발을 신중히 하며:(24)효종  7년(1656)  육진에는 목화가 생산되지 않으므로- 곤궁한 백성들에게 종이옷을 넉넉히 보내주어 변방의 백성들에게 훈훈한 은혜가 되는 건의를 받아준다.;

(25)효종 9년(1658) 수령들의 서경에 드는 종이인 지채(紙債)를 모두 백성들에게 징수하니-두번째 수령으로 부임하는 경우는 서경을 제거하는 건의를 받아들이고:  (26)현종  1년(1660)  백성을 돌보기 위하여 공상지를 수량을 줄이라는 폐막을 제거하심에-감격스럽지만 5권만 감하시라는 건의에 -7권을 감하도록 하라는 왕명이 내린다;

(27)현종  5년(1664) 양호(兩湖)의 지역(紙役;종이 만드는 작업)은 백성들이 견디기 어려워하고 있는 것-백 번 생각해도 끝내 변통하지 않으면 양호의 -백성들을 다시 보장할 길이 없을 것-대동법은 백성들의 편의를 위한 것인데-법이 시행되지 않으므로-궁한 백성들의 바람에 부응하라는 건의를 임금이 의논하여 처리하는 건의를 받아들이며: (28)현종 9년(1668)  대동법을 실시후 - 유청 지지(油淸紙地)의 값을 정해서 지급하니- 수령은 결코 백성들에게서 횡렴하여 더 취해서는 안 될 것으로-백성들의 원망이 많이 일어나고 있기에 일체 금하는 왕명을 받아낸다.;

(29)현종 11년(1670 백면지(白綿紙) 등이 가장 무거운데-중(승려)들에게 일방적으로 침탈하는 것은 옳지 못하며,바치는 종이도 많아서-중들이 도피하여 여러 절이 텅 비었으며-혁파하지 않는다면 그 해가 장차 백성에게 미칠 것이므로-.각절에서 이중으로 올리는 폐단을 속히 없도록 건의하자 임금이 받아들인다:(30)현개 즉위년(1659)긴요하지 않는 -공상지(供上紙) 같은 것들은 더욱 민폐를 끼치고 있으니,-특별히 바치지 말도록 허락해야 할 것을 건의한다:  (31)현개  1년(1660) 승선군이 쌍계사로부터 백면지(白綿紙)를 의무적으로 조달받았는데,-청평위는 근방에 거주하는 백성들의 가경전(加耕田)에서 나오는 수확도 바치도록 요구하고- 본현의 감관(監官)과 색리(色吏)를 추치(推治) 하여- 백성들의 원망이 사무쳤다고 한다;

(32)현개  5년(1664)  백면지(白綿紙)에 관한 일이 백성들에게 큰 폐단이며-규격에 맞아도 서울세서 퇴짜하고-곱절가격으로 바치느라-백성들의 폐단이 심하므로-당연히 고쳐야 하며-서울에서 사서 쓴다면-백성들의 폐단을 없앨 수 있을 것이라고 건의하자-퇴짜맞은 종이는 본 고을에 내려보내지 말고 해청의 쌀로 값을 지불해 주는등의 건의를 하자- 의논하여 처리하도록 건의를 받아들인다:(33)숙종  1년(1675) 오가통(五家統)과 지패(紙牌)를 일시에 아울러 거행하고-축성.병거제조도 계속하면-민심이 안정되지 못하고 도저히 수습할 수없는 화가  생길까 두렵다고 건의한다:

(34) 숙종  1년(1675) 지패(紙牌)법 오가통(五家統)의 법 또한 민원(民怨)의 한 단서이므로 정지하기를 건의하며: ; (35)숙종  6년(1680)  백성들의 고통이 근래에 더욱 심하여 원망의 소리가 길에 널렸는데, 지패(紙牌) 한 가지 일이라도 속히 변통(變通)하는 것이 좋겠다고 건의하자-서로 의논해서 오가 작통(五家作統)·지패·호패(號牌) 등을 모두 폐지하도록 하라는 왕명이 내린다

