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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청백리의 개념.목적.선발방법.자격.처우및 자랑스런 청렴한 공직자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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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재문 작성일13-06-13 12:02 조회1,52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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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한국법문화의 국제경쟁력 향상을 위한
한국전통법문화의 강좌
한국전통법의 정신과 법체계(75)
-조선왕조의 청백리에 관한 법이론과 정신;청백리의 개념.목적.선발방법.자격.처우및 자랑스런 청렴한 공직자님들
동국대학교경 주캠퍼스 법정대 법학과 교수 김  재  문  (http://wwwk.dongguk.ac.kr/~kj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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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서설

이번 호에서는 조선왕조의 청백리의 정신과 실제 평생동안 시종일관 정치가 공직자 공무원으로서 청사에 길이 빛날 자랑스런 모습으로 살다 가신 선현들 열 다섯분을 소개 한다.

국내외적으로 국제경쟁속에서 남북한의 통일을 염두에 둔 6자 핵금지 협상이 그저께 일단 오랜 진통끝에 얼마간의 합의문이 나와서 민족 공멸이나 전쟁으로 인한 어리석은 파멸은 하지 않겠다는 지혜들이 나온 것으로 위안은 되지만...

미국과 북한과의 이익 그리고 중국과 러시아와 일본의 자국의 이익등 속에서 대한민국의 운명과 민족의 공존을 위한 고심이 어느 누구에도 충분하게 만족을 줄수는 어려운 문제인 것 같은 생각들을 우리 국민들은 다 느꼈을 것 같다.
안으로는 1년에 140조 억원 내년에는 200조 억원(?)가까운 예산을 만들고 세금을 거두어서 집행을 하는데,1원 1장이라도 낭비가 없이 어려운 다수의 국민들의 삶의 주름을 펴는데 정치가 공직자 공무원들의 발로 뛰어주고 땀을 흘려 주어야 하지 않는지...

신문이나 방송 나온 기억에 남는 기사나 뉴스의 한 두개중에 이제는 신도시 개발이나 아파트 단지 개발에 토지 보상비가 대략 14조원(?)전후라 해마다 거의 예산의 10%을 지불하게 된다는 기사가 잊히지 않는다.이 천문학적인 보상비 속에, 만약 토지 투기꾼들의 농간에 의해 이들 투기꾼들에게 해마다 천문학적인 나라공금이 지급된다면...

우리 4,800만의 복지와 행복과 꿈은 이들 투기꾼들에게 무참이 짓밟히지 않을까 하는 서글픈 생각이 머리 속에서 지워지지 않는다.어렵고 가난한 여유없이 살아가는 분들이 얼마나 많이 있고.젊은 청년들이 실업속에서 실의에 빠질 가슴아픈 환경속에서, 투기꾼들의 그 엄청난 보상비를 받고 희희낙락,법치주의 사유재산.투기의 자유를 한 껏 누리며 즐거워하는 모습이 뇌리에 떠 올라 자랑스런 대한민국은 아직은 아닌 것 같아 ,발버둥치며 사는 서민들과 젊은이들의 얼굴들이 쉽게 잊어 지지 않는다...

정치가들은 공직자 공무원들은 이런 짓을 하지 않아야 할 것이라 생각해 보지만...자본주의라면서 이들이 이런 투기행위로 국민들의 복지에 돌아가 돈이 투기꾼들의 큰 목소리에 정당한 시세 보상을 해주기 위해 혈세를 해마다 낭비하게 되는 망국행위에 돈에 눈이 먼 공직자들이 이런 짓을 하지 않는 다고 보장할 수는 없는 사회라면...
법을 다시 만들어서 이런 어리석은 정치나 행정이나 사법은 하지 않아야 될 것이라 생각해 본다.

청백리나 가난을 평생 숙명같이 살으셨던 조상들의 가슴속에는 愛民사상이라는 게 자리 잡고 있지 않았던지...오늘날의 공직자들의 마음속에는 자본주의가 자리 잡고 있다는 건가...
어찌 되었던 간에 해마다 투기꾼이 설친 판교의 토지 보상에 엄청난 혈세가 지출되었으며.이들이 또 대토를 마련한다고 전국의 투기 대상이 될 땅들을 구입하면,토지가가 폭등하고 결국은 땅투기꾼이 수억.수십억.수백억을 챙기게 된다니...대한민국의 법은 이들을 잘살게 해주는 법 밖에 만들 재주가 없는 입법전문가들 뿐이란 말인지...

