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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 기록문화와 종이에 관한 법이론과 정신(6);조선 중기(현종-영조)의 종이와 문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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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재문 작성일13-06-13 17:12 조회54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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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한국법문화의 국제경쟁력 향상을 위한 한국전통법문화의 강좌 한국전통법의 정신과 법체계(90)
-조선왕조의 기록문화와 종이에 관한 법이론과 정신(6);조선 중기(현종-영조)의 종이와 문서에 관한  애민사상및 종이의 종류및 종이로 만든 물건의 종류등
동국대학교경 주캠퍼스 법정대 법학과 교수 김  재  문   
 (http://wwwk.dongguk.ac.kr/~kj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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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一.서설
2007년 1월이 되었다.그간 필자는 자랑스런 조상들의 문화를 실록을 통해서 90회째 소개하게 되었어 시작이 엊그제 같은데...감회가 뿌듯하다. 글 쓴다고 돈은 생긴 것은 한 푼도 없지만...이만큼이라도 소개할 수 있어서,방안에 가득한 90권 가까운 사법행정이라는 잡자가 나를 가슴뿌듯하게 해주고 있다...정년퇴직시까지 4년 남짓 남았기에 대략 150회 남짓의 글을 소개할 수 있을 것같다.

아무도 잘 볼수 없던 실록...지난 시절...어려운 중에서도 조선왕조 실록을 CD로  만들게 된 그동안의 많은 분들에게 감사를 드려야 할 것 같다.자랑스런 조상들의 다양한 기록이 직필로 정확하게 기록된 인류의 문화유산인 조선왕조의 실록은,정작 그 후손인 우리들은.이민족의 침략하에서 더더욱 볼수가 없었고 왜곡된 30수년간,알려고 해도 알수가 없었던 암울한 시대가 있었고,해방이 되어 알려고 해도 한자로 되어 알기가 어려웠기에.결국 그동안 우리들은 방대한 500여년간의 실록의 내용을 정확히 잘 모르고 되었고,잘 알려고도 하지 않고,돈생가ㅣ고 감투생기고 출세하고 나니,배워보지 못한 실록의 내용은 시대에 맞지 않는다는등의 괘변으로,오히려 짓밟고 무시하고 무지한 것이 자랑처럼된 현상은,솓담을 빌리자면,“밥팔아서 똥사먹는 생각”들을 가진 지도자들이 많은 이 시대가 아닐른지...

여하튼 필자는 조상님들의 자랑스런 문화를 이만큼이라도 발표를 해서 소개할 수 있다는 점에 감사를 드린다
이번호에서는 지난호에 이어서 현종대에서 영조임금대까지 약 1세기동안의 종이문화에 관한 실록기사를 정리해 소개해 보기로 한다.대략의 목차는第一.서설一).종이 만드는 관청과 공무원.二).제조법.三).품질四).가격第二.종이의 종류一).제조상.二).용도상第三.종이로 만든 물품종류.第四.애민사상과 장려및 처벌一).애민사상二).입법정신.三).장려四).처벌.第五.여어의 순서로 나누어 보았다.

언제나 조상들의 실록에 나타난 기록을 소개하여,오늘날 우리의 현실의 법문화의 국제경쟁력 향상을 위해, 더 민주적이고 더 창의적인,그리고 더 자랑스런 강한, 안정된 대한민국을 굳건히 이어가고,이땅에 살고 계신 이나라의 주인들인 우리들 각자가, 이땅에 태어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고,정치가 공직자.기업가.근로자.가정.학교.직장.종교단체등 모든 사회생활속에서 각자 맡은 바 역할에 국제경쟁력있는 자랑스런 역할을 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기원하는 의미에서 소개를 하고 있다.우리조상들의 삶이, 문화가 자랑스런 것은 잘 알고 계승.발전.창달시켜야 한다고 헌법 제9조에서 선언하고 있다. 때문에 국가는 필자와 같은 이런 역할도 소홀히 해서는 헌법을 수호하는 역할을 충분히 해 내었다고 볼수는 없을것이다.정치가나 입법가들도 작은 이익만을 탐하지 말고,원대한 돈 안되는 자랑스런 민족훔화의 계승.발전.창달에 눈을 돌려야 하지 않을른지...

피땀흘려 노력한 달러가 외국에 나가 남의 문화를 배우는데 거의 다쓰버린다는 안타까운 기사를 보았다.우리는 외국문화 수입만으로 국제경쟁력을 높힐수 있을 것인지...잘사는 선진국인 미국문화보다도 거의 두배가까운 장구한 자랑스런 법문화가 있는데에도 말이다...외국인들도 한국에 유학을 온다.오면 무슨 잡탕 외국문화를 우리문화라고 소개만 할것인가.문학.예술만 전통문화의 전부라도 소개할 것인가...자랑스런 법문화는 법다는 말인가...제발 돈에 감투에 권력에 명예에 눈먼 지도자들이 새해는 먼 미래를 민족의 나라의 장래는 생각해서 정치도하고 입법도 하고,사법도 하고 행정도 하고,나라살림살이도 규모있고 계획있게 존경받을 생각과 계획을 가지고 천려일실이라도 후회하지 않을 나라살림살이를 역할을 잘 해주시기를 간절히 바라며 소개를 하기로 한다.


