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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조선왕조의 재판과 증거(2)-辭證.詞證.衆證(證左).文證등과 증거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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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재문 작성일13-06-13 11:39 조회55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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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한국법문화의 국제경쟁력 향상을 위한
한국전통법문화의 강좌
한국전통법의 정신과 법체계(65)
-사법(司法)사상.재판이론;조선왕조의 재판과 증거(2)-辭證.詞證.衆證(證左).文證등과 증거재판
동국대학교경 주캠퍼스 법정대 법학과 교수 김  재  문          (http://wwwk.dongguk.ac.kr/~kj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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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서설

이번호에서는 조선왕조의 증거재판의 정신과 이론중에서 증인과 증인의 증언이나 진술.자백을 의미하는 辭證42건과.詞證;35건. 그리고 3인이상의 증인을 의미하는 衆證.8건 證左 6건과 서증인 文證2건의 실록기사를 소개하기로 한다..

아쉬운 점은 발표할 분량은 많으나 시간이 여의치 못하여 좀더 세밀하게 분석정리하여 소개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이부분은 차후에 다시 정리 요약하여 소개하기로 하고,조선왕조에서도 증거재판주의가 원칙이었으며,증거의 하나로 증인이나 이들의 증언이 재판진행의 필수적인 요소이었음을 알고 오늘날의 우리들의 증거재판이 조선왕조의 증인이나 증언을 통한 증거재판의 정신과 이론을 뛰어 넘기 위한 자료로 참고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해 본다.

서술 목차는 一.서설.二.辭證.詞證.衆證(證左).등의 증거재판.1.사증(辭證)(증인이나 증언)이 명백하거나 뚜렷해야 함.2.사증(辭證)이 불명확하거나 의심스러우면 원통하고 억울하게 됨.3.1.사증(詞證). 4. 중증(衆證).증좌(證左) 및 문증(文證) 三.餘語순서로 소개 하기로 한다..그리고 좀더 세밀한 연구는 차후에 부가하여 소개하기로 한다.


二.辭證.詞證.衆證(證左).등의 증거재판
위에서 소개했듯이 .辭證:57건중 42건..詞證;40건중 35건.衆證:8건(證左:6건..文證:2건을 소개 하기로 한다..사증은 경국대전 형전의 용어이며,중증이나 증좌는 대명률상의 용어이며,詞證은 송사의 증인으로 이해되지만 좀더 연구가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一).辭證 42건.
辭證이라는 단어는 辭(말을 할)+證(증거 증)=辭證=말(언어)로 하는 證人.말로서 하는 증거(證言.陳述.自白)을 의미한다고 불수 있다.그 의미를 아래의 실록기사 42건을 통해서 살펴보기로 한다.42건을 다시 분류해보면 1.사증(증인이나 증언)이 명백하거나 뚜렷한 경우2.사증(증인이나 증언)이 분명하지 않은 경우.3.사증만으로는 불충분한 경우로 분류해서 살펴보기로 한다.

三.餘語

辭證(42건)이라는 단어는 辭(말씀 사)+證(증거 증)=辭證=말(언어)로 하는 證人.말로서 하는 증거(證言.陳述.自白)을 의미한다고 불수 있다.그 의미를 아래의 실록기사 42건을 통해서 살펴보기로 한다.42건을 다시 분류해보면 1.사증(증인이나 증언)이 명백하거나 뚜렷한 경우는 진상을 캐기 위해 신문을 해야 하고,1인의 사증만으로 정상을 알아 내어야 한다.사증이 모두 자복을 하거나 다 승복을 하거나 일호의 의심도 없는 사증이 구비되면 상세히 심뮨을 하여 옥안을 작성하고사정의 발자취가 죄다 드러나면 고문(자백을 받기 위해)을 하는 것은 예로부터 통행하던 전례임을 알수 있다,