종이에 관한 명종-선조대까지의 기록을 요약해서 정리해 보면,

(1)명종  즉위년(1545) 경면지(鏡面紙) 역시 노력이 많이 드니 따를 수 없다:(2)명종  1년(1546) 황제가 자문지(咨文紙)를 요구하니 보내지 않을 수 없다; (3)명종  1년(1546) 자문지는 길고 표지는 짧으나 그 품질은 같습니다;  (4)명종  2년(1547) 자문지(咨文紙)는 만드는 공역(功役)이 매우 크며-군정(軍丁)을 더 모아서 따로 제조하고 또 지방(地方)으로 하여금 나눠서 제조하도록 한다면 그 폐(弊)가 또한 클 것이므로-참작하여 수량을 줄이게 하소서.”라는 건의에 -수의하여 처리하라는 왕명이 내림리며: (5)명종  2년(1547) 자문지(咨文紙)는 황제가 간절하게 구하는 것이니 넉넉한 수량을 들여보내지 않을 수 없습니다;(6)명종  2년 낙폭지(落幅紙)를 면포(綿布)로 싸서 만들어 준 것은-전장(戰場)에 편리하고 또 바람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라는 건의를 받아들인다;

(7)명종  7년(1552) 각사(各司)의 계목(啓目)은 필히 후지(厚紙)로 점련(粘連)하는 것이 상례인데,- -내수사(內需司)의 공사(公事)를 보니 상지(常紙)에 어지럽게 썼으므로-격식에 어긋나고 추솔하므로 처벌하기를 건의를 하며:(8)명종  8년(1553) 자문지(咨文紙)를 진헌(進獻)하는 일은 중국에서 요구하는 물건을 감하기를 건의하자-황제가 요구하는 물건을 조금 보낼 수는 없으니 이미 정한 수량대로 보내라고 명령한다:

(9)명종  8년(1553) 명저(名楮)는 하하품(下下品)의 도련지(壔鍊紙)를 사용하는데 장단(長短)과 체제(體製)를 한가지 형태로 만듬;(10)명종  18 년(1563)  명나라 사대부들은 우리 나라에서 생산되는 품질 좋은 대유둔(大油芚)과 인삼(人蔘)·자문지(咨文紙)·벼루 등을 좋아한다고 하므로-문방(文房)에 소용되는 것으로-금은(金銀) 주옥(珠玉) 보화에 비할 바가 아니므로 사은사에 부탁하여 보내도록 건의한다:  (11)선조 1년 (1568) 사신이 받은 물품은 -자문지(咨文紙) 60장, 표지(表紙) 각 40장, 유목지(柳目紙) 각 5권, 붓·벼루·먹뿐이며 :

(12)선조  4년(1571)  《예기(禮記)》는 예를 강하는 데 가장 긴요한 책으로-풍저창(豐儲倉)의 주지(注紙)로 인출(印出)하여 널리 반사(頒賜)토록 왕명이 내린다: (13)선조  6년(1573) 《육서부록(六書附錄)의 제목을 설화지(雪花紙)에 모사하게 하며: (14)선조  24년(1591) 성균관 제술에 우등한 김정일에게 초주지 10권,민익겸에게는 초주지 7권을 하사토록 한다: (15)선조 26년(1593) 성절(聖節) 하례의 방물(方物)속에 -종이로는 경면지(鏡面紙) 40장, 백면지(白綿紙) 4백 장,(油單紙) 20장이 들어 있으며:(16)선조 27년(1594) 중국 장수 오 유격에게 고마움의 표시로 종이로는상화지(霜華紙) 5권(卷)이 들어 있다:

(17)선조  29년(1596)  공상(供上)하는 종이는 명종조(明宗朝)에 쓰던 견양지(見樣紙)입니다.-외방은 물력(物力)이 퇴폐하여 종이 또한 마련할 수 없기에- 고통스러워하는 말이 많다고 하니-하니, “종이를 아껴 쓰되 품질을 낮춰서는 안 된다는 왕명이 내리며;(18)선조  32년(1599) 장흥사(長興寺)에서 만든 자문지(咨文紙)는 품질이 나빠 매우 미안했으며-지금 조지서(造紙署)에서 도구가 새것이라 제대로 사용할 수 있을지 걱정이며-평안도 강동현(江東縣)의 종이는 품질이 매우 좋은데 정유년에 본현이 상납한 자문지의 경우 희고 깨끗하고 만질만질합니다:

