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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7);조선 후기(정조-철종)의 종이와 문서에 관한  애민사상및 종이의 종류및 종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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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재문 작성일13-06-13 18:05 조회614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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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한국법문화의 국제경쟁력 향상을 위한 한국전통법문화의 강좌 한국전통법의 정신과 법체계(91)
-조선왕조의 기록문화와 종이에 관한 법이론과 정신(7);조선 후기(정조-철종)의 종이와 문서에 관한  애민사상및 종이의 종류및 종이로 만든 물건의 종류등
동국대학교 경주캠퍼스 법정대 법학과 교수 김  재  문   
(http://wwwk.dongguk.ac.kr/~kj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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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서설.
이번호에서는 정조임금대에서 철종임금대까지 약 70수년간의 종이에 관한 법문화를 소개하기로 한다.내용과 순서는 二.종이를 관리하는  관청.관직..품질.가격.종이상점.三..종류.1제조상.2.용도상.3.조지 4).재판상;증거.四 .외교용.권장.포상용.1외교용1)왕-황제.2).황제-왕.2.권장,포상용.지필묵들五.종이로 만든 물건종류:.종이돈 유지.연지六..금지.폐단.처벌.1금지 폐단.2.처벌.불법.위조.민원七..애민.절약.八.여어의 순서로 소개하기로 한다.


1월 23일 밤10시에는 대통령의 지난 임기동안과 남은 임기에 관한 기자회견을 보았다.대통령의 입장에서는 충분히 나라살림살이가 지난정권에서 연장된 것이므로,그때 발생한 어려운 경제문제등이 지금의 정권에서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말씀은 이해가 된다.그리고 잘하시는 역할이 왜 없겠는지...앞으로 임기를 1년전후에 끝내고 나면,역사가 평가를 할 것이다.그리고 잘한 것은 공으로 남고 잘못한 것은 과로 남을 것이다,다 잘할 수는 없다.앞으로 남은 임기동안 만이라도 더 잘 하셔서 나라의 주인들의 어려움을 도와주시고 지지를 더 많이 받기를 이땅의 많은 주인들은 기원하였을 것이다.

그리고 부동산 투기도 잡아지기를 온 국민은 기원한다.부동산 투기는 망국병의 하나라고 민심이 다 동의한다.특히 아파트 한번 두 번 잘사면 평생 수억 수십억을 번다면...누가 힘들게 노력하겠는지...“이건 아니잔아”라는 코메디언의 모습이 생각난다.그리고 공기업의 방만한 재산의 낭비가 국민의 세금으로 메꾸어진다면...이것도 반드시 고쳐야할 부분임을 부인하는 국민들도 극히 드물것이다.근로자들의 정치권력화하여 부패해가는 모습에 나라의 주인들이 염증을 느낄것이다.

전교조의 평가거부에 대해서도...이웃의 일본에서는 다시 교육자들을 평가하여 수준미달인 경우 퇴출하는 정책을 입법하는 걸로 보도된 것을 보았다.어려움과 변화를 해야 할때에 하지 못하면 낙오자가 되는 것은 아닐른지...미리 미리 준비하여 우리 모두 국제경쟁력을 미리 미리 갖추도록 하는 것이 더 현명한 것이 아닐른지...그런 의미에서 조상들의 종이문화 법문화를 계속해서 소개하므로 음미하여 도움이 되시기를 빈다.

二.종이를 관리하는  관청.관직.품질.가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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八.여어

이상의 정조대에서 철종대까지 약 70여년간의 종이문화에 관한 실록기사를 요약한 것을 다시 종합적으로 정리해보면

二.종이를 관리하는  관청.관직.품질.가격

1.종이를 관리하는  관청.관직에는

1).조지가).조지서(造紙署)등의 이름은 있으나 관원(官員)이 없는 곳은 제외시키는 것이 마땅하며;나).형인 서유경(徐有慶)이 새로 조지서 제조(造紙署提調)에 제수되었다는 이유로- 동생인 총융사(摠戎使) 서유녕(徐有寧)이 상소해- 본서(本署) 제조의 예겸(例兼)을 체직해 달라고 청하였다.;다).조지서(造紙署)·활인서(活人署)의 별제(別提)를 각각 한 자리씩 증설하는 것이 온당할 듯 건의하며.라).조지서계(造紙署契)·훈창계(訓倉契)·금창계(禁倉契)·어창계(御倉契)를 하나의 방으로 만든다.

2).지방(紙牓)담당 공무원.으로는

가).지방소 감조관(紙牓所監造官) 이조현-지방 서사관(紙牓書寫官) 윤노동(尹魯東),-지방 출납 대축(紙牓出納大祝) 홍익문으로 ;나).지방 서사관(紙牓書寫官) 행 호군(行護軍) 강시영(姜時永);다).지방 서사관(紙牓書寫官)인 행 도승지 홍열모(洪說謨)로 ;라).지방 서사관(紙牓書寫官)인 행 부호군(行副護軍) 조헌영(趙獻永)으로;마).지방(紙牓) 대축을 맡은 부교리(副校理) 서형순(徐衡淳)으로 임명하였다;

2.종이 품질.가격.종이상점.에는 먼저1).품질에 대한 기록으로는가).품질이 해마다 더욱 박렬(薄劣)하여, 거칠고 고운 것이 섞이고 길고 짧은 것이 섞이는 것은 이미 말할 것도 없으며, 심지어 지지(紙地)는 혹 열 예닐곱 장으로 한 속(束)을 만들고;나).상품지(上品紙)로는 ;묘염(廟剡염계(剡溪)에서 생산되는 상품지(上品紙)가 공독(公牘)에 많이 사용되었으므로, 묘당(廟堂)에서 천거한 공독을 가리킴.)이 있다.