2.사증(증인이나 증언)이 분명하지 않는 데 갑자기 볼기를 치는 형벌을 가하면 무고와 억울함이 있을 것이며,법에 어긋나며, 고신을 함은 불가하며,사 마땅하지 못하고,억울하며, 백성의 원억이 염려되며,민망하며, 국문할 수 없으며,지극히 불공평하며,경솔히 버려둘수 없으며,일이 매우 중대하지만 사증이 없는데 형신을 하면 목숨을 반드시 잃게됨을 임금에게 건의하며,억울하고 원통한 사정이 생길지 모르며,실상을 밝히기 어려우며,사람과 귀신의 원통하고 억울함을 형용해서 말할 수가 없으며...옳을른지(의심스러우며), 모든 신하들이 난처하게 여기며,원통함을 말하므로 마땅한지 모르겠으며, 신문할만한 단서가 없어 즉시 석방하게 된다.

(1)사증(辭證)이 명백한데도, 말을 꾸며 자복(自服)하지 아니하니, 청컨대 직첩(職牒)을 거두고 추신(追身)하여 추문(推問)하시며.”(2)임금은 사증(辭證)이 명백하니, 의금부(義禁府)에서 형신(刑訊)을 청하는 것은 마땅하다. 그러나 한O은 의친(議親)의 재상(宰相)이므로, 형문(刑問)할 수 없으며, 또한 증거(證據)대로 죄를 정하기도 어렵다. 그것을 영돈녕(領敦寧) 이상에게 의논하도록 하라고 한다. (3) 현장을 본 정석견과 김봉이 아직 남아 있으므로 그 사증(辭證)이 근거가 있어 사건의 진위(眞僞)가 불분명한 것이 아니며,

(4) 사증(辭證)이 이미 뚜렷하고 정상이 이미 드러나서, 조금도 의심할 여지가 없으니, 이것을 석방하고 다스리지 않는다면 실형(失刑)이 이보다 심한 것이 없사오며,(5)무릇 큰 옥사에 있어서는 사증이 명백하면 반드시 정상을 알아내야 하는 것이며.(6)정상이 의심할 만한 것이 아니고 ...죄가 고종(故縱)에 있고 사중(辭證)이 모두 자복했는데도, 도리어 은유(恩宥)를 가하심이 부당하며...(7)사증(辭證:증인)들은 다 승복하였는데도, 연손이 불복하여 고문을 당하고 있던 찰라인데, 마침 유(宥)를 입어 일이 잠잠하게 되었으니, 그 광망하고 패악함을 가히 알 수 있사온즉 마땅히 빨리 개정(왕명을 고치도록)하소서.”

(8)사증(辭證)이 구비하여 일호의 의심스러운 것이 없었으며, ...무슨 의심스러운 단서가 있어서 반드시 4∼5년이 지난 후에 규면(規免)케 하려 하십니까. ...김OO의 일은 그 범행을 자신 및 사증인(辭證人)들이 모두 이미 자백하였으므로 ...모두 전일의 공초(拱招)와는 상반되니, 4∼5년이 지난 후에 그 사증인들이 김OO의 원수가 아니라면 어찌 김OO을 위하여 힘쓰지 아니하겠습니까. 이것이 의심스러운 일입니다...모든 사증이 무슨 혐의가 있어서 당시의 사증을 변경하지 않겠습니까. 신의 뜻으로는 다시 추국한 것이 적실하지 못하니, 그 죄안을 삭제할 수 없습니다.”(9)  사증(辭證)이 모두 승복하였는데 김O강만이 자복하지 않기 때문에 신이 따라 국문하기를 청하여 윤허하신 것입니다. ..다만 성명(成命)이 이미 내린 것인데 다시 변경함은 부당하옵니다.”

(10)보통 범죄라면 모르겠으나 일이 대역(大逆)에 관계되고 사증(辭證)이 명백한데도 자신이 자복하지 않고 죽은 경우에 대해 전율(典律)을 고증하여 보아도 논하지 말라든가 정죄(定罪)하라든가 하는 글이 기재되어 있지 않았으며,(11) 사증(辭證;증인)으로 참여하여 아비를 삶아 죽인 일을 명백하게 납초(納招)한 적이 있었는데 이를 이유로 직재의 원수가 되었을 뿐 본디 역모에 참여한 일은 없으며,(12)모두 근거할 만한 사증(辭證)이 있었고, 왕이 의논하여 아뢰라고 명하니,(13)오로지 잡아다 국문(鞫問)하되, 그 사증(辭證)이 모두 밝혀지기를 기다렸다가 법에 의거하여 사시(肆市)하여 여러 사람과 함께 버리는 것이 마땅한 것이다.