一).종이 만드는 관청과 공무원.제조법및 품질.가격

1.조지서 (造紙署)
.......................
.........................
第五.여어
위에서 현종임금에서 영조임금대까지 약 1세기동안의 종이와 기록문화에 관한 실록기사를 살펴본바를 요약한 것을 다시 정리하여 순서대로 소개를 해 본다.

一).종이 만드는 관청과 공무원.제조법및 품질.가격

1.조지서 (造紙署)1).조지서(造紙署)-경비에 소요되는 물품들을 모두 반으로 줄이도록 하며,2).조지서(造紙署)에서-죽을 쑤어 기민을 구제하였고.3).오로지 군량을 운반하기 위해-조지서(造紙署)에 창고를 설치히며;4).조지서(造紙署)에 잔폐가 많으니-공청의 역을 돕도록 명하였다.

2.조지서 별제(造紙署別提)에 괗난 기록으로 1).송덕상(宋德相)을 조지서 별제(造紙署別提)로 삼고;2). 송덕상(宋德相)은-기한이 지나도록 숙배(肅拜)하지 않으므로-계체(啓遞)하고;3).무과(武科)에 장원한 이동식(李東植)을 조지서 별제(造紙署別提)로 삼았다:

3.제조법은 기존의 방법과 다른 경우가 보이는바,1).해란초(海蘭草)라는 것으로 포구에 쌓여있는 것이므로-잘 두드려 가루를 만들어 닥나무와 섞어 종이를 떠서 만들면, 우리 나라의 지보(至寶)가 될 것이라고 한다.이외에 기존의 재생종이를 만드는 세초에 과한 기록으로,;2).환지(還紙)는 세초(洗草;초(草)했던 원고나 폐기 문서를 물에 빨아 먹물을 빼는것 )하여 환지를 만드는 데 이용하였다.

4.품질은 절약하는 방향으로 제제를 가하므로,1).공상지(供上紙)의 품질이 매우 두꺼운데, 초주지(草注紙)로 대용하고;2).청나라에 갔을 때 백면지(白綿紙)의 품질이 나쁘다고 예부에게 힐책을 받았기에 체차하였으며; 3).시지(試紙)같은 것도 좋은 물품을 쓰는 것을 금하여-지품(紙品)이 규제(規制)에 지나친 것은 시관(試官)이 뽑아 버리고, 1등으로서 마땅히 어람(御覽)하실 것이라도 즉시 방(榜)에서 뽑아 버리도록 건의하며,;4).시권을 고교(考校)할 때 종이의 품질이 너무 두꺼운 자는 비록 글이 주옥(珠玉)같더라도-처음부터 취해 보지 않으면 이런 폐단이 저절로 없어질 것이며;5).지품(紙品)은 지나치게 두꺼운 것을 쓰지 말라는 왕명과.;

6).지품에 경비(經費)를 아낀 것을 생각하여-지금부터 진강하는 책자를 일체-사치와 과대함을 일삼지 말게 하라는 왕명이 내린다.


5.가격은 미포나 쌀값으로 정하여 불합리한 경우가 발생하는 경우도 있는바, 1).군정(軍政)에다. 거두는 후지(厚紙)란 수군이 세초에 계문하는 종이로-. 종이의 가격을 미포로 결정하고;2).면지(白綿紙)가격은 매우 적고 -품질은 점차 올려 퇴각시키며 종이값은 종전보다 갑절이나 더하니 -각읍의 큰 폐단을 해청에 물어 처리하라는 왕명이 나오며;3).시지의 질은 얇아지고 값만 비싸게 되어서 도리어 폐단이 생기므로-처음에 법식을 정한 대로 시행하라는 왕명이 내린다;4).대호지(大好紙)는 한 권에 쌀이 1석(石)이고, 소호지(小好紙)는 7두(斗)이며, 백면지(白綿紙)는 5두인데, 1석은 값이 넉넉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7두, 5두는 너무 적은 듯하고-풍년이 들면 쌀값이 낮아져서 종이 만드는 사람들이 원통함을 호소함을 보고한다.