2).가격
1). 호조의 작지색전(作紙色錢)-5천 냥을 10년간 갚으며 ;2). 작지가(作紙價)등의 잡비가 매필당 70냥인데 그 반을 감하고;3). 패륵 시위군의 표지(標紙)를 얻은 다음-1.2.3등 표지의 값은 각각 은 8백 냥이고  6백 냥이고  3백 냥이며- 4월 8일부터 시작하여 나흘만에 전부 팔았다;

3.지전(紙廛):종이가게를 보면

1). 지전(紙廛)등 육전 이외에서도-저자의 백성들이 매매하도록 허락하며;2). 지전(紙廛)에 돈 4천 냥을 특별히 내어주되 10년내에 갚도록한다;三..종류.(제조상..용도상..재판상;증거)를 4종류로 나누어 보되 특별히 조보(朝報)에 관한 법문화가 정조임금대에는 기록이 많은 편이다.

1.제조상의 종류(가나다순)를 보면.,

1).순종 어제 8책의 내하지(內下紙) 8건, 당지(唐紙) 9건, 익종 어제 5책의 내하지 5건, 당지 6건을 인쇄하여 올림;2).적비(賊匪) 2명을 붙잡아 피인(彼人)들에게 압송(押送)하였더니, 1장의 수표(手標)를 희고 작은 당지(唐紙)에 써서 주었음;3).세초(洗草환지(還紙)를 만드는 데 이용)와 선온(宣醞)을 명년 봄을 기다려 하라;4).청책(請冊)은 변문에 다다라서 나아갈 때에 비로소 백지(白紙)의 보단(報單)을 갖추어 점방하게 하는 일이 없도록 하며, 이행하지 못하면 저지한다.」;

5).홍주(洪州) 외연도(外煙島)에 사는 백성이-저지(楮紙) 한 조각을 가져와서-저지는 저들(이양선원)과 섬 백성이 사사로이 서로 문답한 말입니다.」 하였습;6).백면지 우자봉(白綿紙宇字封).저주지 주자봉(楮注紙宙字封).백지 천자봉(白紙天字封).대후지 현자봉(大厚紙玄字封)을 합하여 지(紙) 7백 70권 ;7).선정신이 보던 책으로, - 그 발문(跋文)을 보니-, 선정이 백지(白紙) 3속(束)으로 바꾸어 가지고 온 것이라 하니, - 하나의 진귀한 보물이므로-내각(內閣)에 두는 것이 마땅;8).은언군(恩彦君)의 집안에 소속된 전후의 문적(文蹟)은 모조리 세초(洗草;환지를 만들기 위한 작업)하라;


2.용도상의 종류.(가나다순)를 보면,

1).유음이 더욱 아득할 뿐 아니라 받아둔 계지(啓紙)에 대해서도 비지를 내리지 않았습니다;2).고지(古紙)에는 가).숙종조에 승정원의 고지(古紙) 가운데 인적(印跡)을 얻었으며;나).공경(公卿)들은 책임을 지지 않고 있고, 삼사(三司)에서는 단지 고지(故紙)에다 등서(謄書)만 하고 있습니다.;다).어찌 반드시 날마다 고지(故紙)에다 전등하느라 한갓 세월만 허송함을 일삼게 할 것입니까?;라).끝내 피를 뿜어 토죄하여 속히 왕장(王章)을 신명(伸明)하지 못한 채- 하루 이틀 단지 고지(故紙)만 전한다면,- 나라에 신하가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마).대신(臺臣)이 아직도 고지(故紙)를 베껴 아뢰는 것 역시 법을 반드시 펴려는 뜻과 관계된 것이니-그들이 스스로 정계하기를 기다렸어야 합니다.;

3).장계에 원래 답인(踏印)이 없었기 때문에 그대로 구지(舊紙)로 다시 봉(封)하여 비변사에 등보(謄報)한 것으로;4).대영국(大英國)의 배라 하면서 -역학 통사(譯學通事)가 달려가서 사정을 물으니, 녹명지(錄名紙)라는 것과 여러 나라의 지도(地圖)와 종려선(棕櫚扇) 두 자루를 던지고는 드디어 돛을 펴고 동북으로 갔으며;5).각능을 수개(修改)하는 절차와 준상(樽床)이나 면지(面紙)를 개비하는 것까지도 모두 고유(告由)하는가?6).많은 사람 가운데에는 강(講)에서 탈락하였으나 -은밀히 우등한 찌[栍]를 얻기도 하고, -몸은 시골에 있으면서 이름이 방지(榜紙)에 끼인 경우도 있습니다. ;

7).음재로서  병조에 주의(注擬)받은 사람이 여러명이므로- 이번 망통(望筒)에 부표(付標문서(文書) 가운데 특별히 유념(留念)해야 할 사항에 표지(標紙)를 붙임)하여 -이미 유윤(兪允)을 받았습니다.;8).제주 명월포(明月浦)에 다른 나라의 배가 표류해 왔는데, 상지(箱紙)가 9천 6백 70상(箱)이며 ;9).시지(試紙)에는 가).시강할 때의 시지(試紙)는 내각에서 감풍저창(甘豊儲倉)에서 받아다가 갖추어 지급하며;