그리고 인간이하의 생활을 방지하기 위한 기초생활 수급자중에 현금이나 주식등 금융기관에 저축이 1억 이상 된 사람으로 외국에 나간 사람들이 수백명이라고 하는데...이렇게 혈세를 나라돈을 엉터리로 집행해도 법치행정이 복지행정 민주행정이 된다면...조상들이 보시면 뭐라고 하실른지...

하여튼 우리 각자 맡은바 자신의 자리에서 국제경쟁력속에서 경쟁력을 갖도록 노력해야할의무가 있을 것 같다.정치가 공직자 공무원님들께서는 조선왕조의 청백리와 염근리.청렴결백하게 가난속에서 평생을 살아가신 모습들을 본 받으시고,자랑스런 대한민국의 조상들의 후손이 되어 주시기를 간절히 빌어보며,이번호의 청백리와 청렴하게 살아가진 자랑스런 선현들을 소개 하기로 한다. 


二.청백리

1.청백리의 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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四.餘語

이상으로 살펴본 청백리에 관한 용어 및 목적.선발방법 및 처우와 청렴결백하게 가난속에서 검소하게 삶을 편안하게 평생 실천하신 선현대에 관한 기록을 요약 정리한 것을  다시한번 종합적으로 인용 정리해 보면,
1.청백리의 용어를 보면.

1).숙종  20년(1694)에 죽은 사람은 ‘청백리’라 하고 생존한 사람은 ‘염근리(廉謹吏)’라고 해야 하며,:2).명종때;청백리(淸白吏)를 고쳐 염근리(廉謹吏)라고 했는데-선조조(宣祖朝)에는 또한 청백리로 선발을 하고,3).肅宗 21년(1695)에는 생존한 사람은 염근(廉謹)이라고 칭하며, 사망한 사람은 청백(淸白)이라 이름하여-임금이 따른다.4).법전에서는, 생존자를 초선(抄選)하면 염근(廉謹)으로- 사망한 뒤에 초선되면 청백(淸白)으로 이름을 부여한다(정조 1년(1783).

2.선발의 목적은

조선왕조에서는 백성을 임금의 하늘(조물주.절대자 자연법칙.자연의 힘,주제자.이치)로 생각하여 백성을 하늘같이 생각하고 백성의 하늘이 먹을 것이므로 탐관오리를 철저히 처벌하여 백성을 자신의 친 어린자식처럼 사랑하는 애민정신을 실천하였다. 때문에 이런 이념을 실현시키기 위해서 탐관오리를 처벌하기 보다는 청백리를 포창하고 그 후손을 공직자로 채용하여 부정비리를 덜 하게 하는 지혜의 하나로 청백리 제도가 나온다.
1).청렴하고 근신하는 수령은 적으니, 청백리(淸白吏)를 포상하여 그 나머지 수령들을 격려하소서:2).청백리(淸白吏)의 자손을 등용하여 뒷사람들을 권장:3).위에서 청검(淸儉)한 덕(德)을  숭상하면, 아랫사람들이 저절로  다투어 본뜨므로  청백리 자손을 채용함:

4).후안 무치한 무리들을 격려(激勵)시키기 위해 청백리와 충신의 후손을 녹용하여 함:5).염치를 숭상하는 풍습을  권장할 수단으로-청백리(淸白吏)를 특별히 포장(褒奬)한 제도를 부활해야 함:6).염치를 권장하기 위해 조종조부터 충신과 청백리(淸白吏)의 자손을 서용해 왔음:7).권면과 징계를 엄격하기 위해 청백리(淸白吏)를 선정(選定)함:8).청명(淸明)한 정치와 세상을 면려하고 침체된 것을 진작시키는 정사에 도움이 있으므로9).청렴을 가상히 여길 목적에서 청백리(淸白吏)의 후손을 쓰는 것:10).청렴한 관리를 장려하여 써서 탐오(貪汚)한 풍습이 절로 없어지게 됨:

3.자격.요건-선발절차.선발(인원수)는

1).좌의정이 청백리 10인을 천거하며:2).강숙돌은 나이 많아 늙을수록 더욱 청렴하고 곤궁한 것을 견뎌냈으니, 마땅히 청백리로 표창해야 한다고 건의하고:3).근래에는 탐오가 풍속을 이루어 염치라곤 전혀 없어졌으니,-반드시 품계(品階)를 가자(加資)하여 권장해 주어야만 다른 사람들이 본받게 될 것이며-조원기의 청백함은 무리중에 특출했던 것으로-모두 공평과 염간(廉簡)으로 임하였기에 많은 치적으로, 아전과 백성들이 두려워하고 사랑하였음을 알수 있고,:

4).남들이 혹시 주는 자가 있으면 받아서 먹기도 하였으니 대단히 청렴하지 못했다면-임금에게 이마에 땀이 맺히고 등에도 땀이 흐르므로. 청백리(淸白吏)의 이름을 삭제하시고 아울러 불차(不次)의 명(命)도 거두어 주시기를 간청한다. -그러나 임금은 “청백리란 예부터 드문 것이다. 경의 행실은 온 조정이 잘 알기 때문에 조정이 다함께 천거한 것이니 사양하지 말라고 한다.:5).사람의 명절(名節)은 처음부터 끝까지 잘 보전(保全)하기가 어려우나-산 자나 죽은 자를 가리지 말고 같이 뽑는 것이 마땅하다는 건의에 임금이 동의를 하며,:

6).‘실록을 살펴보고난 후에 -2품(品) 이상이 모여서 의논하고 묘당(廟堂)에서 결정하여 조사하여 시행한다는 기록을 확인 하고:.7).묘당(廟堂)에서 청백리(淸白吏)17인-·염근리(廉謹吏)3인및 음관(蔭官) 중에 통용질(通用秩)5인-·탁용질6인(擢用秩)을 초선(抄選)하여 계하(啓下)하고,:8).본래 이미 정해진 공론이 있으니, 전례에 따라 초선하게 하도록 건의하며,9).아! 순리(循吏), 양리(良吏), 청백리(淸白吏)는 고금에 드물지만, 탐오하고 교활한 관리들은 전후에 계속 이어져 오고 있다고 한다.


4.처우.대우:청백리에 대한 처우나 대우를 살펴보면, 약 30건 남짖의 기사가 있으나, 본문은 그 반만 소개하고,나머지 요약한 반정도의 목차를 보면,
1).청백리(淸白吏)의 자손을 모두 서용(用)하도록 초록했으나 아직 채용안된 자도 있으며2).청백리의 자손은 이미 녹용하라고 명했지만, 해조(該調)에서 문음(門蔭)만 서용하고 있을 뿐 이 영(令)을 거행하지 않고 있다:3).청백리(淸白吏)이니-부의를 별도로 제급(題給)하고, 승전(承傳)의 문서에 청백리의 사연을 모두 기록하여 뒷사람을 격려하며:4).의정부·이조·예조가 청백리(淸白吏)와 효자 등에-가자시키고 승품하고:

5).청백리의 자손을 임용하여 탐욕과 뇌물의 풍습을 없애기 위해-청백리의 자손은 당연히 임용하여야 하며, 청백리가 있으면 또한 특별히 등용하여 사람들을 권징시키라는 왕명이 나온다.:6).청백리 박유인과 절의 있는 선비의 아들 정매신을 서용하고:7).법으로 공무를 처리하지 못해도-청백리 허잠에게 죽을 때까지 식물을 공급해 주라는 왕명과:8).나이가 이제 80입니다만 그의 청백한 지조는 견줄 자가 드믈고-이처럼 청백한 사람은 그 자손을 녹용(錄用)해야 하고-사람들이 젊었을 때에는 청백하지만 늙어서까지 변하지 않기는 어려우므로.-나이가 많을 뿐더러 그 청백이 숭상할 만하므로 발탁하여 우찬성을 제수하고 싶다고 한다:9).청백리로서 전사(戰死)한 자의 자손(子孫)들중에-옛 사례(事例)에 의하여 다만 제사를 받드는 사람에게만 관직을 제수하라고 명하고:

10).사망한 사람은 청백(淸白)이라 이름하여 자손을 녹용(錄用)하였으니, 오늘날도 여기에 의하여 거행하는 것이 마땅할 듯하다고 건의하고,:11).모두 갑술년의 청백리 선발에 들었었는데도, 모두 시기하여 미워하는 자들에게 저지되었으니, 일체로 포장하고 그들의 자손을 녹용(錄用)하기를 건의하고.-증직(贈職)을 더하고 시호를 내려야 하는 건의에- 임금이 아름답게 여기고 받아 들들인다:12).청백리로 선발된 5인은 -이미 초계과정을 거쳤으므로 -재론할 필요 없이-선조의 청백리 녹선안(淸白吏錄選案)으로 참고하는 것이 사리에 합당할 듯 하다는 건의가 있다:


이상의 기사이외에 청백리와 그 자손에 관한 처우에 관한 기사의 제목만을 요약해서 소개를 하면,

1).청백을 권장키 위해-청백리의 자손을 녹용하는 것이며, - 효자·충신의 자손을 녹용한다는 것도 역시 당연하므로-권장함이 옳다는 왕명이 내리며(중종 2년(1507).2).이조에서는 청백리의  자손을 다 적어 두고 그 재주를 잘 알아보아 재능에 따라 서용하고자  건의를 하고(중종 14년(1519). 3).이후부터 충신과 청백리의 자손으로 쓸 만한 사람은 보고 듣는 대로 치부(置簿)하여 서용하라는 왕명이 내리며(명종 7년(1552). 4).명현(明賢)·충신·효자·청백리(淸白吏)의 자손을 먼저 수용(收用)하여 표장(表章)의 소지(素地)로 삼으라는 왕명이 내린다(효종 원년(1647) .5).충효·절의·청백리·전망인의 자손과 후손이 없는 자의 아내와 동생 및 조카에게도 동등하게  음식물을 나누어 줄 것을 명하고(현개 1년(1660). 6).청백리에 기록된 고 대제학 정척의 후손중 7대에 걸친 청백리 3인과-효자정려된 6인-충절로 정려된 자 1인-열려로 정려자 1인 합 11인에게 급복하는 은전을 거행하게 한다(.숙종 19년(1693).

7).청백리의 처자 중 스스로 생존할 수 없는 가난한 이를 -진휼청에서 녹미를 주어 구휼하게 하고(숙종  24년(1698).8).청백리 자손중에- 직손(直孫)을 등용해야 할 것이나, 만일 직손이 없을 경우에는 일대(一代)마다 한 사람씩 수용(收用)하고-, 청백리 등의 여러 문서는 수정(修正)하는 것이 옳다는 왕명이 내리며(숙종 39년(1713). 9).선현(先賢)·청백리(淸白吏)·전망인(戰亡人) 등의 자손을 녹용(錄用)하는 법규가 있으면 그에 의거하여 시행하도록 하라는영조 1년(1725)의 왕명이 있고, 10).선현 공신·청백리 전망인 원사인 등의 자손 중에 지손이라도 재능있는 자를 녹용하게 하며(영조 1년(1725). 11).청백리(淸白吏)와 효절인(效節人)의 적장손(嫡孫)만 매번 도정마다 녹용하고(영조 38년(1762).

12).충신의 자손. 청백리(淸白吏)의 자손. 표창을 받은 수령과 전공(戰功)을 세운 사람들도 모두 거두어 쓰도록 하는 왕명이 정조 19년(1795)에 내린다. 13).청백리(淸白吏) 선발은 국조(國朝)의 고사(故事)로-. 생존해 있는 자에게는 직질(職秩)을 높여주고 -이미 죽은 자의 경우에는 그 후손을 녹용(錄用)하여- 한 세상을 용동(聳動)시킬 방도로 삼게 한 그 법 정신이 매우 좋은데, 숙묘(肅廟) 갑술년 이후로는 다시 선발한 일이 없다는 보고에-가까운 시일 내에 거행토록 하겠다는 왕명이 허락된다(정조 19년). 14).인정문에서 충신·청백리의 자손 및 서북과 송도인의 응제를 행한다(순조 11년(1811).


三.졸기(사망기록)은

앞의 청백리(염근리)에 관한 명칭.목적.선발방법.인원수 및 처우에 대해서 살펴보았지만,실제로 어떤 공직자 공무원이었던 선현들이 청렴한 삶을 살았는지는 실록의 졸기(사망기록)를 통해서 간단하나마 한 사람의 평생의 삶의 모습을 살펴볼수 있다.
그간 4차에 걸쳐 자랑스런 조상들을 약 90여명(분)남짓 소개했고.이번호에서는 청렴한 공직자 15분을 추가로 이분들의 졸기의 내용을 요약해서 사망연월일과 인품과 능력과 실제의 평생을 살으신 특징은,


1).《 세조 5년(1461)5월9일(계축) /지돈령부사 강석덕의 졸기 》;청령.강개.고매.(권모.사기를 치지 않음).업무;매우 치밀.치적이 제일.징분질욕이란 좌우명을 실천하고2).(.成宗 4년(1473)11월5일(壬辰)/ 권득경 》;청렴.개결.집안이 가난해도 태연.가는 곳마다 惠政을 베풀며.3).《 성종  22년(1491)12월26일(무진) / 연원군 이숭원의 졸기 》;청렴.개결.효성.우애.공경.검약.업무;근신.치밀. 뇌물이 통하지 않으며,명예와 지위는 높으나 집은 가난해도 만족하며 편안히 살으셨고.4).《 연산 7년(1501)5월29일(병자) / 한성부 우윤 홍흥의 졸기 》;청렴.정직.방정.엄숙.병중에 봉급을 지급하지 말도록  힘쓰고 중지시키며,위독해도 약이나 의원도 거부하고 죽음을 감수하기도 한다.5).《 중종 17년(1522)1월5일(계축) / 전라도 절도사 권승의 졸기 》;청렴한 덕이 소문이 나고.근신.공정하며 사람을 아끼고,의리가 아니면 화살대.화살촉도 받지 않았으며, 

