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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판사 비리는 조사해볼 필요조차 없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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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경란 작성일13-06-13 09:34 조회54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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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 동안이나 계속된 검찰의 불기소처분에
대항하기 위해,
인터넷으로 제출하는 공개 고소장

  고소인 : 김경란(daewonse@chollian.net
            주소 강서구 등촌3동 주공 7단지 703동 114호

고소취지 : 저의 고소취지는 너무나 간단명료합니다.  검찰과 법원이 서로 야합하여, 저, 김경란의 무고죄를 조작한 일이 없다면, 나를 무고죄와 명예훼손죄로 기소한 후, 검찰과 법원이 서로 야합하여 무고죄를 조작한 일이 없다는 사실을 증명해 보라는 것입니다.
  교학사가 제 남편 서대원이 1981. 7. 1부터 1987년 8월까지의 63개월 동안 완성시킨「한국역사만화전집 14권」을 서대원 몰래 동서문화사에 단돈 3천만 원을 받고 팔아치웠던 것은 1989. 1. 9.입니다.
  교학사가 서대원의 작품을 함부로 팔아치운 것을 검찰이 법대로 기소해 주었다면, 저희 가족의 고생이 지금 이 순간까지 늘어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한가지를 보면 열 가지를 알 수 있는 법입니다. 당연히 처벌해야할 범죄자들에게 검찰이 면죄부를 발부해 버린 후, 오히려 범죄피해자의 무고죄를 조작하는 식으로 검찰권을 오용한다면, 대한민국의 가치관은 한없이 추락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되었던 것이, 제 법률투쟁의 원동력입니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사회정의가 그런 짓을 응징하거나 견제하는 대신,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는 충고와 야유로 저의 법률투쟁을 방해(?)하기 위해 애를 쓰는 꼴이었기 때문에, 저는 더더욱 물러설 수가 없었습니다.

  이대로 내버려두면 대한민국의 미래가 너무 암담하다는 생각 때문에, 저는 저 자신이 얼마나 보잘것없는 사람인지를 생각할 겨를조차 없었습니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이라고 했으니, 나라도 최선을 다해보자. 그리하여 하루속히, 깊이깊이 잠들어 있는 대한민국의 사회정의를 흔들어 깨워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 순간, 대한민국의 사회정의가 기지개를 켜게될 것 같습니다. 그동안, 그러다가 다시 잠들어 버리는 일이 되풀이되곤 했었는데, 이번에는 연이어 터지고있는 게이트사건들이 허사가 되지 않도록, 미약한 힘이나마 최선을 다해 보겠다는 결심입니다.
  김경란이라는 개미새끼가 검찰이라는 공룡의 부정부패를 무너뜨리기 위해, 12년째 고소투쟁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 국민에게 사실 그대로 알리고야 말겠다는 것이, 저의 제1차 목표입니다.
  한 사람의 각성과 의지가 참으로 엄청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들 스스로 자각하게 될 때, 우리 국민이 스스로 유능해 질 수 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저의 법률(고소)투쟁 12년을 검찰(권력)의 입맛에 맞도록 왜곡하거나 조작할 수 없도록 만드는 방법이 "기소"라고 확신하기 때문에, 이제, 저의 법률투쟁 12년을 총결산하기 위한 고소투쟁을 시작하고자 합니다.

  지난 12년 동안 검찰에서는, "교학사의 불법적인 저작권양도사건"과 "동서문화사의 저자표시말살사건"을 "김경란의 무고죄 사건"으로 조작했습니다. 검찰이 그런 짓을 계속하도록 만들기 위해, 교학사가 수 십억 원의 뇌물을 쓰도록 만들었다고 자백(?)했습니다.
  지극히 단순한 범죄를 검찰이 12년 동안이나 조작하고 은폐했기 때문에, 참으로 엄청난 범죄들이 파생되었습니다.

  검찰의 조작과 은폐로 인해 파생된 범죄들을 고소하는 고소장을 10일 간격으로 인터넷에 올리는 한편, 이명재 검찰총장께 등기 우송하겠다는 계획인데, 그 첫 번째로, 1989년도에 서대원사건을 일으킨 교학사 사장 양철우와 동아학습 대표(?) 장광재의 위증죄 및 뇌물공여죄를 고소하는 바입니다.
 
  저의 본격적인 법률투쟁은, 검찰의 무혐의처분에 제가 고소장을 제출하여 대항하는 형식으로 시작이 됐었습니다.
  그러나, 검찰이 저의 무고죄를 조작한 후부터, 저의 고소 투쟁에 검찰이 고소각하처분으로 방어(?)하고 있는 꼴인데, 검찰이 지난 12년 동안 수십 차례나 자행했던 무혐의처분과 고소각하처분은 서대원사건을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은폐하고야말겠다는 증거가 될 뿐입니다.
  죽음을 각오하고 있는 사람을 상대로 변명할 수 없는 짓(범죄)을  계속하는 검찰이, 저에게는 한심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상대방을 깔 볼 줄만 알았지, 상황판단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검찰이라니.... 

