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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조선왕조의 개혁사상.이론:서설-정조임금의 애민사상(행장소개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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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재문 작성일13-06-13 11:12 조회678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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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한국법문화의 국제경쟁력 향상을 위한
한국전통법문화의 강좌
한국전통법의 정신과 법체계(44)
-조선왕조의 개혁사상.이론:서설-정조임금의 애민사상(행장소개 2)

一)서설
조선왕조의 5백여년간의 개혁과 변화에 관한 기록은 방대하다.

대충 그 개혁에 관한 단어만으로 통계를 살펴보면,혁파(3,698건).개혁(1,125건).개정(4,769건).고치다(7,084건).변통(2,834건).변법(20건).경장(308건)등 조선왕조 500여년간의 변화와 개혁은 위의 단어만으로도 약 19,838건의 변화에 대한 실록상에 기록이 나온다.


이 개혁속에는 500여년간 공동체 구성원 전부인 민족의 정신을 개혁하는 것을 위시해서, 공직자와 정치가는 물론, 모든분야의 구성원들의 정신적 물질적 삶의 변화는 물론이고, 결국법치주의 였으므로, 법의 개정과 개혁에 대한 내용도 상당부분에 해당된다고 생각한다.그러므로  어느 누가 실록을 조사해 보지 않고, 조선왕조는 정체된 역사라고 할수 있겠는지...


조선왕조 500여년동안 편찬한 법전종류만 해도 크고 작은 것이 40여종이 넘는다.굳이 말을 하자면,적어도 15년마다 1종류의 법전을 편찬한 셈인데...우리는 가끔 신문이나 보도를 보면,해방이후 50여년이나 된 법을 아직도 고치지 않고 그대로 방치하다가,변화하는 현실에 맞지 않아 웃지못할 서글픈 입법운영을 하고 있음에 많은 국민들이 허탈한 심정을 감추지 못하였던 문제들이 심심치 않게 보도됐던 것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변화와 개혁은 상대적이라지만...일제시대 침략민족의 생각에서 나온 편견이 담긴 이야기를 진실한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되었던 지배당한 35년간의 공백이 우리들의 전통문화에 대한 왜곡과 무지의 골이 너무 깊어졌기에 아직도 우리는 이것을 극복하기 위한 정치가들의 노력이 부족하기에 이점 또한  우리들을 비감하게 만들고 있다.


아무리 정치가들이 전통문화에 편견을 그대로 갖고 무지하다고 해도,그래도 법문화만을 밝혀서 법치주의로 경쟁력있는 나라로, 공동체로 만들어 나가야만 하는 시대적인 당위성앞에서운 필자는 실록속의 기록들을 조금이라도 더 많이 소개를 하여,국제경쟁력을 갖춘 대한민국이,그리고 자랑스런 문화를 가졌던 조상들의 후손들이  되기를 간절히 희망해 본다.


그리고 지난호에서 영조 정조임금의 당대의 행적을 기록한 행장을 지면관계상 그의 일부만 소개가 되었다.그래서 이왕 소개한 김에 남은 부분도 소개를 하고 다음호부터 구체적인 실록기록을 분류하여 소개하기로 한다.


왜냐하면 영조 정조임금은 세종임금에 버금가는 존경받은 훌륭한 지도자였다.이왕 소개를 할바에야 실록기록을 다 소개하는 것이 조상들의 정신을 좀더 정확히 잘 알아야 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되기 때문이다.