나).시지(試紙)는 대호지(大好紙)를 쓰게 하고;다).시지는 체재와 모양이 응시자와 유생것과 다르고,-바로 응시하는 사람은 시지를 다른 사람이 옮겨 쓰지만 유생은 자신이 직접 쓰게 되어 있으니 -갖가지로 장애가 되고 있습니다.;라).대개 과장(科場)의 극위(棘圍)나 시지(試紙)의 봉미(封彌)도- 그 시초를 생각해 보면- 또한 어찌 선비를 대우하는 아름다운 규정이 되겠습니까마는;마)시험지를 대호지(大好紙)로하며;

10).안쪽으로는 인지(人紙)로 튼튼히 동여매지 않았기에 - 바람의 힘을 막아내지 못하고 -의자와 탁자가 쓰러지기에 이르렀습니다;11). 관향은(管餉銀) 1천 냥을 한밤중에 잃어버려서 찿아보게 하니-은을 싼 거적자리는 이웃집 호인(胡人)의 아궁이에서 불에 타 있고 -은을 봉한 인지(印紙)는 같은 집 울타리 가에 떨어져 있었습니다;12).장적지(帳籍紙)·호적지(戶籍紙)·속안지(續案紙) 등의 값은- 식년(式年)마다 영문에서 각 고을에 내어 주므로-경인년에도 역시 내어 주었으며;

13).조정의 신하들이 빙자하여 대의리(大義理)라고 여기는 것이 하나의 정지(政紙;정사(政事), 즉 인사(人事)를 적은 종이)에 의하여 여지없이 허물어진 것입니다. :14).아! 우리 대소(大小)의 백성들은 10행(行)의 지면(紙面)에 나의 마음을 펴놓은 유시(諭示)를 체득(體得)하여-혹시라도 나에게 소의 한식(宵衣盰食)하는 염려를 거듭 끼치게 하지 말라는 왕명이 내리며,”:15).혹은 지패(紙牌)와 목패(木牌)가 앞뒤로 나오기도 하고, 또 혹은 지패만 거듭 전해오기도 하거나 직함.성명도 없는 패문등은 -별도로 일정한 등록이 없어서 그런 것이며:16).이 척지(尺紙)의 조명(詔命)으로 이 소방을 덮어 주고 가리워 줌이 과연 어떠했겠습니까?17).그 당시 진강(進講)의 첨지(籤紙)가 《중용(中庸)》 제 28장(章)에 끼어져 있었습니다;

18).첩지(帖紙)가).재화(財貨) 1천 5백 민(緡)을 희사하여 민역(民役)에 대신하게 하였으니-장부(丈夫)로서도 어려운 것을 여자로서 해내었습니다. 의당 가상히 여겨 권장하여-해조(該曹)로 하여금 숙부인(淑夫人)의 첩지(帖紙)를 내리게 하소서.”:나).첩지(牒紙)를 되돌려 주는 전교와;다).곡식을 바치는 사람에게 첩지(帖紙)를 지급하는 것이 비록 흉년을 구제함에 있어 부득이한 것이나-,관직이 설만스럽게 되는 것은 마땅히 유념하여야 한다;라).비변사가 평안도 관찰사 이병모가 올린 첩지(牒紙)에 의거해서 계청하니,- 그대로 따랐다:

마).그들은 이를 인연으로 실직을 노려보려는 것이니 매우 한심하므로- 신의 병조에서 그 첩지(帖紙)를 거두어 불살라버렸으며;.바).오부의 마을에는 단지 종군했던 생존한 자인- 금위(禁衛) 송창기(宋昌起) 등 11인에게 -첩지(帖紙)를 만들어 주라고 명하고;사).생전에 가자(加資)하는 체지(帖紙)를 내리지 못하였으니, 매우 측은하기 그지없다:아).역사를 감독한 읍교(邑校)에게는 체지(帖紙)를 내어주고;

19).낡은 상자에 들어 있는 파지(破紙) 속에서 보았으며;20).표지(標紙)에는 가).보통 각사(各司)에서 첩(帖)으로 지급하는 표지(標紙)를 행하라고 한다;나).각사(各司)의 내입(內入)하는 물종(物種)을 표지(標紙)가 없는 것을 진배(進排)하지 못하도록 명하며;다).남염·빙정(藍染氷丁)은 허실(虛實)이 서로 뒤섞이기 쉬우므로 근년에는 빙패(氷牌)대신에 표지(標紙)로 거행한 것이나-이름과 실상을 일치되지 않는다;라).즉위하신 처음부터 복어(服御)는 화식(華飾)을  않고- 절수(折受)는 모두 탁지(度支)로 돌리며 -표지(標紙)는 해조(該曹)에 내리지 않고- 공헌(供獻)은 번번이 경외(京外)에 멈추게 하셨습니다;

21).홍지(紅紙) 한 폭(幅)을 내렸으니, 곧 경사(慶事)를 기록하여 칭송한 칠언 절구(七言絶句)의 시(詩)였다;22).한 번 황갑(黃甲)에 그 이름이 적히고 나면- 곧 조적(朝籍)에 통하게 되어 대함(臺銜)에 오르거나- 읍재(邑宰)에 제수거나-, 그 아래로 각사(各司)의 낭료(郞僚)나 국자감(國子監)의 여러 직책을 잃지 않으며;.23).연석에서의 대화를 한 통 베껴다가 황지미(黃紙尾)를 붙여 경들이 보면 잘 알 것이다;24).휴지(休紙);로는;가).공초하기를,“그것은 지방의 휴지(休紙)인 것 같은데, 지금 이 종이를 보더라도 실지로 알 수 없습니다.”나).근래에는 등문한 것이 문득 정부(政府)의 휴지(休紙)가 되어 버릴 뿐이라 한다;