  그처럼 한심하기 짝이 없는 검찰권 행사를 한사코 외면하면서, 검찰의 중립과 개혁만 외쳐대면 검찰이 바로 설 수 있는지를 범국민적인 차원에서 검토해 주실 것을 부탁드리기 위해, 고소장을 검찰에 우송하기 전에 인터넷상으로 공개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요즈음, 법률투쟁 12년을 총결산하는 자료를 만들고 있는데, 그 자료들이 모두, 검찰권 오용의 증거가 된다는 사실을 느끼고 있습니다.
  자료정리가 끝나는 대로, 서대원사건을 총결산하는 증거들을 검찰에 제출하는 한편, 언론, 사회단체, 법대학생회 등에 우송하겠습니다. 
  그 방대하기 짝이 없는 증거 자료에, 이명재 신임검찰총장의 진심과 본심을 더하기 위해, 밥 먹는 시간도 아까울 정도로 바쁜 와중에서 고소장을 작성하여 인터넷에 올리는 수고를 더하고자 합니다. 

  서대원사건을 처리하는 것을 보면, 이명재 신임 검찰총장의 검찰개혁 의지를 확인할 수 있다고 확신하기 때문에, 자료정리가 끝나기 전에 미리 고소투쟁을 시작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말씀드리면서, 서대원 사건에서 검찰이 반드시 처벌해야할 죄를 다음과 같이 나열하는 바입니다.



무고죄 조작사건에 대한 고소장을
13번째로 다시 제출하는 이유

1. 검찰과 법원이 서로 야합하여 무고죄를 조작하기 전의 상황 설명
  1990. 11. 3. 동서문화사가 14권이나 되는 전집물을 저자표시를 말살하고 출판한 죄를 고소한 후, 검찰의 불기소처분을 격파하기 위해, "범죄자를 처벌하지 않겠다면, 나를 무고죄로 기소하라!"는 고소(무고)투쟁을 끈질기게 계속하고 있습니다.
  저의 끈질긴 무고투쟁은 검찰의 권위에 정면도전하는 것이건만, 1994. 7. 26. 까지 검찰에서는 12번의 무혐의처분으로 일관했었습니다. 대한민국 검찰청에는 반드시 지켜야할 권위와 명예가 없다는 뜻이었습니다. 

  공소시효가 깨끗하게(?) 완료될 때까지, 검찰이 등신(?)처럼 무혐의처분으로 일관했었다면, 저 역시 지쳐서 나가떨어질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검찰의 불기소처분이 제아무리 부당하다고 해도, 이미 공소시효가 완성된 범죄사건을 갖고서는 시시비비조차 따질 수 없다는 사실을, 저는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무서운 죄가 "괘씸죄"인데, 불기소처분으로 저의 법률투쟁을 마무리하는 수밖에 없다면, 인생낙오자로 전락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평생 좌절과 절망을 끌어안고 살 수는 없는 일이었기 때문에, "나를 기소하라!"고, 극성스러울 정도로 발악했던 것입니다. 

  우이독경, 마이동풍 식의 불기소처분에 절망하고 또 절망하던 참인데, 고맙게도, 검찰이 저의 발악(?)을 끝까지 무시하지 못하고, 발끈 했던 것입니다.
  아슬아슬하게도, 공소시효가 완료되기 직전, 검찰에서는 저의 무고죄를 조작하여 구속해 주었습니다.
  비록 억울한 감옥살이는 했지만, 그러나 검찰이 무고죄를 조작해 주었기 때문에, 저는 비로소, 패배자로 늙어죽는 것은 모면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됐었습니다. 

2. 검찰이 저의 무고죄를 조작한 후의 상황 설명
  대한민국 검찰청이 죄 없는 사람을 잡아 가둘 수 있다는 사실이 기막히면서도, 법률투쟁의 확실한 발판은 마련되었다는 사실에 안도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검찰이 무고죄를 조작해 준 것을 오히려 고맙게 생각해야 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사법현실이었습니다.   

  대법원에서 저의 무고죄를 유죄로 확정해 준 것은, 저의 고소장 제출행위를 "절대로 용서하지 못할, 그래서 엄벌에 처해야할. 범죄행각"으로 확정해준 것입니다. 
  고맙게도(?) 대법원이 저의 고소장 제출행위를 범죄행각으로 확정하면서, 집행유예기간까지 확정해 주었기 때문에, 저는 집행유예기간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서둘러서 고소투쟁을 재개했었습니다.
  집행유예 기간이 완료되기 전에 열심히 재범(?)을 저질러(?) 대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것입니다.

  감옥살이가 무서웠다면, 집행유예 기간 중에 고소투쟁을 재개하는 짓(?)을 감히 시작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죽는 것이 무서웠다면, 검찰의 불기소처분과 감히 싸울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저는 분명히 감옥살이를 각오하고 있을 뿐 아니라, 죽음도 각오하고 있는데, 그러나 저는 분명히 인간입니다. 때문에, 감옥살이도, 죽음도, 대단히 무섭고 두렵습니다.

