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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 3): 경국대전 편찬전의 각종의 법전편찬과  경국대전 호전의 편찬과정및 반포.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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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재문 작성일13-06-13 23:22 조회82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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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통법의 정신과 법체계(96)
-조선왕조의 경국대전의 법이론과 정신 3): 경국대전 편찬전의 각종의 법전편찬과  경국대전 호전의 편찬과정및 반포.시행과 해석.적용.

사법행정2007/8월호 동국대학교 법과대학  교수 김 재 문
        (http://wwwk.dongguk.ac.kr/~kj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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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서설
이번호에서는 경국대전의 6분야중에 호전(戶典)이 편찬되는 과정을 소개하되 ,먼저 조선왕조 초기부터 편찬된 각종의 법전인 .경제육전.경제육전 원집상정.경제육전 속집상절. 원육전.속육전.육전등록의 편찬과 특징을 살펴보고,조선왕조 실록속의 경국대전 호전의 편찬과정과  호전의 법규해석및 적용사례등을 소개하기로 한다.

호전속에 들어 있는 제목은 1(경비)-30(잡령)항목까지이며, 각 항목(조(條) 마다 먼저 현행법체계로 분류하여 제목을 붙이며 그다음 경국대전의 항목(1-30)을 각각 적어서 소개를 하여,호전의 목차의 내용을 알기 쉽게 해 보았다,그리고 한 항목에 여러 가지 법령이 들어있으면 -1.-2등을 붙여서 같은 항목속의 법령임을 표시해 보았다.한개 항목이 끝나면[/]표시로 항목이나 법령의 구별을 해보았다.그동안 필자의 홈페이지에도 올렸던 경국대전 호전목차를 순서데로 분류하여 현행법명칭을 붙여 소개해 드린다.

1). 예산회계법.(행정법:재정법).호전.

( 1) 경비항목/.. 인구 동태 조사에 관한법.(행정법)(호전. 2) 호적/: 주민등록법(민사법).( 2) 호적./ 지적법(행정법:부동산관계법).호전( 3)/국왕의 농지 친경에 관한 법(행정법).호전( 4) 적전./ 공무원 급료지급에 관한법(행정법:공무원법).호전( 5) 녹과./ 재산상속법.호전( 6) 제전./ 농지세법(세법)호전(6).제전.민사소송법.호전( 6) 제전./ 토지.주택.노비소송과 상속및 수리시설에 관한 법.호전. 7) 전택./ 수도성내 거주민의 대지소유 상한법(토지법:경제법)호전. 8) 급조가지./ 농업장려에 관한법(농업법)호전. 9) 무농. /왕실의 양잠 시범에 관한 법.(경제법);호전( 10)잠실./ 군량미 저장 관리에 관한 법(군사법)호전( 11)군자창. /곡물가격 안정법(경제법);호전( 12)상평창. 관청의 물품관리의 보고에 관한 법(행:조달청법)호.( 13)회계/.관청의 물품인수.인계법(행);호전( 14)지공./

공무원의 인수 인계법(행정법:공무원법);호전.( 15)해유/. 군함의 군량미 비축에 관한법(군사법);호전( 16)병선재량. 어로장비와 염전 관리에 관한법(어업법).호전( 17)어염./ 지방수비대 근무자에 대한 물품지급법(군사법);호전.( 18)외관공급./ 농지세 부과에 관한법(농업법);호전( 19)수세./ 양곡관리에 관한 법(세법);호전( 20)조전./ 특산물 납세징수에 관한법(세법.공무원법);호전( 21)세공./ 잡종 세금 징수법(세법:영업세법);호전( 22)잡세./화폐에 관한법(경제법);호전( 23)국폐./

농.축산업 장려법(농업.축산법);호전( 24)장려./ 흉년구제법(사회보장.공적부조법);호전.( 25)비황./ 매매의 관청 증명에 관한 법(민법);호전( 26)매매한. 매매기한에 관한 법(민법).호전.( 26)매매한./ 국세 징수법(세법);호전( 27)징채./ 공채무자 사망시 처자재산 법정 당연 연대 변제법.호전. 27)징채 사채무불이행시 관청 신고후 재판청구법( 호전. 27)징채/. 중국황제와 국왕에게 물품 납부에 관한 법(공의무.호전. 28)진헌/. 강제노동의무에 관한법.(헌법?)호전.( 29)요부/. 지방거주 노비의 의무면제에 관한법(세법);호전( 29)요부/. 국세 징수부정 처벌법.(국세징수법)호전( 30-1)잡령/. 조세곡물 운반선박 부근에서의 매매금지(매매법)호전( 30-2)잡령/.