특히 영정조 임금의 시대의 실록기록중 개혁이라는 단어만으로 대충 찾아보니 다음과 같다.가나다 순으로 200건 전후의 그 내용을 간략히 소개해 보면,

감사(5;암행어사).개혁관청;(2.개혁도감).구휼(가믐등).공직기강(2).공직부정(4).공직자선발.인사임용.처우.책임.폐지(14).공직추천제(3).공개채용문제(과거시험제도의 문제점;13).교육(1).교통(2).국경(1).국난(1).국논분렬(5:붕당제도 폐해).국방(3).국정(2).군사(9).금지(금주령.금군폐단).기강해이(2).노동(강제노역1;양역).도덕성(2염치.향음례).지방제도(1).명예(1;추증).목장(1).민생구제(4).범죄(3)부정(공직자;2).비리고발(3정승비리;1).사치금지(6).산림(1;소나무관리).산업(염전폐단:1).상업(4:인삼독점폐단.소금값조절.점포폐단개혁).서원폐해(1).지방(수원중군1).시급한 폐단(3;10조목.9건등).공의무(양역:2).언론의 확대.개방(6).우대(공자의 자손을 우대함:1).상소(2).인권(2:노비.구류).인재등용(9:선비등용.어진인재발탁.천거법.등용폭확대.충직한 간원을 기용).입법(1;수교의 제한).재정(10;절약).재판(3.결안 추율.초사).조적(문란폐단;2).정신(1;형식을 버리고 실상에 힘쓰기를).정의감(1).정치(8:정치의 요체.선정.바른정치.실효성있게).제도(1:관제변통.개정).조세(21:균역법.공물편리.폐단.납부의 고통,부역면제.세금탕감.징수폐단.환곡폐단).종교(2;불교;번전징수.천주교;폐해).지방제도(6;지방관처벌.분계.수어청.총융청 합침).간언(1).차별(1;서얼제도).토지제도(3;둔전폐단.측량.전정).폐습,풍속(7:서울시 5개구민들.음주.사치.풍속진작)화폐제도(2;동전.재화)등에 관한 개혁기사가 있다.

이를 건수별로 9개의 분야별로 다시 대충 분류를 해 보면 다음과 같다.

1.정치(64건)
가).정치일반(8:정치의 요체.선정.바른정치.실효성있게).시급한폐단(3;10조목.9건등).국정 
      (2).국난(1).개혁관청;(2.개혁도감).-16건.
나).군사(9).국방(3).국경(1)-(13건)
다).공적부조:구휼(가믐등).-9건.
라).언론의 확대.개방(6).상소(2).간언(1)-9건.
마).민생구제(4).조적(문란폐단(2).인권(2:노비.구류).-(8건)
바).국논분렬(5:붕당제도 폐해)-5건.
사).교통(2)-2건.
아).교육(1)-1건.
아).입법(1;수교의 제한).-1건.

2.인재등용.공무원제도-(44건)
가).공직자선발.인사임용.처우.책임.폐지(14).-14건
나).공개채용문제(과거시험제도의 문제점;13).-13건
다).인재등용(9:선비등용.어진인재발탁.천거법.등용폭확대.충직한 간원을 기용).-9건
라).공직기강(2).기강해이(2).-4건
마).공직추천제(3).-3건
마).제도(1:관제변통.개정)-1건

3.국민의 공의무-(27건)
가).조세(21:균역법.공물편리.폐단.납부의 고통,부역면제.세금탕감.징수폐단.환곡폐단).-(21건)
나).재정(10;절약).-(10건)
다).토지제도(3;둔전폐단.측량.전정).-(3건)
라).공의무(양역:2.강제노역1).-(3건).

4.사법제도.-(19건)
가).공직부정(7)-(7건)
나).감사(5;암행어사).-(5건)
다).재판(3.결안 추율.초사).-(3건)
라).범죄(3)-(3건)
마).비리고발(3정승비리;1).-(1건)

5.국민정신-(18건)
가).폐습.풍속(서울시 5개구민들.음주.사치.풍속진작.7).금지(금주령1)-(8건)
나).사치금지(6)-(6건)
다).도덕성(2염치.향음례).-(2건)
라).정의감(1).-(1건)
마).정신(1;형식을 버리고 실상에 힘쓰기를).-(1건)

6.경제-(12건)
가).독점가격.(인삼독점폐단.소금값조절.점포폐단개혁.4)-(4건)
나).화폐제도(2;동전.재화).-(2건)
다).산업(염전폐단:1).-(1건)
라).산림(1;소나무관리).-(1건)
마),목장(1).-(1건)
바).금군폐단(영업허가 제한 문제 1).-(1건)

7.지방제도-(9건)
가).지방관처벌.분계.수어청.총융청 합침.6).-(6건)
나).지방(수원 중군1).-(1건)
다).서원폐해(1).-(1건)
라).지방제도(1).-(1건)

8.신분관계-(3건)
가).우대(공자의 자손을 우대함:1)
나).명예(1;추증).
다).차별(1;서얼제도).