(14) 국옥(鞫獄)을 안치(按治)하는 도리는 저절로 차례가 있으며. 반드시 사증(辭證;증인)이 구비되고 맥락(脈絡)이 분명한 뒤에야 바야흐로 비로소 형신(刑訊)을 청하는 것이니, 이것은 바로 예로부터 통행(通行)하던 전례입니다.(15)병 신년 역옥(逆獄)은 ...사증(辭證)이 모두 갖추어졌고 정적(情跡)이 죄다 드러났으니, 지난번 대신(臺臣)이 토죄하기를 청한 것은 또한 늦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라고 한다.


二).《詞證: 35(40건중)거능 살펴본바에 의하면 그 기사내용을 다시한번 요약해 보면

(1) 모든 청송(聽訟)을 반드시 사증(詞證)에 의거하여 묻기 때문에, 이로 인하여 한 송사에 사람들 수십 명이 항상 송정(訟庭)에 있게 되어, 마침내 농업을 잃게 되니, 청컨대 이제부터는 잡송(雜訟)을 정지하여 농업에 힘쓰게 하시고,...”(2)사증(詞證)을 이미 복초(服招)하였으니, 정O가 함께 모의하였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사증에는 정O가 참여하여 안다고 말하지 않았는데, 의사(疑似)한 죄로 문득 별서하여 사람의 전도를 버리게 하는 것은 옳지 않을 듯합니다.”


(2)무릇 옥송(獄訟)은 사증(詞證)을 함께 갖추어야 가히 청리(聽理)할 수 있는 것인데, 다시 심문한다고 하면, 옥수(獄囚)들이 반드시 모두 말을 바꾸어 요행히 면(免)하기를 엿보려고 할 것이다. 이같이 하여 다시 증거[證佐]를 묻는다고 하면, 비록 오랜 세월을 경과한다 하더라도 추문(推問)을 마치기가 어려울 것이니, 따로 조관(朝官)을 보내는 것은 옳지 않다.’고 합니다.”

(3)사증(詞證)이 근거할 만한 것도 없는데, 소완로(蘇完老)가 일찍 죽은 것만을 다행으로 여기고 소웅필(蘇雄弼)이 늙고 병들어 희로(喜怒)가 정상(正常)이 아닌 것을 구실로 삼고 있으니, 이를 믿을 수가 있겠습니까?(4)“사증(詞證)이 같지 아니하면 형신(刑訊)하여 귀일(歸一)시키나, 사증이 이미 같았는데, 무엇 때문에 형신을 하는가?”

(5)지금 사증(詞證)을 서로 미루어서 금부(禁府)가 서OO에게 베의 유래를 캐어 묻지 않았으니, 죄인을 비호하고 권세와 결탁한 것이 환합니다. ...청컨대 아울러 정상과 연유를 추국하소서.” (6)“사건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만, 사증(詞證)이 없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명백(明白)한 일이니, 율문에 의거하여 시행하라.”하였다.

(7)이미 사증(詞證;증인)을 자세히 물어보라고 명하였는데, 어찌하여 묻지 않았는가? (8)사증(詞證)은 모두 승복(承服)하였지만 박OO은 현재까지 승복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하니, 전교하기를, “사증(詞證)이 이미 승복하였는데, 박OO이 어찌 홀로 승복하지 않겠는가? (9)“사증(詞證;증인)이 비록 유막지(劉莫知)를 지목하기는 하나, 이것은 사죄(死罪)이므로 마땅히 자복하는 초사를 얻은 뒤에야 법으로 조치할 수 있습니다. ..(10) 요사이 사건이 의옥(疑獄)에 관계되는 것은 사증(詞證)을 추궁하는 데 의해서 분변하여 밝히는 것이 많이 있다고 합니다.