사찰에 부당 징세(국세 징수법.불교재산.)호전( 30-3)잡령/. 지방 특산물의 관리(특산물 납무.관리법)호전( 30-4)잡령/. 인구 변동의 기록(인구조사법)호전( 30-5)잡령/. 위법적 승려자격 제한(불교법:승려자격법)호전( 30-6)잡령/. 목장의 목마 수량 보고법(목마관리법)호전( 30-7)잡령/. 각종의 금지 법(세법.형법.상법.불교법....)호전( 30)잡령/.

二.경국대전편찬 이전(以前)의 법전과 호전(戶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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五.여어

이상과 같이 경국대전 호전이 편찬되어 지기 위해서는  경제육전.경제육전 원집상정.경제육전 속집상절. 원육전.속육전.육전등록등이 이미  편찬되었고, 이런 법전이 함부로 고쳐서는 안되는 헌법과 같은 법전(원육전등)과 개정가능한 법령집인 등록이란 명칭으로 구별되어  편찬되며 그내용도 여섯분야로 분류되고 편찬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하여 각 법전과 새로 만든 왕명과 법령을 종합하여 경국대전이 탄생되며 ,그 중에서 경국대전 호전과 형전이 먼저 편찬됨을 알 수 있었다. 때문에 경국대전은 1485년에 완성.확정되지만  1397의 경제육전에서부터 시작해보면 거의 90년가까이 걸려서 조선왕조의 기본 헌법전인 경국대전이 완성됨을 알수 있다.

그리고 경국대전의 내용은 1894년 갑오개혁전 까지 대전회통속에서 그대로 법의 정신은 존중되었으며,속대전 대전통편 대전회통의 헌법전의 편찬으로 경국대전은 일부분 개정되고 보완되었지만,거의 조선왕조의  510년간 그 효력을 유지해 왔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고종  37년(1900) 경자년에서도  대한 광무(光武) 4년 중추원 의장(中樞院議長) 김가진(金嘉鎭)이 올린 상소에서 본바와 같이 경국대전 호전 매매한조문을 보완하며,각종의 토지.가사(집)의 매매시에 100일내에 관청에 신고를 하는 신고규정은 있어나,

매매계약서등의 문서는 일정한 정형의 규정이 없어,목판으로 정형의 계약서를 인쇄한 관청에서 발급하는 계권(전답관계)인 정형(定型)의 계약서를 법규화하여, 토지와 가호에는 누락된 토지와 민호가 없을 것이며,기존의 경국대전의 규정과 관습법을 보완하며,국가재정의 확대와.중국연호를 폐지하고 대한제국의 연호를 쓰는 독립정신을 엿볼수 있었다. 앞에서 소개한  실록기사의 요약한 내용을 다시 순서데로 정리하여 재인용 소개해 보기로 한다.

一.경국대전 편찬전의 여러법전과 호전(戶典)


一).경제육전.경제육전 원집상정.경제육전 속집상절. 원육전.속육전.육전등록의 편찬과 특징.

(1);태조  6년( 1397 정축) 무진년(1388년)이후에 시행된 규정및 합당하게 행할 조례를 책으로 모아 《경제육전》을 간행하며;(2).정종  1년( 1399) 기묘 왕은 《경제육전(經濟六典)》에 치국(治國)하는 요령을 갖추 실었으니 반포거행하고-위반자는 엄히고찰-법조문의 폐지를 금지하고:(3)《속육전(續六典)》 수찬소(修撰所)를 설치 -진산 부원군(晉山府院君) 하윤(河崙)에게 그 일을 관령(管領)하게 한다:

(4).태종  12년( 1412) 임진《경제육전(經濟六典)》의 원집 상절(元集詳節) 3권(卷)과 속집 상절(續集詳節) 3권을 갱정(更定)하며-하윤(河崙)이 상언(上言)하며.“삼가 《육전(六典)》 원집(元集) 및 속집(續集)을 가지고 참고 교정하여 중복된 것은 없애고, 번다하고 쌍스러운 것은 바꾸고, 사리에 상량 의논할 것이 있으면 왕지(王旨)를 받들어 갱정(更定)하여 원집·속집을 수찬(修撰)하여 바칩니다.;


(5).태종 13년(1413) 계사 국초에 정승 조준(趙浚) 등이 수판(受判;신하가 임금의 판지(判旨)를 받는 것. 고려 때 몽고의 지배하에 교지(敎旨)를 판지(判旨)로 바꾼 결과 수교(受敎)도 수판(受判)으로 되었음.)한 것의 준수(遵守)할 만한 것을 찬(撰)하여 ‘《경제육전》’이라 명목지어 바친 것을 정승 하윤(河崙) 등이 그 뜻[意]은 존속시키고- 이어(俚語)는 제거하여 이를 -‘《원육전(元六典)》’이라 하고,- 또 상왕(上王)이 즉위한 이래로 경제(經濟)가 될 만한 것을 골라서 뽑아 ‘《속육전(續六典)》’이라 하여,- 주자소(鑄字所)로 하여금 인출(印出), -중외에 반포한다;