  그러나, 죽음보다 더 두려운 것은, 패배자로 욕되게 늙어죽는 것입니다. 
  육체와 정신 중에서 한 가지를 포기하는 수밖에 없다면, 기꺼이(?) 육신을 포기하고 말겠다는 결심이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까지, 감옥살이든, 죽음이든, 그것이 제 운명이라면 기꺼이 받아들이겠다는 자세로 일관할 수 있는 것입니다. 

  검찰이 막무가내(무혐의처분과 고소각하처분)로 일관하면서, 저희부부의 만화가로 활동까지 봉쇄해 버렸기 때문에, 저는 법률투쟁을 중단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현실적으로 계산하면, 저희가족은 굶어죽거나 굴복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저희가족은 굶어죽지 못했습니다.
 
  그동안 저희가족은 분명히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습니다만, 그러나 저는 그 동안의 고생이 억울하지 않습니다.
  그동안 독을 약으로 쓰는 비법, 원수를 사랑하는 법, 스스로의 마음을 다스리는 법 등등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인데, 그런 것들은 평온하게  살았다면 절대로 깨우칠 수 없는 것입니다.
  검찰이 저에게 비범하게 살 것을 강요했기 때문에 특별한 경험과 깨달음을 얻게 된 것이니, 이제는 검찰의 막무가내가 고마울 뿐입니다.


3. 대한민국의 현재와 미래
  도둑질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도둑을 잡는 사람도 당연히 존재해야 합니다.
  그런데 대한민국에는 검찰의 막무가내(조작수사)를 견제할 수 있는 제도적인 견제장치가 없을 뿐 아니라, 오만 방자하기 그지없는 기소독점주의에 제동을 걸겠다는 의지가 없습니다. 
  제가 무혐의처분을 당한 1991년도부터, 11년 동안이나 유심히 지켜보고 있는데, 검찰의 조작과 은폐는 언제나 정치적인 이유 때문에 문제가 될 뿐입니다. 
  때문에 정치적인 문제만 해결되면, 모든 문제가 그대로 사그러지고 마는 세월이 계속되는 것입니다.   

  참으로 이상한 사회풍토 속에서 검찰(국가공권력)이라는 권력기관은  날이 갈수록 비열해지고 있는데, 대한민국에는 그 비열한 권력이 제구실을 할 수 있도록 만들어 보겠다는 생각도 의지도 없다는 사실을, 저는 12년 동안이나 확인하고 또 확인할 뿐입니다. 

  막강하기 짝이 없는 권력들이 수십 년 동안이나 견제를 당했던 일이 없었으니, 지금 이 시각, 검찰과 국정원이 온갖 게이트에 줄줄이 연루가 돼 있는 것은 사필귀정입니다. 
 
  서대원 사건에서, 대한민국 검찰청이 절대로 해서는 안 되는 짓들을 공공연히 저지르고 있건만, 검찰의 잘못을 사실대로 지적하는 대신, 침묵과 외면으로 일관하거나, 저에게 "계란으로 바위 치기"라는 사실을 인정하도록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분(?)들만 나타나는 지경입니다.

  사건이 터질 때마다, 검찰에서는 정치적인 중립을 지키고, 거듭나겠다고 약속했었습니다.  그 약속이 지켜지지 않았다고 해서, 검찰이 그동안 공연한 공염불만 외웠던 것이라고는 생각되지 않습니다.
  검찰 내부에, 수단방법 가리지 않고 권력과 돈을 한꺼번에 거머쥐겠다는 검사양반(?)들도 적지는 않겠지만, 검찰이 본연의 모습을 되찾게 되기를 열망하는 검사들이 훨씬 더 많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악인들은 권력과 돈을 거머쥐기 위해 못할 짓이 없는 반면, 선량한 사람들은 정의를 지키는 일에 지극히 소극적이기 때문에, 선량한 다수가 극소수의 열성분자(?)들에게 밀리는 수밖에 없었을 뿐입니다.

  악의 극성이 극도에 도달하면, 선량한 다수가 침묵과 외면으로 일관할 수가 없는 법입니다.
  참으로 보잘것없는 사람이 검찰과 대한민국의 미래를 진심으로 염려하면서 검찰의 갱생을 위해 10년 이상이나 목숨걸고 노력해 왔다는 사실이 사실 그대로 알려진다고 해도, 선량한 검사 양반들이,
"1991년도에 검찰의 불기소처분 때문에 시작된 서대원 가족의 고생과 고통은 내 알 바가 아니다. 검찰청 내부에서 그 어떤 일이 벌어진다고 해도, 나는 앞으로도 침묵과 보신주의로 일관하겠다"
라는 결심(?)으로 초지일관할 수는 없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었습니다.