(11)비록 자복(간음사건)을 하지 않고 죽었으나 성담로가 이미 낱낱이 공초(供招)에 자복을 하였고 사증(詞證)도 명백하니, 아뢴 대로 성담로는 전가 사변(全家徙邊)하고 허씨는 자녀안(姿女案)에 기록하도록 하라.”(12)반드시 실정(實情)을 얻어내려고 힘쓰다가 형장(刑杖)을 남용(濫用)하여 상(傷)하는 사람이 반드시 많을 것이니, 지금 농사철의 틈이 있는 때에, 사증(詞證)으로 마땅히 물어야 할 만한 자를 가려서, 의금부(義禁府)로 하여금 잡아다 국문(鞫問)하게 함이 가하다.” 하였다.(13)국(推鞫)하게 한다면 사증(詞證)에 모두 이OO이 말한 바를 조정에서 이미 믿고 있다고 여겨 부동(符同)하여 거짓 자복하는 이치가 없지 않을 것이니, 청컨대 돌려보내지 마시고 유사(攸司)로 하여금 빨리 분변하게 하소서.”

(14) 계본(啓本)을 보건대, 전OO은 세 차례 형신(刑訊)을 받고 전ㅁㅁ은 두 차례 형신을 받고 사증인(詞證人) 등도 각각 한 차례씩 받았는데 모두 주어서 얻은 것으로 납초(納招)하였으니, 그러면 당윤에게 사지 아니한 것이 매우 명백합니다. (15)사증(詞證)이 일치하였으나 OO는 승복하지 않고 장하(杖下)에서 죽었다.(16)《드러난 것으로 말하면, 명백한 사증(詞證)이 없는 듯합니다. ...업동에게 물으면 제가 말하지 않은 것이라 하니, 옥사(獄事)를 구성하기 어려울 듯합니다.”

(17) “업동(業同)에 이르러서는 의심스러운 자취가 있다 하나 사증(詞證)이 갖추어지지 않았으니, 또한 옥사(獄事)를 구성하기 어렵습니다. 답하기를,  “논한 것이 명확하니, 내가 가납(嘉納)한다.”(18)“대체로 살옥(殺獄)은 반드시 사증(詞證)의 문안(文案)이 구비된 뒤에라야, 비로소 정범(正犯)을 다스리는 것입니다.(19)‘이 일은 애매하여 사실을 조사하기가 어렵다.’ 하고, 또 말하기를, ‘비록 말한 뜻 가운데는 의심스러운 형적은 있으나, 유암(幽暗)한 일로 사증(詞證)이 갖추어지지 않았다.’ 하였으며, 또 말하기를, ‘또한 의사(疑似)한 단서를 가지고 막대한 옥사를 만들기가 어렵다.’ 하였고, 청컨대 전 판서(判書) 오OO을 똑같이 감죄(勘罪)하소서.”

(20)“. 금부(禁府)에서 그 비첩 및 밤에 갈 때 데리고 간 여종을 아울러 잡아다 증거하기를 청하고, 또 그 종족이 정장(呈狀)할 때의 장두인(狀頭人)인 유명뢰(兪命賚)를 나문(拿問)할 것을 청하였는데, 유언명은 모자(母子)란 이름이 있기 때문에 서로 증거를 대게 할 수 없다고 하여 나문을 청하지 않았다... 그 밖의 죄상은 사증(詞證)이 밝혀지지 않았으니, 어찌 이로써 그 죄를 단정(斷定)할 수 있겠습니까?”...,

“법을 상고하여 죄를 다스리는 도(道)는 오직 추문(推問)하고 증거를 끌어대며 문안(文案)을 조사해 밝혀서 그 정위를 알아내어 공정하게 판결함이 마땅한데, 도리어 <대신에게> 수의(收議)하기를 계청(啓請)하였으니, 신은 그윽이 놀라운 일이라 생각합니다.”(21)그 밖의 죄상은 사증(詞證)이 밝혀지지 않았으니, 어찌 이로써 그 죄를 단정(斷定)할 수 있겠습니까?”...(22)“이O이 두루 찾아다녔음은 사증(詞證)이 모두 갖추어졌고, 금오(金吾)에서 추문(推問)한 언안(獻案)에도 잡아낸 바가 없지 않는데,이OO은 권응(權?)이 공술한 말도 허망한 것으로 돌리고 있는데, 이들은 모두 말도 되지 않습니다.”