6).《 선수  15년(1582)4월1일(무자) / 예조 참판 김계휘의 졸기 》;넓은 학식.뛰어난 기억력으로 귀신처럼 잘 알고,.김장생선생의 부친으로서, 인물판단에 밝으며,정사에 민첩하고 경국제세의 재주라 칭송되고,가정을 청렴.검소하게 하며, 30년간의  현직을 거쳐도, 문앞에 (청탁하러오는)사람들이 없었다고 한다;. 7).《 선수  17년(1584)2월1일(무신) / 전 병사 이제신의 졸기 》;청렴한 절개와 죽은 후 집에 쌀 한톨이 없었고,치적이 현저하며 청렴.결백한 기풍이 가장 뚜렸하고.

8).《 광해 10년(1618)11월11일(병 신) / 전 판서 오억령의 졸기 》. 청렴.결백하고 사리에 밝고.순박하며,검박하여 헤어진 갖옷을 수십년간 입었고.성실하며,겸손하였고.9).《 숙보 22년(1696)5월7일(임술) / 전 판서 박태상의 졸기 》;담박.청백하며 곤궁을 이겨내고,벼슬을 두루 지냈으나,얼마 안되는 음식조차 없으나 인재를 잘 선발하며 ,청탁을 거절하고 公道(공익)를 따르며; . 10).《 숙종  37년(1711)6월6일(갑자) / 전 판서 홍수헌의 졸기 》;청렴.소박하며,아첨을 싫어하고,절조는 당세에 비길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11).《 정조  23년(1747)1월7일(병인) / 봉조하 김종수의 졸기 》;청렴.결백함이 뛰어나고,몹시가난 하여 숙수(菽水;나물반찬;콩잎나물)도 이어 대지 못하였으나 천성이 지조를 바꾸지 않았고, 지방수령으로 임지에서도 집에서와 같이 가난하고 검소하게 생활을 하였고. 12).《 영조 9년(1733)5월20일(경자) / 전 부제학 이병태의 졸기 》;인품이 뛰어나고 문학이 우수하며.관직생활은 매우 청렴하고 ,시골집은 비바람도 가리지 못하고:.13)《 순조 3년(1803)1월1일(정묘) / 행 호군 이한풍의 졸기 》;.충무공 이순신의 후예로서 청렴.검소하며 법을 잘 준수하고,빈한한 선비차림으로 장군중에 가장 操守(지조를 지킴)하였다;.

14).《 철종 5년(1854)9월9일(을해) / 전 대제학 서기순의 졸기 》;깊은 산중에서 가난을 감수하며,성남의 오두막집은 풍우를 가리지 못하고,수령으로서 관청의 물품을 사용하지 않았으며,가는 곳 마다 청렴하다는 이름이 나 있음:. 15).《 철종 5년12월25일(기미) / 판중추부사 박영원의 졸기 》;40년간 시종일관 조심.겸손하였으며,집안에는 쌓인 재물이 없었고,문안에는 잡된 손이 없었다고 함을 알 수 있다.

이상으로서 조선왕조의 청백리에 관한 제도적인 의의와 명칭과 선발방법 및 자격과 처우등 및 15분의 존경스럽고 자랑스런 조상들의 삶을 모습을 살펴보았다.

오늘의 우리는 국내외적으로 국가는 국제경쟁속에서 거의 대부분의 국민들도 분야별로 국제경쟁속에 자의반 타의반 들어와 생활하고 있는 셈이다.모든 경쟁력은 모든 국력이 결집되고,각자가 맡은 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을 도와주는 공직자 공무원들의 역할도 지대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때문에 조상들의 정신과 삶을 모습을 오늘에 되살려서,민주주의 국가의 공직자들의 갖추고 실천해야할 모습들을 조상들에게 부끄럽지 않는 후손들로서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정치가 공직자 공무원님들의 다 되어 주시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 대다수 이땅의 이나라 주인들의 마음일 것이라 생각하며 이만 줄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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