第二.종이의 종류

一.제조상의 종류는 크게 3종류로 나누어 보면,

1.순수한 닥종이 4종류로서,1).대간지(大簡紙) 1백 폭(幅)을 지 상궁(池尙宮)에게 전해 주었고-재작년에 부채와 간지(簡紙)를 같이 봉한 하나의 큰 뭉치를 이천기가 시켜서 목호룡에게 전해 주었으며;가).대호지(大戶紙) 15권(卷)등은 독약을 쓰는 범죄비용으로 우선적으로 쓰도록 모의를 하며,나).대호지(大好紙) 수십 권(卷)을 전라 병사(全羅兵使)로 있을 적에 보내었기에 범죄에[ 연루되었고;3).자문지(咨文紙)는 가).감시(監試) 때 거자(擧子)를 대상으로 조흘(照訖)하는 법을 다시 밝히고 자문지(咨文紙)의 사용을 금하며;

4)장지(長紙)와 장지(壯紙)는.가).소장(疏章)의 글은 반드시 장지(長紙)를 써야 하나-펴 보기에 더욱 방해된다 하여 고례(古例)에 따라 한 자 두세 치를 격식으로  청하니, 임금이 옳게 여겼으며:나).좋은 장지(壯紙)에 써서 나만치가 청주(淸州)로 가지고 갔으며;다).장지(壯紙)를 내어 주고 신일영이 종이를 잘라 기를 만들고 ;라).장지(壯紙)에 크게 써서 이용발(李龍發)과 김덕재(金德載)를 시켜서 각도에 유배된 자들에게 왕래하면서 보여주게 하였고;마).저화를 보니 장지(壯紙)를 둘로 접은 부피였습니다-선첩(船帖)과 같았으며, 초료장(草料狀)보다는 컸는데 사면(四面)에 귀를 만들었고 중간에 관인(官印)을 찍었다고 보고를 한다.

2.색지(色紙)도 4종류로서,1).청사(淸使)가 필(筆) 4봉(封)과 색지(色紙) 10봉을 임금에게 바치고;2).청색지(靑色紙)는 향안(香案) 위의 청색지(靑色紙) 한 폭(幅)을 가져다 승지 홍상한(洪象漢)에게 주게 하고;3).청태 간지(靑笞簡紙)는 서간은 청태 간지(靑笞簡紙)로서 사연[辭說]이 자못 많았는데;4).황지(黃紙)는 유소(儒疏)의 말단(末端)에 황지(黃紙)를 붙이고 숭정 연호(崇禎年號)를 썼으니, 이 또한 해괴한 일이라고 한다;

3.혼합지(특수지)도 4종류가 보이며,1).두 대궐을 수리할 때, 깐 자리와 벽을 바른 능지(菱紙);2).마지(麻紙)를 찢는 기풍(氣風)을 본받지 않고서 임명을 받은 뒤에 성내어 저격하는 수법을 쓰는 것;3).백면지(白綿紙) 가).백면지 2천 5백 권(券)과 잡물(雜物)이 담겨 있는 버들 고리짝 두 상자와 은(銀) 3천 냥을 호조(戶曹)에 유치(留置)하여 두었고;나).백면지(白綿紙) 천 권(千卷)을 감하고,;다).성현(錦城縣)에 있는 쌍계사(雙溪寺)를 통해 본현(本縣)이 백면지(白綿紙)를 의무적으로 조달받았으며:라).피중(彼中)에 유치(留置)한 백면지(白綿紙) 1천 9백 권으로써 바꾸어 무역해 오도록 건의하며;

4).엄회지(掩灰紙)는 집사(執事)하는 자가 엄회지(掩灰紙)를 깔고 출회(秫灰)를 까는 것이다.

二.용도상의 종류로는 대략 6종이 보이며,요약한 것을 보면,

1.삭지(朔紙)는 동교의 초가(草家)는 삭지(朔紙)로써 〈재물을 연출하였고〉;

2.시지(試紙).명지(名紙)는 1).서책·시지(試紙)도 잃어버린 게 태반이었고;2).두텁고 좋은 시지(試紙)와 정초지(正草紙)를 금지한다는 영을 반포하며,종이의 품질이 가장 좋은 것을 가려내어 글이 비록 아깝다 하더라도 ‘종이가 좋다.’고 써서 내치도록 건의하며.;3).대과(大科)·소과(小科)의 시지(試紙)는 장단(長短)과 후박(厚薄)이 예로부터 정식(定式)이 있는데,-종이의 품질이 좋고 길이와 너비가 다른 것에 견주어 특별한 것은 고시(考試)할 즈음에 또한 발거(拔去)하게 하고, 해당 주장관(主掌官)을 종중 과죄(從重科罪)하도록 건의하며.;