9.종교-(2건)
가).불교(번전징수.1)-(1건)
나).천주교(폐해.1)-(1건)

이상으로 영정조 시대의 개혁의 기록을 개괄적으로 살펴았으며 이의 구체적인 내용은
다음호부터 소개를 하기로 한다.

二).정조임금의 행장(7-11).묘지명.
.............................
..............................

三).결어

이번호에서는 지난번호에 이어서  정조임금의 생존시의 치적의 대강을 실록에 기록한 행장을 7-11번 4개와 묘지문 1개를 소개했다.물론 개혁과 거리가 먼 효도 우애나 가정적인 면은 너무 방대하여 생략하고 오늘의 우리들에게 도움이 될 기록이라면 그냥 옮겨 보았다.


특히 영조.정조임금의 인품에 우리는 새로운 감회를 느낀다.물론 임금의 기록이라 보다 좋게 기술한 면도 있겠지만...실록의 기록은 우리 민족의 자손만대가 볼 것을 염두에 두었기에 전혀 없는 것을 위작할 수는 없는 것으로 안다.연산군의 기록과 영정조 임금의 기록이 다르므로,어느정도는 객관적인 기록으로 믿어야 될 것같다. 해방이후 우리는 10명전후의 지도자를 마지하고 보냈다.그분들의 실록이 없다는 것이
우리 후손들이 전통문화를  단절시키고 있는 셈이며,전통문화에  무지하고 한술 더 뜨서 짓밟고 있는 셈이다.

조선500여년간 임금의 일거수 일투족을 비판하고 시정하는 공직자가 간관이라는 직책으로 항시 왕을 견제해 왔었다.그러나 그때의 관간은 백성들을 위한 곧은 충직한 공직자 였었다.

지금은 해방이후는 대통령 비서실에서나 측근들이  좌지 우지 했다든지...도와 주었을 것이 아니었는지...
그러나 해방이후 50여년동안의 대통령중에 존경받을 분들이 과연 몇분이나 될른지...

그리고 영조 정조임금에 버금가는 분들이 어느분일른지...


우리는 서양의 민주주의가 최고라고 수입했는데...왜 지도자는 조선왕조의 임금들보다 못한 분들이 많지 않을른지...아니,영조 정조 임금같은 정도의 지도자나 대통령이 나올수 없다는 것인지..아니면 조선시대보다 열배 백배나 백성을 사랑하는 존경받는 지도자가 나올수 있다는 것인지...


영조.정조 임금의 개인적인 인품을 보면,백성을 사랑하는 애민사상에 투철하고,하늘을 백성을 두려워하면서도 같은 핏줄의 동포요 부모요 자식간이었다.부모자식간에 속이고 속여먹는 그런 못난 사이비들은 결코 아니었다.
정조임금의 행장 11의 기록을 보면,


“백성을 사랑하여 마치 부상자 보듯 하였고 방백(方伯)·수재(守宰)를 면전에 불러 백성의 고통을 살피고 구제의 길을 개유하는가 하면 혹은 각도에 수의 어사(繡衣御史)를 보내 법을 범한 자를 응징하고 백성의 억울함을 풀어주게도 했으며 혹은 조근하러 온 관원을 불러 백성들 질고(疾苦)를 묻기도 했다.

비 한번 내리고 볕 한번 나는 것까지도 신경쓰며 걱정하기를 마치 농부가 자기 농사 걱정하듯 했으며 측우(測雨)하는 그릇 점풍(占風)하는 장대 등을 설치하고 상신(上辛)날이면 사직에 제사지내 풍년의 경사가 있기를 빌고, 정월 초하룻날은 윤음을 내려 농기를 잃지 말도록 미리 권고했었다.