(6).太宗  15年(1415) 乙未  , 무릇 조획(條畫)은 한결같이 《원육전(元六典)》을 따르고, -왕지(王旨)·《속육전(續六典)》 안에 -《원전(元典)》의 조획을 고치는 것이 미편한 것은 다시 참고하여- 예전대로 시행하고, -그 중에 부득이하여 조획을 고치는 것은 -상량하고 의논하여 계문(啓聞)하라.”는 왕명이 내리며-《원전》을 고쳐서 《속전》에 실은 것을 모두 다 삭제하고,- 그 중에 부득이한 일은 《원육전》 각 조목 아래에 그 각주(脚注)를 쓰라는 왕명이 재차 나온다;

(7).세종  8년(1426) 12월 3일《경제육전(經濟六典)》은 우리 태조 강헌 대왕(太祖康獻大王) 때 정한 법전으로서 좌정승(左政丞) 조준(趙浚) 등이 찬집(撰集)한 것은 -각각 원본(元本)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간혹 방언(方言)이 들어 있었는데-좌정승(左政丞) 하윤(河崙) 등이 한문으로 바꾸고- 쓸데없는 말을 빼어버리고 이를 《경제육전원집상절(經濟六典元集詳節)》이라 이름함-만일 일시적으로 행할 만하나 영구한 법전이 되지 못하는 것은 각각 따로 찬집(撰集)해서 이름을 《원전등록(元典謄錄)》이라 하며-그 어긋나고 중복된 것을 모두 삭제해서 수찬(修撰)한- 《속육전(續六典)》 6권과 속록(續錄) 1권을 -삼가 선사(繕寫)해서 바치며 시행을 건의한다:

(8).광해  4년(1612) 임자 《경제육전(經濟六典)은-지금 다시 수소문하여 그 완본을 얻은 후에 인출하도록 하므로 임진왜란 이후에도 경제육전의 완전한 내용의 것을 수소문하여 구해 인쇄하도록 하였음을 알 수 있다.임진왜란이 없었다면,혹시라도 경제육전등의 조선왕조의 최초의 기본법전들이 오늘날까지 전해저 내려왔던가 아니면,일인들이 약탈해 갔을 지도 모를일이 아닌지...

二). 경제육전호전.원육전호전.속육전호전등의 적용및 해석.

(1).《경제호전(經濟戶典)》-호구(戶口)의 법은 밝지 못하여 차역(差役)이 고르지 못하고 양천(良賤)이 뒤섞여 그 폐단이 작지 아니하며- 양반(兩班)·인리(人吏)·백성(百姓)·각색인(各色人)의 세계(世系)를 자세히 추고(推考)하여 분간(分揀) 성적(成籍)하기를 건의한다,;

(2).원육전(元六典)》 호전(戶典)에-부경 사신(赴京使臣)의 행차(行次)에 모리(謀利)하는 사람이 중국으로 나아가 몰래 매매를 행하여- 〈국가에〉 오욕(汚辱)의 이름을 가져오게 하면 관계가 적지 아니하니,- 진헌 방물(進獻方物), 노차 반전(路次盤纏), 의복(衣服) 이외의 잡물(雜物)은 모조리 몰관(沒官)하고,- 그 모리(謀利)하는 사람이 끌고 가던 마필(馬匹)도 아울러 각참(各站)에 소속시킨다.’고 하였습니다.:

(3).《원호전(元戶典)》에 ‘흉년에는 백성이 도토리를 주워서 먹고 사는데, 해마다 불태우니 더욱 마음이 아프다고 한다.

(4).속전등록 호전 반록조에-금년 여름 첫달[4월] 반사는 4월 이전에, -겨울 첫달[9월] 반사는 10월 이전에 주고,- 상중에 있거나 물고되어 체차를 거치지 아니한 자에게도- 《육전(六典)》에 의하여 시행하도록 하소서.