4).도내(道內)에 문과(文科)의 거자(擧子)가 매우 많아 -청컨대 시지(試紙)를 1백 권(卷)을 더 가지고 가도록 건의하고.”;5).시지(試紙)의 봉미(封彌)에는 단지 부명(父名)만 쓴다;6).전시(殿試) 때에 명지(名紙) 가운데 사조(四祖)를 쓰지 않은 것이 있었으며;

3.조지(朝紙)는 1).대간(臺諫)이 이를 아룀이 오랫동안 지속되어 날마다 조지(朝紙)에 등서(謄書)되고,:2).청국의 당보(搪報)로서, 우리 나라 조지(朝紙)와 같은 것이며;

4.쪽지[寸紙]는.1).크게는 밤중에도 쪽지[寸紙]를 내보내어 경 등을 불러 들이게 될 것이며;

5.첩지(帖紙)는 1).문관·무관의 당하관으로 침체된 사람에 대하여 첩지(帖紙)를 만들어 써서 올리라는 명한 바가 있었으며;

6.표지(標紙)는

1).정시(庭試)에서 합격한 -3인은 원방(原榜) 가운데서 빼내어 표지(標紙)를 붙여서 들이며;2).휘지(徽旨) 가운데에 표지(標紙)를 붙여 두라는 왕명이 내린다.;

第三.종이로 만든 물품은 대략 12종류를 정리해보면,

1.유둔(油芚)으로 잠시 전각(殿閣) 모퉁이의 불타 허물어진 곳을 덮었으며;2.유지(油紙)유지에다 도형(圖形)만들고;3.유청지지(油淸紙地)1).호남에 대동법 설행으로- 각 관아에서 쓰이는 유청지지(油淸紙地)등을 모두 계산한  것은 -호남에 유치한 쌀로 충당한다;.4.주등(酒燈;선술집 문간에 다는 지등롱(紙燈籠))을 키는 것을 금하였으나, 끝내 금할 수가 없었으며;5.지기(紙旗)에 시관의 이름을 쓰고 ;6.지전(紙錢)또 음악을 베풀고 지전을 불에 태웠고;7.지지(紙地) 등의 역(役)을 제공하도록 할 것이며;8.지모(紙帽)는 1).세자궁(世子宮)과 세손궁(世孫宮)에는 충찬위(忠贊衛)에서 지모(紙帽)를 쓰고 ,흑의(黑衣)를 입는 옛날의 사례가 명백하며.;2).지모(紙帽)·혁대(革帶)·흑목단령(黑木團領)을 착용한다;

9.지방 서사관(紙牓書寫官)과 지방(紙牓)은 1)가).지방 서사관(紙牓書寫官)으로 김우형(金宇亨)에게 가자(加資)를 하였고;2).지방(紙榜)은 가). 《오례의(五禮儀)》의 위판(位版) 척양(尺樣)에 의하여 만들어-제사를 마치고는 축(祝)·폐(幣)·지방(紙榜)을 모두 불태우고 즉시 제단을 철거하였다;나).황지방(黃紙牓)을 붙여서 ....대명 신종 황제 신위(大明神宗皇帝神位)’라 썼으며, 제사를 지낸 뒤에는 지방(紙牓)을 불태우고 나무조각은 궤 속에 간직했다가 제사 때마다 꺼내어 쓰기로 했다;다).지방(紙牓)을 사용하였으며-예(禮)가 끝나자 지방(紙牓)을 받들어 불살랐다.라).지방(紙榜)은 비록 써서는 안 되지만 설위(設位)하는 한 절차는 의장(儀仗)과 함께 폐지해서는 안 될 듯하며;마). 제사지낼 때에 임하여 지방(紙牓)을 설치하고 지낼 경우 먼저 절하는 것이 분명히 부당하며;바).지방(紙榜)을 만들고 장막을 베풀어 제사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고 건의를 하였다;


10.지의(紙衣)는 진휼용과 군사용이 있는데,진휼용으로는 1).도로에서 유랑하는 거지를 가려내어 지의(紙衣)와 짚자리를 각각 지급하고,군사용으로는 2).변병(邊兵)의 지의(紙衣)따위 물건에는 다 낙폭지(落幅紙; 과거(科擧)에 불합격한 답안지)를 쓰는데-감시(監試) 뒤에는 수송한 수량이 매우 적었으므로-비변사(備邊司)에서 아뢰어 감시관(監試官)의 벼슬을 파면하고, ;3).임금이 파수보는 수졸(戍卒)들이 생각나서 각각 그 고을에 명하여 지의(紙衣)를 지급해 넉넉하게 돌보라고 왕명을 내린다.