4. 저의 확고부동한 결심과 의지
  선량한 검사님들, 그리고 선량한 법조인과 언론인들의 자각과 각성을 위해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저의 진심과 노력이었습니다. 저희 가족의 고생과 고통이 대한민국의 부정부패에 기막힌 특효약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기가 막혔습니다. 
  야속하기 짝이 없는 운명이었지만, 그러나 그것이 제 운명이라면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고, 체념(?)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의 깨달음과 결심이 그러하기 때문에, 제 목숨이 붙어 있는 한, 저의 고소투쟁은 계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검찰과 교학사의 사과를 받지 않고, 돈 몇 푼을 받고 그 동안의 고생과 고통을 없었던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면, 하늘이 저에게 천벌을 내리고야 말 것이라고, 저는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검찰과 교학사가 진심으로 반성한다면, 10여 년 동안 초지일관(?)하여 저지른 그 극악무도한 범죄를 돈 몇 푼을 받고 용서해 달라고 요구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진심으로 뉘우친 사람은, 지극히 당연한 벌을 받아야 속이 시원한 법입니다. 

  저의 깨달음이 그러하기 때문에, 검찰과 법원이 야합한 무고죄 조작사건을 검찰이 돈이나 권력으로 뭉개버릴 수는 없습니다. 
  검찰이 스스로 조작하고 은폐했던 범죄들을 기소하거나, 쥐도 새도 모르게 저를 죽여 버리고 말거나...... 
  10년을 두고 연구해도, 서대원사건의 해법은 그 두 가지 방법 밖에 없는데다가, 검찰의 비열함과 비겁함을 알기 때문에, 저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초월하기 위해 노력해 왔던 것입니다. 

  불기소처분은 범죄사건을 깨끗하게 무마하는 방법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각종 게이트들이 분명히 증명하고 있습니다.  이용호를 무혐의 처분했던 것이 이용호게이트의 발단이 되었으며, 진승현을 무혐의처분 했던 것이 진승현게이트의 발단이 된 것입니다.  윤태식을 살인죄로 가차없이 단죄했었다면, 윤태식게이트는 존재도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범죄자에게 면죄부를 주는 불기소처분이야말로 범죄사건을 눈덩어리처럼 키우는 범죄사건의 핵입니다.

  지금 이 나라에서, 이명재 검찰총장의 검찰조직이 진실로 반성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다고 생각되는데, 한 가지를 보면, 열 가지를 알 수 있는 법입니다.   
  이치가 그러하기 때문에, 대한민국에 서대원사건이 이미 대기(?)하고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다행스럽다고 생각되는 지경입니다.

  제가, 저의 무지함과 미숙함이 빚어내는 실수와 실패 속에서 검찰을 이길 수 있는 지혜와 깨달음을 구하고야 말겠다고 결심했던 순간부터, 서대원사건은 지극한 축복으로 승화되기 시작했었습니다. 
  이명재 검찰총장의 검찰조직이 서대원사건에 슬기롭게 대처하는 순간부터, 검찰 역시 지극한 축복을 얻게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이처럼 기막힌 미적분(?)에 의거한 고생과 노력을 대한민국 검찰청이 고소각하처분으로 깨끗(?)하게 공중분해 시켜 버릴 수 있다고 자신한다는 것이었으니, 대한민국 검찰청의 수학(?)실력은 참으로 기막힌 것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앞뒤도 구별하지 못하는 위인들이 저의 생사여탈권을 거머쥐고 있다는 사실을, 저로서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비열하기 짝이 없는 검찰에게 자기 자신의 생사여탈권을 맡기고 싶은 국민은 없을 것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에, 저는 모든 국민에게 묻고 싶습니다.
"당신의 생사여탈권 역시 불한당이 돼버린 검찰이 틀어쥐고 있는데, 당신은 전혀 불안하지 않습니까?"라고.

  이명재 검찰총장께서는 무고죄 조작사건의 13번째 고소사건을 처리하기 전에, 범죄자에게 면죄부를 발부하는 불기소처분이 범죄사건을 해결하는 방법이 될 수 있는지를 심사숙고해 달라고 부탁드립니다.
  이명재 검찰총장의 개혁의지는 진심이기를 기원하면서, 1995년, 무고죄재판이 대법원에 계류되어 있을 때부터 고소하기 시작한 피고소인들의 죄를 인터넷상에서 차례로 열거하고자 합니다.
 
● 검찰이 5년 동안 12번의 고소각하처분으로
비호하고 있는 범죄를 열거합니다.

A. 피고소인 1: 교학사 사장 양철우(마포구 공덕동 67-21)가 검찰의 면죄부를 12번이나 받은, 위증죄 및 뇌물공여죄에 대해 설명합니다.

1. 가장 핵심적인 위증 내용 :  매절은 저작권 양도다.

---- 위증의 고의성을 증명하는 증거 ---- 
  1992년 6월경에 판결 된 "91가합39509호, 교학사 표준전과의 저작권 침해 사건"의 피고인이 바로 교학사 사장 양철우이며, 판결내용이 바로, "매절은 저작권 양도가 될 수 없다"입니다.
  법원으로부터 이미 "매절"에 관한 판결을 받은 위인을, 검찰이 매절에 대한 법률해석을 의뢰(?)하기 위한 증인으로 재판정에 초빙(?)하여, "매절"에 대하여 엉터리 법률해석을 하도록 만들었던 것은, 참으로 기막힌 희극(비극?)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나친 희극이 바로, 참으로 비극적인 비극이 된다는 사실을 검찰이 분명히 증명해 주었습니다.   