(23) 이OO의 여러 가지 죄상은 사증(詞證)이 모두 분명하여 당초에 부처(付處)한 것도 이미 관전(寬典)에서 나온 것인데, 또 대경(大慶)으로 인하여 갑자기 석방을 해준다면 죄 있는 자들을 어떻게 징계하겠는가.】(24)“이OO이 두루 저촉한 일은 처음에 윤팽수(尹彭첤)·갑술(甲戌)로써 사증(詞證)을 삼았는데, 여러 하인을 엄히 신문하여 실토시켰지만, 옥체(獄體)는 끝내 명백하지 못하였습니다. ...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사증(詞證)이 구비되고 두루 저촉한 것이 드러났는데, 어찌 쉽게 거론하겠는가.” (25)“이O의 옥사(獄事)는 사증(詞證)이 구비되어 있는데, 끝내 기망(欺罔)하기에 이르렀으니, 지금까지 몹시 밉다. ...

(26)사증(詞證)이 구비(俱備)되었는데, 대신(大臣)이 차자를 올려 억지로 신구(伸救)하였습니다.(27)“문안을 보면 이미 사증(詞證)이 갖추어진 일이 없으므로 끝내 벗어날 만한 단서가 없는데, 이O의 죄를 벗기려고 안사한 신하들을 사의(私意)를 쓴 죄로 죄다 모니, 이후로 과시(科試)에 관한 일이 엄하지 않고 공정하지 않아서 이 과시보다 더한 것이 있더라도 누가 다시 한 마디 말을 하겠으며, 형조(刑曹)·금부(禁府)에서 안치(按治)하는 일은 누가 담당할 자가 있겠는가? .

(28) “육현(睦玄)을 박살(撲殺)한 한 조항은 사증(詞證)이 모두 갖추어졌고 정절(情節)이 완전히 드러났다. ”(29) 이는 날짜와 달이 서로 틀리고 사증(詞證)이 갖추어지지 않은 것입니다....그런데도 마침내 명백하게 반포하여 보여 준 일이 없으므로, 신은 의아스럽고 답답함을 견딜수가 없습니다.(30)최OO가 인형(印刑)을 위조(僞造)한 실상은 사증(詞證)이 이미 갖추어져 실정이 모두 드러났으니, 왕법(王法)으로 헤아려 보면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청컨대 감사(減死)의 명령을 도로 거두소서.” 하였으나, 윤허하지 않았다.(31) 임금이 이르기를, “검험(檢驗)이 비록 부실(不實)하더라도 사증(詞證)이 구비되어 있으면 추검(追檢)할 필요는 없다. .... (32)《‘검험(檢驗)은 부실하더라도 사증(詞證)이 이미 갖추어진 경우에 추검(追檢)하는 것은 부당한 것인데 더구나 이미 매장한 것이야 말해 뭐하겠는가?... ...항식(恒式)으로 정하여 시행하고 이런 내용을 경외에 알리라.”  하였다

(33)“파금은 상처가 나타나 있고 사증(詞證)이 갖추어져 있어 죽은 자를 죽인 것이 의심할 나위가 없을 듯하다. (34)소통사 배말돈이 칼에 찔려 치사(致死)된 것은 사증(詞證)이 명확하여, 범왜(犯倭)를 상명(償命)하는 것을 단연코 그만둘 수 없으므로,(35)사리(事理)로 미루어 보건대 사증(詞證)에 김순성이 마구 공초(供招)한 것일 뿐임이 많이 보이니, 부당하게 죄에 걸리는 것이 걱정스러울 뿐만 아니라, 이 뒤의 폐단에 관계되는 것이 큽니다. 청컨대 특별히 방송(放送)시키소서.”하니, 그대로 윤허하였다.