3.조지(朝紙).조보(朝報);는

왕명을 승정원의 비서들이 기록하여 그날 아침에 알리는 문서로서 역대의 임금중에 가장 많이 활용되는 법문화인 것 같다.그내용을 보면,

1).고사에는 여러 신하들이 연석에서 아뢴 말로 -조보(朝報)에 낼 만한 것들을- 승지가 뽑아내서 조지(朝紙)에 실어 반포하는 것이 -이른바 거행 조건(擧行條件)이라는 것이며;2).아울러 체가자(帖加資) 조보(朝報)에는 내지 않고 교지(敎旨)나 체지(帖紙)만을 주는 가자(加資)를 실시해야 할 것입니다;3).한 사람이 본군(本郡)에 소지(小紙)를 올리면서 말하기를 ‘이것은 조보(朝報)를 등서(謄書)하여 온 것이다.’ 했습니다만-1단은 첫머리의 내용은- 조지(朝紙)에서 보지 못했던 바입니다.;

4).장신(將臣)이 입시(入侍)한 것이 조지(朝紙)에 나게 되면 외인(外人)들이 놀라 동요할 염려가 있기에- 이 뒤로는 실직(實職). 군함(軍啣)으루 알리시면 편리하겠습니다.;5).신이 조정에 나오지 않은 뒤로 다만  조지(朝紙)만 의지할 뿐- 내용은 알지 못하며, 그전에 듣고 본 것마저도 모두 잊어버렸으니, 비록 고사나 상규라도 수응할 가망이 없으며-엊그제 조지(朝紙)에서 전교를 보니, 죄는 중한데 벌이 가볍다는 탄식이 없지 않았습니다;6).일체로 효유(曉諭)하고 또 조지(朝紙)를 보는 자들로 하여금 이 사실을 알도록 하라.

7). 공초에서 자세히 말하였고, 익남과는 상관이 없다는 내막을 전하께서 통촉하시고- 특별히 관대한 율문을 적용하라는 하교가 조지(朝紙)에 명백히 쓰여 있다면-대사령의 혜택이 널리 파급되므로-공평해야 한다.8).병비(兵批)에서 품계(品階)를 올리고 내린 것을 조지(朝紙)에 반포하소서.;9).조지(朝紙)에 실린 비답을 가지고 말한다면 상소문의 내용은 듣지 않고도 알 수 있습니다.10).조지(朝紙)의 문적을 하나하나 상세히 조사하여-품의 조처하는 것이 실로 일을 신중히 처리하는 도리에 맞을 것인데, 이 초기는 너무도 소략하다;11).조지(朝紙)의 연락과 서찰(書札)의 왕래가 이처럼 빈번하였고- 감히 죄안(罪案)을 뒤집기 위해 스스로 해명할 계책을 품었다;12).이들 문자는 조지(朝紙)에 이미 반포하였기에-눈이 있는 자라면 모두 보았을 터인데 인행(印行)과 등본(謄本)이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13).신이 전교(傳敎)가 조지(朝紙)에 난 것을 볼 때마다 -한 종이의 열 줄에 정녕히 반복하여 조금도 남겨 두시는 것이 없습니다;

14).효자·열녀의 일은 해도(該道)에서 초계(抄啓)하여 이미 정려(旌閭)·급복(給復)한 자가 많지만, 조지(朝紙)에 내지 않았기에 경이 미처 듣지 못하였을 것이다;15).다시 세상 일에 뜻을 두고-조지(朝紙)를 구하여 보고 사람을 불러 만난다면 - 국가를 잊은 것으로, 천신(天神)이 반드시 죽일 것입니다;16).금 조지(朝紙)를 보건대, 일곱 대신(臺臣)을 귀양 보내라는 명이 있었으나-대간의 보고는 -위에서 이래라저래라 지휘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17).조지(朝紙)에는  매양 자기 당에 사적으로 처리한다고 하셨으니 -신이 감히 다시 운운하지 않겠습니다;18).조지(朝紙)에 나가는 것을 눈이 있는 사람이면 모두가 보았음;19).조지(朝紙)에 나온 것외에는 연석에서 부시(敷示)한 것을 -감히 마음대로 뿜어뎀을 고치도록 유생들에게 알려라:20).일성록에 기록된 것은 조지(朝紙)에 나온 것에 불과하지만,-영상이 비록 휴직시에도-조지를 보았을 것:

21).조지(朝紙)를 보는 자들의 자취와 마음이 흑과 백처럼 분명히 알게 하여-다투어 일어나는 칼날을 막아-경의 마음을 헤아리게 함이다;22).중외(中外)에 조지(朝紙)를 보는 자들이- 함부로 추측하는 버릇을 끊고 -옛 규칙을 보존하여-투박한 풍속을 바로잡으라.;23).문적으로 조지(朝紙)에 명백히 나타내 보이지 않았으니, 외정에서 어떻게 알 길이 있겠는가;24).갑진년의 전교는 중외에만 반포하고 조지(朝紙)에는 내지 않았으니-그 집안 사람이 전교의 내용을 가지고 한번 사례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님;25).조지(朝紙)를 받아보니, -전 경기 감사 김사목의 장계에 파주목에 안치한 죄인 정00의 처가 제멋대로 이탈하여 떠나갔다는 말이 있었습니다.26).조지(朝紙)에 나온 계사로 논해도- 경연의 유신들을 ‘겨우 어자와 노자를 구분한다.[僅分魚魯]’는 말로 단정지었습니다;