그리고 흉년을 당하면 그때마다 마치 불에 타는 사람을 구제하고 물에 빠진 자를 건져내듯이 오로지 제휼(濟恤)에만 전념하여 창고를 열어 진구하고, 곡식을 배로 실어다 먹이게도 했으며, 내탕의 것을 덜어내어 돕기도 하고, 곡식 환자를 정지시켜 백성들이 숨을 돌리기도 하였다”


우리는 수재민이 생기면 국민들만 성금을 모아서 보내고 공직자들은 일을 열심히 하는 것 같았는데 작년의 수해민이 아직도 콘센트에서 겨울을 나고 지원금이 다 도착이 안된 것 같은 감이 든다면...지금의 우리는 무슨 민주주의를 하는지...

정조임금은“오직 백성들 생각에 밤이나 낮이나 쉴새없이 아무리 작은 일도 살피지 않은 것이 없고 일단 폐단이 있으면 모두 손을 대서 위에서 털어다가 아래에다 보태주고 어루만져주고 편안하게 해주었다. 그리하여 사람들에게 스며든 이택(利澤)이 짙고 진하게 젖어들어 오래가면 갈수록 효과가 나타났는데 그러고서도 백성들 보기를 마치 부상이라도 당한 자를 보듯 하여 그중 한 사람이라도 자기 성취하고 싶은 바를 다 못할까 염려했다. 그리하여 약물을 나눠주어 병을 구제하고, 곳집을 덜어내어 매장을 돕기도 했으며, 내탕(內帑)을 이용하여 흉년 대비의 물건을 별도로 저장해 두기도 하고, 장영(壯營)을 설치하여 균역(均役)의 법을 혁파해 보려고도 하였다.

그리고 서얼(庶孼)이라도 적임자면 추려 쓰는 일, 노비(奴婢) 신분을 대를 물리지 않는 일, 조적(糶糴) 제도를 개혁하는 일 등을 차근차근 추진하고 시행하려고 하였으나 미처 못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미 나타난 효과만 가지고도 시중에서 장사하는 백성들은 토색질이 없어졌다고 말하였고, 들에서 농사짓는 백성들은 쌓여 있던 문서가 청산되었다고 했으며, 조세를 납부하는 백성들은 정량 외에 더 내는 제도가 없어졌다고 했고, 법이 공정함을 좋아하는 백성들은 억울한 누명을 씻었다고 했으며, 도비(都鄙)의 백성들은 농경지가 더 넓어졌다고 했고, 창고 관리하는 백성들은 출납이 정당하다고 했으며, 의관을 갖춘 백성들은 인재를 육성하고 등용하는 제도가 문왕(文王) 시대에는 어떠했는지 모르겠다고 하였다.

이에 하늘과 땅과 사람이 조화를 이루고 사방 팔방이 다 화답했으며, 상서가 내리고 풍년이 들고 하여 따스하기 봄날 같았고, 촉촉이 비가 내린 듯했으며 마음이 편안하기 마치 빛나는 하늘 이글대는 태양 아래 있는 것과 같았었다”고 한다.


우리의 오늘날의 지도자들은 백성이 중요한지...권력이 중요한지...


앞의 서설에서 살펴보았듯이 영정조 임금대의 개혁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공직자.공무원들에 대한 개혁기록이 정치개혁기사에 못지 않게 많다.그리고 암행어사와 공직자 처벌.비리 문제가 엄정하게 다루어져 백성들의 민원을 제거하고 있다.