11.지패(紙牌)와 입법이론을 보면 .1).비변사에서 만든 오가작통의 사목 21조 중에 -패식(牌式)은, ‘아무 읍(邑), 아무 면(面), 몇째 이(里), 몇 통 통수(統首) 아무, 아무 호(戶), 무슨 역(役)’이라 한 것을-‘작은 주머니에 큰 낭패(狼狽)를 찬다.’고 하며-백성이 기황(饑荒)에 괴로운데, 주구(誅求) 를 더하고, 밀속(密束)을 더 보태어 원성(怨聲)이 길에 가득하였다;2).승인(僧人)도 지패(紙牌)가 없어서는 아니된다며 사목을 첨임하고;3).오가통(五家統)과 지패(紙牌)를 일시에 아울러 거행하고 축성(築城)과 병거 만드는 일을 또 따라서 계속 행하면, 신은 민심이 안정되지 못하며;4).오가통(五家統)과 지패(紙牌) 등의 법도 빨리 정지하는 것을 건의하며-영남(嶺南)에서 온 사람이 모두 말하기를, ‘백성들이 심히 소란하다.’고 하니, 천천히 의논하는 하도록 건의하며-지패(紙牌)와 오가통(五家統)의 법 또한 민원(民怨)의 한 단서이라하나-허적은,“오가통(五家統)과 지패(紙牌)는 결단코 폐지할 수 없다고.”하니, 임금이 말하기를,“그대로 두라.”하였다;

5).지패(紙牌) 등 여러 가지 조목의 법을 모두 생각해 내는 것이 비늘처럼 차례로 생겨나니,- 백성들이 근심하고 원망하는 것이 그치지 않으며-금년에는 크게 흉년이 들었고 호서(湖西) 지방이 더욱 심한데, 이 때가 어느 때라고 또 이러한 법을 세워서 그 원망을 더 증가시키려 해서 안된다고 건의한다;.6).지패(紙牌) 한 가지 일이라도 속히 변통(變通)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자-지금 백성들의 고통이 전과 같다면 영상이 출사(出仕)한 뒤에 서로 의논해서 오가 작통(五家作統)·지패·호패(號牌) 등을 모두 폐지하도록 하라는왕명을 내린다.;

7).지패(紙牌)는 닳아 없어지기 쉬우므로- 목각(木角)으로 바꾸는 것이 마땅할 듯하며.;8).사복시(司僕寺)의 마패(馬牌) 역시 지패(紙牌)로 쓰는 것이 정해진 숫자는 없다고 보고 한다.12.지화(紙花)는 .1).영조임금은 진연(進宴) 때의 사화봉(絲花鳳)을 없애고 지화(紙花)로 갈음하라는왕명을 내리며;2).부묘한 뒤에 음복(飮福)과 회가(回駕)할 때의 ...지화(紙花)의 유(類)는 원만히 시행하도록 왕명을 내리며;3).내외연 의궤(內外宴儀軌)에-모두 지화(紙花)와 오미(五味)를 사용한다.


第四.종이문화와 애민사상.장려및 처벌중

애민사상을 4종류로 살펴 본바에 의하면

,一).조세와 애민사상.

1.금성현(錦城縣)에는 쌍계사(雙溪寺)가 있어 그 고을 백면지(白綿紙)를 모두 그 절이 맡아 내고 있었는데-백성들이 모두 크게 원망하였다;2.양호(兩湖)의 지역(紙役)은 백성들이 견디기 어려워하고 있는 것-백 번 생각해보아도 끝내 변통하지 않는다면 양호 백성들을 다시 보장할 길이 없을 것이며;3.백면지(白綿紙) 그 한 가지가 가장 폐단-해조의 지양(紙樣)과 똑같은 것을 준비하여 올려보내도-퇴짜를 맞고 나서는 혹 서울에서 곱이나 비싼 값으로 사서 바치기 때문에 민폐가 더욱 심하다는 것- 해당 청이 소유하고 있는 쌀로 값을 치르고 사들여 해조로 실어 보내거나- 정해놓은 값 외에 적당히 값을 더 주고 서울에서 사들이는 것등을- 의논하여 처리하게 하라는왕명이 내린다.4.백면지(白綿紙) 한 가지 일은-우선 호서부터 먼저 변통하라.;

5.대동법을 실시한 뒤로는 유청 지지(油淸紙地)의 값을 정해서 지급하고 있으니,-유청 지지 등의 물건을 강제로 바치게 하고 있다는 보고를 하니. 열읍이 모두 그러하여 백성들의 원망이 많이 일어나고 있는데, 지금 적발하여 죄를 논하고-일체 금단하라는왕명이 내린다;6.수만 근의 목화 및 해조에 소장된 낙폭 휴지(落幅休紙)를 일체 들여보내어- 무사와 군졸 및 의지할 데 없는 사람들로서 더욱 빈한한 사람들을 살펴서 공급하도록 하며;7.공상지(供上紙) 같은 것은 더욱 민폐를 끼치고 있으니, 특별히 바치지 말도록 허락해야 할 것이고:8.경기도의 읍의 잡물비용을 위해-민결을 덜어주고는 신역을 면제해주었다며-유청(油淸)·지지(紙地)·포진(鋪陳)·기명(器皿) 등 물품을 거두어들이고 있으나-나머지 신역을 하는 백성들은 고통이 심하고-법밖의 폐단이 심하므로 혁파하도록 한다.;