위의 내용을 다시 요약해보면,詞(말씀 사)+證(증명할 증)의 결합으로 앞의 辭證(말할 사+증명할 증)과 같은 의미이다.그리고  辭證은 경국대전 형전 추단조에 나타나는 우리의 고유한 소송상의 법률용어이며,사,詞證은 실록의 기록을 보면,詞證人이라고도 복합적으로 증언을 하는 증인을 의미하는 기록도 보인다.

그래서 증인을 의미하는 경우로는 사증에 의거해 묻기에 법정에 수십명이 항상 있게되고,이미 복초를 하고,사증에게 유래를 캐어 ane거나,자세히 묻거나,모두 이미 승복하거나.지목을 하거나,사증인이 각각 형신을 한다거나,사증으로 물어야 할 자를 선발하여 국문을 하거나,살인재판에는 반드시 사증의 문안을 구비한 후에 정범을 다스리거나,윤명수,갑술을 사증으로 삼는다는 기록이 증인을 지칭함을 미루어 알수 있다.이외의 경우는 좀더 연구를 해 보기로 한다.

三). 중증(衆證)8건,.증좌(證左);6건 ,문증(文證)(2건)을 살펴본바에 의하면 그 기사내용을 다시 한번 요약해 보면

1.중증(衆證);8건은

(1)사증(事證)이 명백하고 애매하지 않사오며, 가령 애매하다 하더라도 율문(律文)에 중증(衆證)으로 죄를 정한다는 말이 있고, 또 말이 이에 관련된 사람은 모두 본범(本犯)으로 죄를 받았사온데 홀로 정녕만이 특별히 은사를 입어, 그 원범(原犯)을 버리고 상언한 죄만으로써 과단(科斷)하시오니, 실로 옳지 못하옵니다. 정녕을 추국하고 실정을 얻어서 그 죄를 바르게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2)임금이 말하기를,  율문(律文)에 이른바 여러 증거로서 죄를 정한다[衆證爲定]는 것은 한두 가지의 사증(事證)으로써 죄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말이 이에 관련된 모든 사람을 빠짐없이 추국(推鞫)하여 죄를 범한 자가 말이 궁하고 형세가 절박하여 마지못한 연후라야 죄를 줄 수 있는 것이다. 신은 생각하건대, 율문(律文)에 이르기를, ‘중증(衆證)이 명백하다면 모름지기 대문(對問)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였는데, 겨린(切隣)이 이미 자복(自服)하였으니, 죄로 논할 수 있다고 여겨집니다.” 

(4) “소위 중증(衆證)이라고 하는 것은, 반드시 3인이 된 연후라야 중(衆)이라고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5) 율문(律文)에 이르기를 ‘중증(衆證)이 명백하면 곧 문초하여 옥을 이룬다.’ 하였으니, 이른바 중(衆)은 세 사람 이상입니다.(6) 신이 함께 진도(珍島)로 간 것은 중증(衆證)이 분명하고 ...공초에도 그런 일이 있다고 말하였는데 임OO 등은 굳이 ‘그런 일이 본디 없었다.” 하니, 간사하고 거짓됨이 매우 분명합니다. (7)《대명률(大明律)》을 상고하면 ‘여러 가지 증거가 명백할 경우 옥성과 동일하다.[衆證明白 콉同獄成]’는 것은 오로지 범죄한 자가 도망했을 경우를 위하여 설치한 것입니다.(8) 명례의 소주(小註)에 ‘중증(衆證)이 명백한 경우는 곧 옥사(獄事)가 구성된 것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른바 ‘중증(衆證)이 명백한 경우는 곧 옥사가 구성된 것과 같다.’고 한 것이 비록 범죄 사실이 발각되어 달아난 자 때문에 이런 율문을 둔 것이긴 하지만 이것 역시 통용할 수 있습니다.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중증은 대명율의 규정에 있는 법률상의 용어로서.반드시 3명이상이 되어야 衆(다수,무리)라고 하였으며,중증을 여러증거(여러 증인.다수의 증인)으로 이에 관련된 모든 사람을 빠짐없이 추국하여 형사재판이 성립되어 재판을  진행하게 됨을 알수 있다.衆證이란 다수의 증거가 아닌,다수(3인이상의) 증인으로 해석함을 알수 있다. 중증이 명백하면 대질 심문이 필요 없다는 경우도 있다.