(5).속호전 권농조(續戶典勸農條)와- 정통(正統) 4년 3월 본부(本府)의 수교(受敎) 가운데의 해당 조목에는, ‘농사는 모름지기 시기에 맞추어서 권장하게 하라.- 그러나 그 중에는 각박(刻迫)하게 독촉하여 백성들이 손발도 쓸 겨를이 없도록 하며,- 심지어는 밭에 거름도 할 겨를이 없도록 하여 폐단을 일으키는 자가 혹 있으니,- 감사가 절후의 이르고 늦음과 민사(民事)의 완급(緩急)을 요량하여서 시행하게 하라.’고 하였습니다.-이 조목은 법을 세우고 거듭 밝혀서 거행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라고 하였다. 의정부에서 아뢰기를,“호조에서 아뢴 대로 하소서.”하니, 그대로 따랐다. ;


(6).《속전 호전(續戶典)》 인보조(隣保조)에 이르기를, ‘혹은 10호, 혹은 3, 4호가 1인보(隣保)가 되어, 항산(恒産)이 있고 믿을 만한 사람을 선택하여 정하여 정장(正長)으로 삼아, 그로 하여금 수화(水火)를 서로 구원하고 출입을 서로 고하게 한다.’고 하였으니, 제도(諸道)의 연해(沿海)에 거주하는 백성들도 이 예(例)에 의하기를 청하옵니다.-연해의 주민에게는 10인 마다 1통(統)으로 삼고, 10가(家)를 1대(隊)로 삼아, 창검(槍劍)과 궁시(弓矢)는 그들 스스로 소유함을 허락하고, 각각 병기(兵器)를 갖추어서 관(官)에 기적(記籍)하게 하나.-병조에서 아뢰기를, “만일 갑자기 변민(邊民)으로 하여금 이사하게 하고, 또 병기를 갖추게 한다면 소요함이 반드시 많을 것이오니,- 마땅히 해도 찰방(海道察訪)으로 하여금 변군(邊郡)을 순행하면서 효유하고 장려하게 하여- 몇 해를 두고 기약한다면, 백성들도 이해(利害)를 알고 자연히 습속으로 이루게 될 것입니다.”하므로, 그대로 따랐다.;


(7).《호전등록(戶典謄錄)》 1관(款)에 평안·함길 두 도의 각 고을에 쌀과 밀가루로 영리(營利)하는 사람이 바꿈질하는 것은 일체로 금하게 되었사오나, -서울에 사는 자는 자원(自願)에 따라 곡식을 그 도(道)에 바치고, 전라·경상도의 미곡으로써 제급(題給)하게 하고, 또 민간에서 교환하도록 건의하며 함경도 일부 지방을 한정한다;

(8).《속호전(續戶典)》의 공물대납금지조(貢物代納禁止條)의 법이 있으나- 대납(代納)하는 가격은 임의대로 증가하여 많아졌는데도, 각 고을의 수령(守令)들은 또한 한 때의 사의(私意)로 써 버려두고서는 살피지 않으므로 -빈한한 백성들은 재산을 다 팔게 되어, 이 일로 인하여 직업을 잃게 되었습니다.-만약 법을 벗어나서 대납(代納)하는 사람이 있으면 뒤따라 즉시 금지하고 추핵(推劾)하여 -지나치게 징수한 대가(代價)의 쌀은 각기 그 주인에게 돌려주게 하고,- 실정(實情)을 알고도 금지시키지 않는 수령(守令)은 추핵(推劾)하여 죄를 과(科)하게 하소서.”하니, 그대로 따랐다.; 

(9).속호전등록(續戶典謄錄)》을 고찰하니, -‘투화인(投化人)은 1, 2년 안에는 의복(衣服)과 월료(月料)를 주나, -여러 해된 자는 매 1인에게 도합 쌀·콩 아울러 10석을 준다.;(10).《호전등록(戶典謄錄)》에 의하면, -‘시전(市廛)은 1간마다 춘추(春秋)로 각각 세전(稅錢) 1백 20문(文)을 거두고, -제색 장인(諸色匠人)은 매월 세전을 거두되, -상등(上等)은 90문, 중등은 60문, 하등은 30문이며, 행상(行商)은 세전 80문을 거두고, 좌고(坐賈);앉은 장수.) 는 40문을 거둔다-이제부터는 시전의 간수 및 장인의 등급과 장사아치 [商賈]의 성명과 세전[稅楮貨]의 액수를 명백하게 기록하여 실어 보내게 건의한다.”


(11).《속호전(續戶典)》의 제읍 둔전 정수조(諸邑屯田定數조)에-경종(耕種)하는 데 폐가 없도록 하였으나- 지금 수령(守令)들이 조령(조令)을 두려워하지 않고- 마음대로 남점(濫占)하여 정수(定數)보다 지나치게 경작하고 있으므로 -폐해가 백성에게 미칩니다-청컨대 율(律)에 의하여 중하게 논죄(論罪)하소서.- 지금 수령들도 또한 법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백성들의 고혈을 빨아 공공연하게 뇌물을 행하니, 청컨대 거듭 법을 밝혀 엄히 금지하고 감사(監司)로서 능히 검거하지 못한 자도 수령과 아울러 잡아다가 국문하소서.”하니, 그대로 따랐다.;