27).이 차자가 한번 조지(朝紙)에 나가면 너희에게 적지않은 수치가 될 것이다.28).공함 발송에 관한 전교와 답통(答通)의 공초(供招)를 조지(朝紙)에 반포하여 많은 사람들이 다 보게 하라;29).어제 새로 아뢰면서 조어(措語)를 고쳐서 조지(朝紙)에 써 냈어야 하는데,-전일 아뢴 예에 따라서 써 냈으니-격식에 어긋난다;30).이 상소를 정원으로 하여금 특례로 등사하여 조지(朝紙)에 반포하라.:31).선조 때의 통청(通淸)하라는 하교는 너희들이 조지(朝紙)에서 베껴낸 것에 불과하다: 32).나의 말을 진부한 이야기로 간주하지 말고 -우선 이를 조지(朝紙)에 반시(頒示)하라;33).옛날에는 조지(朝紙)에 내지 않더라도-살옥 등의 문안을 판하(判下)할 경우-대간이 발계(發啓)하는 규정이 요즈음 전연 무시된다: 34).수의 공초는 대체로 스스로 변명하는 데서 나왔으므로 그 구절들을 지우고 조지(朝紙)에 냈으며,;

35).삼가 괴이하게 여기는 것은-각신의 등대(登對)는-조지(朝紙)에도 반포하지 않는 그것입니다;정36).조지(朝紙)를 얻어 보니- 1천 석(石)을 내어 사사로이 사람을 진구(賑救)한 경우에는 법전에 의거- 직책을 제수하라는 하교를 내리셨음은-오늘날의 급선무인 것임니다;37).조지(朝紙)를 보고서 정성휴(鄭聖休)와 논란하였으며-함께 조지(朝紙)를 보고서 교대로 감히 말할 수 없는 일을 말했으며;38).결안(結案)이 일단 조지(朝紙)에 나간다면, 안의 백료(百僚)에서 밖의 팔역(八域)에 이르기까지-더욱 알게 되고-백성들의 마음이 통쾌해지게 될 것;39).재조(在朝)나 재야(在野)에서 조지(朝紙)를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심00의 죄악이 이에 그치는 것처럼 알게 만들어 버린 것이며;40).정사(政事)의 조지(朝紙)가 한 번 나가자 물정이 해괴하게 여기고;41).문목(問目) 1통을 우선 조지(朝紙)에 등포(謄布)하여 중외(中外)에서 자세히 알도록 하라.;42).조지(朝紙)에 나온 것은 신이 과연 보았습니다;43).대보단(大報壇)의 향사(享祀)에 대한 일을 조지(朝紙)에 기재하지 않은 것이다;


4.재판상의 종류;

증거서류의 경우는1).창문 밖에서 소매 속의 간지(簡紙) 한 장을 꺼내어 신을 불러 보였으며- 고지(故紙)가 또한 이미 해를 넘기게 되었기에-해서는 안됨을 깨달음;2).간지(簡紙)가 두 단(段)이란 일에-공초의 등서(謄書)는 원래 1통의 문서로- 어찌 두 단으로 나누었을 리가 있겠는지;3).윤음을 위조-조지(朝紙)에 게제된 사륜(絲綸)이 아님:4).조지(朝紙)를 보고서 알게 되었으나;5).대계란 비록 촌지(寸紙)라 하더라도 만세의 준엄한 징벌의 증거가 되기에 족하다고 한다;

四 .외교용.권장.포상용.

(1.외교용(1)왕이 황제에게.(2).황제가-왕에게 보내는 문서.종이등과. 2.왕이나 왕세자가 신하들이나 유생들을 권장하기 위한 ,포상용품과 지필묵들을 살펴본바에 의하면,

1.외교용

1).왕이-황제에게 보내는 경우는 가).심황화룡지(深黃畵龍紙)에 황필(皇筆)로 어시(御詩) 칠언(七言) 사운율(四韻律) 1수(首)를 쓴 이며;나).지선(紙扇)-조선 종이[朝鮮紙]를 각각 27권을 바치자-각종 지차(紙箚)도 보내주었으며;다).사대(事大)에 관계되는 일은 나라에서 중히 여기는 것-세폐 방물(歲幣方物)인 명주·모시·종이·무명-지지(紙地)는 혹 열 예닐곱 장으로 한 속(束)을 만들고-각항의 물건을 낱낱이 각별히 정결하게 장만하고 품질을 살필 때에 더 살펴 가리도록 힘쓰도록;라).세폐(歲幣) 가운데에서-대지(好大紙) 1백 50권(卷)·호소지(好小紙) 2천 1백 10권등을·-심양 예부(瀋陽禮部)의 공문에 따라 바치게 하였다.;

2).황제가 -왕에게 보내는 경우는가).중국의 황제가 조선국왕에게 내린 종이는 방징심당지(彷澄心堂紙) 20장, 매화 옥판전(梅花玉版箋) 20장, 화전(花箋) 20장이며,;나).견전지(絹牋紙) 4권-방전지(方牋紙) 1백 장과;다).표문 2통에 따른 공물과;라).복자지(福字紙) 1백 방(方) -견지(絹紙) 2권과 ;마).황지(皇旨)와 상유(上諭)를 황지(黃紙)에 써서 특별 자문(咨文)으로 보낸다. 