9.양호(兩湖)가 부담하고 있는 지역(紙役)은 백성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며,10.퇴짜맞은 백면지는 본 고을에 내려보내지 말고 해청의 쌀로 값을 지불하며;11.백면지(白綿紙)에 관한 일은-처음부터 각 고을에 나누어 정하는 것이 합당하며;12.유청지지(油淸紙地)의 값을-강제로 바치게 하여-백성들의 원망이 많이 일어나고 있으며;13.백성의 요역 가운데 백면지(白綿紙) 등이 가장 무거우며-각 절에서 이중으로 올리는 폐단을 속히 없애게 하기를 건의한다.

二).추위와 애민사상은 두 종류가 있었고,

1.군사용으로는,1).비국 당상에게 명하여 지의(紙衣)를 넉넉하게 지급하게 하였고;2).서북쪽의 변방에서 수자리 서는 사람에게는 또한 지의(紙依)를 지급하도록 왕명과.2.구휼용으로는1).비국(備局)으로 하여금 지의(紙衣)를 넉넉히 내려보내 나의 이 뜻을 보이게 하라는 왕명을 내린다.三).강제노역의무과 애민사상.1.지역(紙役;종이 만드는 강제노역의무).지속(紙束)과 애민사상은.1).그 모두를 정파하고 오로지 그 읍에다 소속시켜 지역(紙役)을 제공하도록 할 것을 청하여 윤허를 받았던 것이며;2).양호(兩湖)가 부담하고 있는 지역(紙役)은 백성들이 감당하기 어려운 것으로-끝내 변통해 주지 않고서는 호민(湖民)을 다시 보호할 길이 없습니다.;

3).명나라 사람들의 자손들은 군역(軍役)에 충당하지 말고 그 신역(身役)의 지속(紙束)도 또한 면제하여 주라고 명한다.四).지패법(紙牌法;종이로 만든 휴대용 신분증)과 애민사상을 보면.1).지패법(紙牌法)은 마침 흉년을 당하였으므로, 시행할 수 없다고 하였으나-임금이 여러 신하의 의논에 따라 그대로 시행하도록 명하며:2).지패(紙牌)의 영(令)이 있고-백성들이 모두 새와 고기처럼 놀라 중외(中外)가 소연(騷然)하니, 천천히 민업(民業)을 살펴보고 이 법을 시험삼아 시행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건의하자-왕은 지패(紙牌)의 일은 많은 곡절(曲折)이 있으나, 그 사이에 정지하는 것은 미편한 일이 있다고 한다.3).지패(紙牌)의 법을 흉년에 급히 행하면 인심을 공동(恐動)함을 건의하며;4).지패(紙牌)의 폐단을 아뢰면서 잠시 정파(停罷)하였다가 풍년이 들기를 기다릴 것을 청하니-왕은 지패를 정파하면 뒤에 비록 좋은 법이 있을지라도 시행할 수 없을 것이라고 한다.;

5).지패(紙牌)의 법은 비록 백성을 학대하는 정사는 아니라 하더라도 멀리 있는 백성이 모두 놀라고 의아하게 생각하니, 오직 개유(開諭)하여 진정시켜야 마땅할 것이라고 건의하니;6).지패(紙牌)의 법은-시행한 지 반년에 원망하고 소동(騷動)하여 다시 시행할 뜻이 없으며;7).지패(紙牌)시행은 또한 어찌 좋은 법이 아니겠습니까마는-백성과 함께 휴식(休息)하며 두어 해 동안 혜택이 믿음성 있어 사람들의 마음이 안정되게 해야 함을 건의한다..;8).지패(紙牌)·오가통(五家統)·도안청(都案廳) 법은 백성들의 원망이 한없어 아우성치며 근심하고 한탄하나- 지패(紙牌)·오가통(五家統)은 법을 세운지 이미 오래 되어서 다시 의논할 수 없다고 한다.;

9).지패(紙牌)는 이로운 점은 없고 백성들의 원망만 있으니 혁파함이 마땅하다며.-명년 봄 식년(式年)때에 절목(節目)을 다시 만들어 지패를 혁파하는 것이 좋겠다.는 왕명이 내린다.마지막으로는 五).지필묵(紙筆墨)으로 교육을 장려하는 기록을 보면.개국이래로 가장 많이 지필묵으로 장려하는 기록이 나온다. 때문에 이때부터 영정조대의 문운이 왕성하게 일어나 서양의 르네상스를 방불하는 밑거름이 됨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같다.그 내용을 다시 소개해보면,특히 어린이들(동몽)에 대한 조기교육시에 장려를 하는 기록이 특이함을 알 수 있다