(12).《원호전(元戶典)》에 이르기를, ‘각도의 항산(恒産)이 없는 자가 피차(彼此) 서로 옮기면 호구(戶口)가 줄어드니,- 호적(戶籍)이 이루어진 이후부터 만약 도망하는 자가 있을 것 같으면, -그 가장(家長)을 장(杖) 1백 대에 처하고,- 〈이를〉 허접(許接);받아 들여 거접(居接)을 허락함) 한 자도 같은 죄로 논하며,- 도망한 자는 본향(本鄕)으로 돌려보낸다.;


(13).《속호전(續戶典)》 의창(義倉)의 예에 의하여 납입(納入)하는 자로 하여금 자량(自量)하게 하라.-만약 불법(不法)한 자가 있으면 -관찰사가 엄하게 고찰(考察)-1등을 더하여 죄를 과(科)하라는 왕명이 내린다;


(14).《속호전(續戶典)》에 ‘노비로서 본주(本主)의 전지(田地)를 경작하던 자가- 죽은 뒤에는 아울러 주인에게 돌려 주고, -만약 자기 전지라면 자식이 있는 자는 자식에게 주고, -자식이 없는 자는 본주에게 준다.-만약에 본주가 자식이 있는 자의 재산을 침탈한다면 노비라도 자손이 장소(狀訴)하는 것을 허락하기를 건의한다.

二.경국대전 호전의 편찬. 반행등 과정


(1).세조  5년( 1459) 기묘, 경국대전 호전(戶典)은 한계희(韓繼禧)가 없어서는 불가(不可)하다고 건의하며:

(2).;세조  6년(1460)《경국대전(經國大典)》 호전(戶典)을 새로 제정 반행(頒行)하고 《원속전(元續典)》과 《등록(謄錄)》 내의 호전(戶典)을 거두도록; 하고

(3).선군(船軍) 박흥(朴興)의 처(妻)가 한꺼번에 세 아이를 낳았으니,- 청컨대 호전(戶典)에 의하여- 쌀·콩 10석(石)을 주기를 청한다;

(4).세조  7년(1461) 육전을 상정(祥定)하고자 하니, 내가 지금 이를 허락한다.-육전 가운데 형전(刑典)과 예전(禮典)의 2전(二典)이 가장 어려우니,- 경은 그것을 힘써야 한다;

(5):세조 27권, 8년(1462).《경국대전(經國大典)》《경국대전(經國大典)》 : 호전(戶典) 적전(籍典條) 에서 ‘동적전(東籍田)은 양주(楊州)의 백성 1백 명에게 주고 서적전(西籍田)은 풍덕(豊德)의 백성 2백 명에게 주어서 농군(農軍)으로 삼아 잡역은 면제한다고 하나-농군들이 고생하는 폐단이 있기에-두 고을에 사는 백성들이 농군의 숫자만큼 차례로 돌아가며 일을 하도록한다.;

(6).호전(戶典)에 여러 진(鎭)·포(浦)의 둔전(屯田)에서 공납하는 어염(魚鹽)의 숫자를 기재하도록 하여 주고- 몇 석이면 벌을 준다고 분명하게 말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에-여러 진(鎭)·포(浦)의 둔전에서 어염(魚鹽)이 소출(所出)되는 양의 많고 적음에 의거하여 3등으로 나누고,- 그 상등(上等)인 곳에는 몇 석(石) 이상이면 상으로 논하고 -몇 석(石) 이하이면 벌(罰)로 논하며 -그 중등(中等)·하등(下等)인 곳도 또한 차례로 내려서 -숫자를 정하여 상벌을 주도록 하라는 왕명이 나온다.;

(7),세조  11년(1465)에《육전(六典)》을 수교(讎校)하게 -임금이 재추(宰樞)·낭관(郞官) 각각 1인씩을 나누어 명하여 -좌부승지(左副承旨) 이영은(李永垠)·사헌 장령(司憲掌令) 이극기(李克基)는 호전(戶典)을 교정한다,


(8).세조  13년(1467)에 집의(執義) 이극돈(李克墩)·군자감 정(軍資監正) 김순명(金順命)·선전관(宣傳官) 최연명(崔延命)·이의형(李義亨)을 우편으로 삼고, 성균 직강(成均直講) 김유(金紐)·헌납(獻納) 조간(曹幹)·한성 판관(漢城判官) 양진손(梁震孫)·사인(舍人) 이길보(李吉甫)를 좌편으로 삼아, 새로 지은 형전(刑典)·호전(戶典)의 잘못된 곳을 상고하여 아뢰게 하니, 이극돈 등이 찾아낸 것이 많았는데, 표피(豹皮)를 각각 1장(張)씩 내려 주었다.;