2.국내에서의 권장.포상용:지필묵들의 기록을 보면,

1).견지(絹紙)로는 가).크고 작은 견지(絹紙) 4권, 복자방전(福字方箋) 1백 폭을 상사하고,;나).견지(絹紙) 큰 것과 작은 것 4권을 치계하며.다).견지(絹紙) 한 축(軸)을 하사하였다.라).백면지(白綿紙) 초주지(草注紙) 7권,을 황세자가 내렸으며 마).상화지(霜華紙)를 하사하고-저영필(楮穎筆)을 하사하였다.바).지축(紙軸)과 필묵(筆墨)을 반사하며.; 사).지필묵(紙筆墨)으로는 (1).시사에는 비록 지필묵(紙筆墨)으로 시상하더라도 넉넉히 기쁘게 할 수 있으며;(2).과강(課講)에서-이석하(李錫夏)·홍인호(洪仁浩)에게 상으로 지필묵(紙筆墨)을 내하(內下)하고;

(3).유생들에 대해서는 도신으로 하여금 지필묵(紙筆墨)을 넉넉히 주도록 명하며 ;(4).삭서(削書)에서 말등(末等)을 한 문신 안임권(安任權)에게 지필묵(紙筆墨)을 상으로 내려렸다.;(5).지필묵(紙筆墨)을 상으로 주어 격려하며;(6).참반한 유생은 전례에 의거해 해조(該曹)로 하여금 지필묵(紙筆墨)을 제급(題給)하고;(7).장원(壯元) 및 이하(二下)를 맞은 사람에게는 《팔자백선(八子百選)》 및 지필묵(紙筆墨)을 주고,-삼상(三上)·삼중(三中)·삼하(三下)를 맞은 사람에게는 《정음통석(正音通釋)》과 지필묵을 주고, 차상(次上)을 맞은 사람에게는 지필묵을 주었다.:(8).문음(門蔭)과 유생(儒生)에게는 지필묵(紙筆墨)을 내리며;(9).점수가 많은 자를 등수를 나누어 지필묵(紙筆墨)을 상으로 주고;(10).대책에 대해 지필묵(紙筆墨)을 하사;(11).초주지(草注紙) 7권(卷), 백면지(白綿紙) 20권을 하사하였다.

五.종이로 만든 물건종류:.종이돈 유지.지의.연지등...을 보면,

1).연지(燃紙)를 싼 화약 90근.-종이로 화약을 싸되 둘레는 손가락 하나 정도, 길이는 세 발 쯤으로 하여, 죽통(竹筒) 안에 넣었다.-19일 동이 틀 때에 불을 붙이니, 일시에 성이 무너졌다;2).유지(油紙)가).본릉(本陵)에-단지 유지(油紙)·도기(陶器)·초석(草席) 등의 물건으로 둘러싸서 묶어놓고 봉서(封署)하였으며;3).《명사(明史)》의 여복지(輿服志)에 있는 산개(繖盖)의 법식에- 경성(京城) 안의 1품, 2품에게는 산개를 쓰게 하고 -그 나머지는 우산(雨傘)을 쓰게  했으며 -그 밑에는 또 산개와 우산은 모두 유지(油紙)를 쓴다고 함;4).종이돈과 비단을 불살랐으며-황제의 칙지는 별지(別紙)로 베껴 올린다;5).근일 내부(內府)의 서책을 간인하느라 외읍(外邑)의 지물(紙物)을 많히 구하며;

6).지방(紙榜) 가).사교(四郊)의 제사는-지방(紙榜)에다 써서 제사를 지낸 사례가 있었다;나).길유궁(吉帷宮)에 지방(紙榜)을 썼다;다).신해년의 의궤(儀軌) 중에는-재궁(梓宮)이 산릉(山陵)에 올라갈 때 지방(紙榜)을 정자각 내 동쪽에 이안(移安)한다;라).재계하고 지방(紙牓)을 모실 때 열천문(洌泉門) 밖에서 망위례를 행할 것이며;마).저자도(楮子島)의  기우제에-신위(神位)는 지방(紙榜)을 쓰는 것을 지금부터 법식으로 삼으라;바).제사는 패(木牌)와 지방(紙牓)으로 널리 불러들여 흠향케 하라.;7).지방함(紙榜函)을 토등(土藤) 방상(方箱)에다 봉안하고 박(帕)으로 덮어 신여(神轝)에 안치하였다.;8).일용고(日用庫)로서 지선(紙扇)과 필묵(筆墨)을 보관하는 곳이다;9).서북 변방의 수졸(戍卒)들에게 주는 유의(襦衣)와 지의(紙衣)를 내려보낼 때 -도백(道伯)으로 하여금 친히 점검하게 하소서;

10).매양 종이에다 초(草)하여 1통(通)을 -승지에게 송전(誦傳)하게 한 다음, -차비 어람(差備御覽)에게 주어 -지통(紙筒)에 보관하게 하는 것이 곧 하나의 당연한 규모(規模)이며;11).지패(紙牌)를 내어서 사람을 수금(囚禁)했기에 처벌하고;12).조포사(造泡寺) 중들의 생활이 빈약-그들에게도 다같이 참작해 나누어주고 지혜(紙鞋)를 만드는 본전으로 삼으면 -혜택을 입게될것이며;13).획지(劃紙)가).활쏘기 모임에-액정서(掖庭署)의 하인이 나가서 획지(劃紙)를 가져온 연후에 간혹 포상;나).도감(都監)의 사회(射會) 때에 액례(掖隷)가 획지(劃紙)를 가져오면 그에 의거하여 시상(施賞)한다