.1).으뜸을 차지한 교리(校理) 민창도(閔昌道)에게-호피(虎皮)와 지필(紙筆)을 내리며.;2).특별히 지필묵(紙筆墨)을 내려주었다;3).예문관(藝文館)에 나아가 한림(翰林)에게 지필묵(紙筆墨)을 하사하였고.;4).수석을 차지한 보덕(輔德) 이상지(李商芝)에게 지필묵(紙筆墨)을 주며,; 5).학도(學徒)들 가운데 강(講)에 응하여 잘한 사람에게는 지필(紙筆)을 차등 있게 상으로 주었다.;6).진사(進士)들에게 강(講)을 시켜 그들이 익힌 바를 강하게 하고, 지필묵(紙筆墨)을 차등을 두어 내려 주고;7).동몽(童蒙)들을-친히 고풍시(古風詩)를 시험보이고 차등을 두어 지필(紙筆)로 상을 준다:8).제술(製述) 시험을 보아-각각 차등 있게 지필묵(紙筆墨)을 하사하며;9).동몽 교관에게 명하여-아이들에게-강(講)을 시험해 본 뒤-차등 있게 지필묵(紙筆墨)을 하사한다; 10).동몽에게-《소학》을 읽게 하고 각각 지필묵(紙筆墨)을 차등 있게 내려 주고,;

11).동몽에게 배우는 글을 외게 하고-, 지필묵(紙筆墨)을 차등 있게 내려 준다;12).동몽에게-강경(講經)과 제술(製述)을 시험 보인 다음 각각 지필(紙筆)을 주고;13).서학(西學)의 지영(祗迎)한 유생들에게 해조(該曹)로 하여금 각각 지필묵(紙筆墨)을 주게 하며;14).각각 지필묵(紙筆墨)을 내려 준다.;15).지필묵을 차등있게 내리며16).오언(五言)·육언(六言)·칠언(七言) 절구(絶句)를 지어 올리라 명하고, 특별히 지필묵(紙筆墨)을 내린다;17).동몽들을 데리고 입시하게 하여 시강(試講)하고 각각 지필묵(紙筆墨)을 차등있게 내려 주며.;18).병자년1·정축년 호란(胡亂) 때의 충신 자손에게는 지필묵(紙筆墨)을 내려 주었다;19).소과 초시(小科初試)에 합격한 사람과 옛 신하의 아들이나 손자에게 모두 지필묵(紙筆墨)을 하사하며;

20).태학생(太學生)을 입시(入侍)하게 《억잠(抑箴)》을 보이고,- 대사성과 여러 유생에게 화답(和答)해 올리게 하였으며- 각기 지필묵(紙筆墨)을 하사한다.;21).순통(純通)한 동몽에게는 각기 지필묵(紙筆墨)을 주라는 왕명을 내리며.”22).하교하여 구언(求言)하며. 이어서 각각 붓과 종이를 주고, 그들로 하여금 생각을 정리하여 써서 바치게 하였다.六).처벌은 1.봄에 호적 정리를 하는 때에 지가미(紙價米)를 지나치게 많이 거두어 거의 4백여 석(石)에 달하였기에-나문하여 정죄하라는왕명을 내리며;2.지패(紙牌)와 오가 작통(五家作統)은-민수(民數)의 총통계를 알기 위한 것-백성들이 모두 기뻐한다.’는 말은-기만(欺瞞)하는 데 관계되며-뉘우치지도 않하고 도리어 심술이 바르지 못하므로 파직시키며;3.본부(本府)에 있는 공용(公用)의 소지(疏紙)를 쓰지 않았고, -은밀히 가동을 시켜 배리와 함께 정납하여 공정한 체통에 크게 어긋나므로 체차한다.


이상으로 현종임금대에서 영조임금대까지 약 100년간의 종이를 통한 애민사상.입법정신.민주적인 정신.창의적인 정신.국제경쟁력있는 문화를 살펴보았다.
2007년 새해가 되어 우리의 자랑스런 문화를 더욱 체계적으로 깊이 연구하고 정리하여,국제화 시대에 외국에 유학비만 내 보내지 말고,우리 안에서도 유학을 와서 배울수 있고 가르칠 수 있는 국제경쟁력있는 자랑스런 법문화도 정치가들이 지도자들이 미리미리 백년대계를 위해 준비해 주기를 기원해 본다.