(9).세조  13년( 1467)에 상정소(詳定所)에서 아뢰기를 “새로 편찬한 대전(大典) 가운데 호전(戶典)·형전(刑典)은, 청컨대 먼저 인쇄하여 중외(中外)에 반포(頒布)하여 내년 정월부터 시행하게 하소서”라고 하였다.;

(10).세조께서 일찍이 육전(六典)을 상정(詳定)하여 몇달동안 이루지 못하였고, 오직 호전(戶典)·형전(刑典)만을 겨우 이루었으나, 글자를 주조하여 간행(刊行)하였으니, 대개 옳은지를 시험하고자 한 것이었습니다. 폐단이 생기면 고치는 것은 만세(萬世)에 통행(通行)하는 전례입니다. ;

(11).세조가 우리 나라의 법제(法制)가 번거롭고 자세하다 하여 6전(典)으로 고쳐 정하고, 고금의 법을 참고하여 세절(細節)을 버리고 강령(綱領)을 두어서 간략하게 하였다. 개국(開局)한 지 5,6년에 겨우 형전(刑典)·호전(戶典)의 2전(典)을 이루고, 이때에 이르러 6전이 다 성취되었는데, 그 형전·호전은 거의 다 세조의 어제(御製)이다.;


(12).성종 , 1년(1470)에 봉원군(蓬原君) 정창손(鄭昌孫)·고령군(高靈君) 신숙주(申叔舟)·상당군(上黨君) 한명회(韓明澮)·능성군(綾城君) 구치관(具致寬)·청송군(靑松君) 심회(沈澮)·창녕군(昌寧君) 조석문(曹錫文)·좌의정(左議政) 윤자운(尹子雲)·호조 판서(戶曹判書) 서거정(徐居正)·공조 판서 양성지(梁誠之)에게 명하여 호전(戶典)·공전(工典)을 교정(校定)하게 하였다;

(13).성종  1년(1470)에 봉원군 정창손(鄭昌孫)·고령군 신숙주(申叔舟)·상당군 한명회(韓明澮)·능성군 구치관(具致寬)·청송군 심회(沈澮)·영성군(寧城君) 최항(崔恒)·영의정(領議政) 홍윤성(洪允成)·좌의정 윤자운(尹子雲)·상락군(上洛君) 김질(金礩)·겸 이조 판서 한계미(韓繼美)·호조 판서 서거정(徐居正)을 명하여 불러 호전(戶典)·이전(吏典)을 교정하게 하였다.;

三.경국대전 호전의 해석.적용

(1).율문(律文) 가운데에 관민(官民)의 전지(田地)를 몰래 경작하는 자와 전량(田糧)을 속이고 숨기는 자는 한결같이 《대전》에 의하여 면적[畝數]을 통계(通計)하여 죄를 과(科)한다-《경제육전(經濟六典)》의 호전(戶典)에 의하여 본조(本朝)의 전지 22부(負)를 중국의 전지 1무(畝)에 준해서 통계하여 과죄(科罪)해서 마땅한 형벌을 정하도록 건의 하였으니, 그것을 의논하여 아뢰라고 한다;

(2).명종  11년(1556)에 《경국대전》 주해의-고하고 경작하는 것[告耕]을 허락한다.’는 것은, 아래 조항의 ‘주인이 없는 밭은 다른 사람에게 이전해 준다.’는 것과 같지 않으며. 혹 사고 때문에, 혹은 가난과 질병으로 인해 경작하지 못하고 3년을 묵힌 농지는 잠시 다른 사람이 경작하도록 했다가 경작권을 가진 본 주인이 충분히 경작할 힘이 있어 다시 짓겠다고 하면 되찾아 주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바로 전야(田野)를 전부 개간하게 하여 땅의 실리(實利)가 버려짐이 없게 하자는 뜻입니다. 만일 영원히 절급(折給)하는 것이라면 어찌 ‘고경(告耕)’ 이라고만 했을 뿐이겠습니까.- 《대전》의 본 뜻은 이와 같지 않을 듯싶습니다-호전(호전)의 전택조(田宅조)에- ‘3년을 경과한 진전(陳田)은 다른 사람이 고하고 경작하는 것을 허락한다.’는 것은 -전야(田野)를 모두 개간하여 땅의 실리를 버림이 없게끔 하자는 것이니,- 이것이 법을 만든 본의(本意)입니다.