  그로 인해 저는, 대한민국의 사법부패상이 범죄자와 작당하여 법률해석을 조작하는 지경이 돼버렸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그런 과정을 통해, 사법부패상을 직접 경험한 사람과 경험하지 못한 사람은 생각하는 것이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는 점도 생각하게 됐었습니다.

  교학사 사장 양철우는 저의 무고죄 공판에서 "매절은 저작권 양도다"라는 엉터리 법률해석을 세 번이나 감행했었습니다.
  1994. 12. 28. 원심재판정(재판장 하광호판사)에서 검사의 질문에 그렇게 대답했었고,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행해진 변호사의 추궁에도 그 엉터리 법률해석을 집요하게 고집했었습니다.
  그로부터 5개월 후인 1995. 5. 26. 저의 무고죄 항소심 법정에서, 저의 끈질긴 추궁에 굴하지 않고, "매절은 분명히 저작권 양도다"라고, 우겨댔었습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무고죄 법정의 피고인석에서 양철우 사장을 증인 심문할 당시, 저는 91가합39509호, 교학사의 표준전과 사건을 전혀 모르고 있었습니다.
  매절에 관한 국내 판례는 물론, 외국의 판례까지 관심을 갖고 모았는데, 검찰이 저의 눈과 귀를 가리는 일에 성공했기 때문에, 유독 교학사가 판결을 받은 매절사건만 입수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저의 변론을 맡았던 장완익 변호사까지 저의 눈과 귀를 가리고 말았다는 사실이 한심하기 짝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요즈음 묵은 자료를 뒤적이다가, 제 남편 서대원이 저작권협회와 저작권심의조정위원회를 찾아가서 매절에 관한 판례를 구해, 장완익 변호사에게 넘겼다는 메모를 발견했습니다. 
  변호사가 판례검색을 직접 하지 않고, 아무 것도 모르는 저의 남편에게 맡겨버리는 식의 변론(?)을 했기 때문에, 저는 유죄판결을 받을 수밖에 없었을 뿐 아니라, 항소심재판이 끝날 때까지 교학사의 표준전과사건을 알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와 같은 사실과 과정이 증명하는 것이, 교학사의 결백함입니까?
  그래서 교학사의 위증죄는 번번이, 고소각하처분을 받고 있는 것입니까? 
  교학사가 위증을 하지 않았다면, "매절은 저작권 양도가 될 수 없다."는 국내외 법원의 판결들이 대단히 잘못됐다는 뜻이 되건만, 대한민국 검찰청은 그러한 결론을 아랑곳할 필요가 없다고 합니다.
  검찰(권력)이 바로 법(?)이라고 확신하기 때문인지, "매절은 저작권 양도"라고 우겨대는 짓을 계속하고 있는데, 대한민국 검찰청은 그런 식의 우격다짐 실력(?)을 유독 서대원 사건에서만 발휘한다는 말씀입니까?
  그래서 그런 식의 우격다짐이 저희부부의 억울함만 의미합니까?

  한가지를 보면 열 가지를 알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저는 저 자신의 억울함을 생각하는 대신, 검찰이 범죄를 싸고도는 수법들을 다각적으로 수집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것이, 그동안 사법피해사례집을 예닐곱 차례나 만든 이유입니다.

  "매절은 저작권 양도다!"라는 교학사 사장의 법률해석은, 말이 안 되는 망발입니다. 
  교학사에 매수된 조광수 검사 등의 망발을 대한민국의 검사동일체원칙이 기소독점주의를 악용하여 밀어붙인(은폐해버린) 결과가, 서대원사건에서 60여 건이 넘는 불기소처분과, 저의 무고죄 조작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교학사 사장 양철우의 위증죄를 또 다시 은폐하면서, 이명재 검찰총장께서 검찰개혁을 하시겠다고 하면, 그처럼 속 들여다보이는 짓도 없습니다. 
  이치가 그러하기 때문에, 저는 이 중차대한 시기에 이명재 검찰총장의 진심을 확인해 볼 수 있는 사건이 미리 준비되어 있다는 사실이 지극히 다행스럽게 생각됩니다.
  우리 국민은 분명히 검찰이 진실로 거듭나겠다는 의지가 있는지를 확인하고 싶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이처럼 준비된 고소로 인해, 국민적인 차원에서 검찰이 진실로 반성하고 있는지를 검토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교학사사장의 위증죄 등등을 13번째로, 이와 같이 대한민국의 정치사회종교지도자는 물론, 검찰개혁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모두 다 함께 검토해 볼 수 있는 인터넷 상으로 다시 고소하는 바입니다.
           
2. 교학사 사장 양철우를 뇌물공여죄로 고소하게 된 이유 :
  1995. 5. 26. 저의 무고죄 항소심 법정(95노1249)의 증인석에서,      교학사 사장 양철우가, "이 사건 때문에 수 십억 원의 손해를 보고 있습니다."라고, 자랑(?)했었습니다.   