2.증좌;6건은

(1)“무릇 옥사(獄事)에 있어서는 중증(증좌)이 필요한 것이 아니며,...무릇 큰 옥사에 있어서는 사증이 명백하면 반드시 정상을 알아내야 하는 것이며,
(2) “소위 중증(증좌)이라고 하는 것은, 반드시 3인이 된 연후라야 중(衆)이라고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

(3)“ 율문(律文)에 이르기를 ‘중증(증좌)이 명백하면 곧 문초하여 옥을 이룬다.’ 하였으니, 이른바 중(衆)은 세 사람 이상입니다.

(4)바로 신이 함께 진도(珍島)로 간 것은 중증(증좌)이 분명하고 더구나 전에 부(府)의 서리(書吏) 공OO의 공초에도 그런 일이 있다고 말하였는데 임OO 등은 굳이 ‘그런 일이 본디 없었다.” 하니, 간사하고 거짓됨이 매우 분명합니다.”

(5)《대명률(大明律)》을 상고하면 ‘여러 가지 증거가 명백할 경우 옥성과 동일하다.[證左明白 O同獄成]’는 것은 오로지 범죄한 자가 도망했을 경우를 위하여 설치한 것입니다.(6)《대명률(大明律)》... 명례의 소주(小註)에 ‘중증(증좌)이 명백한 경우는 곧 옥사(獄事)가 구성된 것과 같다.’고 하였습니다....

이른바 ‘중증(증좌)이 명백한 경우는 곧 옥사가 구성된 것과 같다.’고 한 것이... 중증이 이미 귀일되었고 도대와 고난 자신이 또한 독살한 절차를 명백히 말하였으니, 곧 옥사가 구성된 것과 같다 하더라도 안 될 것이 없습니다. 대명률상의 법륭용어로서 중증을 증좌로 표현하는 의미임을 알 수 있다.

3.文證;2건은 (1)“안성의 불초(不肖)한 일은 모두 문증(文證)이 없으니, 논란이 여기에 이른 것은 불가하다.”(2) “김O의 이 말은 문증(文證)이 없기 때문에 이OO이 아직도 김정열(金廷說)의 옥사 때에 고친 전지(傳旨)에 칭탁(稱託)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라고 함을 알수 있었다.


이상과 같이 조선왕조에서는 증인 및 증언에 관해서 사증(辭證).사증(詞證).증좌(證左)등의 용어는 증인과 증언 및 송사의 증인과 증언 및 증거를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증인이나 증언이나 증인의 자백이나 진술이 명백해야만 원통하고 억울한 재판이 되지 않으므로 불명확한 애매한 증인의 증언이자 진술은 오판을 하게 되므로 원칙적으로 명백한 증인이나 증언을 그 진술과 자백이 있어야만 심문(고문)을 하며 재판을 진행하게 됨을 알 수 있었다.


오늘의 우리들의 재판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위해 증거재판을 원칙으로 하는 오늘의 우리의 재판에서도 옥에 티 같으나,드물지만 증인이나 증언이나 증거나 불확실하거 허위의 증거를 통해, 원통하고 억울한 사형이 집행이 되어야 한다는 대법원의 판결에 형식적인 삼심제로 인해 최종심을 단순한 법률심만 하게 된 결과 하급심에서 증거조사가 잘못되었거나,조작된 경우를 간과하게 되는 안타까운 우를 범하는 것에 대해,조상들의 증거재판제도를 통해서 타산지석으로라도 음미하여 실상을 밝혀서,21세기의 우리 후손들은 조상들에겨 부끄럽지 않는 원통하고 억울한 재판을 하지 않도록 더욱 조상들의 정신과 이론을 알고,전통법문화를 창달하여 어려운 오늘의 대한민국의 법치주의 문화를 선진국수준으로 창달시키는 국제경쟁력있는 법문화를 만들어 나가야할 시대적 사명을 안고 있는 것이 아닐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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