-혹 ‘이와 같이 한다면 힘 없는 이들의 전답은 모두 힘 있는 자의 소유가 되어 겸병(兼幷)하는 길을 더욱 열어주게 된다.- 국가에서 이미 그 조세를 받아내고 있는 바에는, -비록 묵히고 있더라도 세금을 걷는 것과 혹 자기 힘으로 전부 경작하지 못하여 대리 경작을 시키는 곳이 있는 것은 모두 고경(告耕)을 허락하지 않는 것이- 바로 겸병하는 길을 막는 것이며, -충후(忠厚)한 뜻도 역시 그 가운데 있는 것이다.’라고 하는데, 신도 역시 그렇게 생각합니다 라고 한다.;

(3).인조  13년(1635)에《대전(大典)》을 살펴보건대, 호전(戶典)에 ‘서울과 지방에 상평창을 설치하여 곡식이 귀할 때는 값을 올려서 베를 사들이고 곡식이 흔할 때는 값을 낮추어서 베를 판다함은.-실로 백성에게 편리한 제도-중간에 폐지하여 시행되지 않았으니, 실로 안타까운 일-다시 창고를 설치하여 본청에 쌓여 있는 은화로 쌀을 사 들여서 쌓아 두었다가 풍흉을 보아 그 값의 고하를 결정하여 백성에게 이익을 준다면, 영원한 제도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4).효종 즉위년(1649)에 《경국대전(經國大典)》-호전(호전)-5호를 1통(統)으로 하고 통에는 이정(里正)을 두고 면(面)에는 권농관(勸農官)을 두었는데 그뜻이 매우 원대하여 실로 오늘날에 합당합-오랫동안 폐지되어 오던 것을 이제 거행하고자 하면 엄하게 사목(事目)을 세워 장려해 봉행해야만 합니다;

(5).호전(호전)의 수세조(收稅條)에 -‘전부 진전(陳田)인 것은 면세(免稅)한다.’고 하였으니, -대개 조종(祖宗)이 법을 제정한 뜻은 먹지 못하는 진전으로써 -수납하는 포(布)는 군포(軍布)보다 약간 가벼운 까닭에 군역(軍役)을 피한 백성들이 서로 데리고 와서 귀속하니, 영속(營屬)은 날로 증가하고 양민(良民)은 날로 축소되어 각읍(各邑)에서 한정(閑丁)을 얻지 못하고, 백골(白骨)과 아약(兒弱)들이 침독(侵督)을 면하지 못하는 것은 오로지 이것 때문이니, 청컨대, 일체 조사해 내어 군역(軍役)에 충정(充定)하소서.”하니, 비국(備局)에서 의논하도록 명하매, 비국에서 방계(防啓)하였다.;

(6).《경국대전(經國大典)》-호전(戶典) 어염조(魚鹽條)-임진란(壬辰亂) 뒤에 여러 궁가(宮家)가 새로 돌아오자 의지할 바가 없으므로 그때 탁지(度支)의 신하가 어염장(魚鹽場)을 주기를 청하였으니, 이것이 절수(折受)의 시작이며-일생 동안 바다 물결과 소금 연기 사이에서 신고(辛苦)한 자는 손에 돈 한 푼이 없어 하늘에 부르짖고 해독을 원망하게 하는 것이 가는 곳마다 다 그러한데, 아문·궁가에서 받아들이는 것은 겨우 10분이 1입니다-반드시 먼저 연해의 어염장을 살펴서 두서를 정리한 뒤에 구관(句管)하여 총괄할 관사를 정하고 함께 의논하여 규제하여 마침내 영구한 법을 만들어야 할 것입니다.

-이 법이 잘 만들어져 세식(稅式)을 너그럽게 정하고 징수하는 권한이 한 군데로 모일 수 있다면, -오히려 포악하게 요구하고 거듭 거두는 폐해를 영구히 끊어서 해민(海民)의 몹시 다급한 괴로움은 풀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건의하나-이 뒤에도 절수가 여전하여 끝내 실효(實效)가 없이 한갓 한바탕의 헛된 말로 돌아갔으므로 식자가 한탄하였다;


(7).정조  9년(1785)에 《대전통편》을 반포하며- 호전(호전)이 73조가 되었다;(8).정조  22년(1798)에 진전·환곡·소금·대동 면포 등에 대한 양산 군수 윤노동의 상소양산 군수(梁山郡守) 윤노동(尹魯東)이 구언 전지(求言傳旨)에 응하여 상소하기를...호전(호전)에 실려 있는바, 개간지에 대하여 3년간 면세한다는 법은 본디 진전으로 측량한 것에만 한한 것-지금 두 해 사이에 어떤 곳은 세를 면제하고 어떤 곳은 세를 바쳐서 서로 판이하게 된다면 당장은 한탄하고 앞으로는 맥이 풀릴 것이니, 그런 경우 어떻겠습니까-

그러나 금년 무오년에 예전에 묵었던 전지를 다시 경작한 것은- 일체 정사년의 규례에 의거해서 측량하기 전과 측량한 뒤를 막론하고 -그대로 3년 동안 면세하도록 허락하고,- 내년부터 특별히 신칙하여서- 농부들로 하여금 어느 진전을 경작하면 면세가 되고- 어느 진전을 경작하면 조세를 내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알게 한다면 -백성들이 거의 억울해 하지 않을 것이고 전정(田政)도 문란해지지 않을 듯합니다.;9).고종  37년(1900), 대한 광무(光武) 4년 중추원 의장(中樞院議長) 김가진(金嘉鎭)이 올린 상소의 대략에,..