  구속될 위기에 몰린 이용호, 진승현 등이 뇌물리스트를 만들어서 검찰을 협박하는 자료로 활용하려고 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는데, 교학사 사장이 수 십억 원의 뇌물을 뿌려댔다는 사실을 신성(?)한 법정에서 공공연히 밝히고 나섰던 이유 역시, 같은 맥락일 것입니다.

  항소심 재판에서 당연히 받아야할 무죄판결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저는 교학사 사장이 법정에서 "수 십억 원의 손해" 운운한 이유가 대단히 궁금합니다.
  항소심 재판부가 저에게 무죄를 선고하겠다고 미리 선언(?)했던 것이라면, 교학사 사장의 공갈협박(?)이 주효(?)했다는 뜻이 되기 때문입니다.
  저에게 무죄가 선고될 수도 있다는 언질이 전혀 없었다면, 그가 신성(?)한 법정의 증인석에서 그 따위 소리를 공공연히 지껄였을 리가 만무하기 때문에, 저는 그 진상을 반드시 확인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런데도 대한민국 검찰청은, 교학사 사장이 법정에서 그런 말을 한 이유를 조사도 해보지 않겠다고 우겨대는 짓만 계속하시렵니까? 

  제가 그 어떤 고소장을 제출하든, 검찰이 무조건 고소각하처분으로 은폐해 버릴 수 있는 시대는 이제 끝나고 있다고 확신합니다.
  제가 제 목숨을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그렇게 만들고야 말겠다고  결심하고 있기 때문에, 자신 있게 공언할 수 있습니다.
  저의 의지와 결심이 너무나 분명하니, 이명재 신임 검찰총장께서는  막무가내로 밀어붙이는 짓을 중단하시고, 제가 무언가를 잘못 판단하고 있다면, 무엇을 어떻게 잘못 생각하고 있는지를, 인터넷을 통해 공개적으로, 분명히 지적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출판도 하지 않고, 단돈 3천만 원을 받고 불법적으로 팔아치운 책 때문에 수 십억 원의 손해를 보았다면, 교학사 사장이 말한 손해는 뇌물액수를 말하는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교학사 사장 덕분에 저는, 1995년도에 이미, "범죄자가 법정에서 공공연히 공갈협박을 날릴 수 있을 정도로, 대한민국의 법은 부패했다."는 사실을 확실히 파악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요즈음, 이용호, 진승현 등의 게이트꾼들이 뇌물 리스트를 만든 이유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검찰의 농간은 결국 자승자박이 될 뿐이라는 사실도 드러나고 있습니다. 


B 피고소인 2 : 동서문화사 사장 고정일의 하수인, 장광재(성북구 석관2동 332-470) 의 위증죄에 대해 설명합니다. 

※ 저의 무고죄 법정에서, 14권이나 전집물을 저자표시를 말살하고 출판하는 짓을 자신이 했다고 우겨댔던 장광재는, 동서문화사 사장 고정일의 하수인에 불과합니다.
  자본금 3천만 원을 갖고 14권이나 되는 전집물을 출판하여 판매할 수는 없습니다. 전집물은 월부 판매망을 갖춘 회사들이 출판할 수 있는 영역인데, 동서문화사에 매수된 박정규 검사는 그와 같은 출판상식을 무시하고 동서문화사를 무혐의처분 했던 것입니다. 
  박정규 검사는, 동서문화사 사장 고정일이 장광재에게,
⑴ 사무실을 공짜로 빌려주고,
⑵ 동서문화사의 전화 5대를 몽땅, 공동 사용하도록 해주고,
⑶ 동서문화사 직원들을 시켜서 판권의 매입과 출판을 도와 주었고,
⑷ 동서문화사의 판매망까지 빌려주었을 뿐 아니라,
⑸ 부족한 자본금을 기꺼이 빌려주었기 때문에,
동아학습의 대표라는 장광재가 퇴직금 1천만 원을 갖고 14권이나 되는 전집물을 출판할 수 있었던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천하에 둘도 없을 악덕 출판인을 천하에 둘도 없는 천사표로 조작해야, 검찰이 범죄자를 무혐의 처분할 수 있다는 사실을, 1991. 7. 28. 동서문화사에 매수된 박정규 검사가 저에게 확실히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 뿐 아니라 박정규 검사는, 저자표시가 말살된 책을 저자가 표시된 책으로 조작해 버리는 짓까지 저질러 주었었습니다.

  박정규, 조광수, 정병두 검사 등등..... 검사들마다 범죄자와 한패거리가 되어 무혐의처분을 감행했었습니다.
  사법고시라는 어려운 관문을 통과했다고, 존경해 마지않던 검사 양반들이, 참으로 말이 안 되는 짓들을 거침없이 감행하면서 무혐의처분으로 일관했기 때문에, 저는 법률투쟁 초기부터 대한민국의 사법부패상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가 있었습니다.
  대한민국의 사법부패상을 일찌감치 파악해 버렸기 때문에, 사법부패의 원인이 된, 검사동일체원칙, 기소독점주의, 기소편의주의 등의 검찰제도에 관심을 갖게 됐던 것입니다.
 