六..금지.폐단.처벌.(1.금지 폐단.2.처벌.불법.위조.민원)항목의

1.금지.폐단의 기록을 보면,1).남원(南原)의 간색지(看色紙)에 대해- 다시 엄하게 과조(科條)를 세워서 특별히 더 금단토록하며;2).면시(面試)한 글이 그 입격한 글과 다르게 백지(白紙)거나- 글이 모양을 이루지 못한 경우- 곧바로 과장(科場)에서 사정(私情)을 쓴 법을 적용하여 -영구히 해도(海島)에 충군(充軍)하여-다시는 면제하지 말게 하면-폐단히 절로 감소됨을 건의한다;

3).공상지(供上紙) 공인(貢人)들이 품고 있는 생각으로-정은 10냥을 천은 8냥으로 대납하게 한다면 -성수가 이미 더하거나 줄어드는 것이 없어 -뒷날의 폐단은 막으려고 하지 않아도 -저절로 막아지게 됨을 건의하며:3).영변(寧邊) 묘향산(妙香山)의 사찰(寺刹)-본시 종이 만들기를 직업으로 하는 데가 아니나-지통을 많이 차려놓았기에-더욱 책을 많이 인출하게됨-영읍(營邑)에선 10배나 영사(營私)하는 짓을 하므로- 치도(緇徒)들이 분산되어버려 지탱하여 감당해 갈 수 없게 되었기 때문에-경사(京司)의 책 인출하는 일을 영구히 혁파하였고,- 다시 영읍(營邑)에서 침징(侵徵)하게 될 폐단을 -어사(御史)의 별단(別單)에 첨가하여 기재토록 하게 된 것으로-만일에 묘향산 종이로 인출하게 되면 일체로 논죄하여 감단해야 한다;

4).순창(純昌) 사승(寺僧)의 지폐(紙弊)에 -빨리 삼군문(三軍門)에서 종이를 무역하는 폐단을 없애도록 건의하며;5).정채라는 것은 아전 무리들의 지필(紙筆) 값 정도-해마다 더욱 심해져서 -정채의 증가된 것이 전보다 갑절이나 되었으니, 이것만도 이미 군민(軍民)의 뼈에 사무치는 원한이 되었다고 건의한다;

2.처벌.불법.위조.민원 기록을 보면,

1).양반의 족보(族譜)를 첨간(添刊)하고 -관계(官階)에 뇌물로 첩지(帖紙)를 산 사람의 성명을 기록해- 정원으로 보내면 유사에게 내려 -법에 따라 엄히 다스리게 하겠다;

2).000가 체직되어 떠난 뒤에 - 소문이 파다하여- 너무도 놀랍고 분통스러워- 돈주고 체지(帖紙)를 받은 사람들을 잡아다가 - 돈은 모두 일을 맡았던 간사한 향임과 아객들의 손에 들어갔어 받아낼길이 없음을 건의한다:3).후전이니 감채(勘債)는  짐을 운반하는 값과 지묵(紙墨)의 비용으로-불법적인 것으로 일체 바로 잡아야 함을 건의하고;4).지폐(紙弊)-순창(淳昌)·남원(南原) 등의 고을에서 예전대로 폐단이 있었다-놀랍기가 막심하니-묘당으로 하여금 도백에게 관문으로 물어서 즉시 엄히 조사하여 장문하게 할 것이다;5).언교(諺敎) 및 표지(標紙)를 위조하여-왕래하면서 전해 주어- 정상이 탄로나자 추조(秋曹)에서 조사하여 명이 있게 된 것;6).지패(紙牌)를 많이 사용하여 혹 하룻밤을 지내기에 이르므로, 도성의 백성들이 받는 괴로움이 한정이 없다-범하는 자는 무겁게 감죄(勘罪)한다;


7).종이를 훔쳐내려고-옥안의 죄수이름 아래에 황지를 붙임은 -엄하기가 시체검사대장과 같다- 견양초주지(見樣草注紙)는 두꺼운 종이는 - 내가 왕위에 오른 뒤로 10여 권을 가져다 쓴 적도 없고 또한 한 번도 도배한 일이 없다. 그렇다면 2백 권이나 되는 종이를 장차 어디다 쓴단 말인가.옥에다 가두고 심문하라;8).부동(符同)한 문녀(文女)가 표지(標紙)를 많이 도둑질한 일은 더욱 천만 번 흉악하고 간사한 짓-끝까지 핵실(覈實)하여 자복을 받아서 당률(當律)대로 시행하소서;9.각궁의 제향 때 내시들이 제물과 저주지(楮注紙)·폐백(幣帛) 등을 저들 멋대로 점검 퇴각하는 폐단이 끝이 없다-너무 놀랍고 통탄스런 일- 내시를 귀양보낼 것이며;

10).지조(紙條)를 만드는 비용을 매 배마다 2석이나-, 창속(倉屬)들이 더 징수하기를 거의 한정없이 하고 있다;11).남궁(南宮)의 체지(帖紙)를 빼낸 뒤 -불법으로 동당시(東堂試)에 응시하여 -수석의 자리를 차지하였는데 관례에 따른 죄만 주고 그쳤으니, -신은 삼가 가슴아프게 생각합니다;12).순창 사승(寺僧)의 폐단은- 삼군문에 납부하는 종이를 영원히 혁파하고 -군문(軍門)으로 하여금 원가(元價)로 무역해 쓰도록 한다;
七..애민.절약에 관한 기록을 보면,