(19)선조  36년(1603) 낙폭지(落幅紙)를 평시에 북도로 수송하던 대로 나누어 주어 추위를 막게 하소서; (20)선조  36년(1603)  자문염지(咨文簾紙)는 법사(法司)를 시켜 금단하라.;(21)선조  37년(1604) 태감(太監) 고준(高浚)이 차관(差官)등을 통해-  자청지(磁靑紙)를 독촉함(22)선조 37년(1604) 지중추부사 이희득의 부의물품안에 백지(白紙) 7권(卷)·유지(油紙) 5장등의 종이를 하사하며: (23)선조  39년(1606) 중국 사신이-지품(紙品)이 아주 좋으니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24)선조  39년(1606)  유구국에 답례물속에 종이로는 상화지(霜華紙) 10권(卷), 연륙후유지(連陸厚油紙) 5괴(塊)등이 들어 있었다.


그리고 종이로 만든 물품종류로는 

1.군사용:종이 대포;지신포.군사용 장막.(1)지신포;선조  26년(1593) 우리 군사들은 지신포(紙神砲)등을 연달아 쏘았는데도 적은 물러가지 않고 번갈아 진격했다:(2)종이 장막:명종  2년 낙폭지(落幅紙)를 면포(綿布)로 싸서 만들어 준 것은-전장(戰場)에 편리하고 또 바람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라는 건의를 받아들인다; 

2.종이 꽃(紙花.剪紙花)(1)전지화:;선조  32년(1599)  제독 이승훈(李承勛)의 상차(喪次)에 나아가니-불전 병화(佛殿甁花)와 같은 전지화(剪紙花) 및 갖가지의 과채(果菜)와 병자(餠子) 등 물건이 있었으며, 동편에는 여러 음악소리가 청아하였다(2)지화:선조  33년(1600)여러 전물(奠物)중 상화(床花)도 은사(銀絲)를 써야 하나 역시 제때에 조처하기 어려우므로-지화(紙花)를 물들여 대용(代用)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3.종이 연(紙鳶) (1)명종  21년(1566) 상원(上元)에 연(鳶)을 날리는 일【곧 지연(紙鳶)이다. 세속에서, 지연이 추락된 집에는 그 해에 재앙이 있다고 한다.】은 예로부터 있었다;

4.종이 장막(紙帳)(2)선조  25년(1592)삼군(三軍)이 추운 날씨에 노숙하고 있는데 내가 어떻게 두꺼운 지장을 둘러치고 편히 앉아 있을 수 있겠는가;5.종이옷(紙衣)(1)선조  25년(1592)전라도에서 진상한 도련지(擣鍊紙) 8권으로-도원수가 있는 곳에 보내 지의(紙衣)를 지어 선봉인 사졸 등에게 나누어 주게 하라;(2)선조  28년(1595) 기민(飢民)의 수는 1백 75명으로 이들이 -성은을 입어 이미 지의(紙衣;솜 대신에 종이를 속에 넣어서 만든 겨울옷) 등을 하사받고 연달아 찰밥과 유밀병의 은혜를 받았는데, 보답할 길이 없어 무어라 말할 바를 모르겠다.’인사를 하며:

(3)선조  38년(1605)  북방은 추위가 극심한 곳-전일에 내려보낸 낙폭지(落幅紙) 2천 장과 구피(狗皮) 등의 물건으로 군사들 가운데 지나치게 옷이 엷은 자를 골라서 입히고 조정의 덕의를 회유하면 반드시 비단을 내리고 술을 내린 것과 같은 감격이 없지 않을 것입니다;(1)선조  25년(1592)행재소에 후지(厚紙)가 많지 않으므로 많은 홍패(紅牌)를 갑자기 준비하기가 쉽지 않으므로-합격후에 창방함이 온당하다는 건의를 통해서 6종류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상으로서 실록상에 나타난 애민정신은 ,백성에게 혜택을 주고 백성들의 폐헤를 생각하고 민생이 원통함을 호소할 수 없으므로 백성들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 탐관오리로 원통을 호소 할 수 없으며 가정이 파탄되고 백성들이 심한 고초를 겪으므로 백성의 고통을 덜어주기를 임금에게 건의한다.백성을 괴롭히고 관리들으 살찌우는 일이 없도록 해주시며 대소 군민들이 기뻐하고 인심을 진정시키고 위로하고 ,잔약한 백성들에게 일분의 폐단이나마 제거하여 위법자은 엄정처벌하시기 바람니다.