  검사들마다 해괴 망측한 조작과 변조로 일관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세상물정 모르고 헤매는 시간이 최소한으로 단축됐던 것입니다.
  상대방의 말이 안 되는 짓들이 나에게는 축지법의 효과로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을  충분히 느끼고 있기 때문에, 이제는, 검사들마다 범죄자들과 철저할 정도로 놀아났던 것을, 오히려 고맙게(?) 생각하는 지경입니다. 

  어린 시절부터 가난하고 고통스럽게 살았기 때문인지, "범사에 감사하라!"는 성경말씀이 고깝기 그지없었습니다. 제아무리 둘러봐도 감사할 것이 없는데, 도대체 무엇을 감사하라는 것인지, 울화가 치미는 심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참혹한 고통 위에 더더욱 참혹한 고통이 얹어지자, 모든 일에 감사할 수 있게 되었으니, 하늘의 섭리는 참으로 오묘합니다. 
  불운에 불운이 겹쳐지던 인생이, 검사들의 부정부패로 인해 더더욱 불행해졌기 때문에, 그 어떤 역경도 딛고 일어서고야 말겠다는 의지와 신념을 갖게된 것이니, 이보다 더 고마운 일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검찰에 대한 원망과, 검찰의 부정부패를 염려하는 마음은, 분명히 다른 것입니다. 검찰이야말로 대한민국의 법치주의를 주도하는 기관이기 때문에, 검찰의 부정부패는 대한민국의 부정부패로 이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검찰의 개혁에 성공하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의 미래는 없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저는 저의 억울함을 해소하기 위해 애를 쓰는 대신, 대한민국이 검찰개혁과 사법개혁에 성공하는 방법을 불철주야로 연구하는 일을 묵묵히 계속하고 있습니다.
  노력하고 또 노력하면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길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아주 가까운 곳에 있고, 나 자신의 역할과 노력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그러한 자각이 범 국민적인 차원에서 일어난다면, 부정부패는 발붙일 곳이 없게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검찰이 끝끝내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면, 우리 국민이 검찰의 부정부패를 딛고 일어서면 됩니다. 위기상황이야말로 역전의 기회가 되는 것이라면, 검찰의 부정부패야말로 검찰개혁의 기회입니다.
  때문에 저는 검찰의 끝없는 부정부패에 절망하는 대신, 국민적인 차원에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나름대로 연구했습니다.
  절망 뒤에는 무한한 가능성과 절대적인 희망과 부흥이 숨어있다는 사실을 범 국민적인 차원에서 인지하게 될 때, 한심하기 짝이 없는 대한민국의 부정부패상이야말로 대한민국의 희망이 될 것입니다.
  국민에게 그 간단명료한 이치를 간단명료하게 설명할 수 있는 실력을 기르기 위해 지금 이 순간에도 최선을 다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위기가 기회가 된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추게 되자, 저의 법률투쟁이 저 자신의 개발과 대한민국의 개혁을 연구하는 일로 승화가 되었던 것이니, 팔지 않은 저작권을 교학사에 판 것으로 조작해준 조광수 검사와, 저자표시가 말살된 책을 저자가 표시된 책으로 조작해준 박정규 검사야말로 기막힌 은인(?)입니다. 

  검찰의 한심한 짓들이 저에게 기막힌 약이 되었다면, 대한민국을 위해서도 시막힌 약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말씀드리면서, 장광재의 위증 내용을 다시 한번 기록하는 바입니다.
장광재의 위증 내용 (1) : 서대원이 그린 한국역사만화전집 14권을 출판한 것은, 동서문화사 고정일이 절대로 아니다. 그 책은 바로 내가 출판한 것이다.  교학사에 양수대금으로 지불한 어음은 고정일의 부인에게 빌린 것이다. 
그 부분에 대한 교학사의 법정 증언 : 서대원이 그린 역사만화를 사간 것은, 장광재가 아니라, 동서문화사 사장 고정일이다. 동서문화사 직원들이 교학사에 와서 인수해갔고, 양수대금으로 동서문화사의 어음 한 장을 받았다. (※ 원심공판에서, 검사가 교학사 사장에게, "증인이 직접 인수해 준 것이냐!"라고 따질 만큼, 검사는 장광재를 진범으로 조작해 보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었습니다.  그러나 교학사 사장은 검사의 으름장에 아랑곳하지 않고, "범인은 장광재가 아니라 고정일!"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고집했었습니다.)

장광재의 위증 내용 (2) : 교학사로부터 판권을 인수할 때, 저자 명단을 받은 일이 없다. 그래서 우리(※ "나"가 아님)는, 교학사 편집부에서 그린 것으로 알았다.     
그 부분에 대한 교학사의 법정 증언 : 우리는 판권을 넘길 때, 저자 명단을 분명히 넘겼다.

  위와 같이, 교학사 양철우 사장과 동아학습 장광재의 법정증언이 서로 상반되기 때문에, 제가 범인을 지목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저는 범인을 특정하지 않고, "두 사람 중의 한 사람은 분명히 위증을 한 것이니, 범인을 가려내서 처벌해 달라!"고 고소했었습니다.