1.유의 지의

1).연말에 유의 3백 85 벌과 지의 4백 벌을 내렸기에-강변의 읍진(邑鎭)에서 동상(凍傷)에 걸릴 근심은- 파졸(把卒)이 봉군(烽軍)보다 더 심하고, 군졸이 장령(將領)보다 더 심합니다-장령에게는 모두 지의를 주고- 파졸에게는 모두 유의를 주었는데,- 봉군의 유의 숫자는 이미 부족하므로- 각 봉대마다 유의 세 벌과 지의 두 벌씩을 주어 번갈아 입게 하였습니다.-내지(內地)는 아울러서 지의를 주고,-순라 장졸과 요망군이 더욱 긴요하여 아울러 유의를 지급했습니다;

2.임금의 검소.절약

-50년간 영종대왕의 의대(衣襨)는 때가 항상 끼어 있었고- 더러는 낡았어도 바꾸어 입지 않으신 일도 있었으며, -상서(上書)의 낭(囊)으로- 종이 휘장[紙幃]을 만들었습니다.- ..

글씨를 배울 때에 -하교하시기를, -‘이 채간과 붓은 너무 좋으니- 독필(禿筆)과 휴지(休紙)로 바꾸어 오라.는것등은 직접 목격한 일입니다:3.대왕대비의 절약1).각전(各殿)에 들이는 초주지(草注紙)를 특별히 반을 줄여서 조금이나마 경용(經用)에 보탬이 되게 하라;

2).“이제부터는 지지(紙地)·석자(席子) 등을 대내(大內)에서 마땅히 각별히 절약해서 줄일 것이니,- 밖에서도 혹시 난처(難處)한 일이 있으면- 한결같이 아울러 초기(草記)하고 -이외에는 더욱 재량해 줄여서 견보(牽補)하는 도리로 삼도록 하라.;4.도신.수령이 법령을 휴지처럼 간주하니-실지의 혜택이 미치지 못하매- 곤궁한 가호(家戶)들이 치우치게 고생하는-민생 들을 생각하노라면 -어찌 애긍(哀矜)한 일이 아니겠는가라고 하고 있다.

 이상으로 조상들의 자랑스럽과 자상한 법치주의와 백성을 아끼는 절약 검소한 생활등의 다양한 기록을 통해서 하잖은 종이에 문서에 관한 법문화라고 해도 오늘의 우리들이 배우고 본받을 부분이 적지 않다고 생각된다.


특히 언론에 나타난 공기업의 방만한 국민세금을 축내는 지출등은 어려운 나라의 주인들에게 비난을 충분이 받을 처신들이 아니었는지...종이 한 장이라도 법에 의해 500여년이 경영된 조선왕조의 조상들의 청백리 정신.절약정신을 본받아,방만하게 낭비하는 피같은 나라의 주인들이 낸 세금으로 낭비하지 않는 정신을 실천하는 것이 민주주의 국가의 공직자들의 자세가 아닐른지...


그리고 정치도 마찬가지다.나라의 주인들을 하늘같이 생각하면,법만들고 고치는 것이 무엇이 그리 힘들것인지...아니 당연히 정성을 다하여 나라 주인들의 여론을 살펴서 알맞게 만들면 된다.지난 몇 년간의 여당의 다수의석과 다수의석과 같은 일방적인 밀어 붙이기식,나라의 주인들의 생각과 여론을 내몰라라 하고 태어날때부터 무슨 입법을 하기 위해서 정치가가되고,정권을 쥔것같이 민의를 배신하거나 무시한 입법을 한 정당들이라면...

당연히 나라의 다수의 주인들을 배신한 댓가를 받게 되는 것이 민주주의 법칙이 아닐른지...제발 오만과 무지와 여론을 무시한 300-400명도 안되는 사람들의 어리석은 판단들이 나라의 주인들을 서글프게 하고,배신하고 무시하고 등돌리는 일들은 하지 않기를 이땅의 주인들은 조선왕조때부터 기원해 오지 않았던지...

그래서 민심이 천심이라고 하였을 것이다.그런데 오늘날은 민심을 무시하고 짓밟고 외면한 입법을 밀어붙여도 민주주의 국가의 정당이나 대표로 절대다수의 나라의 주인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 오판한 것은 아닐른지...

열화와 같이 나라의 주인들의 정치가들의 정당을 믿고 지지를 한 결과,그 정당이 해산되거나 이름이 사라진다면...왜 그런지  감투를 쓰기전의 초심으로 돌아가 민심이 천심이라는 속담을 되새겨보기를 간절히 권하고 싶다.참으로 섭섭하고 덜 희망적인 우리 공동체의 모습에 조상들의 존경스런 법문화가 더욱 존경스럽고 그리워 지는 것 같다.


앞으로 대통령 선거도 국회의원 선거도 또 있을 것이다.제발 태어날 때부터 자신이 지도자로 태어난 것으로 오신하지 말기를 바란다.

잠시 나라의 주인들의 뜻을 받들어 나라의 입법.사법.행정등의 살림살이를 정성껏 받들어서 봉사하고 보람을 느끼며, 원래의 자신의 모습으로 평민으로 돌아오는 것이나.짧은 몇 년간 감투를 쓰게 됐다고 하늘로부터 선택된 유능한 인재로 착각하지 말기를 바란다.

무엇이든지 정성을 다해 나라의 주인들을 위해 가장 유능한 전문가를 삼고초려하듯이 찾아가 함께 의논하고 노력한 뒤에 물러나는 것이 감투가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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