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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입법사상.입법이론;법령의 반포와 시행이론-.(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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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재문 작성일13-06-13 10:54 조회62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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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한국법문화의 국제경쟁력 향상을 위한
한국전통법문화의 강좌
한국전통법의 정신과 법체계(17)
-입법사상.입법이론;법령의 반포와 시행이론-.(2)
동국대학교경 주캠퍼스 법정대 법학과 교수 김  재  문                             
          (http://wwwk.dongguk.ac.kr/~kj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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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반포절차;의논하여 반시.서경후 반시.인쇄하여 반포.
  가)율령은 의견을 종합하여 반행하며, 나)반포후에 신중하여 두려움을 가지며 다)새 법식은 반시를 연기한다. 

1)의논후 반행;
율령은 반드시 양사에서 서경하여 의견을 종합하여 반행하고,나)반포를 마쳐도 삼가 크게 두려움을 가지고,새 법식을 만들어도 반시를 연기하여 실정을 살펴본다.

가)율령-의견종합- 반행;《영조 21년(1745)에《속대전》의 세목에 관한 문제와 근래 관리들의 풍기에 대한 대사간 남태온의 아룀 》대사간 남태온(南泰溫)이 상소하였는데, 대략 이르기를,󰡒옛날 조종조(祖宗朝)에서는 혹 율령을 산정(刪定글자나 구절을 깍고 다듬어 잘 정리함)할 일이 있으면 반드시 양사(兩司)에서 서경(暑經)한 후에야 바야흐로 반행하였으니 이는 참으로 법전을 소중히 여기고 여러 사람의 의견을 종합하는 아름다운 뜻에서 나온 것입니다

나)반포 신중-두려움: 영조 21년(1745)에 우의정 조현명(趙顯命)이 차자를 올렸는데, 대략 이르기를,󰡒양역(良役평민의 강제노동의무)을 사정(査正잘못을 조사하여 바로 잡음)하는 한 가지 일은 4년이나 근고(勤苦부지런히 일하고 애를 씀)한 끝에 인출(印出책판에 박아냄)하여 반포를 막 마쳤으나 삼가 크게 두려운 바가 있습니다.

다)새 법식-반시;정조 6년(1782)에 호조에서 각도의 조운(漕運배로 물건을 실어 나름)을 한결같이 사목(事目)에 따르게 할 것을 계청(啓請임금에게 보고하고 청함)하니, 하교하기를,󰡒대(隊)를 만드는 새 법식을 우선 반시하지 않은 이유는 금년의 전수(轉輸;운반)가 어떠한가를 살펴보기 위해서이다. 

법을 만들어 공포할 때에는 여러사람의 의견을 종합하였으며,법제도를 하나 고치어 공포를 함에도 4년이나 부지런하고 고뇌를 하여 인쇄반포해도 크게 두려움을 가졌고,새로운 법을 만들어도 즉시 공포하는 것이 아니고,한햇동안 현 실정을 다시 살펴본 후에 공포할려는 지혜를 가졌었다.

오늘날의 우리는 법만 만들고 고치면 일사천리로 현실의 상황이 변했거나 적합하지 않거나 반대를 하든 말든 좀더 신중하게 의견을 종합하지도 않고 즉시 공포하고 시행하면 법이 법으로서 대우를 받는 줄 잘 못알고 있지 않는지...법은 국민이 지켜주지 않으면 법이 아니다.이런 법령은 한 갓 종이위에 인쇄된 말장난에 지나지 않게 된다면 이게 국민을 위한 법을 만든 것인지...이런것을 법이라고 만들었는지...이런 법을 만든 무능함에는 책임을 져야 하지 않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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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과 같이 신하들은
연산 9년(1502)에 “ 기유년의 승전(왕명)에 의거하여 시행하고,중종 17(1522)년에는 “ 오래된 폐단을 하루 아침에 갑자기 금단한다면 곤궁한 백성들이 먼저 피해를 받게 될까 싶어... 따라서 시한(時限)을 두는 것을 완화하여 초겨울로 정하되, 시한 전에는 그대로 연척(連尺)한 것도 사용하도록 하고 시한이 된 다음에는 일체 법률대로 시행하도록 하소서.” 라고 하며,

광해 3년(1613)에는 “오늘 10월 1일에 시작을 하고 모두 전의 사목대로 패지하도록 알리라는 뜻을 각도와 개성부(開城府)에 형이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라고 하며,태종 7년(1407)에는 위의 두 조목(條目)은 점차적으로 사의(事宜;일이 옳고 알맞음)를 헤아려서 시행하는 것이 어떠합니까?라며 합리적인 방안을 찾아 점차적으로 시행하기를 주장한다.

세종10년(1428)에 강경의 법을 10년 동안이나 시행한 뒤 그 경험에 의해서 폐단을 논한 것이니, 그 설(說)이 정당한 것입니다...어느 한 가지에만 치우치거나 폐지하는 것은 옳지 않으니, 마땅히 때에 따라서 번갈아 가며 시행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성종 17년(1486)에는 “근래에 연달아 양식이 없어 백성들이 굶주림(飢饉)을 만나 백성들이 저축한 것이 없어서 빚을 짐(負債)을 면치 못하는데...마땅히 풍년이 들어 곡식이 남는 것이 있기를 기다려서 천천히 의논해 시행하도록 하소서”.라며 아무리 좋은 법도 백성들이 어려울 때에 부담을 주는 법은 천천히 의논하여 천천히 시행하도록 주장을 한다.