평소에소 백성들을 위해 재물을 아껴야 하는데 어려운때 백성의 힘이 없어진때 ,쇠잔한 백성들로 하여금 일분의 혜택이라도 입게해야 한다고 건의를 하면 임금은 거의 대부분 받아들인다.그러므로 백성들의 고질적인 병폐가 점점 없어지게 되겠기에 신하들도 감격함을 이기디 못한다.생의 곤궁함이 평상시보다 열배나 되는데-이름도 없는 공물과 규정이외의 징수가 점차 늘어가 침해하니-겨우 살아 남은 백성들이 뼈를 깎이고 골수를 맞는 듯하여 앞으로 스스로를 보존하지 못하게 되었으며,절약하고 검소하게 하여 백성들의 폐해를 덜어주며,백성들을 괴롭히고 범법행위를 한신하들을 추고하라고 명령한다.


그리고 병자년 봄에 가물고 여름에 홍수가 있어-. 왕이 크게 놀라 교서를 내려 매우 자책하고-각도에  그 해의 선물과 공상지(供上紙)를 정지하거나 없애고, - 재해를 입은 곳을 살펴서 진휼하게 하고-수령과 변장의 선발을 신중히 하며: 육진에는 목화가 생산되지 않으므로- 곤궁한 백성들에게 종이옷을 넉넉히 보내주어 변방의 백성들에게 훈훈한 은혜가 되는 건의를 받아준다.백성들의 고통이 근래에 더욱 심하여 원망의 소리가 길에 널렸는데, 지패(紙牌) 한 가지 일이라도 속히 변통(變通)하는 것이 좋겠다고 건의하자-서로 의논해서 오가 작통(五家作統)·지패·호패(號牌) 등을 모두 폐지하도록 하라는 왕명이 내린다

종이로 세금을 바치는 이런 세법이나 백성들의 고통과 폐단을 위해 조선왕조의 임금들이나 자랑스런 신하들은 애민정치를 해 왔었음을 알 수 있다.
 
오늘날 민주주의라고 하면서 정치가 공직자들이 나라와 나라의 주인들을 위해 얼마나 애민정신을 실천해 왔었는지...자신들의 권력과 사리사욕을 위해, 나라의 주인들을 속이고, 무시하거나, 오만한 ,비 민주적인,민주주의를 가장한  사이비적인 대표자들이나, 공직자들의 행동들은 없었는지...조상들의 애민사상을 통해서 조상들의 하찮은 종이에 관한 법문화를 통해서도, 핵무기다.핵우산 조약이다. FTA찬성 반대. 경기 침체에다, 청년실업이다.

내년선거다.전교조들의 강성이나 노조들의 국내외적인 비판이나.강대국이나 이웃의 침략성을 위한 국내외적으로 어려운 이때에, 첫째도 백성이요, 두 번째도 백성이요, 세 번째도 백성의 어려움과 불안과 불편과 불행을 막기위해,백성들이 진정으로 바라는 대표자. 정치가 공직자들이 되어, 자신들의 온 정성을 다 기우려 ,불철주야 사심을 버리고, 공무에 전념해 주시기를 4,800만 이나라의 주인들은 정치가들과 공직자들을 향해  걱정스런 눈망울로 언제까지나 지켜보고 있지 않는지...

사리사욕을 버리고 우리 각자 맡은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야 할 조심스러운 판단을 해야할  상황이 아닌지...모두 지혜를 짜내어서 슬기롭게 이겨나가야할 의무가 있지 않는지...사이비가 되지 말기를 간절히 바라며,이땅의 모든 주인들이 지켜보며.사리사욕과 배신행위를 한 언행에 대해 자손만대로 잊지 않고, 역사는 그 배신행위들을 밝혀줄 것으로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역사와 민족과 나라에 죄인들이 되지 않고, 존경받는 존재로 살아주기를 이나라의 대다수의 주인들은 간절히 기원하고 있을 것이다...

부디 정치가와 공직자들은 언제나 옷깃을 여미며 조심하고 고뇌하고 나라주인들의 뜻을 여망에 배신하는 배신자들이 되지 않기를 이땅의 모든 주인들이 간절히 기원하고 있을 것이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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