제발 소아적인 감투와 명리에 운신의 폭이 좁아진 우리사회의 각분야의 지도자 정치가 공직자님들이 자랑스런 조상들의 전통법문화를 아낌없이 좋은 것은 솔선수범하여 받아들여서, 새해부터는 더욱 잘 사는 자랑스럽고 국제경쟁력있는 창의적인 잘사는 대한민국,유학생들이 몰려오는 대한민국의 교육.대한민국의 나라의 주인들이 다 되시기를 기원해 본다.

국제경쟁시대에 빗장을 닫아놓고 남의것만 중요시하고 내것을 천시하는 어리석은 한 눈을 감은 어리석은 바보들이 되지 않기를 기원해 본다.대한민국은 수천년의 시련을 전쟁도 이겨낸 조상들의 문화가 있다.법문화도 있다.외교도 있었다.내것을 천시하는 조직이 남의 밥의 콩만 좋은 줄 아는 바보들이 되지 않기를 간절히 기원해 본다.조상들의 조선왕조의 실록은 90회나 연구하여 발표하는 필자에게는 돈도 명예도 권력도 무관하다.

그러나 권력이나 돈이나 명예에 연연하지 않고 자유롭게 전통 민족문화의 계승.발전.창달을 위해,조상들의 자랑스런 법문화를 내 삶의 의미있는 의무수행과 같이 한달 한달 발표를 하고 나면,이번달 한달은 이땅에서 살 가치가 있는 역할을 한 것으로 자위하며 살아가고 있다.


새해의 첫달 정초에 조상님들의 실록기사를 뭉뚱그려 한마디 하라면...백성은 임금의 하늘같은 존재다.민심이 천심이다라는 깊은 민주주의 정신의 표현을 소개해 드리고 싶다.이당의 지도자 정치가 공직자분들은 ....자신은 정말 스스로 열심히 하셨겠지만...

정치라는 것은, 법이라는 것은, 4,800만 이나라의 주인인 하늘같은 백성들이 싫어 하고,좋아하지 않으며,불안해 하고,

생업에 종사할 수 없는 실업자가 많으면 ...

이 땅 위에서의 정치와 입법은 행정은 사법은 결국은 비난과 배척을 받게 되는 것이 민주주의의 원리가 아닌지...

우리 각자 감투와 재물에 너무 힘주고 목메어 달지 말고,하늘같은 백성들의 삶에, 생각에, 말에, 귀를 귀우리며,사라사욕이나 재물에 돈에 너무 지나치게 탐하지 말자.황금은 분명 사람의 눈을 어둡게 하고,민의를 무시하면,독선과 일면적인 타당성만으로 민의를 배신한 것은,결국은  이땅에서 민주주의는 이미 아닐 것이다...

정치가 입법가들이 백성들의 여론을 무시하고 자신들의 좁은 이해관계로, 아니 300명도 안되는 대표자들이 편가르기로, 감투욕으로, 야망으로, 특정집단의 이익을 위해,민의를 무시한 판단으로, 처리한 정치와 입법이 아닌,

4,800만의 나라의 주인들의 입장에서 내린 정치와 입법이 되기를 간절히 기원해 본다. 4,800만의 국익과 공익을 무시한, 300명속에서 편가르기식의 아전인수적인 정치와 입법들이 결국은,4,800만의 나라의 주인들의 민심을 크게 배신한다면...

이는 이미 형식적인 민주주의이자 동시에 위헌적인 실질적으로 비민주적인 입법이자 정치라는 헌법재판소 판결이 나지 않았는지...정치가 입법가님들은 새해가 되어 소아적인 생각을 훨훨터시고,4,800만을 위한 정치와 입법을 해 주시기를 간절히 빌어보며 이만 줄인다.내 한몸의 의식주와 명리를 위해 4,800만을 인질로 수단으로 삼아 잘못된 입법을, 정치를 할 수는 없지 않는지...

배신자들이 되지 않도록 새해에는 다시 한 번 나라의 주인들을 하늘같이 존중하고(民爲君之天), 무서워 하고,겸손해 하는 정치가 공직자님들이 다 되시기를 간절히 이땅의 4,800만의 주인들이 기원하고 있음을 명심해 주시기 바란다. 불가에는 百尺杆頭進一步라는 말이 있다.높은 장대위에서 몸을 미련없이 던져버려야 목적을 이룬다는 의미다.

내 감투.내 돈.내 재산.내 것.내 몸둥아리도 다 버려야 큰 진정한 뜻을 이룰 수가 뜻을 이룰수 있다는 크고 명확한 진리가 있다.

제발 자신의 사리사욕이나 감투나 명리는 버리고,4,800만 나라의 주인들과 나라만 생각하고 정치와 입법과 사법과 행정을 해 주시기를

이땅의 말없는 주인들은 학수고대 하고 있는 민주주의 국가라는 것을 잊지 말기를 4,800만의 나라의 주인들의 민의를 간곡히 전해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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