만약 기한이 지나도록 문권을 받아 가지 않는 것은 나타나는 대로 관청에서 몰수하며 백성들이 고발하면 그에게 절반을 주게 할 것입니다. 해당 백성에게 문권을 발급할 경우에는 집과 토지를 팔고 사고할 때 거기에 쓰이는 용지대(用紙貸)를 바치는 《속전(續典)》의 규례에 의거하여 적당한 금액을 정해 거두어서 위에 바칠 것입니다.-매매 문권(文券)은 규정이 전혀 없이- 얇은 종이에 되는 대로 썼으며 말도 되지 않습니다.-

한 논배미의 땅에 대한 옛 문권이 수십 개나 되고 백 칸 되는 집도 전매(轉賣)한 증명 문건이 없습니다.-위로는 조종(祖宗)의 옛 법에 의거하고 널리 각 나라의 새 제도를 채용해서- 먼저 외국의 기계를 사들여 종이를 제조하고 인쇄판을 만들어 양식을 찍어냄으로써 -위조하는 것을 방지해야 할 것입니다.- 해당 고을에서는 하나하나 효주(爻周)해가며 관계(官契)를 다시 발급하되- 글자를 써 넣고 도장 찍는 것을 되도록 자세히 살펴야 할 것입니다.- 새로 산 자는 반드시 산 지 10일 이내로 옛 문권을 와서 바치고 새 문권을 교환해 받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 갑오년(1894) 이전의 매매 문기(賣買文記)에 모두 다른 나라의 연호(年號)를 쓴 것은 실로 500년 역사를 가진 나라의 수치였는데 이제부터 영원히 없애 버린다면 어찌 통쾌하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해서 더욱더 토지 측량에 관한 사무를 정리하고 게다가 호구 문서에 관한 사무를 정리해서 기어이 정확히 하여 서로 안팎 관계를 이룬다면 전국의 토지 면적과 민호의 숫자는 저절로 명백해질 것입니다. 이것은 나라 정사에서 급선무이고 주관(周官)의 큰 법으로도 됩니다.-계권에 관한 이 방법은 사실 옛날의 법을 회복하려는 것이지 새 것을 좋아해서 새로 만들자는 것이 아니므로, 이제 또 다시 두려움을 무릅쓰고 우러러 호소하는 것입니다라고 함을 알 수 있다.


이상으로서 경국대전의 호전이 편찬되기 전의 각종의 조선왕조 초기의 법전편찬과 경제육전 원육전 속육전등의 호전의 내용을 실록상으로 엿볼수 있었다.그리고 경국대전이 이런 법전의 편찬으로 약 90년쯤 갈고 닦은 후에 만세불역의 경국대전 호전이 형전과 함께 먼저 편찬됨을 알 수 있었다.


법이란 하루 아침에 이루어 질 수도 없고 적어도 독일 민법이 만들어 지는 과정이 거의 100년의 기간이 걸리듯 우리의 경국대전도 우리의 각종의 법전편찬이 조선왕조 초기부터 약 90년만에 완성됨을 알수 있기에,오늘날 우리들이 바라는 백성을 임금의 하늘로 삼는 자랑스런 민주적인 법,대한민국이 선진국으로 강하게 존속할 부강한 나라를 만드는 법도,하루아침에 만들어 지지는 않을 것 같다.

때문에 우리는 너무 졸속하게 거품같이 조변석개하는 인기나 부침하는 권력이나 변화에 너무 경솔하게 대처하기 보다는 장구한 시간을 통해서 자랑스런 법을 만드는 문화를 창조해 내어야 할 것같은 교훈을 느낀다.


부디 나라의 살림살이를 맡을 지도자나 정치가나 공직자나 책임자가 되실분들이나 되신분들은 ,한 평생의 계획을 세워서 80-90년을 살아가듯이 나라의 법령도 신중하고 자랑스런 강한 대한민국,잘사는 긍지를 느끼는 국제경쟁력을 이겨내는 좋은 법문화를 만들도록 심혈과 정성을 꾸준히 쌓아가는 역할을 아끼지 않아야 하지 않겠는지...

조상들의 법전을 만들고 편찬하는 정성을 오늘에 되살려,더욱 우리 공동체와 이웃과 이땅의 주인들을 존중하고 잘살게 하는 자랑스런 역할을 보여주시기를 우리 모두 각자 맡은바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야 할것으로 사료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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