연산 9년(1502)에무릇 새로 세운 법 조문은 모두 법 세운 뒤부터 시행하는 것이 통례입니다. 중종 32년(1517)에는 완고하고 어리석은 것이 고질적인 폐단으로 된 백성을 갑자기 다 법대로 다스리면 소요할 듯하니, 우선 그 기한을 늦추어 두루 깨우친 뒤에 시행하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라며 시행을 연기하기를 주장하고,중종 32년(1537)에 법을 만든 지 오래되지 않아서 여러 도(諸道)의 백성들에게 두루 유시하여 두루 알게 하지 못하였으므로  금하는 기한을 적당히 늦추어 중외의 서인․천인이 다 알게 하고, 그래도 따르지 않거든 법에 따라 단속하여 금지시키는 것이 어떠하겠습니까.

인조 1년(1545)에  수해가 참혹하자 이재민을 구하는 일이 급하게 되어 대단히 큰 법의 시행은 형편상 병행하기 어려웠으므로 내년을 기다려 시행하기를 청한다.숙종 37년(1711)에 명년 정월 이후에 구법(舊法)에 의하여 시행하되, ,, 폐단이 없는가를 보아 연한을 한정하는 한 가지 조항은 다시 의논하여 처리하는 것이 사의(事宜)에 합당합니다.󰡓정조22년(1798)에  양전하는 일에 대해서는  풍년을 기다려서 여쭈어 의논하여 결정(稟定)하여서 거행하겠습니다.정조 23년(1799)에  4, 5년 동안 시행해 보아서 민간에 편리한지의 여부를 자세히 안 다음에 마감의 방도를 다시 의논하여도 늦지 않을 듯합니다“라고 한다.

그러나 오늘날의 우리는 법은 만들어 공포를 하고 시행만 하면 무조건 국민들이 지켜야 하고 지키지 않으면 국법위반으로 처벌만 하겠다면,아니 입법이나 법개정의 잘못이나 민주적이거나 국민들에게 돌아가는 불편과 부작용은 중요시 하지 않고,만든 법의 강제시행과 권위와 준법정신만 강조한다면...

조선의 우리 선현들이 이런 자세에 대해 얼마나 어리석은 후손이라고 손가락 질을 할른지...우리선현들은 왕을 모시던 왕조정치의 체체하에서도 언제나 가난하고 어려운 백성의 불쌍한 삶을 생각하였고,

그러면서도 오늘날의 이 지구상에서 가장 이상적으로 발달된 외국에서 수입한 정치제도인 자유민주 복지주의국가라고 결코 자랑하지도 않았지만.언제나 백성들이 경제적으로 어려운 시기에는 반드시 풍년이 들거나 의식주와 저축이 풍부해 질때까지 기다려주고 시행을 연기하며,백성들에게 부담을 주는 새로운 입법과 법개정을 점진적으로 알맞은 시기에 시행하도록 하였으며,


결코 헌법상의 입법권한을 앞세우고,공직자의 권위를 내세우거나,자존심을 앞세우며,국민들의 고통은 외면하고,어려움을 당하는 국민은 외면하고,일면적인 이익과 목적만을 위해 국민들에게 고통과 부담을 주는 입법을 강제시행을 하지도 않았으며, 법이 지켜지지도 않고 백성들로부터 저항을 받는 무모한 방법으로 백성들의 고통이 불편이 초래되는 방법은 최대한으로 억제하고, 예방하면서,신중하고 조심스럼게 법을 만들고 고치고 공포하고 시행하였던 지혜를 오늘날의 우리는 배워야 할 것이다.


21세기라는 지구상의 가장 이상적인 조선왕조로부터 500여년도 넘게 더 발달된 민주주의 국가의 공직자들이라고 자칭하면서, 어떻게 국민들의 고통을 외면하고,저항과 불편과 생존과 재산권을 한 쪽만의 이익을 내세우며, 하루아침에 재산권이 반쪽이나 전부가 침해되거나 침해될 우려가 있음을 본체만체 하면서,아니 가난하고 불쌍하고 강제집행을 당하기 직전의 수 많은 국민들의 삶에 대한 애잔한 마음과 그들의 고통과 피해에 대한 일말의 공직자라는 책임감도 없는듯이,

불도저식으로 메스컴등 신문이나 방송이나  영상매체를 동원하여 자신들의 입법이나 법개정을 신중히 하기는 커녕,자신들의 의지대로 밀어부치고 ,부작용은 안중에도 없고, 시행만 할 생각과 권위가 손상되는 것만 염려하여 강제시행만을 내세운다면... 이게 어디 민주주의 국가의 공직자들의 자세들인지...
결과적으로 무책임하고 무모하고 권위적이고 백성의 고통을 외면하는 관리들이나 공직자들의 생각과 의지만을 집요하게 관철하려는 조선총독부의 관리들의 자세와 무엇이 얼마나 다른것인지...

조선의 임금이나 신하들은 “민심이 천심이다”,“백성은 임금의 하늘이다(民也王者之天也)" 며 최고권력자부터 그 밑의 권력자인 공직자들까지 누구나 정치나 행정이나 입법이나 사법을 하는 공직자라면,첫째도 백성을 위하고 둘째도 백성을 위하여 백성들의 민원이나 여론을,뜻을 하늘같이 받들지 않았던지...

지금의 민주주의는 입법권이나 법령개정권만 헌법상에 위임을 받았다며 국민들의 불편이나 고통은 미리 없애는 노심초사하며  걱정하고 현장으로 달려가 민심과 불편을 듣고 연구하고 확인해 보고,노력해 보지 않아도 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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