  그런데 검찰에서는, 두 출판사가 모두 위증을 한 일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고소각하처분으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두 출판사가 모두, 진실을 증언했다는 것이, 검찰의 우격다짐입니다. 
  검찰이 그런 식으로 진실을 규명했으니, 대한민국은 어지러워 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교학사가 원심 공판정에서 "매절은 저작권 양도"라고 우겨댔던 것은, 1994. 12. 28이며, 동아학습 장광재가 교학사와 정반대 되는 증언을 했던 것은 1995. 1. 25일입니다.
  두 출판사의 위증으로 인해 제가 6개월 동안 감옥살이를 하고 유죄판결을 받은 것이니, 두 출판사의 위증죄 공소시효는 7년입니다.
  따라서, 2002년 1월 24일로 원심재판에 대한 공소시효는 깨끗(?)하게 완료되고, 이제 검찰이 기소할 수 있는 것은, 항소심 재판에서 행한 위증  뿐입니다. 그런데 장광재는, 항소심 재판에 출석한 일이 없습니다.

  저는 6개월 동안의 억울한 감옥살이를 감수하겠다고 결심했었습니다. 출옥 후, 항소를 하지 않고, 저작권투쟁기를 써서 발표하는 것으로 법률투쟁을 산뜻하게 마무리하겠다고 결심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검찰이 저의 산뜻한 법률투쟁 마무리와 저작권투쟁기 출판을 방해하기 위해 항소를 해버렸습니다. 때문에 저는, 검찰과 싸우는 일을 계속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검찰이 저의 집행유예형이 대단히 부당하다고 주장하면서 항소를 해버렸는데, 검찰 측 증인이 모두 증인출석을 거부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를 않습니다. 검찰 측 증인 한 사람은, 위증을 하기 위해 재판정에 출석하는 수밖에 없었는데, 검찰의 체면치레(?)를 위한 증인으로 교학사 사장이 지목됐던 것입니다.
  고정일의 하수인에 불과한 장광재가 검찰의 체면치레를 위한 증인으로 지목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제가 항소심재판의 증인에서 장광재를 제외해 버렸기 때문입니다.

  때문에, 장광재의 위증죄는 공소시효가 깨끗이 완료되고 말았는데,  지난 7년 동안, 검찰에서는 장광재의 위증죄 역시 12번이나 고소각하처분으로 일관했었습니다.
  그런 경우, 공소시효가 완료될 때까지 범죄자를 비호한 책임을 검찰이 져야하는지, 아니면, 70건에 달할 불기소처분을 당한 범죄피해자가 공소시효가 완료된 책임을 고스란히 뒤집어 써야 옳은지를 묻기 위해, 이미 공소시효가 완료돼버린 장광재의 위증죄 역시, 13번째로 인터넷상으로 다시 고소하는 바입니다.     

※ 결론 : 지난 2년 동안, 참으로 열심히 12년 법률투쟁을 총결산하고 있는데, 아직 미진한 것이 많습니다. 때문에 저의 총정리가 끝날 때까지는, 10일 간격으로 법조인(특히 검사)들이 서대원 사건을 조작하고 변조한 죄를 인터넷을 통해 검찰과 국민에게 동시에 고소하겠다는 생각입니다. 
  그렇게 하다가, 총정리가 끝난 후에는 인터넷이라는 공간과 우편을 통해 매일 고소장을 제출하는 것으로 고소투쟁 방법을 발전시켜 보겠다는 결심입니다.

  "저의 이 철석같은 결심과 의지를 검찰이 13번째의 고소각하처분으로 은폐하고 유린할 수 있는지를 범국민적인 차원에서 진지하게 검토해 주십시오!"라고 부탁드리면서, 오늘은 우선, 두 출판사의 위증죄와 교학사 사장 양철우가 저의 항소심 법정에서 스스로 자백(?)했던 수 십억 원의 뇌물공여죄만 고소하는 바입니다.

서기 2002년 2월 13일  위 고소인 김경란 




법률투쟁 12년 동안 계속되고 있는 저의 요구 및 절규   
"매절은 저작권 양도!"라는 교학사 사장 양철우의 법률해석이 정당한 것이라면, 나를 무고죄와 명예훼손죄로 기소하라!"
"동서문화사 사장 고정일이 서대원이 그린 한국역사만화전집 14권을 출판한 일이 없다면, 나를 무고죄와 명예훼손죄로 기소하라!"
"서대원이 그린 한국역사만화전집 14권에 정말로 저자표시가 돼있다면, 나를 무고죄와 명에훼손죄로 기소하라!"

●검찰과 법원이 저의 무고죄를 조작한 후부터
계속하고 있는 요구 및 절규
"검찰과 법원이 서로 야합하여 나의 무고죄를 조작한 일이 없다면, 나를 무고죄와 명예훼손죄로 기소하라!"
"교학사 사장 양철우와 동아학습 장광재가 위증을 한 일이 없다면, 나를 무고죄와 명예훼손죄로 기소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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