그래서 행장에서는 “


 조정 진신 중 혹 한 사람이라도 법을 범한 자가 있으면 비록 평소 존경하고 총애하고 예우했던 자라도 그것 때문에 법대로 처리하지 않은 경우는 없었고 대의(大義)가 걸려있는 선악을 가리는 데는 더욱 엄하였다. 그리하여 궁(宮)과 부(府)가 일체가 되고 속과 겉이 다를 것이 없었으며 궁액(宮掖) 무리들도 감히 함부로 궁중 출입을 못해 안으로 조정의 신하들로부터 밖으로 먼 지방 서민에 이르기까지 그 사이가 마치 몸이 팔을 뿌리고 팔이 손가락을 뿌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사람을 대하는 데도 어느 사람이거나 마치 밝은 촛불이 눈앞을 훤히 비추고 있는 듯하여 국가 대계를 정하는 데 있어 발언하는 자들이 뜰을 메웠는데 왕은 그 중지를 다 받아들인 다음 한 마디로 독자적인 단안을 내렸다. 그러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일이 막힘없이 잘되었으며 무슨 일이든지 명령만 내리면 그대로 행할 정도로 뭇 신하들이 다 승복하고 오직 자기들 직무 수행에 분주했다.”고 기록한다.


이런 정조임금의 평소의 성품과 스타일을 보면“되도록 검소하게 먼 장래를 생각하면서 그릇도 조각한 것을 쓰지 않고 옷은 세탁한 것을 입으며 무명베 요에 부들자리도 아주 평안하게 여겼다. 계시던 집도 겨우 몇 칸짜리에다 단청도 하지 않은 채 창문이나 벽에는 매연이 시꺼멓게 붙어 있어 유사가 수리할 것을 청하면

왕은 말하기를,
 “내가 어찌 비용을 아끼려고 그러는 것이겠는가. 내 성품이 이것이 좋아서다.”
 하였는데, 경(經)에 이른바 “나라에 대하여는 부지런하고 집에 있어서는 검소했다.” 한 것을 왕은 그대로 실천한 것이다. 성품이 활달하여 어느 사람이건 오직 성심으로 대했기에 호월(胡越)도 한집안이었고 뜰 앞이 바로 사방팔방이었으며, 한가한 틈이거나 조회 때이거나 겉과 속이 따로 없고 속이 시원시원하여 사람을 대해 말못할 것이라고는 없었다.

그리고 자신이 만천 명월 주인옹(萬川明月主人翁)이라고 자호하면서 그것을 대서 특필하여 전각(殿閣)에다 걸어두기도 했는데, 경(經)에 이른바 “왕의 가는 길이 확 열려 있어 편당도 없고 치우침도 없다.” 한 그 모습이 왕에게 있었던 것이다.“라고 기록한다.그리고 ”현자를 발탁하고 외척(外戚)은 되도록 억제했으며, 환관(宦官)과 궁첩(宮妾)을 멀리하고 어진 사대부(士大夫)를 자주 대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제 새로운 대통령이 대한민국의 새로운 지도자로 5년간 살림을 막 시작했다.  이번 새 대통령만은 소탈하고 서민들의 고통도 직접 체험해 보았기에,국민들의 민심이 천심이며,바른 백성들의 소리를 두려워하고 존중하며,백성들을 위해 사심없이 바르게.정조임금처럼 검소하고 진솔하며 겉과 속이 따로 없이 성심으로 사람들을 대하며,헌신적으로 5년간 법을 잘 만들고 고치며,정직하고 사심없고 유능한 인재를 잘 발탁하여 국력이 신장되고 국민들을 사랑하는 만큼 좋아하고 존경받는 대통령이 되기를 아마도 우리 국민들 모두가 학수고대를 할 것 같다.


그리고 적어도 공직자들이나 국민들을 주민들을 위하는 심부럼꾼들인 사람들만은 권력과 명예와 돈에 미친 사람들은 이제 좀 무대에서 조용히 사라지고,국민들을 잘살게 하고.민원을 신속하게 해결하기 위해 노심초사하고,우리 공동체 발전이 나의 발전이고 우리 공동체의 기쁨이 나의 기쁨으로 생각하며이런 일을 즐겁게 사명감을 가지고 할 사람들이,공직을 보람으로 갖는 그런 분들이 많아지기를 우리 국민들은 두손뫃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주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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